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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2- 한무제(漢武帝)4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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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2- 한무제(漢武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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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471회   작성일Date 20-11-07 08:41

    본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점으로 보나, 또는 살되 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견지로 보나 한울님을 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질병을 떠나 개인적으로 군자사람이 된다거나 또는 민족적으로 보국안민을 한다거나, 나아가서는 이세상 전체가 지상천국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경천명 순천리를 떠나서는 다른 길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울님을 위하는 방법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수운대신사께서 주문에서 명백히 말씀한 것이 있다. 즉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의 생활을 잘 하는 것이 한울님을 잘 모시는 길이라고 하였다. 내유신령과 외유기화에 대하여 여기에서는 자세한 설명을 약하거니와 간단히 말하면 내유신령이란 사물을 관찰 인식한다든가 또는 사리를 판단 응용한다든가 하는 모든 정신적 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외유기화란 자기와 자기 이외의 대인관계 또는 대물관계 등이 원만히 조화되며, 또 상호부조의 원리가 잘 통해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 두 가지가 천도에 합치될 때에 비로소 한울사람이 될 수 있는 동시에 무궁히 발전하며 무궁히 향상되어 무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휼륭한 세상이 되는 동시에 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은 말은 쉬워도 실지에 있어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혹은 알 지를 못하여, 혹은 노력이 부족하여 처음부터 생각을 내지 못한다든가, 또는 중도에 자포자기 한다든가 하는 일이 많은데, 여기에서 선각자(先覺者)가 필요한 것이며, 선도자(先導者)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수운대신사는 바로 대() 선각자인 동시에 대() 선도자이다. 그러므로 한울님은 수운대신사에 대하여 너에게 무궁무궁의 도를 미치게 하는 터이니 네가 잘 닦고 다듬어서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천하에 소연하리라하였다. 그리하여 수운대신사는 천도가 무엇인지를 여러 사람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경전을 지었으며 천하에 덕을 펴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하여 후생(後生)에게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한알의 밀이 썩음으로써 많은 밀이 더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수운대신사 한 사람이 희생됨으로써 수운대신사와 같이 천도를 닦고 천도대로 행하려는 사람이 더욱 늘게 되었다. 한알의 밀이 아주 썩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밀에 그 생명이 이어져 있는 것과 같이,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수운대신사 역시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은 천도를 믿는 많은 사람에게 이어져 있고, 또 이어져 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살고도 죽은 사람이 있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죽고도 산 사람이다고 경탄한 수운대신사의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에 살고 죽는 것을 단순히 한낱 육신으로만 표준을 잡은 것이나라 크고도 먼 우주관에 입각한 가치관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또한 신선되어 비상천 한다해도 개같은 왜적놈은 한울님께 조화받아 일야에 멸하고서 전지무궁하여 놓고 대보단에 맹세하고 한의 원수 갚아보세, 또는 한울님이 내몸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등등은 사후에라도 국가와 민족에 대하여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고, 또 조그마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한울님의 무궁성과 결부시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수운대신사께서 해월신사에게 최후로 전한 말씀 가운데 나는 순수천명할 터이니, 너는 고비원주하라는 말씀이라든가, 또는 체포된 몸으로 과천까지 갔다가 대구로 환수(還囚)될 때에 조령에서 기다리는 많은 제자들에게 나의 이번 길은 천명이니 조금도 걱정말고 돌아가라는 말씀이라든가, 또는 대구감옥에서 경상감사 서헌순의 문초에 대하여 내 천도로써 사람을 가르쳐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리고 기울어지는 나라를 돕고자 하노라, 사도(斯道)의 출세는 천명으로 나온 것이오 나의 사의가 아니며, 나의 교화는 천성에서 나온 것이오 인위로써 조작된 것이 아니며, 내 또한 일신으로 도에 순하여 덕을 후세만대에 전코저 함도 역시 천명인즉 오직 공은 마음대로 하소서라고 한 말씀 등 우리 도의 출현과 생사문제 등을 모두 천명으로 결부시켜 놓았다. 천명이란 한울님의 명령인 동시에 한울님의 생명, 또는 타고난 우리들의 생명, 그리고 변천해가는 운명이란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이치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생로병사나 한 세상의 영고성쇠를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떼어볼 것이 아니라, 무궁한 시간과 무궁한 공간을 통하여 무궁히 변화 발전해 나아가는데 있어서의 한 현상이요 한 과정으로밖에 볼 수 없는 동시에 거기에는 반드시 무궁이라는 길고도 먼 천도의 이치가 관통하여 있다는 것이다.

    대저 인간 초목군생 사생재천 아닐런가, 수운대신사는 사·생을 모두 천명으로 보았다. 천명의 소재가 살아야 할 때에 미리 즐겨 죽는 것도 제격이 아니며, 천명의 소재가 죽어야 할 때에 구차스럽게 살겠다고 억지로 발버둥치는 것도 역시 제격이 아닌 것이다. 살아야 할 때 살고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천명에 순응하는 길인 동시에 이렇게 함으로써 살아도 기쁘게 살 수 있고, 죽어도 기쁘게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에 살고, 도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도에 살고 도에 죽을 때 비로소 살아도 세상에 욕되지 않으며, 죽어도 후세에 빛이 되고 힘이 되어 어두운 세계에 광명을 던져주고 시들어가는 세상에 생기를 돋우어주는 동시에 무궁한 우주와 더불어 무궁의 이상향으로 달음질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초로와 같다는 말이 있다. 풀에 맺힌 이슬이 햇볕만 나면 없어지는 것과 같이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볼 때에는 눈에 보이는 그 형태는 변했을 지언정 그 본질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분이 모여서 이슬이 되었다가 사라지면 다시 수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이와같이 비가 되든 눈이 되든, 또는 이슬이 되는 서리가 되든, 그리고 얼음이 되든 안개가 되든 그 본질인 수분은 오직 영원무궁할 뿐이다. 사람도 그저 무궁에서 왔다가 무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이나 사()가 모두 무궁의 연속이라는 말이다.

     우주는 실로 무궁하다. 우주속에 있는 만유도 무궁하다. 따라서 인간도 무궁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에 무궁한 우주와 통하고 무궁한 만유와 통하고 무궁한 ㅇ니간성과 통하는 사상과 정력을 가지고 생활할 때에 자신 역시 무궁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무궁 기자에 무슨 노()자 있으며 무슨 사()가 있다고 근심걱정을 할 것인가. 좋을시구 좋을 시구 이내신명 좋을시구 불로불사 하단말가. 오직 있다고하면 거기에는 다만 영세무궁이 있을 뿐이다. 좋을시구 좋을시구 이내신명 좋을시구 영세무궁 하단말가 좋을시구 좋을시구 금을 준들 바꿀소냐 은을 준들 바꿀소냐. 금은 보배와 막대한 권력으로 억조창생의 욕망을 무시하고 자기 혼자만이 영화롭게 잘 살겠다는 그 무리한 욕심이나 또는 천명이라는 데 섭리를 정면으로 거역하면서까지 자기 혼자만이 장생불사하겠다는 억지와 우둔(愚鈍)을 부린 진시황, 한무제의 그 어리석고도 무지한 행동이 그저 우스워만 보인다.

     

    자료 참고 및 출처: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천도교종학원, 포덕1268월 발행, 저자 우암 박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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