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6-걸왕(桀王)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 26-걸왕(桀王)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563회   작성일Date 21-02-02 15:21

    본문

    26. 걸왕(桀王)

     

    중국 고대의 전설적 왕조인 하왕조(王朝) 최후의 왕. 성은 사(), 이름은 이계(履癸)라 하였다. 은왕조(王朝) 최후의 왕인 주()와 함께 포악한 임금의 상징으로서, 걸주(桀紂)라고도 하며, 흔히 이상적 천자로 추앙받고 있는 요순과 대비된다. 그는 웅장한 궁전을 건조하여 찬하의 희귀한 보화와 미녀를 모았으며, 궁전 뒤뜰에 주지(酒池)를 만들어 배를 띄워 즐겼고, 장야궁(長夜宮)을 지어 놓고 거기에서 남녀 합환의 유흥에 빠졌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 역사학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걸()에 관한 이야기도 전설이라 생각되는 점이 많으나 사기(史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걸왕은 부도덕하였고, 현신(賢臣) 관용방(關龍逄)과 이윤(伊尹)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며, 백성을 억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도덕군자로 알려졌던 은()의 탕왕(湯王)을 하대(夏臺)에서 제포하는 등 폭정을 자행했으나, 드디어 탕왕에게 토벌되어 도망가다가 죽어 하왕조(夏王朝)는 멸망하였다고 한다.

    ----------------------------------------------------------------------------------

    자료 참고 및 출처: 천도교경전에 인용된 인물고(천도교종학원, 포덕1268월 발행, 저자 우암 박창건)

     

    <별첨자료>

     

    고대 중국의 하()나라 걸왕(桀王)과 은()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말희(末喜), 달기(妲己)라는 희대의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 사치와 주색에 탐닉하다가 결국 폭군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하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말희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에 싫증이 난 말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뭇 둘레에는 고기로 동산을 쌓고 포육(脯肉)으로 숲을 만들었다. 걸왕과 말희는 그 못에 호화선은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나라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다.

     

    또한 은나라 마지막 군주인 주왕(탕왕으로부터 28대째)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그래서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또 국력을 기울여 호화 찬란한 궁정을 짓고 미주와 포육으로 '주지육림'을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恍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炮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로 악명을 떨치던 주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나라 시조인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