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동학, 천도교 수련에 대한 유래연구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동학, 천도교 수련에 대한 유래연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369회   작성일Date 12-08-22 21:01

    본문

    (화암 고시형님과 동학기념관 수련방에서)


    동학, 천도교 수련에 대한 유래연구


    글 시작

    한울님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올해에도 여름철을 맞이하여 수도원, 교구, 각 가정에서 하계수련의 제목으로 많은 교인들이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필자 또한 곧 여름을 마무리 하고 가을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수도원 수련을 계획하고 있어 동학, 천도교수련에 대한 유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알려드리지만 본 글에서는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특별수련에 대해 주로 연구의 글이라는 것으로 같이 공부해보자는 제안으로 발표해봅니다.

    1. 수운 대신사 수련에 대한 기원

    동학, 천도교 수련에 대한 연구의 시작은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이하 대신사)의 수련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동학, 천도교 문헌자료들을 기준으로 여러 역사서들을 살펴보면, 대신사께서 울산 여시바윗골 을묘천서의 신비체험 이전에는 동양 3대종교(儒彿仙)와 한민족 전통의 민간신앙 등 여러 종교를 연구하였음은 물론이고, 당시 서학으로 불리던 그리스도교(천주교)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대신사의 긴 방황과 사색이 마무리되는 일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을묘천서(1855년 봄 3월, 영적체험으로 천서를 받으심) 이후에 현재 천도교 특별기도라고 하는,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수련의 기원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선생문집도원기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을묘천서의 중심내용에 기도(祈禱)하라는 가르침이 있었다합니다. 대신사께서는 을묘천서 이전의 유불선과 민간신앙 등 여러 방법의 공부와 사색 수련 등을 마감하고 기천(祈天) 즉 한울님께 기도하는 방법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신사께서 을묘년 다음해 丙辰年(병진년, 1856년) 봄 4월에, 양산 천성산 내원암에 폐백(幣帛-바른 옷차림과 한울님께 올리는 예물)을 갖추고 49일을 작정하여 대신사 첫 번째 특별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2일을 채우지 못하고 47일 만에, 숙부 섭(1777∼1856)이 환원했다는 부음으로 하산(기도중단)하십니다. 숙부의 장례를 치른 후 1년간 상복(喪服)을 입고 다음해 정사년(丁巳年, 1857년) 7월에 다시 천성산에 입산하여, 자연동굴인 적멸굴(寂滅窟)에서 49일간의 기도를 마치십니다.

    2. 대신사 49일 기도에 대한 연구

    위에서 살펴본 대로 대신사께서는 첫 번째 49일기 시작이나 두 번째 49일 기도 마무리를 보면, 두 번 연속 49일의 기간을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아직까지 교단 내 연구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49일이냐의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몇몇의 천도교인이나 동학연구가들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입니다. 대신사께서 내원암의 납자(衲子, 중의 별칭)의 안내로 기도를 시작한 것으로, 49일기도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짐작은 약간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원래 49일기도의 유래를 불교에서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10대 제자인 목련존자가 지옥의 어머니를 구제했다는 설화에 근원하여 백중날을 맞이하여 49일기도를 전국 사찰에서 시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망자(亡者)를 위한 천도제(薦度祭, 죽은 사람의 넋과 산사람의 마음을 위로함)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무속과 민간신앙 불교는 물론 여려 종교에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49일의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49일 만에 새 몸을 받아 다시 환생하다는, 불가(佛家)와 선가(仙家)의 윤회(輪回)철학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49일기도가 꼭 망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민족의 단군역사에서 설화(신화)로 전해지는 곰과 호랑이의 49일(21일, 100일설도 있음) 토굴 수행이야기에서도 49일의 기간에 대한 전통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수련자들 도담 속에 애벌레와 나방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누에가 자라서 고치를 짓는 기간 즉 나방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 갈수 있다는 기간이 49일입니다. 바로 도통(道通)을 하는 비유로 하는 말입니다. 물론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기간은 21일입니다. 병아리 이치는 동학의 21자 주문과 연관시켜 보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사님과 공자님께서 마르고 달토록 공부하셨다는 주역(周易)에서 49라는 숫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역에 혁괘(革卦)가 있습니다. 혁(革)은 변혁 변화 즉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실체, 개벽(開闢)을 뜻합니다. 바로 이 혁괘가 49번째에 있습니다. 혁괘의 풀이를 사람에 붙여 설명하자면, 죽음에서 삶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탄생 즉 이전의 허물과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새사람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우주와 인간만사를 연결한다면 ‘다시개벽’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하듯이 49일기도에 대해 여러 문헌과 구전들을 파악해보면, 49일이라는 기간은 자신의 변혁에 있어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진리를 깨달아 성인군자가 되고자 하는 의미의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동학, 천도교 수련기간 전통은 역사적으로 49일기도라는 것이 정확합니다. 대신사께서 내원암과 적멸굴의 49일기도수련을 마치고 생을 다하실 때까지 기간을 정한 특별기도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천제(天祭)를 올리시고, 심고(心告)를 드리시고, 주문수행(呪文修行)을 하시며, 칼춤을 추시는, 삶이 수행이고 생활이 기도라는 원칙을 갖고 사셨다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3. 대신사 주문수행 방법의 연구

    앞에서 말했듯이 대신사님은 을묘천서 이전에는 주로 사색의 수련방법을 택하시어 하셨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을묘천서에서 경신년(庚申年, 1860년) 4월 5일, 용담정 득도(得道)사이에는 주로 한울님께 기도하는 수행을 하셨고, 득도 이후에는 대신사 자신의 득도 전후를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주문수행으로 전환하셨다는 것을 여러 문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천도교인처럼 한울님께 고하는 심고(心告)를 간단하게 하시지 않고, 고천(告天) 즉 한울님께 고하는 자세는 을묘천서 직후 기도하는 자세를 유지 하셨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대신사께서는 한울님과의 문답에서 천명을 받아 자신의 득도과정을 주문수행으로 정립하시는 결과에서, 자신의 주문은 선생주문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선생주문에서, 강령주문(지기금지사월래 至氣今至四月來)과 본주문(시천주영아장생무궁무궁만사지 侍天主令我長生無窮無窮萬事知)로 확립하셨습니다. 또한 제자주문에서, 어린아동들과 입도초기 도인들에게 해당되는 초학주문(위천주고아정영세불망만사의 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과 도인들의 평생주문으로, 강령주문(지기금지원위대강 至氣今至願爲大降)과 본주문(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로 결론내셨습니다.

    이는 대신사 경전 동경대전 주문편에 확고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또한 논학문(동학론)에 주문해석을 명쾌하게 하셨습니다. 대신사께서는 선생주문과 초학주문의 이치를 제자주문에 함축적으로 융합 일치시켜 주로 제자주문의 강령주문 여덟자와 본주문 십 삼자 수행을 강조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논학문에서 주문에 대한 주석을 달기 전에,(일이작주문, 일이작 강령지법, 일이작 불망지사) 즉 한편으로 주문을 작성하는데, 한편으로는 강령주문법을, 한편으로는 불망지사 즉 잊지 않는 주문인 본주문을 지으셨다는 설명을 하시면서, 오직 21자로 될 따름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천도교인들의 오랜 논란의 근원이 됩니다. 문장의 흐름을 보면 오직 21자로 된다는 말씀의 주어는 바로 일이작 강령지법, 일이작 불망지사 즉 경령주문과 본주문을 합쳐 21자가 된다는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덕문에서, 구송장생주 삼칠자(입으로 장생의 주문을 외우니 그 글자는 스물한자라)의 경전 글귀에서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나누지 않는다는 근거를 대고 있습니다. 필자의 개인 생각으로는 논학문 다음에 수덕문을 지으셨으므로 논학문에서(일이직 강령지법, 일이작 불망지사)의 주어식 서두를 생략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나워 수행하던지 아니면 합쳐 수행하던지 그건 수도자의 자유라 볼 수 있습니다.

    동경대전 주문편에는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분명 나눠놓으셨고, 논학문 주문풀이 전에 한편으로 강령하는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는 잊지 않는 본주문을 지으셨다는 말씀 다음으로, 절차와 도법이 21자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다시 말씀드리자면, 수덕문에서도 장생주 즉 오래사는 주문으로 삼칠자(21자)로 말씀하셨으므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결과에 있어 주문수행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동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증산교 계통에서는 본주문을 먼저하고 강령주문을 나중에 하는, 앞뒤를 바꿔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천도교단에서는 지방연원과 수련스승에 따라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나눠 절차에 따라 도법을 수행하는 분들이 있고,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곧바로 연결하여 수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다는 결론적 말씀보다는 동학, 천도교의 주문수련 전승에 대한 연구를 좀 명확히 하여보자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이 수련연원(연비)을 역추적해보겠습니다.

    4. 대신사 이후 수련전승 연구

    현재 천도교에서 수련을 주로 하는 연원을 살펴보면, 첫째로 전라도 부안에 있는 호암수도원의 수련방식입니다. 호암 수도원의 연원을 살펴보면 동학2대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이하 해월신사) 수제자중 한 분인 동학대접주 용암 김낙철 선생(이하 용암선생) 연원(연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용암선생 제자이자 사위인 학산 정갑수선생과 백암 김종민 선생, 호산 오문술 선생님들과 같은 큰 도인들이 용암선생의 제자들입니다. 이분들의 수련방식은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나눠(강령주문으로 완전 기화를 이루고, 이어 본주문으로 시천주를 체험하는 수련방식)수행하였다 합니다.

    현재 호암수도원 정태수 원장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용암선생의 제자들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강령체험 할 때까지 현송(구송)으로 강령주문만을 수행하도록 했답니다. 호암수도원의 강령에 대한 정의는 몸을 떠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몸을 떠는 진동도 일종의 강령체험의 많은 부분의 단계중 하나로 인정합니다. 원로 수도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대신사께서 말씀하신 경전, 포덕문에서 심한신전(心寒身戰)의 체험에는 실로 뼈 속까지 춥고 이와 턱이 달달거릴 정도 떨림을 말하나 이는 강령의 한 과정이라 합니다. 강령이란 그야말로 밖으로 접령 하는 기운과 안으로 가르침의 말씀에 이어, 한울님과 자신의 기운이 혼연일체(渾然一體) 즉 완전한 기화(氣化)를 이루어 시천주(侍天主)로 연결되는 도법의 절차라 생각합니다.

    이런 강령체험을 한 연후에 본주문 수행으로 들어갔답니다. 현제 역추적 할 수 있는 분으로는 바로 영남 천도교 지도자 묵암 신용구 선생(이하 묵암선생)의 제자들입니다. 묵암선생은 학산 정갑수 선생(이하 학산선생)과 같이 동학, 천도교 3대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님(이하 의암성사)께 직접 수련지도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학산선생은 의암선생님으로부터 약 3년의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또한 묵암선생은 의암선생님으로부터 학산선생보다 다 많은 세월을 같이 지내고 수련을 지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의 수련 방법이 비슷합니다. 강령, 본주문 수련 방법과 강령현상에 이르기 까지 비슷합니다.

    용암선생님은 해월신사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시고 다년간 수련을 지도받으신 분이고 학산, 백암, 호산 선생님들은 해월신사님 수도법을 그대로 계승하셨고, 묵암선생과 학산선생은 의암성사님께 수련을 지도받은 방법 또한 같은 방법이므로 그 어떤 귀결점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또 다른 한 분의 수련스승이 계십니다, 바로 월산 깅승복 선생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월산선생께서 누구한테 수련을 지도받았는지 알아보았으나, 현재까지 저로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부안 호암수도원을 만드신 학산선생의 외손녀 사위라는 사실입니다. 학산선생과 월산선생의 집안 항렬은 학산선생이 할아버지뻘 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천도교 수련에 대한 전승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천도교 4세대도주 춘암 박인호 상사님(이하 춘암상사)의 수렵법 전승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춘암상사님의 수련지도법을 원로들에게 들었습니다. 강령주문은 강령체험을 한 후에는 생략하고 본주문을 주로 묵송으로 수행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제 글을 읽는 분들에게 뭐라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 글도 연구의 글이고 또한 틀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현재 천도교 교세는 말이 아닙니다. 현상유지하기도 힘들고 이러다가 박물관 신세를 벗어나지 못 하나의 염려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신사의 신앙과 수련 즉 동학전통수도법의 회생입니다. 누구의 수련법이 맞고 틀리냐의 논란은 현 천도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천도교인들과 동학연구가들의 현명한 해결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스승님들과 같은 대도인(大道人) 출현과, 탁월한 천도교경영자, 아니면 사회운동의 즉 과거 동학혁명과 3.1국권회복운동 같이 남북통일운동에 있어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 등 여러 각도의 생각들을 해볼 수 있습니다.

    5. 각 문헌에 나타난 동학수련연구

    동학, 천도교 역사 문헌 외 여러 지방에서 유생들이나 지식인 또한 지방천도교 지도자들의 수기 등은 현재 동학시대나 천도교 시대 수련문화를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몇 개만 소개하겠습니다. 유생들의 기록, 서헌순의 장계, 정운구 보고내용 등에 나타난 동학 초기 수련에 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대신사께서 천제를 올리실 때, 두 무릎을 꿇고 강령주문을 소리 내어 외우면, 강신 즉 강령이 되어 목검을 들고 일어나 칼춤을 추었다.] 주로 병자들에게 강령주문을 외우게 하여 칼춤을 권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신사의 동학포덕을 감시하기 위해 대신사님이 계시는 용담정까지 가는 도중 [어린아이 부녀자 할 것 없이 위천주(초학주문), 시천주(본주문)의 동학 주문 외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동학초기 기록물들은 물론이고 갑오년(1894년) 동학혁명당시 여러 기록들을 보면, [동학군들은 줄지어 행진하면서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동학 시천주 주문을 외우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등의 기록들을 보면 아마 강령주문은 강령체험 후 주요주문수행에서 생략하고 본주문을 주로 외우며 수행했다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물론 특정지역 즉 수도원 같은 곳에서 본격 주문수행을 할 시는,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현송(구송)과 묵송(심송)으로 수행했을 것이라는 것은 더욱 짐작이 갑니다.

    글 마무리

    서두에서 밝혔듯이 동학, 천도교 수련 기간은 원래 49일기도입니다. 해월신사 당시 지방두목들의 기록들을 보면, 1,000일 기도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월신사님은 대신사님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직 49일기도를 일 년에 몇 차례 실행한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의암성사 시대에도 봉황각을 건립하고 수차례 49일 수련을 지도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농경시대가 지나고 산업화시대를 맞이하면서 보다 많은 도인들을 수련에 동참시킬 방법으로 7일, 21일의 짧은 수련이 도입되고 49일기도의 전통을 지키면서 또한 105일 기도와 특별한 수도인들은 대신사님의 경전,[삼년불성 되게 되면 이아니 헛말인가]말씀에 1,000일 수련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해월신사 당시 천제, 칠성제 등 대신사 기념제례와 같은 기념식을 거행할 때, 현재 천도교 각 기념행사와 시일식 등에서 볼 수 있는, 성주문 3회 병송(13자)만을 행하는데, 당시는 초학주문3회, 강령주문3회, 본주문3회의 방식으로 식순에 넣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동학 역사의 주문수행을 살펴보면, 강령주문 수행에 이어 본주문 수행을 하였다는 것으로 결론지어 볼 수 있습니다. 21자 연속 주문수행과 어떤 것이 보다 효과적인가의 논란보다는 주문수행의 역사를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끝으로, 대신사 경전 논학문 주문풀이 마지막을 장식하는[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지」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게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의 대신사 주문수행의 목적이자 결론을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저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포덕 153년 8월 22일 수요일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송암 이윤영 심고.

    - 참고문헌 -
    * 천도교경전(동경대전, 용담유사)
    * 최선생문집도원기서(동학초기역사서)
    * 천도교 백년약사
    * 동학(대신사편, 해월신사편)
    * 불교신문
    * 삼국유사(고기)
    * 단군신화
    * 주역(술몽쇄언)
    * 승정원일기(서헌순 장계)
    * 고종실록(정운구 보고서)
    *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한자원본)
    *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한글번역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