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1)
페이지 정보
본문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1)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림 ; 필자의 동학사상 연구소 방문을 원하시면, 필자의 카페주소인,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http://cafe.daum.net/oamdonghak)를 클릭하시면, 회원이 아니시더라도, 방문객은 누구나 각 종 분야에서 선정(選定)한, 일만여 건(一萬餘 件)의 자료들과 ‘김 용천 자료실’을 찾아 필자의 글들을 검색하여 읽고,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본인의 카페주소는 링크되어 있으므로 위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바로 찾게 될 것이며, 자주 찾을 의향이 있다면 즐겨찾기를 해놓으시면 언제나 편리하게 방문하실 수가 있습니다.
포덕 160(2019)년 3월 23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
■ 이글은, 필자가 1년여에 걸친 와병(臥病)중에 집필한 10여 편의 글 중의 하나로, 이 글 중에 필자의 글이 아닌, 자료문헌과 인용문장 그리고 주(註)의 해설 문장들 중에 오류(誤謬)가 있을 수 있사오니, 인용(引用)이 필요하신 분은 원문(原文)을 반드시 확인하여 사용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완벽하게 재확인하지 못하고 게재한 점에 대하여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10여 편의 글 중에서 완성된 글은, 금년 천일기념일전까지 게재가 가능하면 게재하도록 하고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하여는 따로 정식으로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암 김용천 심고.
목 차.
들어가는 말.
1. 동학인가? 천도교인가?
2. 천도교의 종교적 목적.
3. 동양 윤리 사상의 흐름.
4. 천도교의 정체성.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2000년을 전후하여 학계와 교단은, 천도교가 종교단체인가? 사회개혁(사회개벽)을 위한 사회단체인가? 또는 동학인가? 천도교인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교단은 학계와 동학과 천도교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에게 선명하게 납득할 만한 정답을 내지 못했다. 각자의 입장에서 설왕설래(說往說來)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학계와 교단은 합의된 어떤 결정도 없다는 것이 오늘의 천도교단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교단의 교세가 매우 미미하다보니까 학계에 대하여 교단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연구역량의 부족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천도교가 종교단체인가? 사회단체인가? 또는 동학인가? 천도교인가? 에 대한 원하지 않는 혼란이 대내외적으로 가중되어 오고 있었다. 학계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동학과 관련된 연구가 시작되는 중심에, ‘東學’이란 이름으로 시작되는 대학교수 중심의 연구소와 한국사상과 관련된 연구소 등이 다수 설립되어 연구가 활발하였고 그 결과물들인 수 백편의 연구논문들이 발표되었지만, 교단은 연구소 하나 없이 특별기도를 통한 수도수련에만 전념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나 필자도 1975년도에 석사 학위논문으로 『東學運動의 背景과 思想』을 집필하여 발표했듯이, 1970년도 무렵부터 지금까지 碩, 博士 學位論文으로 동학과 천도교에 관련된 수 백편의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학계와 교단이 상호보완적이 되지못하고 각자가 지향하는 바대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2000년 이후에도 학계의 연구소에서는 동학에 관련된 활발한 연구와 결과물은 대량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교단은 이에 발맞추어 종교로서의 천도교에 관련된 연구와 결과물이 어느 정도는 발표되어야 했었는데, 겨우 월간교화지인 『新人間』에, 일 년에 몇 편 정도의 의미있는 글이 실리는 정도였다. 교단이 이렇게 된 원인의 문제점은 다양하겠지만, 교세가 미약해짐으로 인하여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 것이 첫째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직시해보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천도교에는 존경받는 어른인 원로 지도자가 거의 없었고, 폭넓고 깊게 공부한 능력있는 교역자가 없었다는 점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 의암성사 시대의 기라성(綺羅星)같은 교단의 교역자들, 이 나라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그들이 교단 발전에 많이 기여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들의 후계자를 선발하고 교육하여 계승시키지 못하여 교단이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었던 해방공간에서 원로급의 교역자들이의 상당수가 환원하거나, 일부 교역자들이 교세의 70-80%로가 북한 지역으로 움직여 활성화가 되자 지도자급의 교역자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 힘 때문에 북한지역으로 포덕과 교화를 위하여, 이돈화를 비롯한 다수의 우수한 교역자들이 북조선 종리원으로 이동하게 되자, 남쪽인 한국에는 그들이 이끌었던 교의해석의 중심의 명맥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어 교단의 역사가 일시적으로 중단에 가까운 암흑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李敦化와 옥고로 환원하신 梁漢黙 그리고 교단의 교리해석을 이끌었던 수많은 교역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교역자는 거의 사라져 명맥이 끊어졌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평가라 할 수가 있다. 평가하는 측면에 따라 몇몇 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李敦化와 梁漢黙과 같은 영향력 있는 교의 해설가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천도교는 외형은 살아 숨을 쉬고 있지만 동학과 천도교의 궁극적인 혼령(정신 또는 사상/지상천국건설이라는 종교적 목표)은 멸절(滅絶;멸망하여 완전히 없어짐)되었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중간 교역자 이상의 원, 주직에 있는 분들 중에, 교단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리연구가였던 李敦化와 梁漢黙의 講道를 직접 받은 분이 몇 분이나 되며. 설혹 강도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분들이 남기신 저작물들을 얼마나 많이 숙독(熟讀)과 독해(讀解)를 통하여 완벽히 이해하여 포덕교화에 활용하실 수 있는 교역자 얼마나 되는 지는 알 수 가 없다.
필자는 오늘에 이르게 된 교단을 바라보면서 그런 능력있는 교역자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근자에는 ‘존경받는 도력이 높으신 큰 어른’이 한 분도 안 계신다는 것을 자타가 마음속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해방이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특별기도와, 종학대학원과 10여개가 넘는 수도원을 가지고, 헤아릴 수 없는 기도와 수도수련을 해왔는데도, 교단의 중흥을 앞장 서 이끌고 갈 교역자와 갖가지 교단 내외의 분쟁을 중재할만한 ‘존경받는 도력이 높으신 큰 어른’이 없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기이한 일이라 할 수 있다.
註 00 ; 중재(仲裁/arbitration) - 제삼자가 분쟁을 하는 당사자나 조직 또는 집단의 사이에서 분쟁을 조정하여 화해를 모색하는 일.
1. 東學인가? 天道敎인가?
현재, 천도교 교단의 핵심교역자 중의 한 분인
- 이전글3.1혁명백주년특별전시,동학혁명에서 3.1혁명으로 19.03.24
- 다음글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2) 19.03.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