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言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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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언은 공부를 하기 위해 경암 이영로 원장님께서 해의 하신 神言을 올려 봅니다...
神言은 총부장판으로 되어있고 편술자가 박인호로 되어있을 뿐만아니라 그 내용이 도를 닦고 마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꼭 공부해야할 말씀 들 이므로 한문지식이 많지 않는 현대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의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되어 법원 수도원장님께서 해의를 해놓으신것을 공부삼아 옮겨봅니다. 더 공부하시고 싶은분들은 총부에 문의하셔서 구입하시어 자세한 공부를 하시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神言을 해의 하면서.
경암 이영로 법원수도원장님.
포덕 46년 12월 1일 성사님께서 동학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대고 천하 하신 후 약 10년에 걸쳐 우리 교회에는 많은 책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천도교 중앙총부 장판으로 발행된것은 몊권되지 않는다. 필자가 수집한 것으로서는 명치 45년 대정1년 포덕 53년 3월 16일에 발행한 무체 법경.후경. 십삼관법. ㄱ.리고 대정 2년 포덕54년 4월 7일에 발행한 神言만이 천도교 중앙총부 장판으로 편술자가 박인호. 발행자가 손재용으로 되어있다. 양한묵은 대종정의를 비롯한 많은 글을 썼는데 모두 중앙총부 장판으로 되어 있지 않고 편술자나 발행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신언은 스승님들의 말씀이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또 자신의 체험이나 생각을 적은것이 아니다. 오직 신의 말씀을 들으신 그대로 글로 지으셔소 편집한 것이므로 제목을 神言이라고 하신 것이다.
(중간 생략)
신언을 공부 하면서 다 같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즉 한울님 명사를 쓰지 않고 神이라고 썼는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自然天.理氣天을 " 하날" 이라고 했고人格天을 " 하날님" 이라고 했다. 천도교회 월보를 살펴보면 포덕 52년 명치 44년 5월호제 10호까지는
" 하날" " 하날님" 이라고 기록 하였으나 6월호 제 11호 부터는 " 한을" " 한을님" 으로 기록 되었으며 그 후로는 " 하 날" " 하날님" 이란 말은 찿아 볼수가 없고 9월호 10월호에 한으님.이라는 호칭이 있으며. 12월호제2권 제 7호부터는 자연천.이기천을 " 한울" 인격천을 " 한우님" 으로 기록 되었으며. 포덕 59년 대정 7년1월호제 90호부터 한울님 이란 호칭이 나와지기 시작하였으나 한우님이란 호칭을 주로 쓰다가 포덕 61년 3월호 제115호. 4월호 제 116호에는 한우님과 한울님이란 호칭을 혼용했으며 5월호에는 한우님의 호칭이 많지 않고 6월호 제108호 부터는 한우님이란 호칭을 찿아 볼수가 없고 자연천을 한울. 이라 하고 인격천을 한울님 이라고만 기록하고있다.
포덕 53년 6월호부터 하날.하날님 이란호칭이 갑자기 한을.한을님 으로 다시 한울. 한으님.한우님. 한울님 으로 바뀌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아마도 일제가 민족 종교 말살정책의 일롼으로 우리의 고유명사를 부르지 못하게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따라서 神言에서는 일제 탄압으로 마지못해 부르는 호칭을 쓰지 않기 위해서 神이라고 쓴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
포덕 141년11월 3일 법원수도원에서 이영로심고.
1. 神 言
대의: 신언의 서론으로서 먼저 신의존재를 밝혀놓으셨고 신은 형체는 없지만 소리를 내고 말을할수있으며. 사람을 통해서 말을 내린다는것을 밝히셔서 神言을 쓸수 있었던 원리를 밝혀 놓으셨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밝히고 사람으로서 해야할 기본 임무를 밝혀 놓으신것이다..
제 1절
天은 相對者의 可別的大分體가 無한者로
하늘은 상대자의 분별할수 있는 큰 몸체가 없는 것으로서
惟히 彌茫空蒼의 象이 吾人眼中에 來하도다.
오직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푸른 공중에 하늘의 형상이 우리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其涯岸의 截然處를 追訪할진대 萬萬秋萬萬智
그 하늘의 끝은 어디인가? 그끝을 찿아간다고 한다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만만년의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지혜의
萬萬相續으로 能히 終點을 得하기 難하도다 何岸의 最上頭에 升하야 其首를 見하며 何계(계단계)의 最下級
모든것이 한데 모은다고 하더라도 능히 한을의 끝을 찿기 어려운 것이다.어떤 언덕의 가장 높은 위에 올라가서 하늘의 머리를 보겠으며 어떤 가장 낮은 곳에
至하여 其蹄를 追할고 大象中에 在한 至大의 無와
내려가서 하늘의 발끝을 찿을수 있을꼬? 큰 형상인 우주가운데 있는 지극히 크면서 없는 무형과
至衆의 有는 其環環輟輟의 古今迹이 腹中小境界에 徘徊하다 謂함이 可하도다.
형체로 나타난 지극히 많은 물체들은 그 둥글고 둥근 가운데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자취가 마치 커다란 뱃속에 작은경계를 두고 왔다 하는것과 같다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다음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
神言은 총부장판으로 되어있고 편술자가 박인호로 되어있을 뿐만아니라 그 내용이 도를 닦고 마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꼭 공부해야할 말씀 들 이므로 한문지식이 많지 않는 현대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의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되어 법원 수도원장님께서 해의를 해놓으신것을 공부삼아 옮겨봅니다. 더 공부하시고 싶은분들은 총부에 문의하셔서 구입하시어 자세한 공부를 하시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神言을 해의 하면서.
경암 이영로 법원수도원장님.
포덕 46년 12월 1일 성사님께서 동학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대고 천하 하신 후 약 10년에 걸쳐 우리 교회에는 많은 책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천도교 중앙총부 장판으로 발행된것은 몊권되지 않는다. 필자가 수집한 것으로서는 명치 45년 대정1년 포덕 53년 3월 16일에 발행한 무체 법경.후경. 십삼관법. ㄱ.리고 대정 2년 포덕54년 4월 7일에 발행한 神言만이 천도교 중앙총부 장판으로 편술자가 박인호. 발행자가 손재용으로 되어있다. 양한묵은 대종정의를 비롯한 많은 글을 썼는데 모두 중앙총부 장판으로 되어 있지 않고 편술자나 발행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신언은 스승님들의 말씀이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또 자신의 체험이나 생각을 적은것이 아니다. 오직 신의 말씀을 들으신 그대로 글로 지으셔소 편집한 것이므로 제목을 神言이라고 하신 것이다.
(중간 생략)
신언을 공부 하면서 다 같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즉 한울님 명사를 쓰지 않고 神이라고 썼는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自然天.理氣天을 " 하날" 이라고 했고人格天을 " 하날님" 이라고 했다. 천도교회 월보를 살펴보면 포덕 52년 명치 44년 5월호제 10호까지는
" 하날" " 하날님" 이라고 기록 하였으나 6월호 제 11호 부터는 " 한을" " 한을님" 으로 기록 되었으며 그 후로는 " 하 날" " 하날님" 이란 말은 찿아 볼수가 없고 9월호 10월호에 한으님.이라는 호칭이 있으며. 12월호제2권 제 7호부터는 자연천.이기천을 " 한울" 인격천을 " 한우님" 으로 기록 되었으며. 포덕 59년 대정 7년1월호제 90호부터 한울님 이란 호칭이 나와지기 시작하였으나 한우님이란 호칭을 주로 쓰다가 포덕 61년 3월호 제115호. 4월호 제 116호에는 한우님과 한울님이란 호칭을 혼용했으며 5월호에는 한우님의 호칭이 많지 않고 6월호 제108호 부터는 한우님이란 호칭을 찿아 볼수가 없고 자연천을 한울. 이라 하고 인격천을 한울님 이라고만 기록하고있다.
포덕 53년 6월호부터 하날.하날님 이란호칭이 갑자기 한을.한을님 으로 다시 한울. 한으님.한우님. 한울님 으로 바뀌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아마도 일제가 민족 종교 말살정책의 일롼으로 우리의 고유명사를 부르지 못하게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따라서 神言에서는 일제 탄압으로 마지못해 부르는 호칭을 쓰지 않기 위해서 神이라고 쓴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
포덕 141년11월 3일 법원수도원에서 이영로심고.
1. 神 言
대의: 신언의 서론으로서 먼저 신의존재를 밝혀놓으셨고 신은 형체는 없지만 소리를 내고 말을할수있으며. 사람을 통해서 말을 내린다는것을 밝히셔서 神言을 쓸수 있었던 원리를 밝혀 놓으셨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밝히고 사람으로서 해야할 기본 임무를 밝혀 놓으신것이다..
제 1절
天은 相對者의 可別的大分體가 無한者로
하늘은 상대자의 분별할수 있는 큰 몸체가 없는 것으로서
惟히 彌茫空蒼의 象이 吾人眼中에 來하도다.
오직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푸른 공중에 하늘의 형상이 우리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其涯岸의 截然處를 追訪할진대 萬萬秋萬萬智
그 하늘의 끝은 어디인가? 그끝을 찿아간다고 한다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만만년의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지혜의
萬萬相續으로 能히 終點을 得하기 難하도다 何岸의 最上頭에 升하야 其首를 見하며 何계(계단계)의 最下級
모든것이 한데 모은다고 하더라도 능히 한을의 끝을 찿기 어려운 것이다.어떤 언덕의 가장 높은 위에 올라가서 하늘의 머리를 보겠으며 어떤 가장 낮은 곳에
至하여 其蹄를 追할고 大象中에 在한 至大의 無와
내려가서 하늘의 발끝을 찿을수 있을꼬? 큰 형상인 우주가운데 있는 지극히 크면서 없는 무형과
至衆의 有는 其環環輟輟의 古今迹이 腹中小境界에 徘徊하다 謂함이 可하도다.
형체로 나타난 지극히 많은 물체들은 그 둥글고 둥근 가운데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자취가 마치 커다란 뱃속에 작은경계를 두고 왔다 하는것과 같다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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