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화력이 풍부한 선생(의암성사)의 관용성...... 한 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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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聖師)의 환원(還元)에 대(對)한 사회(社會) 각방면(各方面)의 감상(感想)
감화력(感化力)이 풍부(豐富)한 선생(先生)의 관용성(寬容性)
余(여)-三昨年(삼작년)까지는 손先生(선생)께 一次(일차) 承顔(승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동안 先生(선생)의 超凡(초범)한 人格(인격)을 仰慕(앙모)하는 同時(동시)에 더구나 宗敎(종교)로나 政治(정치)로나 偉大(위대)한 經綸(경륜)을 抱藏(포장)하신 줄을 일찍 飽聞(포문)하였음으로부터,
一旦(일단) 有事時(유사시)를 豫期(예기)한 余(여)로 하여금 爲先(위선) 爲事者(위사자)의 中心(중심)을 先生(선생)으로 할 수 밖에 없게 된 결과 마침내 先生(선생)울 首戴(수대)하고 入監(입감)하여 鐵窓下(철창하)에서 甘苦(감고)를 同嘗(동상)한 지 未幾(미기)에 선생은 不意(불의)의 病軀(병구)로써 먼저 不歸(불귀)의 客(객)을 作(작)하시였음은 實(실)로 敬憚(경탄)함을 堪(감)치 못합니다.
話頭(화두)를 一戰(일전)하야-
여하간 余(여)의 가장 切實(절실)히 驚歎(경탄)하는 바는 平素(평소) 선생의 豐富(풍부)한 寬容性(관용성)입니다. 余(여)의 個體(개체)상 가장 短處(단처)라면 단처, 長處(장처)라면 장처라고 自認(자인)하는 偏僻性(편벽성)은 무엇으로든지 如何(여하)키 難(난)하여 일상 煩悶(번민)중에 在(재)하든 바,
一次(일차) 선생께 接觸(접촉)된 後(후)로는 不識不知中(불식부지중)에 其寬大長者風(기관대장자풍)의 包容(포용)에 自然感化(자연감화)되었음은 무엇보다도 一生(일생)의 大學(대학)이 되었습니다.
아 ! 先生一去(선생일거)의 今後(금후)부터 余(여)의 問聞(문문)이 俱空(구공)하게 된 中(중), 더욱이 其(기) 門徒(문도)된 天道敎人(천도교인)은 勿論(물론), 即(즉) 朝鮮全民族社會(조선전민족사회)로 하여금 新生命(신생명)을 持續(지속)케하는 總(총) 支配人(지배인)을 失(실)하였음은 다시 如何(여하)타 말할 수 없이 멀고 멀은 將來(장래)에 千秋志士(천추지사)로 하여금 感慨無量(감개무량)할 뿐입니다..
(불교선학원장 한용운 씨담)
참고 : 올해 의암성사님 순도.순국 100주기를 맞아, 추모의 뜻으로
100년전 발행된 천도교회월보 "의암성사환원호'에 실린 사회 각 방면의 감상을 차례로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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