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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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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377회   작성일Date 19-03-23 18:21

    본문


    同德께서는 東學道人인가? 天道敎敎人인가?(8-6)

     

    律文

    吾敎律文文明制度照應하야 正當措針l . 秩序 l 齊整하며 面目刷新하야 衆心一大公圈케한 天啓文이니 敎人脚立하야 軌道外一步地放過하는 迷妄念하면 人族上 熙景하리니 其正的敎門大憲하니라.

    德曰天玄空裏하면 萬念流蕩이오 吾心方寸反照하면 吾身一分天이니 吾天吾愛하며 吾身吾護하야 內容覺想表面偉業人界上 大標幟할지어다.

    / 李東初;天道敎會宗令存案PP.25-27.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율문/ 대헌과 같은 규칙.

    천도교의 대헌은 세계 문명제도에 알맞게 대응하여 정당한 방향과 지침을 잡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질서가 가지런히 정돈되었으며 본래의 모습을 새롭게 하여 대중의 마음이 커다란 공원에 들어가게 하는 것과 같이 다 같은 한마음이 되게 하는 한울님의 게시문이다. 교인들은 이 대헌에 따라 궤도 밖으로 무심이라도 한 발자국도 벗어나는 미망의 생각이 없으면 인류에게 아름다운 경치(희망. 행복)을 드릴 수 있다. 그 올바른 길이 교문의 대헌 속에 마련되어 있다.

    덕이란 한울을 현공풍수에서 구하면 온갖 생각(잡념)이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자그마한 내 속마음에 되비쳐보면 나의 육신이 하나의 작은 하늘에 불과하니 나의 한울(性靈 또는 本來我)을 내가 사랑하며 나의 육신을 내가 보호하여 안으로는 온갖 거친 잡념을 끊어야 하고 밖으로는 위대한 업적을 세워 인류에 커다란 깃발을 내 세워야 한다./ 새로운 세상인 지상천국 건설의 깃발을 들고 앞서 나아가야 한다.)

     

    00 ; 미망(迷妄) -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맴. 또는 그런 상태.

     

    00 ; 현공(玄空) - 玄空風水의 준말로 玄空風水란 삼원현공풍수지리(三元玄空風水地理)를 말한다. 천년이 넘도록 전통 학문으로 전해 내려온 풍수지리에 대해 불신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풍수지리는 신앙도 아니고 전설도 아닌 최고급 실용학문이다. 특히 현공풍수(玄空風水)는 중국 당나라의 국사(國師) 양균송(楊筠松)선생이 창안하였다고 알려진 이기풍수비법으로 형기풍수의 공간을 기본으로 하고 시간과 좌향(坐向)을 적법하게 배합하는 시공(時空)의 풍수법(風水法)이다. 현공풍수는 보이지 않는 의 정체를 19의 숫자조합으로 환산하여 [디지털방식]으로 길흉화복을 판단하는데, 그 방법이 쉽고 간단하면서도 적중률이 뛰어나기 때문에 실제로 현공풍수법(玄空風水法)을 적용해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삼원현공풍수지리는 시간과 공간을 배합한 풍수학문으로, 현공풍수의 이치(理致)는 변화에 있다. 따라서 현공풍수는 음양오행(陰陽五行)하도(河圖)낙서(洛書)를 기본원리로 하여팔괘(八卦)를 배합하고 시기에 따른쇠왕(衰旺)을 구분하여 길흉을 추론하고생극제화(生剋制化)를 이용하여 추길피흉(趨吉避凶)하는 소위 동양철학의 종합학문이며 동양철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풍수이론(이법)은 시간개념이 없는 단지 공간개념만의 이법이었으나 현공풍수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적용 판단함으로 정확한 길흉을 예측할 수가 있다.

     

    의암선생이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大告天下)한 이유와 의미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義菴孫秉熙先生傳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李容九親日賣國行動으로 하여 극도로 화가 난 의암선생은 李容九一派分離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겼다. 그대로 참고 있다가는 자신도 親日이란 누명을 벗어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孫秉熙란 제세겨조의 이름을 팔아서 순진한 동학교도들이 李容九의 속임수에 빠져넘어갈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乙巳條約이란 亡國條約一九O一一一七일에 맺어졌는데 電擊的으로 맺어진 이 條約後에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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