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시변 의논하고 3.7자 전해 주십시다. ...의친왕의 동학 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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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대도 닦아내어 오는 사람 효유해서 3.7자 전해주니 무위이화 아닐런가!
어진사람들과 시운시변을 의논하여 기국이 큰 분들이 만고없는 무극대도를 하도록, 천도교 도문에 들어서도록 포덕을 해 나가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천도교의 씨앗을 심어주어 천도의 꽃이 마음에서 자라나게 하여야 합니다.
부암 심고
의친왕 李堈(이강)의 동학 입도
중국에 체류하던 성사께서는 손문이 국제반점(=호텔)에 유숙하면서 미국행 선편을 알아보는 한편 당시의 혁명가인 손문과 교류하였다. 어느 날 손문이 국내유지들을 초청하여 국제만점에서 연회를 베푼다는 신문을 보고 성사께서 손문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그 연회석에 자진 참석하여 인사를 교환하였는데 이로부터 두 분은 매우 친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 체류하던 성사께서 그 후 일본에 다시 돌아가 이상헌이라는 이름으로 변성명하고 대세를 관망하였는데 이 무렵 국사범으로 몰려 일본에 망명하고 있던 권동진, 오세창, 조의연, 이진호, 조의준, 양한묵 등과 만나 자주 시국을 의논하였다. 이 때 의친왕 李堈공(公)이 성사의 인격을 흠모하여 자주 성사를 방문하였는데 성사 또한 때로는 의친왕의 부름을 받아 종종 국가의 대계와 경륜을 설파하였으며 귀국 후에도 의친왕은 성상의 충의와 동학의 진리에 공명하여 현도 이후 비밀히 입교식을 거행한 루 성사를 사부의 禮(예)로 대하였다.
또 어느날 아침 성사께서 공중욕장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다가 나이 40전후로 보이는 조선인 한 사람이 일본 하녀를 옆에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대는 조선인인가? 일본인인가?”하고 다그쳐 물으니 조선사람 박영효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성사께서는 “今陵尉(금릉위) 박영효란 말인가? 그대도 조선사람이요, 나도 조선사람인데 우리나라 꼴이 어찌 되었는가? 그대는 더구나 금상폐하의 사위가 아닌가? 국가 흥망이 조석에 달리어 폐하께서는 침식이 불안하신 이 때에 외국에 망명한 처지로서 어찌 목욕탕에까지 일본인 하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사람 앞에서 추잡한 꼴을 보이는가?”하고 힐난하였다. 이에 박영효는 곧 사과하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각별히 친하게 되었다.
(천도교 신앙의 길잡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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