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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미공개 어록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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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133회   작성일Date 12-06-23 19:36

    본문


    해월신사 미공개 어록연구

    동학 2대교주 해월 최시형 신사(이하 해월신사)의 어록은 현재 천도교경전 ‘해월신사법설’로 정착되었다. 해월신사의 법설은 윤석산교수의 ‘최시형법설의 기초문헌연구’와 표영삼 선생의 ‘동학’책자에 자세히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교인이나 일반인들이 모르는 문헌 속의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해월신사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인물 중에 부안대접주 김낙철 선생의 수기인 ‘용암 성도사-김낙철 역사’와 김낙철 선생 친동생의 회고록인 ‘김낙봉 이력’의 문헌에 상당히 많은 해월신사 어록이 담겨있다. 본 문헌자료는 김낙철 형제분 후손들이 원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천도교총부와 동학혁명기념관에 복사본이 있다. 그중에서 법설에 가까운 내용과 중요 어록을 골라 전하고자 한다.

    김낙철. 낙봉 형제는 동학혁명(주로 2차기포-일본과의 전쟁)에 참가하였고, 혁명 좌절 뒤에 동학재건운동에 해월신사 수제자로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다. 특히 용암 김낙철 선생은 1897년 해월신사 대신 체포되어 수원감옥에서 7월 석방 될 때까지 온갖 고문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스승을 위해 죽으려고 한 사실은 두고두고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한때 구암(김연국) 문하에 들어갔으나 의암 손병희 성사가 동학3대교주로서 그 정통성이 확실하므로, 의암성사에게 직접 천도교 성도사 명첩을 받아 활동하였다.


    용암 김낙철 성도사 역사

    본 자료는 부안 대접주 용암 김낙철 선생이 1890년 동학에 입도하여 1917년 천도교 성도사를 지내기까지의 일대기를 기록한 자서전성격과 일기형식의 기록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전(口傳)에 의한 기록문헌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해월신사님께 들은 내용을 기록한 친필문헌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거론하였지만, 해월신사의 여러 말씀 중에 법설에 가까운 내용과 중요어록을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1. 1891(신묘년) 해월선생님께서 공주 보평 윤상호 집에 계실 때, 동생 낙봉과 손화중 김영조와 함께 여러번 문안을 드렸다. 해월선생님 분부하시기를, [천심(天心)을 잃지 않고 식도(食道)를 미리 갗추고 기(氣)를 바르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또한 먹는 것이 한울님이다.]라고 하셨다.

    2. 태인 동곡의 김낙삼의 집으로 떠나실 때, 말씀하시기를[부안에서 꽃이 피고 부안에서 열매가 맺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3. 갑오년(1894) 고부에서 전봉준이 민요를 일으킨 장두로서 인민들 선동한다는 말이 들리므로, 동생 낙봉을 해월선생님께 보내어 알아보니 해월선생님 비밀분부에 의하면[봉준은 교인의 입장보다는 다른 생각이므로, 상관하지 말고 각 접에 기별해서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두 나의 지휘에 따라 봄(때)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4. 상주 화항의 이철우 집에 있다가, 고대의 이팔용 집에 가서 해월선생님을 뵈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도인 4~5체의 집이 있었는데,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참으로 요순의 세상이었다. 의암(손병희) 구암(김연국) 송암(손천민) 등 6~7명이 옆에서 해월선생님을 모시고 밤낮으로 도리(道理)를 서로 토론하고 있었다. 2~3개월 머무는 동안에 해월선생님께서 도의 진리를 간간히 비유를 하여 설명하시기를[이 운수에서 요순 같은 성인은 몇 사람만이 세상에 들어났고, 그 다음으로는 공자와 맹자와 같은 성인은 몇 사람만이 세상에 나왔다.]고 하시었다.

    5. 정유년(1897) 3월에 화항 이철우 집에 가보니, 해월선생님은 이천 앵선동으로 옮기셨다. 비밀리에 앵선동으로 가서 해월선생님을 뵈었더니 선생님께서는[믿을 신자를 풀어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중에서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 번 작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의 경전 글귀를 간간히 외우고 계셨다.

    6. 4월 5일은 수운 대선생님께서 도를 깨우친 날이었다. 해월선생님께서 새벽녘에 분부하시기를[이 일은 천추동안 바뀌지 않을 법이다. 비록 과실 한 개라도 노인 소년 어린애 속인 고인(삯꾼)의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나를 향해 자리를 마련해서 지성으로 하늘에 고하되, 1월 1일은 새해의 기운을 각기 받는 법이니 지금부터 진리를 아는 두령은 차차 그것을 실행하라.]하시고 새로 향아설위법을 마련하셨다.

    7. 해월선생님께서 봉의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시길,[네가 단발을 하였구나, 나야 단발할 것이 없지만(대머리) 이후에는 갓과 망건이 모두 없어지리라.]고 하셨다.

    8. 낙봉이 정유년 설을 쇠로 본가로 내려갈 때에 곽기룡이 올라와서 함께 내려갔다. 그때에 조정중이 올라왔는데, 채독증이 있어서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해월선생님께서 낙봉에게 말씀하시길[선약(영부)쓰라.]하여, 먹였더니 효과가 있다가 다시 재발하고 하여 여러 차례 반복을 하여 겨우 내려갔다.

    9. 홍정삼, 김은우가 십전대보탕을 보내어 먹으려고 하자, 해월선생님 크게 화를 내시며 [모두 버리라]고 하시어 모인 도인들이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버렸다.


    김낙봉 이력, 자서전

    1. 신묘년(1891) 5월에 해월신사께서 부안에 오시어 며칠 동안 계시다가 금구원평으로 가시어 김덕명의 집에 머무르시며 말씀하시길[꽃이 부안에서 피어 부안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2. 갑오년(1894) 봄에 고부군의 전봉준이 조병갑의 학정에 민란을 일으켰다가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무장군의 손화중을 움직여 큰 난리(기포)를 일으키려는 기미를 보고 마음과 정신이 두려웠다. 그래서 형(김낙철)의 편지를 가지고 하루가 안걸리게 말을 타고 올라가서 해월신사를 청산의 문암리에서 찾아뵙고 그 사유를 말씀드렸더니, 해월신사 분부하시길[이것도 시운이어서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너는 형과 상의하여 접의 내부를 정중히 단속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하시고 형에게 보내는 답장과 함께 6임의 첩지 4,000 여장을 내어 주셨다.

    3. 병신년(1896) 6월에 해월신사를 찾아뵙고 지난번에 갇혀있을 때 형수님이 축원하기를 ‘나는 자식이 1명 있고 동생은 자식이 없으므로 동생이나 살려 달라’고 하고, 내 아내는 축원하기를 ‘집안일은 장자에게 맡겼으니 시숙이나 살려 달라’고하였다. 해월신사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시길[사람의 집안이 이와 같아야 재앙이 없다.]고 하셨다.

    4. 하루는 해월신사를 모시고 잠을 자고 있는데 밤과 같은 종자 수백 개를 심어 싹이 나지 않는 종자에 싹이 난 종자를 옮겨 심은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네가 널리 포덕할 징조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팔미환 1제를 환약으로 만들었는데, 해월신사 말씀하시길[너희들이 약을 먹으면 각처의 교인이 그런 사례에 따라 약을 먹는데 마음을 써서 신력(神力)이 점점 줄어들 것이니 모두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리고 해월신사께서 석청(石淸-자연산 꿀) 1되를 주셔서 여러 차례 먹었다.

    5. 해월신사께서 경전의 중요한 구절을 간간히 말씀 하셨는데, 허다한 말씀을 기억하기 어렵지만 그 본성에 따라 그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셨다. 해월신사께서[성(性)은 누구의 성이며, 교(敎)는 누구의 가르침이냐]고 물으시기에, 대답하기를‘성은 내가 받은 본성이고 교는 하늘이 가르치신 교입니다.’라고 하였더니, 선생님 말씀하시길[그렇다.]하셨다.

    6. 해월신사 다시 묻기를[수기무왕불복지리(受其無往不復之理)라는 경의 말씀이 무슨 뜻인가]라고 하시기에, 옛 문리(文理)대로 물으실 이유가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되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계속 3일을 물어보시기에, ‘수련을 지극히 하면 본성을 회복한다는 말씀인 듯 합니다.’라고 하였더니, 해월신사께서 말씀하시길[아니다. 위(질문한내용)의 문장을 보아라. 지금 천령(天靈)이 선생님께 강림했다는데, 어찌 그러합니까? 의 질문에 ‘수기무왕불복지리’로다 하셨으니 내가 선생이나 너희도 모두 다른 사람의 선생이 된다. 천령을 사람마다 모셨으니 어찌하여 나보고만 천령이 강림했다고 하느냐는 뜻이다.]라고 하셨다.

    7. 다음날 또 물으시기를, [남의 자잘한 잘못을 내 마음에서 따지지 말고 내 마음속의 지혜로 남에게 베풀라고 하신 말이 무슨 뜻인가]라고 하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3일을 연달아 물으셨으나 끝내 대답을 못하였더니, 하교하시기를[저 사람의 잘못이 있을 때에 바로 말을 하면 그 사람에게 면박이 된다. 그와 같은 말도 인증해서 이로운 약처럼 하면 그 사람이 저절로 마음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8. 또 하루는 해월신사께서 말씀하시길, [이 운(運)이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9월과 10월에 단풍이 든다. 푸른 소나무 가지를 베어 음지에 두고 여름 3달 동안의 장마를 지나면 낙엽은 모두 지고 가지만 남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운수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천지의 도수(度數)가 변천하여 남극의 노인성(老人星)이 몇 길 정도 높으니 60노인은 반드시 늙어서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길, [명심(明心)과 명덕(明德)4글자로 근본을 삼고 노고(勞苦)와 근면(勤勉) 4글자로 업을 삼으라.]고 하셨다.

    9. 또 하루는 말씀하시길, [내세의 운은 모두 삭발이 될 것이다.]라고 하시고 다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산속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에 간질병을 한 달 만에 깨끗하게 고친일도 있었다.]고 하셨다.

    10. 또 말씀하시길, [산속의 외진 곳에 보부상이 간간히 왕래하였기에 때문에 밖의 사람이 보기에 재산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한밤중에 마을 입구에 횃불이 늘어서 있다가 순식간에 몇 십명이 되는 어떤 사람들이 장내에 가득서서 주인을 부르기에, 내가 말하기를 ‘어떤 나그네인지 모르지만 방안에 들어와서 앉아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하니,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여겨 방안에 순서대로 늘어앉았는데 27명이 되었다. ‘무슨 연유인가’라고 물었더니 저들이 말하기를 ‘잡으러 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영지(令紙-현재법률용어-영장)가 있는가’라고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너와 같은 사람을 잡아가는데 영지가 무엇이냐’고 하였다.

    말하기를, [‘비록 죽이려는 사람이라도 영지가 없으면 잡아가지 못하는데, 영지가 없는 너희들은 분명히 도적이구나’라고 하고, 그중에서 건장한 사람 1명을 방안에 잡아 굴복시켰더니 나머지 26명이 몸을 떨며 낯빛이 없어지고 손발을 들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 삼배 한 속으로 27명을 묶고 말하기를, ‘너희들은 법정으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니 저들이 애걸하기에 1대씩 때려서 보내주었다. 저들이 동네입구 밖의 주점에서 3일을 심하게 앓고 서로 돌아보며 말하기를,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고 하셨다.
    이상.
    (본 두 자료는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한글번역을 주로 인용하였다.)

    포덕 153년 6월 23일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송암심고.

    -참고문헌-
    용암(김낙철) 성도사 역사약초
    김낙봉 이력(회고 자서전)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김낙철 역사, 김낙봉 이력)
    동학(표영삼)
    최시형법설의 기초문헌연구(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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