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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 장생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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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590회   작성일Date 12-11-24 06:12

    본문

     

     박씨부인이 나무접시에 떡 한 덩어리를 담아갖고 오다가 수운의 춤에 홀려 멍하니 구경합니다. 체념으로 겉늙어버린 부인 몸속에 한울님 같은 기화신이 들어있습니다. 수운은 두 무릎을 꿇어 절을 합니다. 부인도 자기도 모르게 선채로 반절을 하고, 놀랜 눈빛으로 수운 얼굴을 바라봅니다. 

      “한울님 말씀을 들었소. 말씀하시기를 ‘나도 성공 너도 득의’라고 하셨소.”

      “한울님 말씀이라뇨?”

      “그렇소, 지기한울님은 사람으로써 만사를 알고, 사람으로써 모신사람이 되려고 사람으로 화생했던 거요.”

      박씨부인은 남편의 말이 엉뚱하고 복잡한 걸 보면 뭔가 셈난 낌새를 채었지만 가난들어 걱정가마리는 많고, 사는 건 고달파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집니다.

      “알았으니 그만 떡이나 드시오.” 그러고 손에 든 떡판을 수운 앞에 내려놓습니다.

      내자 말씨로 보아 아주 자기 말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한 맘도 들었지만 어찌 몇 마디로 알랴 싶어집니다. 이는 아직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서란 의식이 듭니다. 그래서 먼저 한울님을 위하는 주문을 지어 외우게 해야 한다는 의식이 듭니다. 그래서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주문을 음미하며 한울님을 위하는 주문을 헤아려 봅니다.

      그는 저녁이 되어 늘 하듯이 저녁밥을 반쯤만 들고 돌아와 꽈앉기(跏趺坐)를 합니다. 그러고 아직 생생하게 남은 한울님 말씀을 헤아려봅니다. 처음 한울님의 가르침이 ‘영부로써 병을 고치고 주문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쳐 나를 위하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영부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모름지기 지기의 허령이 내 조선 말에 섭명하여 한울님 말씀으로 화생한 것처럼, 영부도 지기가 내 맘에 섭명하여 화생한 어떤 것일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먼저 지기에 화합하는 기화가 일어나야 가능하리라는 어림이 듭니다. 기화를 바라려면 “至氣今至 四月來”를 외우며 지기와 화합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래서 “지기금지 사월래. 지기금지 사월래···.”를 외웁니다.

      그는 적은 소리로 외우다가 터놓고 소리 높여 외워갑니다. 몸속 무한소 무한의 지기에 접하기를 바라면서 큰 소리로 외웁니다. 그리고 무속에서 접신하려면 꽹과리를 끊어서 빨리 두들기듯이 그렇게 ‘지기금지사월래’를 한자씩 끊어서 빨리, 더 빨리 되풀이해 외워댔습니다. 이 같은 빠른외기’는 습관된 마음과 잡념을 털어버리고 의식을 외곬으로 모아서 심신을 일상에서 벗어나 무위에 이르게 하여 접령이 잘되게 합니다. 드디어 지기에 몸이 화하여 몸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림이 옵니다. 그의 몸이 들썩이다가 한 자나 공중으로 떴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쓰러집니다. 이때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음성이 공중에서 울려옵니다.

      “두려 말라!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2)

      퍼뜩, 수운께서는 두려움이 덮쳐 옴을 느끼며 ‘호천금궐3) 상제님이라니?’ 의아해합니다. 더구나 그 목소리는 공중에서 들려왔습니다. 그렇다면 한울님은 파란 하늘의 대궐에 계신단 말인가? 그렇게 괴이히 여기고 회의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의 몸이 쓰러졌음을 느끼어갑니다. 비로소 그는 한울님 말씀이 공중에서 들려온 까닭을 

    깨닫습니다. 여태까지 한울님 말씀을 들었을 때의 자신의 상태를 헤아려보니, 밖에서 들린 듯했을 때는 의식이 몸을 초월한 상태였고, 속에서 들린 듯했을 때는 의식이 몸을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한울님 말씀이 밖에서 들리거나 속에서 들리거나 하는 차이는 의식이 몸을 초월한 상태냐, 몸을 느끼는 상태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난 소리 같은 것도 실인즉 자신의 몸속에서 난 소리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한울님이 자기를 ‘호천금궐 상제님’이라고 칭한 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울님은 ‘내유강화(內有降話)’를 겪어보도록 해서 몸속에 계심을 깨닫게 하셨는데 어찌 이제 와서는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알까보냐’라고 하시는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천지를 알면서 귀신을 모르니 귀신도 나니라.(知天地而 無知鬼神 鬼神者 吾也) 하신 말씀과 관계가 있을 성싶습니다. 곧 귀신도 나인 것처럼 상상 존재인 상제도 나란 의미라 여겨집니다.

      “얼 차리시오 여보!”

      쓰러진 수운선생을 아내와 세정이 일으킵니다. 박씨부인은 밖에 나왔다가 용담정에서 평상시와는 아주 다른 글 외는 소리가 점차 크고 빠르게 들려온 듯해서 이상하다 싶어 올라와 보니 수운선생 몸이 개구리처럼 공중으로 뛰어오르다 떨어지며 넘어지는 걸 봤습니다. 그러고 누구에게 두려운 목소리로 묻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거 큰 사단이 났구나 싶어 어쩔 줄 모르다가 살림집(와룡암)에 가서 엉겁결에 열 살밖에 안된 세정이를 데려와 보니 여전히 쓰러진 채로 있는 거였습니다. 그 뒤 수운께서는 고꾸라져 새하얗게 바랜 얼굴인 채로 이렁저렁 헤아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아내의 부축을 받아 바로 앉아 숨을 고르는데 또

      “장등 달라! 백지 펴라.” 1) 

      라는 한울님 말씀이 울려왔습니다. 그는 얼김에 아내에게 ‘등잔불 좀 켜주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백지를 펴니 한 점의 태극에서 파동이 일어 두 개의 활꼴이 되어 양쪽으로 갈리며 퍼지더니 다시 압축되어 한 점 태극 속으로 사라지는 물형부(物形符)가 종이 위에서 약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신기하고 놀래어서 처자 불러 손가락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묻습니다.

      “이런 영부 본 적 있나?"

      그러나 박씨부인 눈에나, 큰아들 세정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이 웬 일고. 백지 위에 영부 있단 말씀, 이 웬 일고.”

      세정은 아버님이 쓰러져있는 걸 보고 놀란 가슴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아버님이 또 엉뚱한 소리를 내서 어머니 손을 잡고 “아버님 거동 보소 저런 말씀 어디 있노.” 하며 어머니와 같이 무섬증이 들어 울먹입니다. 수운께서는 세정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백지를 내려다보는데, 여전히 태극이 활꼴의 궁궁(弓弓)으로 화생하고 궁궁이 태극으로 환원하는 ‘화생·환원’의 약동이 잇따릅니다. 한 점 태극이 궁궁의 꼴로 물결처럼 퍼지는 것은 태초 천지의 뿌리인 지기가 처음 만물로 화생할 때의 약동하는 꼴이라 여겨져서 수운께서는 장엄한 감성에 휩싸여 갑니다. 한울님 말씀이 다시 들립니다.

      “지각없는 인생들아 삼신산 불사약을 사람마다 볼까보냐. 미련한 이 인생아 네가 다시 그려내서 그릇 안에 살라두고 냉수 일 배 떠다가서 단박에 마셔스라.”

       “여보 이제 막, 한울님 말씀 들었소?”

      방구석에서 한숨 섞인 눈물만 짜는 어머니 대신 세정이 나서서 말합니다.

      “아버님, 한울님 말씀이라뇨? 정신수습 하옵소서.”

      수운께서는 그제야 제 몸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한울님 말씀은 자기 귀청에만 들리지 옆 사람 귀엔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영부도 자기 몸속 무극에서 비롯하여 눈을 통해 종이위에 뜨인 거라 자기의 속의식만 본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처럼 영부와 한울님 말씀은 당사자만 보이고 들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수운께서는 한울님 말씀대로 지기(至氣)가 물형부로 화생하여 약동하는 품을 그리려고 붓을 드니 붓이 저절로 움직이며 영부를 그려냅니다. 그래서 한울님 말씀대로 영부를 살라서 그릇 안에 담아 놓고 아내에게 물을 부탁하여 붓고 섞어 마셨더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 어떤 특별한 맛도 나지 않는 그냥 시원한 물맛입니다. 그러나 저녁에 먹은 음식이 신물이 되어 올라오던 더부룩한 배가 시원합니다. 막힌 밸이 뚫린 듯 심신이 상쾌합니다.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하신 말씀처럼 ‘선약(仙藥)이어서 이렇게 속이 시원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보, 저녁 먹은 게 더부룩했는데 영부를 살라 먹고 나니 보깨던 속이 과연 편해졌소. 한울님 말씀대로 영부는 선약인 모양이오.”

      박씨부인은 수운이 ‘한울님 말씀대로 영부는 선약인 모양이오.’라고 한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음성을 들어보니 제 얼로 돌아온 듯싶어 그게 고마웠습니다. 더욱이 아침저녁 두 때만 들면서도 속이 안 좋다고 반 사발밖에 먹지 못해서 얼굴이 점점 더 바래가서 근심이 쌓여갔는데 속이 편해졌다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박씨부인은 정말 저 양반이 태워 마신 것이 한울님의 선약인 영부인지 모른다는 의식이 번뜩 들어서 물은 겁니다.

      “그렇다니까요.”

      수운께서는, 영기인 지기한울님이 궁궁인 영부로 화생하시여 선약 노릇을 한 것이라 여깁니다. 지기는 사람의 기원에 감응하시어 말씀으로 화생하시어 가르침을 내려주시고, 한울님 기운으로 화생하시어 몸맘을 한울님화하시고, 영부로 화생하시어 병도 고쳐주시는 한울님이라는 믿음이 갑니다. 즉 지기는 말씀으로도, 한울님으로도, 또 영부로도 화생하시어 사람을 돕는 전능한 한울님이란 확신이 든 겁니다.

      박씨 부인은 마음을 놓고 자식과 함께 살림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수운께서는 적막해진 주위를 살펴봅니다. 등잔불 밑의 벼루와 붓과 영부를 살라 마신 정안수 그릇뿐입니다. 수운께서는 한울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싶어 그 간의 말씀을 떠올려 밤이 깊도록 적어갑니다.


      수운께서는 주문을 외워서 기화가 되면 영부를 그리고 물에 타서 마시기를 4월 말 무렵까지 합니다. 그랬더니 아침저녁 먹던 밥을 점차 덜 남기기 시작하면서 병이 낫는 기색을 느낍니다. ‘영부로써 사람들 병을 고치고’라고 하신 한울님 말씀이 헛말이 아닌 진실이다 싶었습니다.

      이처럼 영부의 효험을 느끼게 되자 자기는 한울님의 영부의 덕을 입고서도 아직 한울님을 위하는 주문을 짓지 못했으니 빚을 졌구나 하는 의식이 듭니다. 그래서 한울님을 위하는 주문을 사유하는데 홀연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 萬事宜:한울님을 위하고 나서 내 정상을 돌아보고 잊지 않으니 만사에 떳떳하네.)”란 글이 의식에 떠오릅니다. ‘바로 이것이다.’라는 마음이 들어 다시 ‘위천주···’를 외워 보니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이 들며 떳떳해집니다. 그는 이 주문을 사람들에게 외우게 해서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영부를 불에 태워 마시게 하면 병도 나을 것이란 믿음이 듭니다. 그러자 더욱 자신감이 들며, 4월 5일 득도할 때와 같은 기쁨이 되살아납니다. 그는 이 같은 성취감의 기쁨으로 ‘용담가’ 가사 한 편을 지었는데, 일부만 소개합니다. 


               용담가


    국호는 조선이요 읍호는 경주로다. 성호는 월성이요 물이름은 문수로다···.

    아동방 생긴뒤에 이런왕도 또있는가 물흐름도 좋거니와 산흐름도 좋을시고

    금오는 남산이요 구미는 서산이라···.첨성대 높은탑은 월성을 지켜있고

    청옥적 황옥적은 자웅으로 지켜있고 일천년 신라국은 소리를 지켜내네···.

    인걸은 지령이라 명현달사 아니날까 하물며 구미산은 경주의 주산일세···.

    천은이 망극하여 경신사월 초오일에 글로어찌 기록하며 말로어찌 이뤄낼까

    만고없는 무극대도 꿈깬듯이 득도로다····.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勞而無功 하다가서 너를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得意

    너희 집안 운수로다.” 이말씀 들은후에 속기쁨 넘쳐났네.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 닥친줄을 너희어찌 알까보냐.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구미산수 좋은곳서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의 운수로다.

    나도또한 신선이라 비상천 한다해도 이내선경 구미용담 다시보기 어렵도다.

    천만년 지내온들 아니잊자 맹세해도 무심한 구미용담 평지될까 애달하다.

       

      세조네에 가서 세조 처하고 밭일을 하고 돌아온 박씨부인은 수운선생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살림집(와룡암)을 지나 용담정으로 오는데 구성진 가사 소리가 들려서, 방문 옆까지 와서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 당신이 지은 가사요? 참 듣기가 좋소. 나도 하나 적어 주소. 김매며 외우면 시름이 없어 좋겠소.”

      “고마운 말이오. 내 당장 적어 드리리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요?”

      “조카며느리(세조처)가 먹기만 하면 끌꺽거리고 신물이 올라와서 고생하고 있는데 당신이 받은 영부를 먹여 보면 어떨까 싶소.”

      그렇지 않아 ‘위천주···.’ 주문을 짓고 보니 자신감이 들어서 남에게 써보고 싶던 참이라 잘됐다 싶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먼저 몸속에 계신 한울님을 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하오. 한울님을 위하는 주문을 어제 지은 것이 있으니 외우게 하도록 하시오. 내용은 ‘몸속에 계신 한울님을 위하고 나서 자신의 정상을 돌아보라는 거요. 이를 잊지 않으면 모든 일이 반듯해진다.’는 뜻이오. 그리고 새벽에 먼저 정안수와 영부를 모셔놓고 한울님께 빌고 주문을 21번 외운 뒤에 영부를 불에 태워서 정안수에 타서 마시라고 하시오. 밤에 잘 임시에도 그렇게 하라 이르시오. 병이 나은 뒤에도 늘 그렇게 기도하라 하시오.”라고 부탁하고 여러 장의 영부와 ‘초학주문’을 적은 쪽지를 내어주면서 “나를 따라 외워 보시오” 하고 ‘위천주···.’를 외워갑니다.

      그래서 박씨부인도 뒤따라 외웁니다. 수운께서는 잠시 뒤에 멈추고 “이제처럼 외우게 하시오.”라고 합니다. 박씨부인은 ‘초학주문.’ 용지를 보면서 “나도 외우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하지요.”라고 합니다. 수운께서는 이 같은 내자의 말을 듣자 자신감이 생깁니다. 내자도 ‘위천주 주문’에 흥미를 가졌구나 싶어섭니다.

      박씨부인은 며칠 뒤 조카며느리가 좀 나아진 것 같다면서 이번엔 마을에 55세의 아주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입이 왼쪽으로 획 돌아가 버려서 침을 맞아도 도무지 효험도 없고 돈도 없다고 푸념하는데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합니다. 그래서 전처럼 다시 일러주고 영부 몇 장을 줬습니다. 그런데 위천주 주문을 외우고 영부를 태워 마신지 3일 만에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내자가 와서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소문은 인동에 퍼지게 되고, 용담정에 찾아와 치료를 간청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혼자 중얼거리는 40대 남편을 데리고 온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몇 년 전 애초엔 게을러지고 멍해지고 엉뚱한 소리를 하드니 요새는 혼자 중얼거리며 동리를 싸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운은 그 깊고 형형한 눈빛으로 환자 눈을 쳐다보자 환자의 몸이 뻣뻣해지며 쓰러지려는 것을 부인이 잡아 세웁니다.

      “오래되었군요. 오래될수록 고치기 힘들어집니다. 마음이 허약한 사람들이 잘 걸리므로 마음을 굳세게 먹으면 낫게 됩니다. 오직 한울님만 정성을 다해 위하고 믿으면 믿는 마음이 굳세어지면서 낫게 될 겁니다. 제가 몸속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이 나게 하는 주문을 드리겠으니 늘 외우시도록 하세요. 특히 새벽에 같이 일어나서 정안수와 영부를 모셔놓고 한울님께 빌고, 주문을 스물한 번 외우시고, 그릇에 영부를 태우고 정안수를 부어 드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가만히 있지 말고 몸속한울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위천주 주문’을 외우십시오. 그렇게 몸속에 계신 한울님께 정성을 드리면 나으실 겁니다.” 그는 환자 눈을 보며 말합니다.

      “눈을 뜨시오” 그랬더니 환자가 잠에서 깬 듯이 눈을 떴는데 말짱해 보입니다. 수운께서 영부 댓 장과 ‘주문’을 적은 쪽지를 주며

      “나를 따라 주문을 외우시오.” 하고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를 외워서 부인도 환자도 따라 외웁니다. 50여 회쯤 외웠을까, 부인이 감격하여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우더니 환자도 휩쓸려 울며 외웁니다. 한참 뒤 울음이 잠잠해 지자 주문을 마치고서 수운은 다시 말합니다.

      “병이 나았다 싶어도 아침저녁 기도를 거르지 않아야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

      부인과 남편은 병이 다 나은 것 같아 큰 절을 하면서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라고 하고 또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하며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그는 찾아 온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지도해서 여러 사람을 병에서 구원했습니다. 하지만 병이 낫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그 중엔 ‘위천주’라니 ‘천주를 위하라’는 것은 서학을 하란 말이냐며 헐뜯으며 다니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이런 하리쟁이3)들의 말이 박씨부인 귀에도 들어가 홧김이 치밀어 올라, 수운께 털어놓으며 서학이란 덤터기를 쓰게 되었으니 걱정이라 합니다. 

      그러나 수운께서는 한때의 오해는 사라질 것이라고 위로하고, 흔들림 없이 음력 10월까지 하루 세 때 꼬박이 기도식을 올렸습니다. 기도식 때마다 ‘지기금지 사월래...’를 외워서 지기에 접하여 신령한 기운 속에 들어 영부를 그려서 물에 타 먹기를 이어했습니다. 그랬더니 마른 몸이 굵어지고 검던 낯이 희어져서 신선처럼 환태(幻態)4)되어 갔습니다. 이 같은 지기한울님의 신통력을 겪으면서 ‘지기의 속성’에 대한 믿음도 굳어져가서 지기의 섭명 ·기화로써 만사를 이해하는 길도 넓어져 갑니다. 이처럼 지기한울님의 영험이 실증되고 만사지의 길도 훤해가므로 그는 서학으로 몰리는 오해에서도 벗어나게 되리라는 자신 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수운께서는속태우는 아내나 걱정하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안심가’를 짓습니다. 일찍이 소개된 내용 등은 빼고 7분의 1 정도로 축소해서 옮기기로 합니다.

     

               안심가


    현숙한 내집부녀 이글보고 안심하소···.

    사월이라 초오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수습 못할러라···.

    백지펴고 붓을드니 생전못본 물형부가 종이위에 완연터라···.

    그럭저럭 먹은부가 수백장이 되었더라 칠팔삭 지내나니 가는몸이 굵어지고

    검던낯이 희어지네 어화세상 사람들아 선풍도골 내아닌가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요악한 고인물이 할말이 바이없어 서학이라 이름하고 온동네 외는말이

    사망년 저인물이 서학에나 싸잡힐까. 그모르는 세상사람 그거로사 말이라고

    치켜들고 하는말이 용담에는 명인나서 범도되고 용도되고 서학에는 용터라고

    종종걸음 치는말을 역력히 못할러라···.

    한울님이 내몸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그말저말 듣지말고 거룩한 내집부녀

    근심말고 안심하소. 이가사 외어내서 춘삼월 호시절에 태평가 불러보세.


      수운께서는 추수 뒷일인 지붕 이는 일을 도우면서 그간의 일을 돌이켜 보셨는데, 그간 너무 치병 위주의 ‘영부’와 ‘위천주’에 집착했었다 싶었습니다. 한울님은 <주문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치라(制其文敎人)>고 하셨는데 치병위주에만 매달려 온 겁니다. 수운께서는 사람의 도리를 하는 주문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여겨 그런 주문을 헤아려 봤습니다.

      음력 10월 끝날, 새벽 기도식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수운께서는 여느 때처럼 꽈앉기하고 자기에게 내려주신 주문인 ‘지기금지사월래 시천주영아장생 무궁무궁만사지’를 외웁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외워서 기화가 잘될 ‘강령주문(降靈呪文)’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데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이란 글자가 맑은 울에 떠오릅니다. 외워보니 점점 더 맑아져서 그 글로써 마음을 정합니다. 다음에 세상 사람이 외워서 시천주 하고 만사지 할 수 있는 ‘본주문(本呪文)’을 헤아리는데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란 글자가 맑은울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외워보니 점점 더 맑아져서 그로써 마음을 정합니다. 살펴보니 한울님이 자기에게 내려 주신 주문의 중요한 용어인 ‘지기· 시천주· 만사지’가 똑같습니다. 그래서 ‘지기로써 만사지’하는 구조여서 이 역시 한울님이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바꿔주신 것 같습니다. 그는 외우면서 내용을 음미해 봅니다. ‘강령주문은 몸속 무한소 무한에 계신 지기한울님에 접했음을사유’하고기화를 바라는 주문이오, ‘본주문은 이처럼 몸속에 계신 지기한울님을 사유하고 기화해서 모셨으니, 모신한울님의 조화로써 마음을 정하고, 잊지 않아서 지기의 섭명·기화로써 만사지 한 모신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주문이라 여겨집니다. 이 두 주문을 합쳐 수운께서는 <삼칠자주문· 21자주문>이라 하다가 나중에는 <장생주>1)라고 합니다. 이제 무극대도인 ‘지기’가 일반인이 외워서 도덕인이 될 수 있는 21자인 ‘장생주’가 된 겁니다. 비로소 무극대도인 ‘지기’는 영부나 신령한 기운이 되어 사람들 병을 고치게 되었고, ‘장생주’가 되어 ‘만사지 한 모신사람’이 되는 얼개2)를 갖추게 된 겁니다.

      그 뒤부터 그는 4월 5일 받은 주문을 ‘선생주문’이라 하고, ‘위천주 주문’을 ‘초학주문’이라 하고, ‘초학주문·장생주’를 ‘제자주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 뒤 동학에서 ‘주문’이라고 줄잡아 이르는 말은 ‘장생주’를 지칭합니다. 앞의 주문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진 것이 ‘장생주’이어섭니다.


      지금껏 ‘장생주의 내력’을 살펴봤습니다. 장생주는 수운께서 받을 수 있는 조건, 즉 재가녀자식으로서의 고민, 14세에 금강산에서 신선으로부터 무극대도 날 것이란 말씀을 듣는 영적 능력, 무극태극이 ‘리·기·허령’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의 집요한 탐구, 마음공부(心學)를 쉬지 않고 한 탐구력, ‘천서’로부터 ‘기도어천(祈禱於天)’하라는 계시를 받고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한울님을 몸속 무한소 무한에서 찾은 것. 그리고 득도할 때까지 정성을 다해 ‘기도어천’ 한 것. 이런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한울님으로부터 수도할 수 있는 ‘선생주문’을 받고, 그의 속의식은 몸속 무한소 무한에 이르러 견천(見天)할 수 있었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서 ‘장생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노릇을 한 것이 ‘선생주문’이요 ‘견천’입니다. 선생주문의 주어는 ‘지기’이며, 이 ‘지기’의 모습을 ‘견천’할 때 자세히 살피고 이를 ‘지기의 속성’이라 하고, 수운께서는 이로써 만사를 설명하는 공부를 합니다. 따라서 ‘지기의 속성’은 ‘만사’뿐 아니라 ‘장생주’를 이해하는 데도 척도가 되므로 먼저 ‘지기의 속성’을 깊이 헤아려서 알고 이해하고 익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동학으로써 ‘장생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석>

    2) 수운의 가사체 글을 모은 ‘용담유사’의 ‘안심가’에 나옴. 이하도 ‘안심가’에 근거한 글

    3) 하늘의 대궐

    1) ‘안심가’에 나오는 글. 아랫글의 “ ” 속의 말도 ‘안심가’에 나오는 것.

    3) 남을 헐뜯어 일러바치기를 일삼는 사람

    4) 얼굴이나 모습이 바뀜(동학 용어임)
    1) ‘수덕문’에  ‘구송장생지주(口誦長生之呪 입으로는 장생주를 외우니)’란 글이 나온다. ‘長生之呪’는 ‘長生呪’를 강조한 말임.  ‘之’는 강조하는 의미로도 쓰임. 天道를 강조한 말이  ‘天之道’/ 이이화 ‘한문강좌’117참고.

    2) 기계나 조직의 짜임새·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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