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천도교경전에 언급되고 있는 삼황(三皇)에 관하여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천도교경전에 언급되고 있는 삼황(三皇)에 관하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문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97회   작성일Date 24-12-27 22:39

    본문

    처음 창조된 인류는 마치 막 태어난 영아처럼 백지와 같아서 내함(內涵)이나 문화라고는 전혀 없었고 자연계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감당능력도 없었으며 사상이나 의식의 형성은 더욱이 없었다. 

     

    마치 세상의 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각기 다른 역사 시기에 고층 경계(境界)에서 속속 일부 신()들이 세상에 내려와 성인(聖人)으로 전생해 신적(神跡)을 보이고 신언(神言)을 남겨 인류에게 다양한 문화와 기능을 전수했고 인류가 기나긴 역사과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수호했다. 일찍이 아주 긴 한 단락 역사시기에 인류는 신통(神通)을 크게 드러낸 복희(伏羲)나 신농(神農) 등 성인으로부터 직접 교화와 인도를 받았다. 

     

    신은 사람의 형상과 상태로 세상에 머물며(반신:半神) 직접 사람과 신이 함께 존재(人神同在)”하는 특수한 역사시기와 찬란한 문화를 펼쳐내 신화와 전설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대대로 전승되게 했다. 

     

    그 후 상천(上天)과 신명(神明)은 서로 다른 역사 시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줄곧 미혹 중의 인간세상을 배치하고 가호하며 점화해왔다. 다시 말해 인신동재(人神同在)’는 이때부터 줄곧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되어 사람이 완전히 미실(迷失)되지 않게 하거나 심지어 다시 신()으로 회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도록 했다. 다만 사람이 갈수록 더 눈앞의 현실에 미혹되고 갈수록 하늘을 공경하던 그런 원시의 경건한 기억이 흐려졌으며 날로 도()에서 멀어져 갔다. 

     

    (1) 삼황(三皇)의 전설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아득히 멀고 끝이 없다. 대지 위에서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중생은, 매 사람이 길거나 짧은 인생을 기록하면 바로 한 부의 역사 전기(傳記)가 되는데 이것이 역사의 폭이다. 또 전체 인류는 망망한 역사세월을 뛰어넘어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변할 정도로 긴 세월을 윤회하고 멸망하면서 오늘까지 걸어왔다. 이렇게 지나온 무진한 시간은 역사의 깊이라 할 수 있다. 아득히 먼 역사의 장하(長河)를 마주해 인류가 아는 것은 이렇게 미미하고 가련해 창해일속(滄海一粟: 큰 바다에 던져진 한알의 좁쌀)에 불과하다. 

     

    시간이 너무나 오래되었고 여기에 인류의 발전과정 중에 각종 천재인화(天災人禍)가 나타나 상고(上古)시기 사료가 대량 유실되었기 때문에 현존하는 신화와 고서 기록 중에서 우리는 현재 다만 대략적인 역사과정과 일부 중대한 사건들만을 정리할 수 있을 뿐이며 앞으로 끊임없는 발견과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삼황(三皇)이란 말이 등장한 최초의 서적은 주례(周禮)이고 그 다음이 여씨춘추(呂氏春秋). 사마천은 사기진시황본기에서 진나라 박사의 말을 인용해 고대에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이 있었는데 태황이 가장 귀하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삼황(三皇)이라고 하면 천황, 지황, 인황을 말하지만 이 삼황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어 왔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서는 춘추위운두추(春秋緯運斗樞)를 인용해 삼황(三皇)은 복희씨(伏羲氏)여와씨(女媧氏)신농씨(神農氏)라고 했다.

    백호통의(白虎通義)에서는 삼황(三皇)을 복희, 신농, 축융(祝融)이라 했다.

    상서대전(尚書大傳)에서는 삼황(三皇)을 수인씨(燧人氏)복희씨, 신농씨로 보았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서는 삼황(三皇)을 복희, 신농, 황제(黃帝)로 보았다.

    잠부론(潛夫論)에서는 세상에 전해지는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대부분 복희, 신농을 삼황에 포함시키는데 나머지 한 분은 수인이라고 하거나 또는 축융이라고 하거나 또는 여와라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상서대전(尙書大傳)에 따라 삼황(三皇)을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로 본다. 

     

    (2) 구황십기(九皇十紀) 

     

    또 다른 고서인 상서대전(尚書大傳)에서는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를 후삼황(後三皇)이라 하고 이에 앞서 또 초삼황(初三皇)과 중삼황(中三皇)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초기에 나타난 초삼황[初三皇: 초천황(初天皇), 초지황(初地皇), 초인황(初人皇)]이 있은 후 중삼황[中三皇: 중천황(中天皇), 중지황(中地皇), 태황씨(泰皇氏)]이 존재했으며 마지막에야 비로소 후삼황[後三皇: 수인씨(燧人氏),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 합하면 구황(九皇)이 있었으며 구황의 시기가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오제(五帝)가 있었다. 

     

    현재 남겨진 사료로부터 보자면 초삼황(初三皇)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중삼황(中三皇)에 관한 기록마저도 아주 희박하다. 중삼황(中三皇) 시기의 인황(人皇)을 태황(泰皇)씨라 하는데 태황(太皇)씨 이후를 시간 순서에 따라 모두 10()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구두기(九頭紀), 오룡기(五龍紀), 섭제기(攝提紀), 합락기(合雒紀), 연통기(連通紀), 서명기(敘命紀), 순비기(循蜚紀), 인제기(因提紀), 선통기(禪通紀), 소흘기(疏仡紀)가 된다. 

     

    이 중 제1기는 태황(太皇)씨를 기원으로 하며 구두기라 하고, 10기는 오제(五帝)의 하나인 헌원황제(軒轅黃帝)를 기원으로 하며 소흘기라 하는데 이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상고의 제왕들이 출현했다. 

     

    춘추위(春秋緯)에는 태황씨 이래 춘추시대 노나라 애공(哀公) 14(기원전 481)까지 10기를 거치며 모두 3267천 년이 흘렀다는 기록이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