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통일열사 고(故) 입암 이도천(立菴 李道天) 선도사는 누구인가|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통일열사 고(故) 입암 이도천(立菴 李道天) 선도사는 누구인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심국보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5,111회   작성일Date 11-08-06 22:13

    본문

    통일이란 말이 점점 어색해지고 생소해지는 요즘이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통일은 무슨....."

     

    통일을 운위하는 것은 배부른 자의 한가한 소리가 된 요즘이다. 

     

    틈만나면 '종북'이 어쩌니 하는  자들의 반통일적 목소리만 더높은 요즘이다. 

     

    요즘은 동학하는 자들도 점점 통일과는 멀어지는

    그런 요즘이다.

     

    어제 8월5일은  입암 이도천 선도사께서 분신하신 날

    막걸리 한잔하고 관련 기록을 조금 정리해 본다.

    --------------------------------------------------------------

    십륙년전 입암에 대해 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 작년(1994년)에 동학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에서는 「동학혁명백주년기념논총」 상-하권을 간행한 바 있다. 하권의 '통일운동과 천도교'라는 항목에는 통일선언서, 호소문 등 1970년대 이후의 천도교에서의 통일운동에 관련된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알짜배기는 빼고 있다. 1978년 8월 5일 휴전선 근처에서 통일을 염원하며 산화한 이도천 교구장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통일이 한갓 선언서나 호소문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목숨을 바쳐 통일을 호소한 사건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1978년 당시에야 워낙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렸기에 이도천 교구장의 분신사건은 어떤 미치광이의 장난 정도로만 보도되었다치자. 역사적인  동학혁명 백주년을 맞이하여 발행한 「기념논총」에 선언문이나 호소문 따위는 수록하면서 이도천 교구장의 분신사건은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못하는 천도교! 부끄럽게도 천도교에서는 '통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또 자주 외치기는 하지만 결코 '통일적'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 http://blog.naver.com/yamu1023/100012760350

     

     

    ====================

     

    신인간 1998년 8월호에 실린 이도천선도사관련 기사 

     

    SDC13453_n2a6wj7IAStRzy.JPG

    SDC13451_D37G5jVEZkh.JPG

    SDC13452_wp9KJvRL.JPG

     

    아래 자료2006년(포덕147년) 7월 22일(토) (사)동학민족통일회 주최로 열린 평화통일기행 자료집 중 일부.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임.   

    --------------------------------------------------------------

    ⦾ 통일열사 고(故) 입암 이도천(立菴 李道天) 선도사는 누구인가

      - 본명 : 이도삼(李道三)

      - 약력 :

    포덕 49년 2월 2일 함경남도 함주군 삼평면 송호리 출생             

    포덕 68년에 함흥농업학교를

    포덕 70년에 수원농업전문학교를 졸업

         4월 5일 창도 70주년을 맞아 천도교에 입교

    포덕 79년부터는 함흥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교회사업에 진력

         해방 후 함흥청우당 선전부장에 선임

    포덕 87년에는 함흥 종리원장에 피선

    포덕 89년에는 청우당 남북연락책임자로 활약하던 중 내무서에 체포되어 3년동안  영어생활(내무서에 체포되었을 때 심한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저녁에는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고하여 이를 숨겨 놓았다가 저녁 기도식에 청수를 모시기도 했다)

    포덕 91년 6.25사변시 10월 국군이 북진하자 미8군 정보과에 복무

         11월 흥남철수와 동시에 월남, 부산에 거주

    포덕 93년 9월에 부산시 좌천동전교실을 창설

    포덕 96년 10월에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로 이주하여 정착(마을 이장과 서면 한서 중학교에서 교편생활, 이 해 반공포로로 석방된 둘째 아들 석찬군을 찾고 감격적인 상봉)

    포덕 109년에 춘천으로 이주

    포덕 117년에 춘천교구장에 선임되어 교구발전에 헌신.

     

    포덕 119년 8월 5일 임진강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아래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머리에는 삼층관을 쓰고 단정히 도복을 입은채 통일을 염원하며 분신순도.


     

      “오천년을 하나같이 살아온 내 조국, 저 파란 하늘,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기름진 들판에 무르익은 오곡들, 산 좋고 물 맑은 화려한 이 강산이 어쩌다 두동강이 되어 정성⦁공경⦁믿음으로 얽히고 설킨 부모형제, 오가지 못하는 이 서러움.

      한 많은 38선에 내 한몸 불살라서 궁을 꽃을 피우나니 겨레여, 한 덩어리 궁을로 모이소서"      (순도비문)

     

     

    C0CCB5B5C3B5C0A7B7C9C1A6_C5EBC0CFB4BABDBA_yamu1023_ZNgxHZYC1OLaYv.jpg

    C0CCB5B5C3B5C0A7B7C9BDC4BBE7C1F82006_yamu1023_wcgi6asfPK.jpg

     

    ((위령문))


      오늘 8월 5일은 이도천 선도사께서 이곳 임진강변에서 분신 순도하신 날입니다. 이 날을 기하여 저희 후생들은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선도사님의 위대하고 숭고한 뜻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봉행하오니 고인의 성령이시여 감응하옵소서.


      아, 이도천 선도사님의 성령이시여!


      고인께서는 대신사께서 창명하신 무극대도를 온 세상에 펴서 이 땅 위에 살기 좋은 새 세상을 이룩하기 위하여 수도와 포덕에 힘쓰고 특별히 조국 강토의 분단극복에 온몸을 바치시고 순도하셨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만 한 몸과 한 집을 위하여 살다가 자기 집 안방에서 편안히 죽어 가는 것도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거늘, 선도사님께서는 동학 천도교가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며 나라와 세상을 구하는 무극대도임을 확신하고 민족통일이라는 고귀한 사업에 당신의 귀중한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 거룩한 정신은 만고를 통하여 뜻있는 사람들의 옷깃을 적시게 하거늘 하물며 직접 선도사님의 유지와 유업을 이어받은 저희 후생들이야 그 추모의 심정을 무엇으로써 표현할 수 있사오리까!


      이도천 선도사님의 성령이시여 굽어 살피옵소서.


      고인의 그 거룩한 정신과 불멸의 공덕은 교회와 함께 그리고 저희 후생들의 심령 가운데서 영원히 장생하시면서 교회와 저희들의 앞길을 소소히 밝혀주시는 줄 믿습니다.


      과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교회는 나날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스승님 말씀대로 ‘산하대운이 진귀차도’하는 시운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점점 더 혼탁해지는 이유는 온 세상 사람이 한울님의 덕을 망각하고 각자위심(各自爲心)하여 불순천리, 불고천명하는 데 큰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정신개벽과 인간성 회복의 길을 밝히는 시천주 진리를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 줄 믿습니다.


      이도천 선도사님의 성령이시여 감응하옵소서.


      한울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육신을 마련한 것은 당신의 뜻을 이 세상에 실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한울님의 참뜻을 배반하고 불의만 감행하기 때문에 수운대신사께서는 한울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새 도법을 창명하시고 또한 그 진리를 펴시다가 순도하셨고, 선열들은 대신사의 가르침을 받들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창생을 위해 일하시다가 순도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지금 모든 일을 실천할 수 있는 육신을 갖고 있습니다. 선도사님께서 천사님의 뜻을 받들어서 도를 닦고 불의와 싸우신 그 정신과 뜻을 또한 저희들은 받들어서 수도와 포덕에 더욱 힘쓰고 기어이 민족통일의 숙원을 완수하여 지상천국 건설의 대원을 달성하고야 말 것을 고인의 영전에 맹세하오니 이도천 선도사님의 성령이시여 굽어 살피시옵고 명우가 있어지이다.


                                                                                 

                      포덕 147년 7월 22일


                      평화통일기행 참석자 일동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6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