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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2- 한무제(漢武帝)1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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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2- 한무제(漢武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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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342회   작성일Date 20-11-07 08:31

    본문

     한나라의 세종효무황제(世宗孝武皇帝)의 성은 유(), 이름은 철()인데 한고조 유방의 증손으로 효경황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인물로 간단히 한무제라고도 한다.

     그전에는 연호(年號)라는 것이 없다가 한무제 때부터 건원(建元)이라는 연호가 시작되었는데 그 후 원광(元光), 원 동월을 평정하였교, 흉노(匈奴)를 배척하고, 서남이를 항복받았으며, 서역제국과 통하는 등 영토확대에 주력(注力)하였는데, 특히 위만조선(朝鮮)을 정복하여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玄菟), 진번(眞蕃) 4군현을 설치한 것은 역사상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막대한 전비(戰費)가 들 뿐 아니라 궁궐(宮闕)과 누각(樓閣) 등 토목공사를 대대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세금과 형벌을 과중하게 하여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빚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일면으로는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하며, 무당(巫堂)에 유혹되기도 하여 국사(國事)를 그르치는 일까지 적지 않게 되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조왕신(竈王神)에게 제사하면 단사가 황금으로 화할 수도 있고, 또 장수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요, 봉래산(蓬萊山)의 신선도 볼 수 있으며 불사약도 구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그 신선들과 만나본 일이 있다고 불어대는 이소이란 자의 말을 듣고, 임금이 친히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방사(方士)를 동해에 보내어 약도 구하고 봉래산의 신선을 모셔오도록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후 불사약도 신선도 얻지 못하고 이소군이 병으로 죽었는데도, 임금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으로 화하여 갔다고 믿는 등 이런 일에 혹()하였기 때문에 동해가에 있는 연나라와 제나라의 방사들이 더욱 많이 몰려와 귀신 또는 신선에 관한 말을 하는 자가 부쩍 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임금의 사랑하던 왕부인(王夫人)이 죽었을 때에 제나라의 소옹(少翁)이라는 사람이 술법으로 밤중에 왕부인의 귀신을 불러왔다 하여 임금이 장막속에서 왕부인과 같은 모양을 바라보고 이에 혹()하여 소옹을 일약 문성장군에 임명하는 동시에 궁중에 대실을 짓고 거기에는 천지태일신과 기타 여러 귀신을 그려 모시고 제기(祭器)를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또 언젠가는 임금이 병이 들었을 때에 무당을 청하여 제사를 지낸 후 병이 요행히도 나은 적이 있었는데, 임금은 그 다음부터는 귀신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귀신의 말을 들을 수는 있다고 하여 사람을 시켜서 거실 장막속에 귀신의 하는 말을 일일이 받아쓰도록 하였는데, 그 말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보통 세속 돌아가는 말인데도 임금은 이것을 귀신의 말이라고 하여 혼자 기뻐하였다고 한다.

     또 동()으로 승로반(承露盤)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20장이요 둘레가 7 아람드리 위에는 선인장(신선의 손바닥)이 있어서 옥잔에다 공중의 이슬을 받아 그 이슬에다 옥가루를 타서 마시면 장생할 수 있다는 말에 의하여 그렇게 하였으며,

     또 난대(欒大)라는 방사(方士)가 와서 자기는 동행에 왔다 갔다 하면서 신선과 만났을 뿐 아니라, 황금도 만들 수 있으며, 터진 황하수(黃河水)도 막을 수 있으며, 불사약도 얻을 수 있으며, 신선도 되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술법으로 깃대가 서로 싸우는 장면을 보여 주었는데 임금은 이것을 보고 혹()하여 난대를 오리장군에 임명하고, 이어 천사장군, 지사장군, 대통장군의 직을 주는 동시에 낙통후에 봉하였는데, 식읍이 2천호요, 종이 천명이나 되었으며, 기타 수레와 말과 여러 가지 좋은 기물들이 그 집에 가득 찼으며, 나라에서는 공주를 아내로 주고 금 10만근을 주기도 하였으며, 임금이 그 집에 때때로 감은 물론이요, 태후와 장상들까지 그 집에 술을 보내기도 하였고, 더욱이 임금은 옥으로 천도장군이라는 인장을 새겨 주었는데, 귀하기 이를 데 없고 그의 이름은 온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이쯤 되고 보니 연나라와 제나라 등 바다에 임한 지방에서는 서로 앞을 다투어 신선을 말하는 방사가 날로 늘게 되었는데, 임금이 동해안을 순시할 때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냄은 물론이요, 제나라 사람으로서 임금에게 임금에게 신기한 방술을 상소하는 사람이 수만 명이요, 배를 내어 바닷 가운데 봉래신인을 구하겠다는 사람도 수천 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공손경(公孫卿)이라는 방사가 임금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봉래산에서 신선을 만났는데 그 신선이 임금을 보고 싶어 하더라고 하므로, 임금은 공손경을 중대부에 임명하는 동시에 함께 동래에 가서 수일 동안 유숙(留宿)하였지만 신선은 만나보지 못하고, 다시 방사들을 바다에 보내어 신선과 불사약을 구하게 하였다고 하며, 또 신선은 낮은 데 있지 않고 높은 누각에 있기를 좋아한다는 공손경의 말을 듣고, 임금은 장안에서 2백 리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통천대(通天臺)라는 높은 누각을 새로 짓고, 공손경을 시켜서 모든 준비를 하는 동시에 거기에서 신인(神人)을 맞도록 신임장(信任狀)까지 주었으며, 그밖에도 여러 궁실과 대관(臺觀) 등을 높이 짓는 동시에 태액지(太液池)라는 못을 파고 그 가운데에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 등 삼신산울 만드는 등 신선과 관계되는 공사를 많이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방사와 무당들이 경사(京師)에 많이 모여들어 민심을 현혹시키는 해괴한 일이 계속 일어났는데, 특히 무당들이 궁중에까지 출입하면서 액땜을 한다는 명목으로 집집마다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를 땅에 묻고 제사를 지내는 일이 있었다. 이것이 차츰 심하여지면 서로 시기하여 서로 미워하여 임금을 저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크게 노하여 후궁과 대신 등 관계자 수백 명을 잡아 죽였는데 그후 이것에 마음에 걸렸던 지 임금이 낮잠 잘 때에 나무허수아비 수천이 몽둥이를 들고 임금을 마구 때리려고 하지 않는가. 임금이 놀래어 깨니 꿈이었다. 이 때문에 임금은 그만 병석에 눕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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