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3.1행사 모습 (미국동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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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는 3.1절 기념행사도 다르더라
(3.1만세는 우리민족의 산제사)
(당당뉴스 등촌 이계선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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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임진년 3.1절. 뉴욕에서는 곳곳마다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뉴저지 맨해튼 퀸즈를 비롯하여 각처에 포진해 있는 한인단체에서
저마다 3.1절 행사를 치뤘기 때문이다.
나는 두 곳이나 가봤다.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진보)의 금강산(식당)3.1절 기념식과
미주한인 총연합회(보수)가 주관하는 콜든센타의 3.1절 행사에
가 본 것이다.
나는 이민 23년 동안 단 한번도 3.1절 행사에 가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두 곳에나 가다니?
70이 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돼서 그런 건 아니다.
보수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진보도 아닌 내가
뻔뻔스럽게 양쪽 행사를 참석한건 순전히 우정 때문이다.
난 필마단기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석운 선배의 애국심에 감복하여 행사 때마다 황소격문(?)을 띄워줬다.
이번에도 “오인동 박사의 금강산 강연에 구경 갑시다”란 글을 써서
강호제현의 참여를 호소했다.
또 한편은 보수진영의 퀸즈칼리지에 간 것도 친구 따라 가본 강남구경이다.
장산 이상철형이 우리부부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가보니 양쪽분위기가 밤과 낮이었다.
밤과 낮이 합쳐져야 하루가 되는거 아닌가?
3월1일 밤에 모인 금강산(식당) 진보 진영의 3.1절 기념식은
식사를 겸한 강연회. 풀라톤의 “향연”(饗宴)처럼 먹는것 보다
강연메뉴가 더 걸작이다.
한미교육협회 김은주회장이 사회를 보고 석운(김경락)과
이정은교수가 발제강연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오인동박사의 통일강연요지. 오
박사는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외과의사다.
“남북은 남이 아닙니다. 다퉈야 할 상대도 아닙니다.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경협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많았습니다.
최근 3년간 남북교류 단절로 남북은 큰 손실을 보았으며
그 이득을 중국이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 외에 통일을 바라는 세력은 없습니다.
남북이 주체적인 당사자로서 대화의 테이블을 마련해야 합니다.
수치로 따져보면 통일비용이 분단비용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인류역사는 이상에서 시작됐습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감성적 통일관이 중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해외동포들도 역사인식 시대인식 민족인식을 자각한
조국통일관을 갖춰야 합니다”
오박사의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저 양반이 외과의사를 그만두고
한국의 통일부장관을 하면 남북이 통일되겠구나’
3월2일 밤에 가본, 콜든센타의 보수진영 3.1절 기념식은 초대형 무용축제.
1부 기념식은 미국내빈들의 축사가 많아서 순서가 길었다. ,
이를 눈치 챈 미국 인사들은 보브호프처럼 몇 마디로 웃기는 코미디 영어로
시간을 세이브 해줬다. ,
그런데 막상 시간을 지루하게 끌고 간 건 한인단체장들이었다.
무슨 연합회장은 장광설 어색 영어웅변으로 장내를 압도하려했다.
선친의 공로패를 대신 받은 인사는 수상소감을 연설로 끌고 가더니
한국의 젊은이들을 좌익으로 규탄하고 나섰다.
불쾌했다.
젊은 세대를 모르고 하는 고루한 고집으로 보인다.
자유 분망한 대한의 젊은이들은 자유를 사랑하는 지성인들이다.
그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터지면 군에 입대하여
용감하게 전쟁터로 달려갈 라이온 일병들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봉기로 스페인에 내란이 나자
미국에서 지원병으로 달려간 청년헤밍웨이처럼.
그러나 입에 애국을 달고 다니는 보수파들은
막상 전쟁이 발발하면 제일먼저 해외로 도망갈 궁리를 할지 모른다.
6.25때도 그랬으니까.
풍요와 자유사회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자유 분망해야 보기 좋다.
가난과 압제하에서 사는 북한청년들처럼 호국충성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건 유신독재의 망령일 뿐이다. ................
고향의 어린 시절인 초등학교 때 3.1절 기념식을 할 때마다
난 의문을 품었었다.
태극기만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이 무모해 보였다.
무장봉기를 해야지, 비폭력무저항으로 외친 대한독립만세에
일본이 놀라서 얼른 항복하고 조국이 해방될까?
만세만 부른다고 일제가 항복할까?
잔인무도한 일제의 총칼 앞에 무참히 실패한 독립운동으로 보였다.
7500명이 학살당하고 수만명이 투옥당하고 3천리강산은 피로 물들었다.
3.1운동은 독립운동사의 최대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3.1절 기념공연을 보고나서
3.1만세는 성공한 독립운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1만세는 하늘에 대고 부르짖은 민족의 절규요 산제사였다.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그날의 피맺힌 절규가 있어 우리는 해방됐고
조국은 세계속의 한국으로 우뚝 솟아있기 때문이다.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중에서 나는 3.1절 노래를 다시 불렀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여보 금년 3.1절 행사에 두 번이나 참석했으면 됐지 그
것도 모자라 한번 더하려고 그러우?“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노래를 계속했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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