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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순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988회   작성일Date 18-12-06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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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제 통일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고순계 주주통신원l승인2018.12.06l수정2018.12.06 00:33

    11월 30일 종각역에 위치한 <문화공간온>에서는 평화연방시민회의가 주최한 2018년 워크숍 "연방제 통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열렸다. 이재봉 교수를 초빙해 한성 상임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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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 상임공동대표가 이재봉 교수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연방제에 관한 이재봉 교수를 능가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서 단연코 없다고 말하였다.

    주최한 여인철 평화연방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는 "<연방>을 목표로 새로운 발걸음을 뗀 시점에 연방제에 대한 인식 제고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워크숍을 갖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고 말했다.

    연사로 나선 이재봉 교수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사회과학대학장으로 재직중이다. 이 교수는 강연에 앞서 기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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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인철 평화연방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가 어렵게 이재봉 교수를 모셨다면서 큰 박수를 보냈다. '문화공간온'은 이재봉교수의 강연으로 수준 높은 문화공간이 되는 것이 분명한 듯 했다.

    "국가연합은 분단을 영구화할 수 있고, 연방제는 북한의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남한과 북한이 서로 자신의 체제로 통일하기를 바라겠지만 어느 쪽이 양보하겠는가. 남이든 북이든 자신의 체제를 포기하고 상대의 체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어느 한쪽이 스스로 붕괴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전쟁에 의해 양쪽이 불바다 되고 잿더미 되어 통일된다면 재앙이다.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며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길이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말고 있겠는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정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언론은 미국의 주류 정치세력과 군산복합체 못지않게 종전선언을 반대한다. 종전이나 평화협정이 한미동맹 약화 및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과 필요성을 짚어봐야 한다.

    첫째, 북한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필요 없다.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남북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라고 한 터에 북한을 겨냥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겠는가?

    둘째,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도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하다. 남한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1992년 국교정상화 이후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한중 교역량은 2003년부터 한일의 교역량을 넘어섰고, 2004년부터는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다. 2009년부터는 한미 및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역의 내용이다. 일본에겐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가운데 2017년 283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미국에겐 198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7년 179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중국에겐 수교 다음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기록해온 가운데 2017년 443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남한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약 1/4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거의 절반을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남한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까?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군사정책을 전개하고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거부하는 군사정책으로 맞서며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의 제1 폭격 지역과 대상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평택 주한미군 기지 아니겠는가. 주한미군 때문에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로 남한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한반도 중립화는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면서 구상하기도 했고, 북한이 지금까지 연방제 통일방안에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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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방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설명하는 이재봉 교수이다. 이교수는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저서에서 친북과 종북을 가르는 법정에서 역사와 평화를 증언하고 있다.

    이 교수는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관해 얘기할 때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가장 큰 쾌감과 보람을 느낀다. 남한에서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면 '종북좌파 1등급'으로 매도당하며 '이적 행위'로 처벌받기 쉬운데, 판검사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가장 많이 걸려드는 '3대 이적행위'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것 같다.

    남한의 법에 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 '반정부', 미국의 군대에 관해 부정적으로 외치면 '반미', 북한의 통일 방안에 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면 '친북' 등, 모두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과거 '한총련'이나 '범민련' 등의 통일운동단체들이 '불법 단체'나 '이적 단체'로 판정받은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연방제 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방제통일에 관해 언제 어디서든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선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할 텐데, 이보다 더 바람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정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상대를 고려해야 하는 통일 방안은 적어도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바람직해야 한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람직하지만 이루기 어려운 방안은 환상이나 공상에 머무르기 쉽고, 실현하기 쉽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방안은 최악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제 경쟁은 끝났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통일해야 한다는 남한과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 불패"라며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북한이 협상을 통해 체제를 하나로 합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65년 이상 서로 다른 사상과 체제를 지켜온 남한과 북한 가운데 어느 쪽이 자신의 사상과 체제를 스스로 양보하겠는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통일은 남쪽엔 바람직할지라도 북쪽은 흡수통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사회주의로의 통일은 북쪽엔 바람직할지라도 남쪽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체제 통일이 평화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북한의 붕괴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터에, 실현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전쟁에 의한 통일보다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전쟁은 어느 쪽이 이기든 양쪽 다 불바다와 잿더미로 만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선택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체제가 공존하는 연방제 말고 무슨 방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연방제통일을 지지하고 선전하면 판검사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듯한데, 가끔 깐깐하게 반대신문에 나서는 검사를 만나기도 한다.

    "물론 통일이란 '하나로 합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하는 것은 완전한 통일이 아니죠. 통일할 바에야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게 평화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같이 사는 게 분단된 채 으르렁거리는 것보다 백번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중시하는 민주주의도 목표를 향한 절차이듯이, 통일도 종점을 향한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연방제도 분명히 통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특히 나라 밖으로는 국경이 낮아지는 세계화가 진행되고 안으로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분산되는 지방화가 추진되는 21세기에, 한울타리 안에 하나의 체제와 한 사람의 대통령만 고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이유로 연방제 통일을 분명히 지지합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러나 연방제 통일보다 더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을 내놓고 감옥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적 통일을 원한다면 연방제 통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먼저 제안했다고 해서 금기하며 반대만 하라는 것은 억지요 횡포다.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 점은 비판하면서 더 이상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통일 방안을 모색하고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몇 차례 조금씩 수정하면서 1960년부터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 방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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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봉 교수는 언제인가는 연방제가 끝난 후의 통일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로 통일이 될 것으로 보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자에게 답변을 하고 있다.

    1. 연방제의 의미와 배경

    연방제는 연방정부 또는 중앙정부와 연방을 구성하는 지방정부들 사이의 권력이 분립된 정부 형태를 가리킨다. 가장 큰 특징은 각 정부가 서로에 대해 실질적이고 독립적인 권력을 가지며 인민에게 직접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저마다 배경과 성격이 조금씩 다르지만 지구상엔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독일, 캐나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호주, 멕시코, 아르헨티나, 말레이시아 등 20여 개에 이른다.

    물론 이들 국가들이 연방제를 취하고 있는 배경과 북한이 연방제를 제안해온 배경은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전후해 동부 13개 주가 각각 독립성을 지니고 우호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연합의 형태를 취하다 영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독립된 주들이 하나의 국가로 뭉칠 필요성을 느끼고 1789년부터 연방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에 반해 북한은 남한과 사상 및 체제가 달라 하나의 국가로 합치기 어렵기 때문에, 남북이 안으로는 각각 체제가 다른 지방정부를 유지하면서 밖으로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합쳐 하나의 연방국가로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미국은 똑같은 이념과 체제를 지닌 주들이 대내적으로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 하나의 강력한 국가 체제를 이루기 위해 연방제를 택하였다면, 북한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남북 정부가 일시에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연방제를 취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제안해온 연방제통일 방안의 배경은 중국이 대만에 제안해온 일국양제통일 방안의 배경과 비슷하다. '일국양제'는 '일개국가 양종제도 (一個國家 兩種制度)'를 줄인 말로 하나의 국가 안에 서로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회주의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그리고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를 환수해, 이들 지역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보장해주고 있다. 나아가 대만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며 통일을 이루자고 제안해왔다.

    여기서 북한의 연방제와 중국의 일국양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당장 하나로 합치기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두 체제를 공존시키자는 배경과 내용이 같다. 그러나 북한의 연방제에서는 남쪽 자본주의 지방정부와 북쪽 사회주의 지방정부가 동등한 지위로 수평적 관계를 이루지만, 중국의 일국양제에서는 본토의 중앙정부에 대만, 홍콩, 마카오 등의 지방정부가 종속되는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는 게 다르다.

    2. 연방제통일 방안의 변화와 내용

    (1) 1960년의 '남북련방제' 창설 제안

    김일성은 1960년 8월 15일 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처음으로 연방제통일 방안을 제안했는데, 일종의 조건부였다.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통일을 추구하되, 만약 남쪽이 "공산주의화될까 두려워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 연방제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방제를 통해 "남북의 접촉과 협상을 보장함으로써" 서로 간에 협조하면서 불신이 사라질 때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여 "조국의 완전한 평화적 통일을" 이루자고 했다. 

    지금은 물론 1960년대에도 북한이 남한보다 인구가 훨씬 적었는데, 김일성이 이렇게 당당하게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거듭해서 강조했던 배경이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첫째, 그때는 북한이 거의 모든 면에서 남한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김일성이 위와 같은 제안을 했던 1960년 8월은 남한에서 4월 혁명이 일어난 지 4개월이 지난 때로, 정치가 불안한 데다 경제적으로도 북한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기에 김일성은 "오늘 남조선의 민족경제를 바로 잡으며 도탄에 빠진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가장 긴급한 문제"라며 연방제를 통해 "남북조선의 경제 문화 교류와 호상협조를 보장함으로써 남조선의 경제적 파국을 수습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조선의 수백만 실업자들과 빌어먹는 어린이들의 비참한 처지를 우려하며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남조선 동포들의 내일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근심한다면 그 누구도 남북 사이의 경제교류와 경제적 협조를 반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치문제를 젖혀놓고라도 먼저 남조선 동포들을 굶주림과 가난에서 구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남북 사이의 경제교류와 함께 문화교류를 널리 실시하며 인민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1990년대부터는 거의 모든 면에서 앞서있고 특히 경제적으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남한이 북한에 위와 비슷한 말을 하게 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북한이 남한에 위와 같이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교류를 주장할 만큼 체제에 대한 우월감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김일성은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면 남한 사람들도 정치적으로 더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더 앞선 북한 체제를 선호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남한에서 흔히 평가해온 대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위해 일종의 기만전술 또는 음흉한 술책으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제안했을 수도 있다. '남북련방제'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는 남쪽이든 북쪽이든 한반도 안의 외국 군대는 모두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쪽에서는 해방 직후 들어왔던 소련군이 1948년까지 철수했고 한국전쟁 중에 들어왔던 중국군은 1958년까지 철수했지만, 남쪽에서는 미국군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그래서 김일성은 "미국군대를 내쫓고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자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남북이 서로 병력을 크게 감축할것을 제안했다.

    "남북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며 특히 남조선의 경제생활을 정상화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군대를 줄이는 것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 방대한 군대의 유지는 인민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군을 남조선에서 물러가게 하고 남북조선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줄일 것을 계속 주장합니다.(중략)우리나라에서 20만 군대만 가지면 민족보위 임무는 얼마든지 담당할 수 있습니다."

     1953년 7월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1954년 4~6월 개최된 제네바회의에서 북한 대표가 "남북 양쪽의 군대 수효를 축소시키되 각측 군대의 수효가 10만 명을 넘지 않게 할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 무렵엔 북한이 남한보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 앞섰을 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강했기 때문에,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남북 양쪽이 병력을 감축하면 우세한 군사력으로 남한을 공산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2) 1970년대의 '고려련방공화국' 통일 방안

    1971년 8월 김일성이 남한의 모든 정당 및 사회단체 등과 아무 때나 접촉해 협상할 용의가 있다며 폭넓은 남북대화 방침을 제시함에 따라, 1971년 9월 남북 사이에 최초로 적십자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1972년 5월 박정희의 지시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 남북 사이에 분단 이후 처음으로 통일과 관련된 합의를 이루어냈다. 두 달이 지난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흔히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불리는 남북 최초의 합의 사항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그리고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이 공동성명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남북 당국은 이를 정권 유지 및 강화에 악용함으로써 빛을 보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에 김일성은 1973년 6월 "민족의 분렬을 방지하고 조국을 통일하자"는 연설에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5대 방침'을 제시하면서 1960년 8월 제안했던 '남북련방제'를 보완한 '고려련방공화국' 통일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5대 방침이란 다음과 같다. ①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와 긴장상태 완화. ② 남북 사이의 다양한 합작과 교류 실현. ③ 남북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④ 고려 련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련방제 실시. ⑤ 단일한 국호에 의한 유엔가입. 여기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연방제 실시에 관한 김일성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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