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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당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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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862회   작성일Date 12-06-22 16:59

    본문


    동학당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다.

    1894년 갑오동학혁명군은 전주성을 점령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논술해 보기로 한다.

    이범석(李範奭)의 기록문서 경란록(經亂錄)에 의하면, 계사년 동학교주 최제우의 신원운동(보은취회)과 갑오년 동학군의 고부기포에 대해 기술하면서, ‘조정에서 탐관오리를 죄주지 않고 헛되이 난민을 다스렸으므로, 백성이 모두 동학에 들어갔다.’고 적시했다.

    또한 동학당이 전주성을 점령했을 때,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스스로 왕호를 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경란록 기록문서 자료를 살펴보면,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을 뿐 아니라, 청일전쟁에 대해서도 세밀한 기록이 돋보이는 중요문서이다.

    경란록은 약간의 오류도 발견되지만, 내용전반에 걸쳐 자신이 경험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기록서로서 참고할 가치가 크다고 본다.
    경란록 전체의 기술연도는, 1860~1919년으로서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 역사에 대한 평가를 겸한 역사기록평론서로 봐야 타당하다고 본다.

    필자는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전녹두(전봉준)를 중심으로 동학당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국호(國號)와 왕호(王號)를 칭했다.’는 것이다.
    본 자료에서, 새로운 나라의 이름과 왕의 칭호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연구에 대한 한계성은 있지만, 호남지역에서 전해오고 있는 구전(口傳)에 의하면 분명 동학군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개혁하고 외세를 배격하는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동학의 이념에 의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학 대접주 김개남이 ‘신국(新國)의 왕(王)이 되려고 한다.’는 갑오년 당시 백성들의 소문에서도 알 수가 있고, 1871년 이필제의 영해기포에서도 이필제는 진인 즉 정도령을 자처한 새로운 나라의 왕(王)이 될 것이라는 당시 소문에서도 알 수 있다.
    동학 창도주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참형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도, 당시 조선왕조나 양반사대부의 계급사회붕괴위기는 위기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 천도교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상식에서, 시천주(侍天主)-인내천(人乃天)에 대한 대다수 인식은, ‘사람이 한울님을 모셨으므로, 사람의 존엄성이 한울님과 같다.’에서 더 나아가 당시에는, 일반 백성의 신분이 왕과 같다는 파천황(破天荒)적인 개벽의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동학 2대교주 해월 최시형 신사의 뒤를 이어, 3대교주가 된 의암 손병희 성사의 전국순회강연에서도 그러한 사실이 발견된다.

    의암성사는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한 후 1908년 전국순회강연에서, 천도교를 국교(國敎)로 선포하고 새로운 종교국가 구상을 실천하는 놀라운 언행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바탕에서, 갑오년 동학혁명군에 의한 새로운 나라구상은 사실이었다는 것을 짐작한다.
    1897년(고종 34년)에 조선이라는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왕의 호칭이 황제(皇帝)로 변한다.

    물론 1910년 경술국치에 의해 멸망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아니더라도 분명 나라의 이름과 왕의 호칭은 바뀌게 된다.
    만약 갑오동학혁명이 성공하였다면. 동학사상에 의한 새로운 나라가 탄생되었을 것이고, 민의에 의한 정치가 실현되었을 것이라 본다.
    이는 전주성점령 후 호남일대에서, 집강소 설치에 의한 폐정개혁안 실현을 위한 동학자치실천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 날 분단된 나라의 현실에서 과연 어떻게 통일국가의 완성을 실현할 것인가에, 동학 천도교인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깊게 연구하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저 나라일은 정부에 맡긴다, 의 안일한 자세는 동학인의 자세가 아니다.
    동학의 정신은, 옛적에는 ‘백성이 왕과 같다.’이고 현재는 ‘국민이 대통령과 같다.’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러한 사실이 바로, 3.1독립만세운동에서 4.19민주혁명으로 이어졌으며, 다시 남북통일운동으로 계승 완성되어야 한다는 역사의 사명감이라 하겠다.
    역사의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늘과 같다는 동학사상이야 말로, 조국의 통일은 물론 세계평화와 앞으로 가장 문제가 될 환경문제까지도 근원적 해결을 할 수 있는 대안 중에 대안이라는 것으로 본 글을 마친다.

    포덕 153년 6월 22일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송암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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