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14-사광(師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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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광(師曠)
사광(師曠)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악사(樂師)였는데 자(字)는 자야(子野)라고 하였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서로 싸울 때에 사광이 새 소리를 듣고 제나라가 군사가 패하여 밤중에 도망갈 것을 알았으며 또 그후 초나라 군사가 진나라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진나라 임금이 두려워 몹시 걱정을 할 때에 사광이 말하기를 「괜찮습니다. 제가 남풍을 노래하여 보고 또 그 다음 북풍을 노래하여 보니 남풍은 북풍보다 약할 뿐 아니라 죽는 소리가 많았습니다. 초나라는 남쪽이고 우리 진나라는 북쪽이니까 초나라 군사가 패할 것은 틀림없습니다」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나라 군사는 진나라로 쳐들어 오다가 날씨가 추운 때라 그만 얼어 죽은 자가 많이 생겨 사광의 말과 같이 초나라 군사는 많은 손해를 입고 후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그는 소리를 듣고 길흉(吉凶)을 판단할 정도로 무척 총명(聰明)하였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열자(列子),장자(莊子),맹자(孟子),순자(荀子) 등의 책에도 총명한 인물로서는 언제나 대표적으로 인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사가 너무나 간단하고 단편적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한비자(韓非子)와 회남자(淮南子)는 좀 색다른 방향으로 인용한 기사가 있는데 그것은 언제인가 진나라의 평공이라는 임금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때의 일이었다,. 술이 얼큰히 취하자 임금은 「참 좋기도 하구나. 임금된 것보다 더 즐거울 데가 어디 있겠느냐. 말만하면 무슨 말에나 『예 예』하고 굽실거리니」, 이때에 사광이 임금을 모시고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거문고를 당겨 임금에게 탁 밀쳤다. 거문고는 임금의 옷자락을 스치고 바람벽에 맞아 벽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임금은 기분이 좋지 않았던지 「태사(太師)는 누구를 친 것이오」하니 사광은 시치미를 뚝 떼고 「지금 점잖지 않은 소인(小人)의 말을 한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임금은 「그 말을 한 것은 바로 과인(寡人)이었소」, 사광은 그제서야 안색을 바로 하고 「그렇습니까, 그것은 임금으로서의 할 말이 아닙니다」하였다. 여러 신하들은 무너진 바람벽을 바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그대로 놔둬라. 그것은 과인의 잘못을 경계한 표적이니까」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어떤 사람은 평(評)하기를 「평공(平公)은 임금의 도리를 잃었고 사광은 신하의 도리를 잃었다」고 하였으며, 공자(孔子)는 평공이 거문고에 몸을 맞아 아플 것이지만 이것을 참고 무너진 바람벽을 그대로 놔둬라 한 것은 간(諫)하는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라고 도덕가(道德家)다운 말을 하였으며, 한비자(韓非子)는 「신하가 그렇게 무례한 짓을 했는데도 그것을 방임해두고 목을 베지 않은 것은 잘못을 조장(助長)한 것이 되므로 평공이 진나라를 강대하게 못한 것은 이런 때문이다」고 법가(法家)다운 평을 하기도 하였다는데 그것은 그렇다하고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여기에서 사광의 성격 일면을 엿볼 수는 있음직한 일이다.
그는 「금경(禽經)」이라는 책을 써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는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총명(聰明) 사광(師曠)이오」라고 하였으며, 수덕문(修德文)에서는 「정성이 지극한 사람은 사광의 총명도 부러워하지 않더라」하였는데 이와같이 총명이라고 하면 역시 사광을 손꼽았던 모양이다.
몽중노소문답가에 인용된 말은 자신의 어렸을 때의 총명을 사광에 비한 것이었으며, 수덕문에 인용된 것은 제자들 가운데 수도를 잘하여 총명하게 된 것을 기뻐하신 말씀이었다.
인간으로서 총명을 누가 싫어 하리오마는 그러나 총명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사람이 날 때에 타고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노력에 의하여 총명해지는 수도 있다. 그 노력이란 바로 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성을 한 곳에 모으면 정신통일이 되어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도 되며, 또 한가지 일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이치를 통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만유의 모양은 천태만상이지만 통일적인 원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도는 억만 가지 이치 중에서도 대종대법(大宗大法)인 천도(天道)이기 때문에 천도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하며, 천리(天理)대로 행코자하는 정성과 노력이 지극할 때에 마치 참외덩굴의 부리를 뽑아들면 덩굴에 달려있던 참외가 모두 딸려오는 것과 같이 천도의 이치를 깨달음에 따라 천도의 지엽적인 다른 이치도 환하게 통해질 것은 묻지 않아도 알만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정성을 어떤 목표에 두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는 「탄도유심급」에서 「이같이 큰 도를 작은 일에 정성 들이지 말라」고 하였는데 천도와 합치하려는 정성보다 더 큰 정성이 또 어디 있겠는가?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편에 「……師曠之聰 不以六律 不能成五音……」(사광의 귀밝음으로도 육율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음을 바르게 할 수 없고)이라는 문구가 있으며 『說苑』에 「晉平公問於師曠曰,吾年七十,欲學,恐已暮矣」師曠曰,何不炳燭乎.平公曰,安有爲人臣而戲其君乎.師曠曰,盲臣安敢戲其君乎.臣聞之少而好學,如日出之陽.壯而好學,如日中之光.老而好學,如炳燭之明,炳燭之明,孰與昧行乎.公曰,善哉」( 어느 날 진평공이 “내 나이 70에 배우기를 원해도 이젠 너무 저물었구나”물어 가로되 사광이 “그렇지 않습니다. 저물어 어두우면 촛불을 밝히면 되지 않습니까” 하자, “그대는 신하의 몸으로 어찌 임금을 희롱하는가”하니, “어찌 눈먼 신하가 임금을 희롱하리이까. 제가 듣건대 소년 때 배우는 것은 해 뜰 무렵의 새벽별 같고, 장년(壯年)에 배우는 것은 한 낮의 햇빛 같으며, 노년에 배우는 것은 촛불의 밝음과 같다 했습니다. 촛불이 밝은데 어두움이 어찌 함께 하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있고 또 『新序』「雜事第一」에 「晉平公 閒居 師曠侍坐 晉平公曰 子生無目 子之黙黙也 師曠對曰 天下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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