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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에게나 농락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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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198회   작성일Date 12-08-3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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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에게나 농락(籠絡)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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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진실과 상식의 허상(虛像)과 미래지향적(未來指向的)인 역사관(歷史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중에서 그 의미가 부정확(不正確)하고 편중(偏重)되거나 편향적(偏向的)인 언어나 지식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하여 신중하지 못한 사고행태(思考行態)와 해석과 언어사용으로 인하여 수많은 갈등을 초래하여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회의 불안을 초래하는 잘못된 언어 사용과 불확실한 지식의 남용(濫用)을 우리 사회는 가볍게 여기고 있다. 그 결과, 사회는 더 많은 갈등과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몇 가지 사례(事例)와 용례(用例)를 들어 그 진실은 무엇이고 그 허상은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상식에 맞는 것이며 올바른 사용을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올바른 지식을 갖고 미래지향적(未來指向的)인 역사관(歷史觀)을 바탕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미래의 세상을 창출(創出)하는 것이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여 사회 안정을 이룩할 수 있는 첩경(捷徑)이라 할 수 있다. 그 의미가 부정확(不正確)하고 편중(偏重)되거나 편향적(偏向的)인 언어나 지식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을 왜곡(歪曲)되게 해석하는 주체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안정된 사회(地上天國)를 절대로 창출(創出)할 수 없으며, 만약 그들이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이 되어 정권을 장악하도록 하는 국민의 집단지성(集團知性)이라면, 그 국가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될 것이며, 국민의 삶은 참담(慘憺)한 고난(苦難)의 긴 여정(旅程)이 될 것이 자명(自明)한 일이다.

     

    1).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와 악법도 법이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이 아니고, 델포이 신전에 앙상한 몰골로 죽어가는 노인의 그림과 함께 새겨져 있던 말(神託)이라고 한다. 탈레스가 한 말이라고도 한다. 이 말을 라틴어로는 nosce te ipsum.(그리스어로 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이라고 한다. 다른 설명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으로, 그리스의 여행담 작가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프로나오스(앞마당)에 새겨져 있던 것이라고도 한다. 이 경구(警句/格言이라고도 함)는 흔히, 다음 6명의 그리스 현자 중 하나의 저작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 여섯 명은, 스파르타의 킬론,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아테네의 솔론, 밀레투스의 탈레스이다. 다른 자료에서는, 이 격언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류시인 페모노에의 저작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절제와 자각에 대한 논의인 그의 저작인 “천국으로부터(de caelo)”에서 그리스에 전해지는 다른 경구들과 함께 이 격언을 언급하고 있다. / 위키 백과사전과 기타 자료들을 종합 요약정리함.

     

    위의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고 늘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제자가 물었다. "그러시는 선생님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로 '내가 나 자신을 모른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다.(I don't know, but I know, I don't know)"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아마도 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의 신에 매달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하여, 참다운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한 그리스의 시민 특히 청년들에게 신에 예속(禮俗)되어 종속적(從屬的)인 인간으로 살지 말고 주체적(主體的)인 인간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라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마다 각자의 정체성(正體性)의 확립(確立)을 촉구(促求)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 라는 자아인 본연아(本然我)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고 할 수 있다. 말할 때마다 ‘나’ ‘나’ ‘나’ 라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지금 말하고 있는 '나' 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본연아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행동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너 자신을 알아서 분수를 지켜라.’ 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여 유교사상인 안분지족(安分知足)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말은 일상생활에서 의미가 확장되면서 상대를 비하 또는 멸시의 감정을 실어 ‘네 주제를 알아라.’ ‘네 꼬라지를 알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원전 399년 4월 27일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미혹(迷惑)했다는 이유로 독배(毒杯)를 받고 70 세로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남긴 글이 없다. 그의 면모(面貌)는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辨明)』과 『파이돈』 등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註 00; 플라톤([Platon]-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BC 429~?BC 347). 형이상학의 수립자로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다. 젊었을 때에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의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385년경 아테네의 서북부에 학원 아카데메이아(Academeia)를 개설하여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소크라테스를 주요 등장인물로 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국가》 등 《대화편(對話篇)》 다수를 지었고 특히 중기에는 초월적인 이데아(idea)를 참 실재로 하는 사고방식을 전개하였다. 또한 자신의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두 번이나 시칠리아 섬을 방문하여 시라쿠사의 참주(僣主) 디오니시오스 이세(二世)를 교육하여, 이상적인 철인 정치를 실현시키고자 했으나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다.

    다른 기록에는 저서는 총 124권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427년경 그리스에서 태어난 철학자로 되어 있어 탄생 연도가 정확하지 않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소크라테스가 정치적인 오해로 처형을 당하자 큰 충격을 받고, 당시의 정치 체제에 회의를 품었다. 그는 맹목적인 삶이 아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배웠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랐으며 교육에 대한 열의도 매우 높아서 철학 중심의 종합대학인 아카데미아를 창설하고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를 배출하였다. 플라톤의 저서는 거의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국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파이돈', '크리톤', '프로타고라스' 등에서 주인공으로 모두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고 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다.

    1.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아테네의 공익을 해친다는 연유로 기소된 재판과정에서의 변론에 관한 내용이며,

    2.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감옥에서 그의 절친한 친구인 크리톤으로부터 탈옥을 권유받으면서 주고받는 문답이며,

    3. “파이돈”은 소크라테스 사후에 그의 제자였던 파이돈이 이웃나라에 방문하였다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관하여 지인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4. “향연”은 소크라테스 생전에 있었던 파티에서 그가 설파하고 은유했던 내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브리태니커를 중심으로 재정리함.

     

    註 00; 소크라테스의 변명 [Apologia Sokratous, ― 辨明] 플라톤의 철학서로, BC 399년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신들을 부정하는 등 당시 그리스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되었을 때 법정에서 한 변론 내용을 담고 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재판 받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멜레토스의 소장에 대한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을, 후대 플라톤이 쓴 글이다. 소크라테스의 소장을 요약하면,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하는 자이며 괴상한 사람이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위와 같은 일들을 다름 사람에게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 데, 1부는 서론에 해당되는 것으로 최초의 변론 부분이며, 2부는 문제제기로 유죄선고 후의 변론이 실려 있고, 3부는 사형선고 후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시작된다. /브리태니커를 중심으로 재정리함.

    註 00; 파이돈(phaidon)-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인 플라톤의 저서로 <대화편>의 4대 대화중 하나다. 여기에는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모습이 담겨져 있으며,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심오한 사상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합리적인 도덕적 인격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발전이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열쇠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된 선을 이성으로 통찰해야만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는 그것 이외의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훌륭함은 지식이다". 따라서 절대 선에 대한 확실한 통찰을 성취한 철학자만이 진정한 정치가이다. 이러한 도덕적 확신의 형이상학적 기초와 정당성을 제공하는 원리들은 〈파이돈〉에서 분명히 개진되고 있다.

     

    〈파이돈〉에서는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이, 우주의 구조에 관한 합리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형상이론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파이돈〉은 죽은 뒤에도 영혼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4개의 논증을 펼치고 있다. 첫째, 영혼은 끊임없는 삶들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과정은 순환적이며, 이 순환성은 삶과 죽음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죽어가는 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삶은 결국 우주로부터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배움은 상기(想起)다.' 라는 이론은, 영혼의 삶이 육체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영혼이 영원불변의 형상들을 관상한다면 영혼은 그것들과 같은 종류의 것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영혼은 불멸한다. 넷째, 소크라테스는 형상을 존재와 변화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어떤 것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것이 뜨거움(형상)에 관여할 때이다. 즉 그것에 뜨거움을 가져오는 불에 관여할 때이다. 불이 뜨거움을 가져온다면, 불은 뜨거움의 대립자인 차가움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삶에 관여할 때, 즉 인간에게 삶을 가져다주는 영혼을 가질 때 살아 있게 된다. 영혼이 삶을 가져오므로, 영혼은 삶의 대립자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영혼은 불멸한다. /브리태니커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들을 요약 재정리함.

     

     

    일본 동경대 철학과 출신으로 아사히신문 기자를 지낸 모리모토 데츠로의 글인 ‘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 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윤회를 말하는 인도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며 소크라테스는 이를 “너 자신의 혼(魂)을 느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로고스(이성)를 바탕으로 한, 영혼의 탐구에 바친 인물로 묘사하였다.

     

    이와는 다른 설명에 의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그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알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를 보라는 뜻이다. 그 말은 곧 “그대는 미천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가진 존재다.” 라는 뜻이다. 그대는 단순한 돌멩이도, 나무도, 개도, 아니다. 그대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즉, 이성적 인식을 할 수 있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심미적 기쁨에 젖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은 사유를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참으로 위대한 존재이며, 인생이란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인데, 왜 그대의 인생을 그렇게 허망(虛妄)하게 보내고 있는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자신의 못남을 알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처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알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라고 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악법도 법이다.(라틴어로 Dura lex, sed lex, 직역: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 란 말도 소크라테스는 한 적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수십 년간 교과서에서 이 말을 그가 한 말이라고 배우고 있다. 플라톤이 쓴 “크리톤”이라는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내용을 기술 한 책에 실린 내용에,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거부하는 자신에게, 친구 크리톤이 “그렇다면 자네는 악법을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묻자 “어떻게 악법까지 인정할 수 있겠는가” 라고 답하고 있으므로 악법을 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법철학 교수였던 오다까 도모오(尾高朝雄)가 1937년에 출간한 법철학에서 실정법 사상과 소크라테스를 연결하여 설명하면서 '악법도 법'이라고 번역해서 우리나라와 일본에 소개한 것으로, 특히 오다까는 '악법도 법'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하고 독배를 마신 것과 결부시켜 그의 수많은 조선인 제자들에게 가르쳤는데 그의 제자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왜곡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다까 도모오는 일본에서 식민지옹호론자이며 군국주의옹호론자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을 지나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독재 권력에 의해 부정한 권위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 왜곡,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관들이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해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지혜를 사랑하고 덕을 추구하며 이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깨우치는 철학적 임무는 신이 내린 명령이기 때문에 철학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겠다.' 라고 말해 오히려 법원의 결정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선택한 것은 실정법주의적인 명제와 부합하기 보다는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주장했던 그의 사상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한 결과로 악법을 거부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악법이 아니라 법 이전의 것, 법보다 상위의 것, 진리 또는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 독배를 마셨다는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인, ‘두라 렉스, 세드 렉스(dura lex, sed lex, 법이 지독해도, 그래도 법이다)'를 번역한 말이라고 한다. 2세기경, 실정법주의자로 알려진, 로마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Dominus Ulpianus)는 자기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을 쓴 적이 있다. 고 한다.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호크 쿠오드 퀴뎀 페르쿠암 두룸 에스트, 세드 이타 렉스 스크립타 에스트/ (Hoc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에서 온 말로 알려졌다.

     

    2).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Join, or Die /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이 말은, 해방공간에서 혼란한 정치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한 말로 알고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이 만든 '뭉치지(연합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 라는 문구는 당시 영국의 식민주(植民州) 주민들의 대영제국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의 통합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다. '연합하지 않으면 죽는다.' 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만든 유명한 정치 카툰(시사만평에 준하는 만화) 중 하나로, 1754년 5월 9일 프랭클린이 직접 운영했던 펜실베니아 가제트에 처음 실렸다. 이 만평의 그림은 뱀을 열세 개(13개 주를 상징)로 토막을 낸 그림에 13개주가 연합하여 모두 대영제국에 대항하여 싸워 독립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는 의미로 ‘Join, or Die’ 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이 카툰은 미국 독립전쟁 중 식민지 주민들의 자유를 향한 상징이 되었다. /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 2006년 5월 1일자를 확인요.

     

    주(註) 00; 가제트(gazette) -원래 시사(時事)를 요약해서 실은 1장짜리 팜풀렛 형의 신문으로 오늘날 신문의 전신 형태. 처음으로 비공식적 뉴스와 가십 기사를 발행한 이탈리아 신문 ‘가제타(gazzetta)’에서 온 말이다. 곧이어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신문을 발행했다. 영국에서는 이미 16세기 중반 이전에 사보에 뿌리를 둔 가제트 형식의 신문을 발행했는데, 주로 외교정책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 여왕이 되면서 여러 가지 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 신문들은 보다 넓은 독자층을 겨냥하여 끔찍한 범죄, 기적 같은 사건, 마술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매일의 사건에서부터 최근의 탐험소식, 상업광고, 정부 바깥 소식통에서 나온 비공식 뉴스나 가십, 하찮은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실었다. 이런 글들은 종종 이름을 밝히지 않은 목격자의 말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기로 악명(惡名)이 높았다. 17세기에 이르러 영국 최초의 진정한 신문으로 일컬어지는 “옥스퍼드 가제트 Oxford Gazette”(1665 창간) 등 정부의 간행물에도 차차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 신문은 나중에 “런던 가제트 London Gazette”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지금도 명사들에 대한 기록, 공식일정, 파산자 명단, 공지사항 등을 싣는 왕실신문으로 발행되고 있다./ 브리태니커에서 정리.

     

    이 말은 현실에서는, 본래의 의미와 이승만 대통령이 차용(借用)하여 사용한 시대적 상황의 의미를 벗어나, 의미가 전이(轉移)되거나 약화(弱化) 또는 강화(强化)되고 사용에 확장(擴張)되어 애니메이션에서, 게임에서, 동물과 곤충의 본능적인 생태를 설명하는 데서, 조폭(組暴)들의 단합(團合)을 강조하는 경구(警句)로 사용되는 데 까지 이르고 있다.

     

    3).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

     

    이 말은 존 F. 케네디가 재임시절에 미국 국민들에게 한말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책인 46쪽 분량의 소책자로 된『상식(Common Sense; 1776)』의 내용을 요약해서 차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미국의 국민으로서 국가의 보호나 권리만을 요구하지 말고 국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토머스 페인의 일생과 미국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면,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라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토머스 페인의 책, 원제가 ‘명백한 진실(Plain Truth)’이었던『상식』을 번역한 사회학자 남경태는 이 책이 의미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나는 오로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만을 말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혁명은 상식과 무관하다. 상식은 일상적인 의미를 가지는 데 비해 혁명은 대규모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비일상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자”는 말이 가장 강력한 혁명의 구호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있다. 토머스 페인이 이 책을 쓸 무렵 아메리카의 상황이 바로 그랬다. 인지세법과 보스턴 차 사건으로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가 최악의 관계에 달한 1775년, 페인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항의할 게 아니라, 그 참에 아메리카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미 그해 4월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대규모 전투가 발발한 것을 기점으로 아메리카 독립전쟁은 시작된 상태였다. 독립의 논거를 소책자로 정리해 1776년 1월 10일에 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상식』이다. 아메리카의 독립, 공화정의 수립을 주장한다면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혁명적 사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페인은 이 독립혁명을 ‘상식’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원칙은 이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 나라를 불과 칼로 황폐하게 만들고, 인류의 자연권에 선전포고 하고, 권리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을 지상에서 근절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당파적 입장과 무관하게 감정의 본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을 사랑하고 독재에 반대하는 그대들이여,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정부 앞에서, 떨쳐 일어서라!

     

    왕은 한때 모든 권력을 가졌다가 차차 그것을 귀족이나 평민들에게 양보했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 영국 왕은 상원과 하원에 권력의 일부를 나누어 주어 당시에는 나름으로 이상적인 군주제로 평가되었다. 그래서 독립전쟁 직전만 해도 대부분의 아메리카 사람들은 왕을 부정하지도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이 책을 발표하기 전에는 독립해야 한다거나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아니었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라는 조지 워싱턴은 1770년대 초까지 독립에 반대했고, 벤저민 프랭클린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때 페인이 발표한 『상식』은 그런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 常識; 토머스 페인, 李佳炯 譯. 世界思想敎養全集 後 5. PP. 127-178. 乙酉文化社. 1967.

     

    ‘모든 형태의 '사회는 그 어떠한 상태에 있어서나 축복이지만, 政府는 그 최선의 상태에 있어서도 하나의 必要惡에 불과하고 그 최선의 상태에 있어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惡이다.(Society in every state is a blessing, but government, even in its best state, is but a necessary evil) 왜냐하면「政府 없는」나라에서나 겪고 당할 만한 불행을 「어떠한 政府 아래서」겪고 당할 경우에는, 우리가 고통을 받을 수단을 우리 스스로 마련해 놓았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들의 悲劇狀은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위의 책 P.131.라고 하면서 정부는 국민에게 고통과 불행을 준다면, 그런 ‘政府는 의복과도 같아서 純潔喪失의 標識이며, 國王의 宮殿은 樂園의 폐허위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정부아래서 법을 따라야 하는 경우, 양심적이고 均一的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 재산의 나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일부를 포기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이 이와 같은 일을 하려고 마음이 내키는 것은 그 밖의 어느 일에 있어서나 두 가지 惡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때에 그 중 덜 惡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꼭 같은 思慮分別心에 의한 것이다.’/P.131. 고 했다. 그러므로 국민의 안전이야말로 정부의 참다운 의도이며 목적이라면, 누구도 異論이 없는 정부란, ‘최소의 비용과 최대의 편의로 우리의 안전을 가장 잘 보장해줄 수 있을 만한 政府形態야 말로 다른 어떠한 政府形態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P.131. 라고 강조하고 있다.

     

    註 00; 민주주의(民主主義)- 국민이 권력을 가짐(主權在民)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 또는 그러한 정치제도를 통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으로,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집약된 의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복수(複數) 정당제(政黨制)를 바탕으로 정당정치를 하는 것이 핵심으로 대의정치(代議政治)가 기본이다. 그러므로 의회 민주주의(議會民主主義)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로 하여금 의회라는 기구를 통해, 국정 운영의 힘을 실어 주는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영어에서는 democracy, democratism, democratic principles 이라 하고,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로 나누며, 의회민주주의는 여러 형식의 민주주의가 있어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의회[사회/인민/대중/민족적/교도〕민주주의(parliamentary[social/peoples/mass/national/guided] democracy)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의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와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인민에 의한 지배’의 의미가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 민주주의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다수지배의 원칙에 따라 전체 시민에 의하여 행사되는 통치형태, 흔히 ‘직접 민주주의’라고 알려져 있다.

    둘째.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일반 시민들이 선출하고 일반 시민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대표자들에 의해서 행사되는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

    셋째.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반 요소와 더불어 시민들이 언론, ․출판,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헌법상의 제한이 마련되고 있는 자유주의적이고 입헌주의적인 민주주의.

    넷째. 사유재산의 불공정한 분배에서 파생하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정치적․사회적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담은 사용되고 있다. 넷째 유형의 경우는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라고 알려져 있지만, 위의 3가지 유형이 갖고 있는 의미의 민주주의 원칙은 배제되어 있다고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인민에 의한 지배’를 위한 민주적인 제도를 의미하는 용어인데 한국에서 민주주의라 잘못 이해하고 있어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항상 심하게 증폭(增幅)되고 있다. 또 하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 정권을 왜 잘못된 정권이라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공식 명칭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한다.( The official name of North Korea is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略字로는 DPRK)." 북한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정체를 가진 정권이라면, 민주주의의 꽃인 복수 정당제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노동당 일당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정체성이 없는 국가라는 것이다. /국어와 영어사전과 기타 관련 자료에서 발췌 요약 정리함.

     

    토머스 페인은, 계속해서 ‘정부는 도덕의 힘으로는 세계를 통치할 수 없어서 필요하게 된 하나의 통치형태이다. 또 바로 여기에 정부의 의도와 목적, 즉 자유와 안전이 있는 것이다.’/ P.133. 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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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인은 평민의 입장에서 평민의 권리를 밝히려『상식』에서 군주제를 비판하고 공화제만이 미국이 갈 길이라고 주장하며,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혁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페인은 그 시대의 상황으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화해보다는 독립에 더 높은 가치로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영국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의견에 대한 논박, 독립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논증, 세습 군주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 대의제에 따른 정치적 대표기관의 구성방법 등에 대해 사회계약론에 입각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즉 영국이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고,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수립이 상식이라고 최초로 주장하여 그것을 달성하게 한 책이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상식’은 식민지를 의식화한 불온서적 중의 불온서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으로 평가받았다.

     

    남경태는 책의 말미에 18세기 후반 아메리카의 토머스 페인과 20세기 중반 한반도의 김구가 나눈 대화를 가상으로 만든 내용 중에 “지금은 특별한 시기다. 즉 한 나라에 한 번밖에 없는 정부 형성의 시기다. 대다수 나라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스스로 법을 제정하기보다 정복자로부터 법을 강제로 받는다.”는 토머스 페인의 이 말이 해방 이후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데 실패한 역사적 아픔과 더불어 온 나라가 갈등으로 들끓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역사의 반복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흰 눈을 보면 눈이 부시고 소리를 들으면 귀가 현혹된다고 해도, 아무리 편견이 우리의 의지를 왜곡시키고 잇속이 우리의 분별력을 어둡게 한다 해도, 본성과 이성의 목소리는 무엇이 옳은지 말해준다. 고 했다.

     

    중앙일보의 김환영이 기고한 글(제187호/2010년 10월 10일)에서 ‘페인은 훗날 기독교를 배척했지만, 그가 퀘이커교도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엄격한 개인주의, 인류애, 평화주의는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경구에 토머스 페인(1737~1809)만큼 어울리는 역사적 인물은 흔치 않다. 페인은 문(文)이 무(武)보다 강할 뿐만 아니라 “칼의 힘은 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이다. 페인이 『상식(Common Sense)』을 저술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지금도 영국의 일부이거나 훨씬 나중에 독립했을지도 모른다. 미국 초대 부통령이자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1735~1826년)는 “페인의 펜이 없었더라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쓸모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는 다른 평가에서는 ‘페인은 미국 혁명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과 영국의 급진주의적 민주화 운동에서도 맹활약해 ‘세계 혁명의 전도사(missionary of world revolution)’라고 불리게 된 국제적인 혁명가이며, 선동가이다.’ 라고 하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자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 페미니스트, 민주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를 사상적인 조상으로 삼고 있다. /김영환

     

    위키 백과사전과 기타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토머스 페인의 핵심적인 사상과 18세기 말의 미국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살펴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인 폐인은 미 국민들뿐만 아니라 그가 거쳐 간 국민들과 그 시대의 인물들로부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1776년 7월 4일의 독립선언문에 『상식』에서 페인이 주장한 내용을 대부분이 수용되었다. 『상식』은 미국 독립을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주요 문헌이 됐다. 어려운 철학을 들먹이거나 라틴어 문구를 인용하지 않는 페인의 쉬운 문체가 한몫을 했다.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진’ 미국을 뒤로 하고 1787년 4월 페인은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에서 페인은 프랑스 혁명과 영국 민주화 운동에 휘말리게 된다. 영국 정치가·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년)가 세계 보수주의의 바이블이 된 『프랑스 혁명론(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프랑스 혁명을 비난하자, 페인은 『인간의 권리(Rights of Men)』(1791년)로 반박했다. 『인간의 권리』는 영국 급진주의 운동의 핵심 문헌으로 떠오른다. 출간 2년 내에 『인간의 권리』는 『프랑스 혁명론』보다 3배 더 팔렸고, 출간 10년 내에는 30배 더 팔렸다고 전한다.

     

    프랑스 명예시민이 된 페인은 1792년 프랑스 국민의회의 헌법 제정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반란 선동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령이 떨어졌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국왕 루이 16세의 사형에 반대해 1793년 12월 28일 투옥 당했고, 1794년 11월 4일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프랑스 주재 미국 공사 제임스 먼로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옥중에서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의 제1부가 출판됐고 석방 후 제2부가 나왔다. 페인은 초월적인 신(神)의 존재를 믿는 이신론자(理神論者)로서 단지 기독교에 반대할 뿐이었으나 『이성의 시대』로 그는 무신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는 성경이 신의 말을 기록했다는 것을 부정했으며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부도덕하다고 주장했다. 페인은 그의 마지막 주요 저작인 『토지 분배의 정의(Agrarian Justice)』(1797년)에서 재산 소유의 불평등을 공격하고 최저 소득의 보장을 주장해 더욱 많은 적을 만들었다. 페인은 사회주의의 문턱에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페인은 1802년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향했다. 그를 기다린 것은 독립전쟁 영웅에 대한 환대가 아니라 ‘무신론자’에게 가해지는 냉대와 비웃음과 증오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마침 ‘제2차 대각성 운동(Second Great Awakening)’으로 불리는 기독교 부흥 운동이 한창이었다. 미국은 ‘마음이 곧 교회, 세계가 곧 조국’이라고 말하는 페인의 이신론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음주로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가난에 시달렸지만 페인은 계속해서 특권과 기독교라는 종교적 제도와 종교적 미신을 공격했다.

     

    『뉴욕 시티즌(New York Citizen)』에 실린 부고 기사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약간의 선행과 많은 해악을 끼치면서 오래 살았다.(He had lived long, did some good and much harm).” 이 혹평에 가까운 평가는 그의 사후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 진 건국의 아버지였다. 페인이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페인의 전기를 쓴 W E 우드워드는 “페인은 인간의 자유와 인류의 권리에 대한 그의 주장을 세계가 수용할 준비를 갖추기 한 세기 전에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페인은 누진 소득세를 징수해 대중교육과 빈민구제, 노인연금, 실업구제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고 『아메리카의 아프리카 노예제(African Slavery in America)』(1775년)에서는 노예무역을 비판하고 흑인에게 완전한 인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거의 평생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의 저술은 수십만 부씩 팔렸지만 인세를 받지 않았다. 그는 교각 없는 철교와 연기 안 나는 초 등을 발명한 발명가이기도 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신념 때문에 우정도 종종 틀어졌다. 조지 워싱턴은 페인의 저작물들을 병사들에게 읽혀 사기를 돋우기도 했으나 둘은 노예제 문제로 결별했다. 워싱턴 가문은 노예 소유주였던 것이다. 한편 나폴레옹은 베개 밑에 『인간의 권리』를 깔고 잠을 자고 “우주의 모든 도시에 금으로 만든 페인의 동상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열렬한 페인의 지지자였고 페인도 한때 나폴레옹에게 상당한 기대를 했으나 나폴레옹이 독재자의 길을 걷자 그를 ‘가장 완벽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토머스 페인은 “자유가 없는 곳에 내 나라가 있다(Where liberty is not, there is my country)” 라며 세계의 시민(the citizen of the world)’을 자처했다. 영국도 미국도 그의 조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라는 나라는 민족주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미국은 세계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었지만, 동시에 세계 여러 나라 중 한 나라에 불과하기도 했다. 그가 ‘미국 혁명의 아버지’, ‘영국의 볼테르’로 복권되고 칭송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 라는 이 말은 상식이 말하고자 하는 정신으로서 상식이 출판 된 그 시대에 페인이 압축된 말로 미국시민을 향해 부르짖었다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과 자신들의 권리를 이해함으로서 자신들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미국 시민들의 자각으로 ‘미국이 영국에서 분리 독립을 한다는 것은 국익이 된다.’ / P. 172. 는 것과 ‘선량한 시민, 솔직하고 변치 않는 親友, 人類의 권리와 아메리카라는 자유로운 獨立國家의 절개 굳은 지지자.’/ P. 177.가 되자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토머스 페인은『인권; Rights of Men/1791-92년에 1부와 2부가 프랑스에서 출간. 국내에선 “人權論” 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됨』에서 인간의 권리란, 프랑스 국민회의가 발표한 ‘人間과 市民의 權利에 관한 宣言文’의 제 1조에 명시된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인권론 P.243.' 바탕으로 하여 국가가 보장하여야 하며 정당한 권리인 생존권과 참정권이 보장되고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人權論; 토머스 페인, 李佳炯 譯. 世界思想敎養全集 後 5. PP. 179-383.乙酉文化社. 1967.

     

    註 00; 토머스 페인(Thomas Paine/1737년 1월 29일 ~ 1809년 6월 8일)- 영국 잉글랜드 노퍽에서 출생한 18세기 미국의 저술가이자 국제적 혁명이론가로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 때 활약하였다. 그의 저서 《상식》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737년 영국 잉글랜드 노퍽의 퀘이커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까지는 학교에 다녔으나 가난 때문에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정치와 사회제도의 모순을 체득하였다. 1776년 1월 10일에, 필라델피아에서 《상식; Common Sense》을 출판하여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당대 미국의 지상 과제임을 주장하여 미국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어준 영향을 끼쳤다. 상식』은 출간 3개월 만에 12만 부,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첫 해에 50만 부가 팔렸다. 고 하고 있다. 당시 미국 인구는 300만 명에 불과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식』을 읽었다. 문맹자들을 위해서는 낭독회가 개최됐다. 독립전쟁이 본격화되자 페인은 종군 활동에 나섰고 『위기(The Crisis)』(1776∼1783년)라는 논설 시리즈를 간행해 “싸움이 격렬할수록 승리는 빛난다.”라며 미국인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다.

    1791년 프랑스에서 《인권; Rights of Men》 1부를 쓰고 이듬해 런던에서 2부를 썼다. 이 저작으로 반란 선동이란 죄명을 쓰게 되어 프랑스로 피신한 뒤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신론적(理神論的) 입장에서 쓴《이성의 시대; The Age of Reason》 1부(1794)와 2부(1796)의 저술로 무신론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1797년 그의 마지막 저서인 《토지 분배의 정의; Agrarian Justice》를 출간한 뒤, 18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 독립의 영웅이 아닌 혐오스런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1809년 빈곤과 고독 속에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쳤다.

     

    註 00; 프랑스 인권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은 프랑스 혁명으로 만들어진 인권선언이다. 자연법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평등 등 인간의 천부적 권리는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임을 선언하였다. 제헌국민의회에 의하여 1789년 8월 26일에 17개 항의 인권선언서가 채택되었다.

    제3조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대한 조항이다. 제16조에서는 권력 분립의 원칙에 관련해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 조항이 있다. 즉,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1] 오늘날의 각국의 성문 헌법은 권리의 보장을 선언한 권리장전과 국가권력의 체계를 규정한 국가법 부분으로 크게 두 가지 규정이 담겨 있다.

    전문에서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망각 그리고 멸시가 오로지 공공의 불행과 정부 부패의 모든 원인이라는 것에 유의하면서, 하나의 엄숙한 선언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불가양이며, 신성한 제 권리를 밝히려 결의하거니와, 그 의도하는 바는, 사회체의 모든 구성원이 항시 이 선언에 준하여 부단히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입법권과 행정권의 제 행위가 수시로 모든 정치제도의 목적과의 비교에서 보다 존중되게 하기 위하여, 시민의 요구가 차후 단순하고 명확한 제 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언제나 헌법의 유지와 모두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의회는 지고의 존재 앞에 그 비호 아래 다음과 같은 인간과 시민의 제 권리를 승인하고 선언한다.

                                                                      / 아무에게나 농락(籠絡)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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