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심성과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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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심성(道德心性)과 인공지능(人工知能)
사람은 유년 장년의 구별이 있으니 우리 교의 오늘은 사람의 장년(壯年) 시대라,
그 체는 한울 같이 크고, 그 빛은 해와 같이 솟았거늘
그 사상이 옛것을 그대로 가지면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_「대종정의·오교의 신사상시대」
인간은 도덕심성(道德心性)을 가지고 있기에
하늘의 덮어주는 은혜를 알고, 땅의 실어주는 은혜를 알고,
오수 의견(義犬)의 충직함을 알아주고,
까마귀 습성을 보고 반포(反哺)의 도리를 본받으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도덕심성을 가진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라야
세상을 올바른 도덕 세상으로 안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기에'가 아니라 '도덕심성을 가진 인간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심성을 가진 인간이 주체가 되어
곰인형과 친해지고, 반려견과 친해지고, 반려묘와 친해지고,
인공지능(人工知能) 로봇을 개발하여 사람을 돕도록 하였기에
곰인형과 반려견과 반려묘와 인공지능 로봇이 비로소
그 의미와 가치가 존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힘없는 어린아이나 노인을 존중하는 것도
인간의 도덕심성이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덕심성을 가진 사람을 항상 존중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옛말에 "군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 하였고,
"사람들은 성인의 덕화(德化)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군자와 성인의 덕화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도덕심성을 가졌기에 비잠동식(飛潛動植)과
무생물인 인공지능 로봇과 비교하여 '사람이기에' 우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덕심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이 맨 위에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도덕심성의 모범인 군자나 성인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알아보지도 못한 역사적 사실을 보면 아이러니 합니다.
예전에 '양반 상놈의 기준이 도덕심성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을 때,
그 사람들의 출신성분으로 인하여 정해진 우월성이었고 차별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곧 도덕심성(道德心性)을 보고 존비(尊卑)를 논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형체(흑백)와 출신에 대한 것만 보고 그 지위를 결정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작용은 과거 몇천 년이 지나도록 지속되었고
결국 현대에 와서 우리 도(道)의 운수(運數)로 그 잘못을 시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람이라는 형체' 그 자체보다는
도덕심성을 발현하는 '사람의 행위'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심성'이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공지능 로봇이 도덕 심성을 제외한 다른 면에서
인간과 비교하여 인간의 역량을 뛰어넘는다고 할지라도
인간과 대립하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심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방향 설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출신성분으로 양반 상놈을 나누었던 것처럼
'인간'이기에 무조건 '인공지능 로봇' 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심성을 실천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면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인간윤리라는 도덕심성을 자율적으로 바랄 수 없을 것이기에
'윤리적 자율성'을 부여한다기 보다는 '기능적 자율성'을 부여함에 있어서
그 기능적인 부분을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에게
'인간의 도덕심성이 부여된 프로그램'을 장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에 의해 조정되는 인공지능 로봇의 발전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의 운영프로그램을 장착하는 사람의 도덕심성이 관건인 것입니다.
전주교구 광암 윤철현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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