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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17- 소식(蘇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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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952회   작성일Date 20-06-13 08:54

    본문

    17. 소식(蘇軾)

     

     소식은 송나라의 미산(眉山) 사람으로 자()는 자담(子膽)이오,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철관도인(鐵冠道人) 정상재(靜常齋), 설랑재(雪浪齋) 등이오, 시호는 문충(文忠)이라고 하였는데, 경사(經史)에 넓게 통할 뿐 아니라 문장으로도 유명하여 그이 아버지 소순(蘇洵)(()는 명윤(明允), ()는 노천(老泉))과 동생인 소철(蘇轍)(()는 자유(子由), ()는 영빈(穎濱), 유로(遺老), 란성(欒城)) 등 삼부자가 모두 당송 팔대가 중에 끼어 있는 것은 유명한 일로서 소순을 노소(老蘇)라 하고 소식을 대소(大蘇)라 하고 소철(蘇轍)을 소소(小蘇)라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우중에 예부에 응시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발탁되었는데 왕안석의 신법이 불편하다고 논란하다가 그의 노여움을 받아 항주통판(杭州通判)으로 쫓겨났으며 다시 호주지사로 옮겨졌는데 이때에 그의 반대파인 중승, 이정 등은 소식이 임금의 정책에 대하여 매사에 시로써 반대의 뜻을 나타낸다고 맹렬히 비방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소식을 옥에 가두게 하였다.

     재상인 왕규(王珪)는 특히 소식의 회시(뿌리는 구천에 이르도록 굽은 데가 없는데, 세간에는 오직 칩용(蟄龍)이 알 뿐이라-根到九泉無曲處, 世間惟有蟄龍知)를 들어 폐하(陛下)로 말하며 비룡어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소식이 지하의 칩용(蟄龍) 운운한 것은 반역의 뜻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공격하였다.

    임금은 처음에 그가 회나무를 시로 읊은 것 뿐인데 짐의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처벌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러나 반소파의 공격이 너무 심하여 소식의 관직을 파면케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그의 동생인 소철도 형의 무죄를 호소하다가 평직이 되었으며, 기타 이 시안(詩案) 사건으로 출벌을 당한 자가 사마광 등 이하 2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후 소식은 황주단련부사가 되어 설당을 서호의 동파(동쪽언덕)에 짓고 전부야로(田父野老)와 함께 산수를 즐기면서 스스로 동파거사라고 불렸는데 이때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광부사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는 다시 서주로 이동되었다가 원주에는 한림학사 겸 시독이 되었고 얼마 있다가 용도각학사로 항주지사가 되었으며 다시 한림승지로 부름을 받아 단명전 한림시독 양학사를 거쳐 해주지사로 되었는데 세상에서는 소학사라 부르기도 하였다. 소성중(紹聖中)에는 경주별가(瓊州別駕)로 폄직(貶職)되었다가 조봉랑으로 돌아와 건중정국초에 상주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학파를 촉파라고 하는데 당시 대유(大儒)인 이천과 상당히 논쟁을 하였으므로 이것을 낙촉지쟁(落蜀之爭)이라고 한다. 또는 그는 불도와 노장학을 좋아하였으며 글은 한유와 구양수에 이어 고문을 숭상하였으며 시는 송대에 제일이었고,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

     송나라 선화(宣和) 연간에는 소동파의 글을 읽는 것을 금한 일이 있었으나 건염(乾炎) 이후에는 그의 글을 존숭하게 되어 그때에 동파의 글에 능숙하면 벼슬을 얻어 맛있는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신분이 되지만 거기에 서투르면 나물국밖에 먹을 수 없다는 말이 사람 사이에 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그의 저작에는 역서전(易書傳), 논어(論語說), 구지필기(仇池筆記), 동파지림(東坡志林), 동파전집(東坡全集), 동파사(東坡詞) 등 수백 권이 있는데 특히 적벽부(赤壁賦)는 세상에 많이 읽혀지고 있는 유명한 글이다.

     

     

    자료 참고 및 출처: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천도교종학원, 포덕1268월 발행, 저자 우암 박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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