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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2-한무제(漢武帝)2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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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2-한무제(漢武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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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486회   작성일Date 20-11-07 08:36

    본문

     그때에 강충(江充)이라는 신하와 태자 및 위황후(衛皇后)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강충의 생각에 지금 임금의 나이가 높을뿐더러 병석에 누워있으니 만약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태자가 임금이 되는 날에는 자기의 목숨은 파리목숨이나 다름없을 것이라 하고, 임금에게 말하기를 임금의 병은 그 원인이 무고(巫蠱)에 있으니 다스려야 한다고 모략을 하니, 임금은 이 말을 그대로 믿고 강충을 시켜 무고옥(巫蠱獄)을 다스리게 하였다. 강충은 자기 심복을 동원하여 돌아다니며 나무허수아비가 묻혀 있을 만한 당을 허수아비가 나온다든가, 또는 밤중에 불을 켜고 액땜을 하는 제사를 지내는 집들을 모조리 뒤져 체포하는 동시에 시뻘겋게 불을 달군 쇠꼬치로 담금질을 하여 강제로 자백을 받는 등 혹독한 형벌을 가하게 되니 없는 것도 있다고 하며, 안 한 일도 했다고 할 판으로 있는 죄 없는 죄 모조리 불게 되어 이들을 모두 대역무도죄로 몰아 경사에서 시골까지 대신과 평민을 막론하고 전후 수만 명을 잡아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자시 심복인 단하(檀下)라는 무당을 시켜 궁중에도 고기(蠱氣)가 있으니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임금의 병이 낫지 않겠다고 하여 궁중의 땅을 파서 허수아비를 찾아내기도 하였으며, 공주와 후궁들이 있는 집은 물론이오, 마지막에는 자기의 적인 위황후와 태자궁에까지 가서 땅을 판 후 그 속에 묻혀있는 나무허수아비를 다른 곳보다 더 많이 찾아내었는데 이것은 강충이 계획적으로 황후와 태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미리 태자궁에 나무허수아비를 많이 묻어두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위황후와 태자는 변명할 길도 없을뿐더러 변명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 명재경각(命在頃刻)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병부를 위조하여 군사를 동원, 강충을 체포하여 참형에 처하는 동시에 강충 일파와 대항하게 되었다. 승상(丞相) 유굴이(劉屈氂) 등은 태자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하여 이를 토벌하기로 결정, 양쪽 군사가 장안에서 싸워 죽은 사람이 수만에 달하여 피가 흘러 강을 이루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결국 태자쪽 군사가 패하게 되어 황후는 먼저 자살하고, 태자도 스스로 죽어 이 난리는 끝을 보게 되었다. 얼나 지난 후 전천추(田千秋)라는 신하가 태자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상소흫 하였는데 이 글을 본 임금은 후회하여 강충의 집안 삼족을 멸하는 동시에 태자를 생각하여 사자궁(思子宮)을 짓기도 하였던 것이다.

    무고(巫蠱)라는 말을 살펴 보면, 여자가 춤을 추어 신을 내리게 하는 것을 무()라 하고, 좌도(左道)로써 여러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을 고()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는데, 여하튼 무고사로 인하여 황후와 태자, 공주, 대관, 평민 등이 수만 명이 죽고, 장안이 온통 전쟁에 휩사이고 온 나라가 소란하였던 일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로 한무제 재위 54년 중 오점(汚點)을 남기고, 그는 자나깨나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신선도 불사약도 구경을 못해 본 채 70세의 몸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 무릉(茂陵)에 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수운대신사가 노래한 안심가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만승천자 진사황도 여산에 누워있고

    한무제 승보란도 웃음바탕 되었더라

    좋을시구 좋을시구 이내신명 좋을시구

    영세무궁 하단말가 좋을시구 좋을시구

    금을 준들 바꿀소냐 은을 준들 바꿀소냐

    진시황 한무제가 무엇없어 죽었던고

    내가 그때 났었더면 불사약을 손에들고

    조롱만상 하올 것을 늦게나니 한이로다

    좋을시구 좋을시구 이내신명 좋을시구

     우리는 역에서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진시황, 한문제가 모두 장생불사를 원하고 있었지만 어째서 그것이 소우너대로 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오, 또 한 가지는 수운대신사께서 말씀한 불사약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도 기뻐서 좋아하였을까하는 점이다.

    먼저 진시황, 하문제가 장생불사를 원한 데 대하여 위에서 제세한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첫째, 두 사람이 모두 만승천자(萬乘天子)라는 점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나 영토를 확장한 한무제나 걸출이라면 일종의 걸출(傑出)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생살지권(生殺之權)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천하를 소유한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은 결국 권력이나 지위나 또는 금력을 가지고서도 장생불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며

     둘째, 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남동녀와 방사들을 동해에 보낸다든가 또는 승로반을 만들어 놓고 이슬을 받아 옥가루를 타먹으면서 장생하기를 바란다는 따위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또는 임금 자신이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어, 궁중에 천지태일신과 기타 각종 귀신을 그려 붙이고 제사를 지낸다든가, 또는 신선은 낮은 데를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높은 누각을 새로 지어 방사(方士)를 시켜서 거기에서 신선(神仙) 오기를 기다리게 하는 따위의 미신적 행위나 기타 무고사 등 허무한 짓을 해 가면서 장생하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셋째, 장생을 하려면 병도 퇴치해야 할 터인데도 무서운 해신과 싸운 꿈을 꾼다든가, 또는 나무허수아비들이 몽둥이를 들고 덤벼드는 꿈을 꾸고 없는 병도 새로 생겨나 병석에 눕는 따위의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장수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며,

     넷째, 많은 생령(生靈)을 전쟁에 몰아넣어 살상시킨 것은 고사하고라도, 자신이 먼저 미신의 행위를 하면서 백성들에게만 무고사를 한다고, 또는 자기를 비방한다고 수만 명을 잡아 죽인다든가, 또는 시서를 불사르며 많은 선비를 산 채로 매장하는 등 혹독한 짓을 자행하면서 장생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넌센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며,

     다섯째, 진시황이나 한무제나 세상 사람을 다 제쳐놓고 자기 혼자만이 장생하겠다는 욕심을 가졌으니 개체 위주의 이런 욕심으로서는 장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생()이 있으면 반드시 사()가 있는 법인데 아무리 오해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할지라도 이 철칙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권력이나 지위, 금력, 또는 미신 따위의 허무한 짓이나 허약한 정신, 또는 사름을 무참하게도 많이 죽이는 흉악한 행동과 세상을 무시한 개체 위주의 욕심, 그리고 생사의 천리(天理)를 배반한 억지와 어리석고도 무원칙한 생태로서는 장생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진시황·한무제에서 보아온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운대신사님은 만승천자 진시황도 여산에 누워있고 한무제 승로반도 웃음바탕 되었더라진시황 한무제가 무엇없이 죽었던고 내가 그때 났더라면 불사약을 손에 들고 조롱만상 하올 것을 늦게나니 한이로다또는 한나라 무고사가 아동방 전해와서 집집마다 위한 것이 명색마다 귀신일세 이런지각 구경하소 천지역시 귀신이오 귀신역시 음양인줄 이같이 몰랐으니…」라고 그 어리석고도 무지한 짓에 대하여 무척 개탄하는 동시에 일변으로는 웃어 넘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느끼고 체험하고 깨달은 장생법에 대하여 좋을시고 좋을시구 이내신명 좋을시구 불로불사 하단말가, 또는 영세무궁 하단말가 좋을시구 좋을시구 금을 준들 바꿀소냐 은을 준들 바꿀소냐라고 무한한 기쁨을 노래로 엮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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