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왜곡보도 확인 기사 펌
페이지 정보
본문
손병희는 요승, 美 선교사가
이대 연구팀이 3년간 일본 언론 사료 분석
양현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연구팀이 3년간 수집한 자료에는 3·1운동에 대한 일본 언론의 왜곡 보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자국 정부의 강압적 식민통치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3·1운동을 ‘일부 세력의 선동’으로 폄훼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3·1운동으로 한반도 전역에 독립의 열망이 퍼져나가고, 운동의 파급력이 국제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 점을
염려한 당시 일본사회 지식인층의 혼란상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21일 “일본 언론의 왜곡 보도와 그 맥락을 총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역사전쟁에서 사료에 대한 해석을 선점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3·1운동 확산 초기에는 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축소 보도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도쿄아사히신문의 1919년 3월 3일자 기사는 탑골공원 독립선언문 낭독 등 핵심 사건을 모두 누락했다.
대신 경무총감부가 신속히 대응했다고 강조하는 데 지면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이 기사는 3·1운동에 대한 일본 언론의 첫 보도로 확인됐다.
‘불온한 격문 배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신문은 3·1운동 발발에 대해
“국장을 앞두고 경성은 각지로부터 올라온 자가 많아 매우 들끓었다.
1일 아침 남대문역 앞에서 선인(鮮人·조선인을 업신여기는 표현)이 조선어로 쓴 격문을 붙였다”고 적었다.
또 “이에 경무총감부는 활동을 개시했다”며 “덕수궁 장례식에 참석 중이던 경무총장은 오전 11시30분
갑자기 경무총감부로 돌아갔다.
헌병대 경찰서장을 집합시켜 대활동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여러 신문에서 독립운동 세력을 폄하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주요 신문들은 독립운동가 손병희를 ‘요승’(妖僧·정도를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승려)으로 묘사하고,
3·1운동에 대해서는 “외국 선교사가 선동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신문은 3월 7일자 ‘악랄한 야심교, 선동자는 미국 선교사’라는 기사를 통해 3·1운동이 자주적인 운동이 아니며
일부 천도교 세력과 미국 선교사가 주도하고 있다고 왜곡했다.
- 이전글천도교에 사람이 몰려오게 하려면 19.01.23
- 다음글[mbc뉴스]3.1운동 발판 동학혁명, 의암 손병희선생 위상정립 19.01.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