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성사 순도. 순국 100주기......'성사 환원'에 대한 사회 각 방면의 감상
페이지 정보
본문
의암성사(義菴聖師)의 환원(還元)에 대(對)한
사회(社會)각방면(各方面)의 감상(感想)
선생의 서거(逝去)는 조선(朝鮮)에 대한 일대손실(一大損失).....김성수 씨담
선생의 홀연 서거하심은 조선에 대한 일대손실이라 하겠습니다.
선생은 본시 미천(微賤)으로 생장하야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누백만의 단결을 이루었으니, 이로 보아도 선생의 통어력(統御力)과 백절불굴(百折不屈)하는 기상(氣像)을 가히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동시에 선생의 위력(威力)에 대한 것은 물론이겠지요.
그러나 선생의 인격을 논함에 있어서 세별(細別)적으로 구분함보다 일언을 말하면, 최후 선생의 출처한 사실로써 그의 전체와 인격과 평일의 소지(素志)를 알수 있다하겠습니다.
민중(民衆)을 위하여 일대유감(一大遺憾).......동아일보사 부사장 장덕수 씨담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사회적 운동을 하는 방법으로 말하면 그 시대의 사정과 민지(民智)의 정도를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 그리고 그 시대와 그 민중을 관찰하는 것은 그 개인의 능력여하에 있는 것이니까 손 선생의 활동 방법에 대하여는 내가 충분히 알 수 없으나,
선생은 조선(朝鮮)의 민중(民衆)을 토대로 하고 그 민중의 권리(權利)와 생활을 확장(擴張)하며 향상(向上)하기로 목적하야 전 일생을 간험(艱險)한 풍랑(風浪)중에 보내는 중에 조금도 동요(動搖)함이 없이 견강(堅剛)의 노력을 계속하여 온 것은 일종 민중적 위걸(偉傑)로 생각하야 경앙(景仰)하는 바이니, 오늘날 돌연히 환원하심에 대하여는 실로 우리 민중을 위하여 일대 유감(遺憾)으로 생각하나이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인물......불교총무원 사무부장 조영태 씨담
나는 종교 신자이오 또한 정치상으로는 자유로 말씀할 수 없으니까 선생을 정치상으로 여하(如何)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의 일생에 여하히 활동하신 것과 기타 공적을 말씀치 아니합니다.
그러나 정치 이외에도 선생은 비단 조선(朝鮮)이란 세계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인물(人物)로 생각하나이다.
첫째, 종교상으로는 실례가 될는지 모르나 불교 기타 역사가 장원(長遠)하고 기초가 견고한 종교계에서 다소의 사업을 할지라도 위대한 인물이라 칭하는데, 천도교는 역사가 단축(短縮)하고 견고(堅固)치 못함을 불구하고 선생이 평지돌출적으로 악전고투(惡戰苦鬪)하야 장벽을 타파(打破)하고 금일에 천도교(天道敎) 기치를 세계에 고양(高揚)하야 다대(多大)한 사업을 성취하였으며,
둘째, 교육상으로 견(見)할지라도 폐쇄한 조선에서 선착(先着)으로 외국유학생을 양성하고 또한 각지에 다수한 학교를 건설(建設)하야 장래 유위(有爲) 인물(人物)을 양성하였습니다. 이 두 점으로 볼지라도 선생은 유일무이의 인물로 인정(認定)하나이다.
생전에 이러한 위대한 사업을 많이 하시었으니까 사후(死後)라도 일반 민족이 영구히 사모(思慕)하고 경앙(景仰)할 줄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또 나시겠습니까.........교동공보 송은성 씨(14세)
나는 손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아침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천도교 선생이시오 또 세상의 선생님으로 세상일을 하시다가 채 끝이 못나서 돌아가심으로 생각하여 눈물이 납니다.
장례 날은 기어이 가서 참례하겠습니다. 어느 날 몇 시인지요. 손 선생님께서는 살아계셨을 때에 좋은 말로 백성일반을 가르치시기도 많이 하셨지만, 특별히 학생을 사랑하시고 학교를 많이 설립하시어서 공이 많으십니다. 그런 어른이 언제나 또 나시겠습니까.
생전(生前)보다도 사후(死後)가 더 위대(偉大)할 줄로......여자교육협회장 김미리사 여사담
손(孫)선생님이 돌아가신데 대하여는 다시 어떠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여하(如何)한 인물이라든지 우리 민중과 여하한 관계가 있는 것을 내가 말씀 아니 하여도 일반이 다 아시는 바이니까 별로 말씀 아니 하거니와,
나는 생각하기를 손(孫) 선생님의 정신적(精神的) 감화(感化)를 우리 민족에게 주신 것은 생전(生前)보다도 사후(死後)가 더 위대할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희망으로 말씀하면 선생님이 더 생존하야 우리 민족의 행복 될 일을 더 많이 하셨으면 하는 희망이 있음으로, 돌아가신 것을 누구나 애석(哀惜)히 생각하나,
선생님 일인(一人)의 역사로 보면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그 목적을 달하야 세계 역사상(歷史上) 여하한 위대(偉大)한 인물과 비교할지라도 조금도 손색(遜色)이 없을 줄로 압니다.
나는 감상(感想)도 많이 있으나 그것은 자유롭지 못하여 말씀할 수 없습니다.
검소(儉素)하시고 질박(質朴)하신 것에......한일부인상회 김천경 여사담
나는 여자의 몸이요 또한 상업을 하는 사람인 고로, 평일에 선생님을 대해 뵈올 기회가 없었던 것은 참말 서운한 일입니다.
선생님 돌아가신데 대하여는 무어라고 감상을 말씀할 수도 없습니다 만은 남들의 전하는 말씀을 듣던지 전부터 들은 말씀으로 하던지 또는 각 신문상에 기재된 사실로만 보더라도, 선생님은 정치 종교상이나 교육상 기타 각 방면에 공로가 다대(多大)한 것은 알겠습니다.
특별히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위대하시고 만민의 어른이시면서도, 몹시 검소하시고 질박 하시어서 평상시의 의복도 화려한 외국산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조선(朝鮮)복을 상착(常着)하시며 양복(洋服)을 잘 입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제일 탄복하였습니다.
우리 상점에서도 매일 고객이 답지하야 상품을 많이 팝니다마는 전부가 외국 사치품이올시다.
우리 조선 사람이 모두 선생님과 같이 검소하고 본 국산을 애호하시었으면 조선의 산업이 자연 발달되고 또한 자작(自作) 자급(自給)하야 외국의 사치품을 방지하고 우리상업계에서도 외국물품만 매매하게 되지 아니하고 조선산(朝鮮産)을 매매하게 될 것이올시다.
그리고 선생님 돌아가신 후로 복제발표된 것을 보고 우리상점에서도 흑색 넥타이를 많이 준비하였더니 참 많이 팔렸습니다.
선생님 돌아가신데 애도할 생각으로 말씀하면 어느 하가(何暇)에 이익점을 보겠습니까마는 상업자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를 불구하고 넥타이를 팔기에 분주하였습니다.
조선의 모모(某某)귀족이나 부호의 상사(喪事)가 많이 있었으나 이와 같이 많은 인중(人衆)이일제히 복(服)을 입는 것을 처음 보았고 이번과 같이 상표(喪表)와 복(服)감을 팔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귀족도 아니요 부호도 아니시지마는 이와 같은 일을 보면 선생님의 평일 감화와 일반교인의 애모(愛慕)하는 정이 심후(深厚)한 것을 알겠습니다.
나는 의복감을 더 팔자는 욕심이 아니라 진실로 일반 조선 사람이 모두 복을 입어도 당연할 줄 압니다.
참말로 선생님이 돌아가심은 우리 조선의 불행이라 감상이 많습니다마는 말씀을 할 줄도 모르고 또 주의도 없지 아니하여 못다 하겠습니다. (의암성사 환원호에서 옮김)
- 이전글동학입문요결5(만사지萬事知에 관하여) 22.05.22
- 다음글7천만 同胞에게 告함 22.05.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