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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폭동이 일어났다. 기후가 일으킨 폭동이
목암 전희식 _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 농부
민란은 순박한 백성들이 궁핍과 억압을 참다 참다 못 참고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도 민란은 일정한 동기와 목적이 있다. 썩어빠진 조정을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역사들도 처음에는 민란으로 시작된다. 실패하면 민란이요 성공하면 건국의 시조가 된다. 모든 기성종교들이 신흥종교 또는 사이비 종교로부터 시작 되었듯이.
반면, 폭동은 그렇지 않다. 정전만 됐다하면 미국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약탈과 살인과 방화가 일어난다. 이게 폭동이다. 추구하는 목적이 분명하지도 않고 대의와 명분도 없어 보이며 파괴적인 본성을 거칠게 드러낸다. 파괴와 공격 그 자체가 전부인 게 폭동이다. 물론 폭동형태를 보이는 민란과 민중봉기가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 폭동이 일어났다. 서울 한 복판 천도교서울대교구에서. 기후폭동이다. 8월 14일 지일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천도교환경선언문에서다. 열사병과 가뭄과 물난리와 산불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계속해서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으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면서 기후폭동을 헤쳐 나가자고 호소했다. 기후폭동! 절체절명의 지구 위기 순간에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정부는 기후변화, 기독교는 기후붕괴, 천도교는 기후폭동
마구잡이로 휘젓는 듯 하는 요즘 기후는 폭동 그 자체다. 애꿎은 희생자를 내는 것도 그렇고 돈 있고 배부른 사람이나 그런 나라들은 피해가는 것도 그렇다. 기후가 이처럼 사납게 변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많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패악들에 있다. 돈이 많아 지구의 자원을 다 긁어다 쓰면서 지구를 온실가스로 채워대는 부자 나라들이 있어서다.
피해는 그들이 보지 않는다. 방비책도 잘 갖춰져 있고 피해복구도 빠르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 올 염천 더위에 쓰러진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쪽방 촌 사람들, 가난한 노인들, 농장에서 일하던 연로한 농민들인 먼저 쓰러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닌 게 바로 기후폭동 현상이다. 종교가 나서야 할 본연의 영역이다. 힘없고, 가난하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종교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거룩한 경전의 말씀도 가만히 새겨보면 모두 다 사람의 참 행복을 위한 말들이다.
천도교가 나섰다. 중앙총부 이름으로 ‘폭동’이라 이름 붙였으니 후대에 길이 남을 만 하다. 지금까지 정부기관이나 언론은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라는 이름을 써 왔다. 국제기구도 그랬다. 이는 참으로 어중간한 이름이다. 박정희 때 물가인상을 ‘물가조정’이나 ‘물가현실화’라고 불렀던 것과 같이 현실을 엉뚱하게 오도하는 이름들이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는 변화의 방향이 담겨 있지 않고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역시 많이 쓰이는 용어이나 책임주체와 심각성이 약하다. 그런 와중에 참신한 용어가 등장했는데 ‘기후붕괴’다. 이 용어는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CEN) 상임대표이자 감신대 교수인 이정배선생이 처음 썼다. 필자가 발표자로 참석했던 6월 21일 토론회에서다. 기후붕괴. 현실감 있는 이름이다. 듣기만 해도 그 심각성이 전해진다. 붕괴. 그러나 어딘가 흡족하지 않았다. 방사능물질 반감기처럼 ‘붕괴’라는 말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처럼 보인다.
이때, ‘기후폭동’이 등장한 것이다. 두 개 이상의 오염물질이 작용하여 새로운 다른 오염을 일으킨다고 해서 ‘복합오염’이 등장했듯이,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던 플라스틱과 화석연료가 어느 순간부터 맹렬하게 인간의 삶을 짓뭉개기 시작해서 ‘환경역습’이라는 말이 등장했듯이. 그렇게 기후폭동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환경역습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가 10여 년 전에 나온 <해프닝>이다. 라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인류에게 식물들이 극단적으로 복수하는 이야기를 풀고 있다. 사람은 식물을 먹고산다. 아니면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을 먹는다. 결국 식물은 인간의 목숨 줄이다. 그런데 그 식물이 인간에게서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내뿜게 되는데 이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자살하게 하는 물질이다. 좀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순한 사람을 자꾸 약을 올려 화나게 하면 무섭지 않던가?
기후가 일으킨 재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차고 넘친다. <해프닝>의 공포와 절망을 뛰어 넘는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재난영화는 기후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폭동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장면들이 즐비한데 천도교에서 처음으로 합당한 이름을 찾아줬다고 할 것이다.
한울연대, 본격적인 기후폭동 대응 전략을 세우다
기후폭동을 헤쳐 나가자는 천도교환경선언문이 발표되고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필자가 공동대표로 있는 한울연대에서 기후폭동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기구를 새로 만들었는데 이름도 ‘한울연대 기후폭동 대응 추진단’이다. 천도교환경선언문에 나온대로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최고경지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물건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느니라. (해월신사법설, 「삼경」)”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물건(자연)이 공경의 대상이 되지 않고 인간 편리의 단순한 도구로만 전락되어서 초래된 재난이 기후폭동이라는 인식이다.
한울연대는 전략회의에서 기후폭동 문제를 논하기 전에 미리 새겨야 할 것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우리(나)는 뭘 포기할 수 있는가. 둘째,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셋째, 우리(나)는 어떤 불편함을 감수 할 수 있는가이다. 근대 물질문명이 시작된 이후 200여 년 동안 인간이 이룩한 눈부신 성장과 발전 이면에서 커 온 기후폭동을 헤쳐 나가자니 물질문명 역주행이 요구된다. 그동안 너무 누렸고 너무 파괴했고 너무도 많이 잃었다.
폭염에 홍수, 지진, 식량문제, 의료비 증가 탈핵운동, 수자원 고갈, 해수면 상승, 미세먼지, 대기질 오염, 우울증과 기관지염 등 온갖 문제들의 뿌리에는 기후폭동이 있다. 경제, 통상, 인권과도 연결된다. 시대정의, 역사정의를 넘어 기후정의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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