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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입문요결14(한 유명 음악가의 어릴 적의 상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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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금주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434회   작성일Date 22-08-27 14:01

    본문

    한 유명 음악가의 어릴 적의 상처 이야기

     

      그분은 한국의 유명한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색소폰 연주자이면서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서양의 대중음악이 무차별적으로 밀려들어올 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음악으로 발전시킨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국민들에게서 폭넓은 사랑을 받았으며 3,000여 곡을 작곡했다

    아래의 이야기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의 내용의 일부를 익명으로 옮긴 것이다.

     

      “그분은 매일 밤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왔다. 또 아침에 입고 나간 옷을 그대로 입고 들어오는 적이 거의 없었다. 넥타이며, 재킷이며, 심지어 겨울 코트까지 형님! 그거 참 좋아 보이네요!”하는 사람이 있으면 냉큼 벗어주거나 바꿔 입는 것이었다. 내가 외국 공연 갔다가 사다 준 멋진 넥타이며, 레인코트가 남아 있질 않았다. “아니 그게 그렇게 좋다는데 어떻게 해? 나야 뭐 아무 거나 해도 괜찮은데.” 그런 사람이었다. 그분은 남이 좋다고 하면 무엇이든 벗어주고 바꿔줄 만큼 정이 많고 욕심이 없었다. 그는 또 얌전한 외모만큼이나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 고운 심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아깝고 속상했다. 그 바쁜 스케줄에도 내가 얼마나 고르고 골라 사온 것들인데 그렇게 거리낌 없이 줘버리고는 아무거나 상관이 없다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토록 욕심이 없을까 싶었다

      그는 섬세하고 여렸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폐를 끼칠 줄도 몰랐다. 그래서였는지 술에 취하면 자주 울었다. 마음이 약해 좀처럼 심한 말을 할 줄 몰랐으나 술을 마시면 가끔 독설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혼잣말처럼 자조 섞인 말을 하다가 괜한 트집을 잡아 싸움을 걸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뭐가 그리 서러운지 울기까지 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매일 밤 술을 마시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글프고 서러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발 술 좀 그만 마셔요! 도대체 왜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내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거예요?” 그의 술버릇으로 인한 부부 싸움과 나의 바가지는 신혼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좀처럼 술을 자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별거에 들어가기 전 부부싸움을 한 이유는 90% 이상이 술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며칠씩 연락두절이 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그야말로 숯덩이처럼 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찾아 다닌다고 해도 찾을 길도 없었지만 외박한 남편을 먼저 찾아 나선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은 그냥 기다렸다. 하지만 슬슬 걱정도 되고 불안해져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어느 호텔에서 몇몇 사람과 어울려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찾아가 보니 술에 잔뜩 절어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됐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도박판에는 팀을 이뤄 몰려다니는 사기꾼들이 있었고, 순진하고 어수룩했던 그분은 그들의 타깃이었다. 사흘이 넘도록 연락 두절인 남편을 도박판에서 찾아냈다. 그런 남편을 데리고 들어와서 웃을 수 있는 아내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분은 도대체 이런 상태로 어떻게 도박이나 했을까 싶을 정도로 인사불성으로 취해 있기 일쑤였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가수가 아니라 여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그렇게 며칠씩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으면 집에서 기다리는 나는 정말이지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남편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 그러다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그에게 그동안 쌓인 미움을 한꺼번에 쏟아내곤 했다. ... 

      그분은 정작 말로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과의 의미를 담은 곡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하는 그분은 감정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일상적인 감정 표현에는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젬병이었던 그분은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100%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말 없고 내성적인 그가 유일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음악이었던 모양이다. 절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노랫말로 나타냈다. 그래서 그가 만든 곡 중에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고스란히 담은 게 많다. 특히 결혼 생활 동안 나와의 관계가 원만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해피송, 그리고 우리 사이에 어떤 먹구름이 끼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새드송이 만들어졌다. 그분은 가슴 깊은 곳에 근원적인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그 외로움 역시 음악으로만 표현했다. 그 외로움이 너무 깊어 음악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면 술이라는 도피처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은 결코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덜어줄 수 없었다. 어쩌면 술에 취해 더더욱 자기 연민에 빠져들었을 테고, 그는 더욱 외로워졌을 것이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신을 슬프게 하는 거예요? 당신이 만든 노래, 내가 부르는 노래가 만들 때마다 부를 때마다 이렇게 사랑을 받고 히트하는데. 이제 곧 우리 아이도 태어날 텐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날마다 술을 마시고, 또 왜 우는 거예요? 제발 속 시원히 말을 좀 해봐요!” 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까짓 술조차 자기 의지대로 끊지 못하는 그분은 한없이 밉고 원망스럽다가도 술에 취해 울다 잠든 모습을 보면 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그를 그토록 외롭고 서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그분은 평생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운명적인 슬픔과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네댓 살 무렵 큰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어느 날 갑자기 큰어머니·큰아버지를 어머니·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아버지를 작은어머니·작은 아버지라 불러야 했다. 그분은 큰어머니 등에 업혀 큰집으로 가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안 가겠다고 울며불며 버티다가 결국 큰어머니 등에 업혔지만 몸을 거세게 젖히면서까지 저항했다고 한다. 그 순간 본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그분은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해 큰집에 갔으니 마음을 붙이고 지낼 리가 없었다. 다섯 살 아이가 틈만 나면 본가로 도망을 치자 어른들은 아예 애가 오고 가기 힘든 먼 곳으로 이사해 작은 집과 왕래를 끊게 했다.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미명하에 정말이지 가혹한 일을 한 것이다. 그분에게서 처음 이 사연을 듣던 날 나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술에 취하면 자꾸 울었던 그분의 설움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분은 늘 자신을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철이 들고 사춘기를 겪으며 어느 쪽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를 버린 어머니이자 작은어머니가 밉고, 그렇게 싫다는데 굳이 데려간 큰어머니이자 어머니도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재즈가 좋기도 했지만 그가 20대 초반에 밀항을 하면서까지 일본행을 결심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유일한 도피처는 음악과 술이었다. 그분은 뛰어난 연주자이자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술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사족


     사람은 태중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상처를 주고받는다. 인간만이 아니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겪는 운명이다. 이러한 겪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이며 인내할 수 밖에 없다. 100년의 풍상을 겪은 소나무는 대들보가 될 것이며, 상처난 조개는 빛나는 진주를 만들 것이다

      태중과 어릴 적의 일은 내가 당했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새카맣게 잊어버리는 무의식의 사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디 한두 가지 사건이겠는가? 우리나라 오천 년 역사의 상처가 한국인의 유전자로 나에게 전혀져 내려올 것이다. 나아가 우주의 역사가 138억 년이니 그 창조의 상처가 우리 인간의 유전자내에서 전해져 내려올 것이다.

      상처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생명체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므로 그 상처에 속거나 빠지게 되면 패가망신 하기 쉬우니.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생명체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그러니 상처치유와 업장소멸은 세세생생 끝이 없는 것이니, 수련도 끝이 없는 것이다.

     

    자문자답自問自答

     

    1. 이분의 상처는 어릴 때의 양자사건이었다. 다행히 알 수 있는 상처였다.

        ① 다행히도 우리들에게도 알 수 있는 상처가 있다. 무엇인가?

        ② 불행히도 우리들에게는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상처가 있다. 무엇인가?

     

    2. 이분은 술중독, 폐암과 척추암으로 68세에 환원하셨다.

        물약자효로 건강하셨다면 천재적 음악성으로 사회에 더 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몸은 건강한가?

      

    3. 이분이 음악적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 시골에서 평양으로

        양자를 가서 초···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니, 양면의 칼이다.

        ① 이분의 경우 자신에게 살인도殺人刀가 된 것은 무엇인가?

        ② 나 자신의 경우라면 어떻게 하면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 있는가?

       

    4. 어릴 때의 상처나 현재의 불행한 사건사고를 어떻게 치유하면 

        빛나는 진주로 만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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