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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8-여상(呂尙)-강태공(姜太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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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672회   작성일Date 20-03-25 11:37

    본문

    8, 여상(呂尙)-강태공(姜太公)

     

    여상은 보통 강태공(姜太公)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는데 주()나라의 동해(東海)사람이다. 본래의 성()은 강()인데 그 선조가 여()라고 하는 지방에 봉()함을 받았으므로 씨()를 여()라하고 이름을 상()이라 하였으며 자()를 자아(子牙)라고 하였다.

    여상(呂尙)을 또 달리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부르며, 사상부(師尙父)라고도 불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가려고 할 때에 점()을 쳐보니 용()도 아니오 곰도 아닌 이상한 물건을 얻게 될 터인데, 천하(天下)를 통일하는데 있어서의 왕()의 도움이 될만한 훌륭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문왕(文王)은 이상히 생각하면서 사냥을 나갔는데 위수(渭水)가에 이르니 70여 세가 된 아주 궁박하게 보이는 한 노인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왕(文王)이 그 노인과 서로 말을 ㅇ하여보니 뜻이 크고 세상 경륜(經綸)이 참으로 훌륭한 인재(人材)였던 것이다. 문왕(文王)이 그 자리에서 우리 조부(祖父)인 태공(문왕의 아버지는 왕계 또는 계력이라 일컫고 왕계의 아버지가 바로 태공인 고공단보이다)이 일찍 말하기를 후()에 어떤 성인(聖人)이 있어 우리나라를 지날 터이니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주나라가 흥()하게 되리라 하여 태공 때부터 그 사람을 만나려고 바라본 지가 오래였던 바 그이가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려하고 그 뜻을 따서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부르는 동시에 스승으로 삼아 세상을 다스리는데 그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되었으니, 그이가 바로 여상(呂尙)이었다.

    문왕(文王)이 세상을 떠난 후, 둘째 아들 발()이 뒤를 이어 무왕(武王)이 되었는데 여상을 높여 사상부(師尙父)라고 부르는 동시에 그의 도움을 받아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쳐 없애고 주나라가 은나라에 대신하여 천하(天下)를 통일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무왕(武王)의 앞을 가로막고 은나라를 치지 못하도록 간()하였는데 무왕의 부하들은 백이과 숙제의 목을 베려고 하였지만 여상(呂尙)이 사람들은 의사(義士)니까 죽여서는 안된다하고 잘 부축하여 보냈다고 한다.

    그후 백이와 숙제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하여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먹다가 굶어죽고 말았지만, 여상(呂尙)은 이런 의사(義士)들을 죽이지 않고 아낄 줄을 아는 사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무왕(武王)이 천하를 동일한 후 그 공()으로 여상(呂尙)은 제()나라에 봉()함을 받았는데, 정치를 복잡하게 하지 않고 간소하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쉽게 잘 따라와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때에는 제()나라가 더욱 강하게 되었다고 한다.

     

    별첨자료

     

    1) 암탉이 울면 지방이 망한다?의 유래

     

    새벽을 알리는 것은 수탉이 할 일인데 암탉(牝鷄)이 수탉 대신 때를 알리는 것은 음양의 이치가 바뀌어 질서가 없어졌다는 뜻이며 예로부터 집이나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보았다.

    고대 중국 은()나라의 주왕(紂王)은 절세미녀 '달기'에게 정신을 빼앗겨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놀이와 포락지형이란 가혹한 형벌로 호사와 포악함이 극에 이르렀다.

    마침내 주왕은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주()나라의 무왕(武王)에게 크게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은나라도 망하고 만다.

    '빈계지신'이란 말은 무왕이 주왕과 싸움을 앞두고 주왕의 죄상을 주나라 장병들에게 알리는 가운데 나온 말인데 주왕이 달기의 치마폭에서 달기의 말만 듣고 국정을 망친 사실을 하나 하나 밝히고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길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집안이 망한다(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고 했다.

    그런데 은나라 왕은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팽개쳐버리고 같은 조상을 모시는 백이와 숙제의 후손들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죄를 짓고 곳곳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썼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나라를 범죄로 문란해지게 했다."

    우리 속담에서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비아냥거릴 때도 이 속담은 동원된다. 이제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의 전향이 필요한 때이다.

     

    2)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의 유래

     

    ()에 문왕(文王)이 된 서백(西伯) ()을 도와 은()을 멸망시키고 주()를 세운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의 이야기다. 그는 젊었을 때, 글만 읽고 살림을 돌보지 않아 부인 마()씨로부터 늘 구박을 당했다. 어느날, ()씨가 밖에 나간 사이, 비가 몹시 와서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이 모두 떠내려갔다. 그런데도 글만 읽고 있는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부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이혼장을 써던지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 후, 여상(呂尙)이 서백(西伯)을 만나 주()를 건국하고 ()나라 제후에 봉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이 나타나 다시 살자고 했다.

    여상(呂尙)은 그릇에 담긴 물을 땅바닥에 쏟아붓고는 마()씨에게 쏟아진 물을 그릇에 다시 담아보라고 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여상(呂尙)은 부인에게 말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覆水不返盆)이고, 한번 헤어진 사이는 다시 어울릴 수 없다.

     

    3)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그리고 고죽국(孤竹國)

     

    유교의 국가에서 살아왔던 우리는 의리와 충절의 상징으로 은()나라 말기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던 백이와 숙제를 인용한 이야기를 곧잘 듣곤 했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한시외전(韓詩外傳)><여씨춘추(呂氏春秋)>를 인용하여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사마천의 <사기> 61 <백이열전>에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인 고죽군의 두 아들이었다. 고죽군은 셋째 아들인 숙제를 차기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고 아버지가 죽게 되자 숙제는 맏형 백이에게 양위하려고 하였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어길 수 없다하고 끝내 달아나 숨었으며,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를 수 없다고 하며 달아나자 고죽국 사람들은 둘째 아들을 임금으로 세웠다.

     

    고죽국이 우리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영양왕 시절에 수()나라가 고구리를 침공하려 하자 배구(裴矩)라는 사람이 수양제에게 올린 글에서 고리(고구리)의 땅은 본래 고죽국이었으며 주()나라 때에는 기자(箕子)를 봉한 곳이었다.”라고 한 <수서(隋書)> 67의 기록 때문이다.

    이는 고구리가 백이·숙제의 고죽국과 기자가 살았던 지역이 조선의 강역이며 이를 고구리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구당서 배구열전>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고, 이를 인용한 일연(一然)<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도 똑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고죽국의 위치에 대하여는 후대에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주해한 집해(集解)에서 고죽국은 요서(遼西)의 영지(令支)에 있으며, <정의 괄지지>에 이르기를 고죽의 옛 성이 평주(平州) 노룡현(盧龍縣) 10리에 있는데 은나라 때 제후국이었던 고죽국이다.”라고 하여 지금의 하북성 난하의 서쪽 부근에 고죽국이 있었다고 하고 있다. 또한 이를 인용한 많은 문헌들이 고죽국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자료 참고 및 출처: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천도교종학원, 포덕1268월 발행, 저자 우암 박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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