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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회 창립기념 합동기도 5일차(9월 1일-목요일)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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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재선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417회   작성일Date 22-09-01 18:43

    본문

    천도교청년회 창립103주년 기념 합동재가기도

    5일차(9월 1일-목요일)읽을거리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와 관동대지진조선인학살사건


    1921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온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가 설립되었다. 1921년 1월 10일 발기인 대표 방정환을 비롯하여 김상근, 이기정, 정중섭, 박달성 등이 발기하여 1월 16일 오후 1시 조도전(早稻田) 학권정(鶴券町) 302호 대선관(大扇舘)에 방정환, 김상근, 이기정, 정중섭, 이태운, 박춘섭, 김광현, 박달성 등 10여 명이 모였다. 4월 5일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동학을 창도한 것을 기념하는 천일기념식을 올리고 오후 3시부터 소석천정(小石川町) 차고 앞에 있는 보정(寶亭) 2층에서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 발회식을 했다고 한다. 보정의 문기둥에는 궁을기가 내걸리고 정면에는 ‘천도교청년회동경지회발회식’ 이란 세로현판이 걸리었다. 회장 방정환은 개회사를 하고, 내빈으로는 학우회 회장 김종필, 동우회 회장 김봉익, 동아일보 특파원 민태원, 매일신보 특파원 홍승서, 각 대학 동창회 대표, 여자흥학회 회장 유영준 등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이때 기념촬영사진이 동경지회의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남아 천도교청년회80년사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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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 외에도 동경에는 1922년 1월 천도교 동경전교실을 설치했는데, 동경전교실의 주요 구성원은 방정환을 비롯하여 민석현, 박달성, 이기정, 김상근, 이태운, 구중회, 고경인, 박영환, 강영호, 김의진, 배기원, 정일섭, 정중섭 등이었고, 

    박사직이 동경전교사로 임명되어 1922년 7월 부임했으며, 1923년 천도교 조직개편과 함께 도쿄종리원으로 변경되었다.

    『동아일보』(1921년 6월21일자)에 따르면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는 여름철을 이용하여 유학생들로 3개반을 조직하여 천도교 진리의 선전과 현대사상의 고취를 위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고 하는데 『천도교회월보』포덕62년 7월호에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 순회강연상황’이라는 제목 아래 6명으로 편성된 강연대가 6월 17일 <신라호>편으로 부산항에 상륙하여 18일 오후 3시부터 국제관에서 제1회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오후 10시에는 기독교 측의 요청에 따라 교회당에서 강연을 개최했다. 3개반으로 19일부터 나누어 순회강연을 개시했는데, 경상대는 박달성·정일섭, 본부에서 특파된 김의진, 전라대는 방정환·민병옥, 본부에서 특파된 김은직, 충청대는 전민철·정중섭, 본부에서 특파된 김홍직으로 구성되었다.

    방정환의 귀국 후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는 도쿄종리원 주임종리사인 박사직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동대지진 당시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의 역할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재일본한국YMCA회관에 마련된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 안내문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1923년 9월 1일 오전11시 58분, 관동지방 남부에 큰 지진이 일어나, 카나가와현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자 행방불명자가 10만인을 넘는 대혼란 사이, 평소부터 조선독립 운동의 고조에 겁먹고 있던 일본의 관헌 그리고 민중들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켜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고있다」, 「강도, 강간,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라고 하는 유언비어를 퍼트려갔습니다. 군대, 경찰뿐만 아니라, 재향군인회 및 소방단, 청년단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민간인에 의한 자경단이 각지에서 다수의 조선인을 무차별로 학살했습니다.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조선인 청년들은, 학우회, YMCA, 천도교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이재 조선동포 위문단」을 조직, 학살의 실태 조사 등의 활동을 실시했습니다. 방해를 받은 조사는 대단히 곤란했지만, 학살된 총인원 약 6661명이라는 숫자는 실제의 희생자수에 가까운 귀중한 기록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다음해 YMCA가 타단체와 공동으로 개최한 학살 동포 추도회는 그 후에도 길게 이어져, 오늘날에 있어서의 매년 9월 1일의 도쿄YMCA와의 합동기도회에 이르고 있습니다(도쿄YMCA에서는, 대지진의 다음해,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들이 발기인이 되어, 「조선인 및 중국인 학살 참회 기도회」가 행하여 졌습니다.


    이는 관동대지진 당시 유일하게 천도교도쿄종리원 건물이 건재하게 되어 천도교청년회와 기독교청년회(YMCA)가 공동으로 조선동포구제회를 조직하고 임시사무소로 활용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이들과 함께 「재동경이재조선동포위문반」을 조직하여 조선인 구호 및 조선인 학살 조사가 이루어져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에 희생자가 6,661명에 이른다고 확인하였다. 하지만 이런 조사내용은 국내에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천도교청년회를 이끌었던 도쿄종리원장 박사직은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확인할 수 없으나 박사직을 환송하는 YMCA쪽 기록으로 그 편린을 확인할 수 있다.


    江戶(강호)의 이쪽저쪽에서 새로운 '싸이렌'이 불리기에 이 왠 일인가? 하였더니,  大震災(대진재-대지진의 일본식 명칭) 당시에 悲慘(비참)하게도 선생의 손에 한토막 두토막의 뼈를 줍기우던 魂魄(혼백)들의 선생을 이별하기 서러워하는 抑鬱(억울)한 魂靈(혼령)의 聲(성-소리)이로구나(중략) 

    大震災! 大震災!! 日本(일본) 首府(수부-나라의 수도지역)의 大震災 

    당시에 말도 모르는 白衣同胞(백의동포)가 左(좌)로도 右(우)로도 避(피)할 곳이 없이 가진 發狂(발광)을 다 부리면서 혀를 빼어 물고 눈알이 찢어지는 뭇(數) 죽엄을 當(당)할때에 선생의 換腸(환장)된 가슴에서 끓는 피와 쓸쓸한 暗焦(암초)속에서 희미한 燈(등)불을 손에 들고 同胞(동포)의 뼈를 한토막 두토막 주어 모으며 돌아다니던 그때가 이재에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관동대지진 추모사업


    「조선일보」1924년9월12일석간3면과 「동아일보」 1924년9월13일3면(아래인용)에 따르면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9월13일 오후 4시에 “일본진재조난동포 1주년 기념추도회”가 신흥청년동맹와 서울청년회의 주도로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참사를 당한 동포의 1주기 기념추도회가 열렸다고 한다. 


     작년이때관동그일을추억하자慘死同胞追悼會(참사동포추도회)작년 이때 관동 그 일을 추억하자작년관동(關東(관동))진재당시에 멀리이역객창에서 형설의공을 일우랴다가 무참히 생명을 일어바린 동포가 루천에 이르럿슴은 우리가 아즉것 새로히 긔억하는 일이며더구나 아즉것 그액월인 구월이 가지 아니한 오늘에 잇서서는 지난 일일을 동긔로 작년 이달이즈음에 동경에서 발생한 온갖 참극을 일일이 눈물로 추억하게 되야 본국에 잇는 그들의 친가족들은 물론이어니와 일반으로 우리 조선사람들은 다가치 그당시에 조난한 우리형제들을 위하야 울지 안을 수 업스며 슬퍼하지 안을 수 업다는 뜻으로 동포의 죽은 영혼을 위로키위하야 명십삼일 오후네시부터 경운동(慶雲洞)텬도교(天道敎(천도교))당 내에서 일본진재시 조난동포추도회(日本震災時遭難同胸追悼會)를 개최하고 눈물겨운 추도식과 함께 그 당시의 자세한 경황보고도 하게되엿다는데 금번 추도회의 주최는 관수동에 잇는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과 와룡동에 잇는『서울청년회』라더라 - 「동아일보」 1924년9월13일3면


    국내에서 관동대지진과 관련된 기사나 행사를 찾을 수 없는 가운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과 관련하여 1년 후인 1924년 9월 기념추도회가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 남아있어 천도교청년회는 23년 전 제암·고주리 추모사업을 시작했을 때처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올해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99주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희생자 추모식과 추모행사가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진행된다. 특히 내년 2023년은 관동대지진 100주기 되는 해인 만큼 사건 당시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고자 했던 선배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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