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修道)와 감응(感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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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修道)와 감응(感應) ......임 문호
우리들은 일상 수도(修道)생활에 있어서 누구나 한결같이 ‘한울님 감응하옵소서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하는 심고(心告)를 올린다. 이로써 보면 우리의 수도란 것은 또는 신교(信敎)의 목적은 온전히 천사(天師)의 감응(感應)을 비는 데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그러면 대체 이 천사(天師)의 감응이란 어떤 것인가.
대개 감응이란 말은 종교상으로뿐 아니요 물리학상(物理學上)으로도 쓰이는 말이니, 나는 이 말을 물리학적(物理學的)으로 해석할 때에 퍽 깊은 감명(感銘)을 가지게 된다.
물리학에서 감응이란 말은 전기(電氣)나 자기(磁氣)가 그 도체(導體)에 통할 때에 그 도체는 곧 전기화(電氣化) 자기화(磁氣化) 해 버린다. 이것을 감응이라 한다.
즉 예하면 여기에 철제(鐵製)의 어떤 물건 못이나 바늘 같은 것을 자철(磁鐵)에다 대이면 그 못이나 바늘은 그만 자기로 화(化)하여 버린다. 그리하여 그 못이나 바늘이 자철과 꼭 같이 다시 다른 철류를 잡아댕기며 또 남 북을 가리는 것이다. 이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감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해석을 우리의 심고(心告)에 적용(適用)해 본다면 우리가 ‘한울님 감응하옵소서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하는 말은 한울님 아닌 우리 인간이 한울님의 감응을 받아서 한울님과 합일 되겠다는 기원(祈願)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인내천(人乃天) 인내천 하지마는 인내천이란 것은 결코 한울님의 감응응 받지 않은 이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한울님의 감응을 받은 즉 합기덕(合其德) 정기심(定其心) 한 그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그의 일동(一動) 일정(一靜) 일묵(一黙)이 모두 한울님의 법에 맞고 한울님의 뜻에 맞을 것이다. 아니 바로 한울님의 말이요 행(行)일 것이다.
이러한 공부도 수련도 감응도 없이 그저 인내천이라 하여 자기가 한울이거니 하고 있다면 참 람(濫-넘침)도 그 위에 더할 것이 없고 과오(過誤)도 그에서 지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한울님의 감응을 얻을 것인가.
우리가 한울님을 위하는 것은 마치 자손이 그 부모를 봉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손이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서 의식주(衣食住)로써 그 육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도 효 아님이 아니나 진정한 효는 그 부모의 뜻을 양(養)함으로써 으뜸을 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한울님의 감응을 얻으려면 먼저 한울님을 잘 위하여야 하고 한울님을 위함에 있어서는 한울님의 뜻을 잘 봉행(奉行)하여야 할 것이다.
대개 한울님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을 가지셨다.
이 천지가 무하유(無何有) 일물(一物)시대로부터 성운(星雲)세계가 되고 태양계(太陽系)가 되고 지구(地球)가 생기고 동식광물(動植鑛物)로부터 우리 인간에 이르기까지 과거 억천만겁의 이전으로부터 오늘날까지 또 미래 억천만겁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의 각유성 각유형(各有性 各有形)이 모두 한울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덕(德)으로써 되어진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한울님의 무량대덕을 감사하는 동시에 이 무량대덕을 보답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며 이러함에는 우리 인간은 한울님의 뜻과 같이 우리역시 남을 살리겠다는 덕심(德心)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여천지(與天地)로 합기덕(合其德)하는 그 행위이며 신사영기아심정(神師靈氣我心定)하는 다시 말하면 한울님의 마음을 내마음(我心)으로 정하는 즉 정기심(定其心)이 되는 것이다.
혹시 합기덕 정기심 하는 것이 어찌 득도(得道)하지않고서 될 수 있는 일이랴 할 것이나, 합기덕 정기심이 일관(一貫)되기는 물론 득도(得道) 각도(覺道)가 아니고는 아니되는 일이지마는 우리가 어천만사(於千萬事)에 매양 정성 공경으로 당(當)하고 자자근근(孜孜勤勤 하여 나아간다면 화출어자연지중(化出於自然之中)으로 한울님의 감응을 받게 될 것이다.
- 월간 '신인간'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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