Page 49 - 읽기쉬운 동경대전·용담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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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문  47




               고, 우리 임금의 높은 덕으로 임진왜란과 병자
               호란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세월이 지나 다시

               임진년과 병자년을 맞을 수 있었다. 이같이 조

               상이 남기신 음덕이 그치지 않고 물 흐르듯 하

               여 아버지가 세상에 나셨다. 아버지 명성이 영
               남 일대를 덮었으니 선비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었고, 조상의 덕이 6세를 이어왔으니 어찌

               자손에게 경사가 없겠는가.




            ③  슬프다. 글 읽는 선비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평
               생은 한바탕 봄에 꾼 꿈과 같이 흘러갔다. 나이
               마흔이 되어 평생 공부한 것이 울타리 가에 버

               려진 물건처럼 쓸모없이 되었음을 아셨고, 마

               음속으로 벼슬길에 나아갈 뜻을 버리셨다. 한

               편으로는 도연명(陶淵明)처럼 귀거래사(歸去來
               辭)를 지으시고, 한편으로는 벼슬길을 찾던 지

               난날은 옳지 않고 오늘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키우는 일이 옳다는 것을 도연명의 글귀에 빗

               대어 읊으셨다.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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