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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나 농락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12)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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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에게나 농락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12)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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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743회   작성일Date 12-08-31 22:3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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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에게나 농락(籠絡)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12)

    /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야 할 후손들을 생각하며. 내가 짐승이 아닌.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를 자문(自問)하고 있다.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의사항

    1. 필자가 관련 자료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위키 백과사전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원문이 영어로 된 사전입니다. 국역판(國譯版)을 이용하고 있지만 기술의 내용이 애매할 때에는 원문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료들은 서구(西歐)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바탕으로 우리와는 다른 시각(視覺)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한국 관련 자료는 불충분하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어, 그런 부분들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국 관련 자료들로 보완하였습니다.

     

    2. 농락(籠絡)의 의미는, 직역(直譯)하면 새장과 고삐라는 뜻으로, 사람을 교묘한 꾀와 말로 속여서 제가 하고자 하는 마음대로 상대를 놀리고 꼬여내는 것을 의미한다.

     

    3. 이 글은 어디까지나 천도교인으로서 동학 천도교의 교의를 바탕으로 하여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평가이고, 판단이며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신앙하고 있는 교단인 천도교 중앙 총부의 입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교단이 현실과 미래의 문제에 대하여 종교적 4 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의 하나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교의에 맞는 교단의 방향을 정하여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동학과 천도교는 근대사에 있어서 ‘갑오동학혁명’, ‘갑진개화운동’, ‘기미독립운동’의 3대 운동을 통하여 근대사의 흐름을 미래지향적으로 전환시킨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3대운동의 정신이 헌법 전문(前文)에 새겨진 대로, 조국이 나아가야 할 바의 방향과 정신을 앞장서서 계승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할 책무(責務)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동학의 시대를 관철(貫徹)하고 있었던 수운과 해월의 사상도 그러하지만, 다시 개벽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는 의암에 의하여 천도교시대를 열어 근대사를 미래지향적으로 천도교의 종교적 4대 목적을 당당하게 설정하였습니다. 해방공간에서 天道敎政治理念”이란 글을 통하여 천도교의 종교적인 목표와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제시하였음을, 필자가 ‘포덕 153(2012)년 3월 30일에 발표한 ’天道敎政治理念을 되새겨 보며’와 ‘天道敎政治理念 全文과 解題.’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그 글을 바탕으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直視)하여 ‘다시 개벽’의 새 기운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포덕 153(2012)년 8월 31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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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올림픽에서 강대국의 횡포에 희생양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선수들은 힘에 논리에 의해 불평등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억울하다고 하며 분노를 느끼게 하는 혹심한 대우를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불평등은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違背)되므로 모든 국가와 선수들에게 평등하고 그 성적에 합당한 판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요구는 잘 들어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불평등한 오심(誤審)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의(正義)를 벗어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계층 간, 국가 간의 불평등인 것이다. 그래서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승자독식(勝者獨食)이 일정 부분에서 정의이고 평등이라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자(强者)가 되어야 하고 승자(勝者)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루어지려면 약자(弱者)와 패자(敗者)가 있어야 함으로, 평등(平等)을 위하여 ‘불평등(不平等)의 세계(世界)’를 만들어야 하는 자기모순(自己矛盾)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필수적으로 ‘불평등(不平等)의 세계(世界)’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면, 경쟁(競爭)이 없는, 발전(發展)이 없는 죽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공정(公正)한 경쟁(競爭)인가. 물음에 사리에 합당한 답을 하기가 한국의 현실은 순탄하지 않다. 가진 자가 항상 이기게 되기 때문이다. 경력이 많은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 스펙을 많이 쌓은 사람, 경제적 사회적 신분이 높거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등등의 여러 상황과 조건들이 승패(勝敗)의 원인이 되고, 승률(勝率)이 높은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이 순간에도 ‘경쟁(競爭)의 장(場)’ 에서 약자와 패자의 쓴 맛을 씹고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도저히 경쟁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경쟁은, 애당초 해보나마나한 절망의 헛수고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언론 매체를 통하여 정치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계시는 전문가는 50 명 내외로 알려져 있다. 이들 이외의 강단이나 연구소에서 또는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저널리스트들은 해방이후 군사정부와 민간정부의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懷疑的)이라 알려지고 있다. 군사정부(軍事政府)는 국가권력을 말살한 무도한 집단으로 판단하고 있고, 민정(民政)은 어느 정부도 성공한 정부라고 평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의 정치성향이 ‘보다 비정치성(非政治性)과 도덕성(道德性)을 지나치게 신뢰(信賴)하고 있고, 그런 유형의 대권주자를 지지하여 정권을 주었기 때문에 성공한 정부가 있을 수 없다.’ 는 것이 정평(正評)이다. 정치는 도덕 교과서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은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단군시대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치(政治)란 최선(最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악(最惡)을 피(避)한다.’는 기본 원리를 도외시(度外視)하기 때문에,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미래는 ‘실망(失望)하는 정부(政府)를 양산(量産)하게 될 것’ 이고 ‘국민의 생활은 날로 피폐(疲弊)해질 것’ 이라는 매우 자명(自明)한 결론(結論)이 될 것이다.

    정치 평론가는 물론 이에 관련된 여러 분야에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이 평가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정치 성향이 ‘비정치성(非政治性)과 도덕성(道德性)을 지나치게 신뢰(信賴)하고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국가는 도덕국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선행(先行)되어야 할 일과 선결(先決)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국민으로서의 정직(正直)하게 국민의 의무(義務)를 다해야 할 것이며 준법정신(遵法精神)이 투철(透徹)하여 불법과 탈법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최우선적(最 優先的)으로 선결해야 할 문제로, 국회의원(國會議員)과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의회(地方議會)의 의원들이 무보수(無報酬)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명예직(名譽職)이 되도록 사회(社會) 전반(全般)의 구조(構造)와 체제(體制)를 혁신(革新)을 해야 할 것이며, 이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費用)을 감당(勘當)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정당을 선택해야 하고 당원으로서의 당비를 내야하고, 지지(支持) 정당(政黨)의 정치자금(政治資金)과 선거비용(選擧費用)의 후원금(後援金)을 충분히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당지원금과 각종 선거비용을 지출하지 않을 것이며, 이 재정으로 복지사업의 부족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정체(政體)로 삼고 있는 국가 중,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西歐)의 선진 국가(先進國家)에서는, 정당정치(政黨政治)를 모체(母體)로 하여 국가(國家)가 경영(經營)이 되는 것은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 정당정치의 원활(圓滑)한 활동을 통하여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실현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적극 지원하는 것이 선진 국가의 시민(市民)의 의무(義務)이며 책임(責任)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뽑은 정권과 정당이 성공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고 신념 있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당인(政黨人)은 적극적으로 당비(黨費)과 후원금(後援金)을 자부심을 갖고 납부(納付)하는 것이 생활화(生活化)되어 있으며 당연한 당원의 의무이며 책임인 것이다. 이러한 선진국가의 정상적인 정치의 참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을 돌아보면 의무와 책임은지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추악한 모습과 국민으로서 헌법정신에 명시한 의도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기피하여 국민의 자격을 잃은 지 오래인 자칭(自稱) 국민이라는 무리들이 인권(人權)과 주권(主權)을 말하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인 고귀(高貴)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굶주린 짐승이 되기를 자청(自請)하는 행위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나도 저런 인간으로 추락할 수 있을까? 를 자문해본다.

    정당정치(政黨政治)를 정면(正面)으로 부정(否定)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정체(政體)로 삼고 있는 국가를 부정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사고이며, 정당 내의 정치를 활성화(活性化)하기 위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경선(競選)에 국민의 주권(主權)을 내세워 무책임한 자들이 간섭(干涉)하는 것은 매우 파국(破局)을 자초(自招)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이웃집에 가장의 역학을 다하는가에 대한 찬반을 온 동네 주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과 같은 비민주적이며 반윤리적이며, 폭력적이다. 그 가정의 가풍(家風)과 가훈(家訓) 그리고 그 가정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獨自性)을 무자비(無慈悲)하게 파괴(破壞)하여 붕괴(崩壞)시키는 것과 같다.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완전 국민경선제)는 한국과 같은 정치현실에서는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정체(政體)로 삼고 있는 국가관(國家觀)이 확실(確實)하게 정립(正立)되어 있지 않은 국민, 그리고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을 가리지 않고 국민으로서의 기본적(基本的)인 의무와 책임을 회피(回避)하고 있는 미성숙(未成熟)되고 정치(政治)의 성향(性向) 뚜렷하지 못한 국민이 참여하는 완전 국민경선제는, 빛 좋은 개살구라 할 수 있다. 매우 충동적(衝動的)이고 적개심(敵愾心)이 강한 자격(資格)이 미달(未達)된 국민(國民)의 의사(意思)는 정당(正當)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정체(政體)로 삼고 있는 국가가, 지나친 국민들의 여론으로 인하여 정당정치(政黨政治)의 본질을 훼손(毁損)시켜 정당정치의 필요성을 정면 부정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매우 위태롭게 하는 비상식적인 처신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지나친 권리를 바탕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의 주장과 참여의 결과로 정당이 무력화(無力化)되어 정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고 대의정치(代議政治)의 근간(根幹)을 무너뜨려 각 종 선거에서의 대표성을 상실하여 선거의 난맥상(亂脈上)이 일어나 그 역작용(逆作用)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마저 극대화되어 사회 전반의 안정을 저해(沮害)하여 ‘혼돈(混沌)의 시대’(pandemonium / topsy-turvydom , topsy-turvyness.)에 빠져 민생(民生)은 도탄(塗炭)에 빠지고 배타적(排他的)인 언행(言行)과 자조(自嘲)석인 삶의 푸념이 하루하루를 우리 스스로를 고달프게 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지나친 국민의 욕구에서 출발한 오픈 프라이머리가 사회적인 기반(基盤)을 흔들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의 상식인가?

     

    註 54; 오픈프라이머리- 투표자가 자신의 정당 성향이나 소속 정당을 밝히지 않고 투표할 수 있는 예비 선거의 하나로 개방형 예비선거라 하기도 한다, 완전국민경선제라고도 부른다. 정당이 선거후보를 정하는 예비선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당원으로 제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선거방식으로, 투표자들은 정당의 성향을 밝히지 않고 특정 정당의 예비 선거에 투표할 수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반대 방식은 클로즈드 프라이머리(closed primary)로, 예비선거에서 해당 정당에 등록된 당원만 투표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좌지우지하던 정당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예비선거를 보다 개방적으로 함으로써 정치세력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민들의 영향력을 크게 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러나 이 제도는 미국에서 유래되었지만, 시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어 미국의 몇 개의 주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브리태니백과사전과 기타자료에서 정리함.

     

     

    7. 세대 간(世代 間)의 갈등(葛藤)과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세대 간(世代 間)의 갈등(葛藤)과 가정해체(家庭解體)’ 에 맞추어져 있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에서의 이념간의 갈등과 군사정부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세대의 상당수는 자식세대를 신뢰하지 않으며 자산의 상속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며,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고 노부부(老夫婦)들만의 생활공간(生活空間)을 찾아 여러 가지 형태(形態)로 분가(分家)를 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식 세대는 세대 간의 가치(價値)의 충돌(衝突)과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葛藤)들을 피하고 자유로운 삶을 충족(充足)하게 즐기기 위하여 독자적(獨自的)인 삶의 방법(方法)을 추구(追求)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의 차가운 모습이다, 지금은 매우 일부이기는 하지만 ‘부모의 자산(資産) 상속(相續)으로 노후(老後)를 대비(對備)하고, 현재의 자신들의 수입으로 젊음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려는 계층’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금융계 종사자들의 우려(憂慮) 섞인 말들이 오고 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 종(數 種)의 카드를 발급받아 마구 빚을 져 돌려막기를 하다가 더 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으면, 국가가 운용하는 신용회복제도를 이용하여 부채(負債)를 탕감(蕩減)받고 있으며, 사채시장을 정상화 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사치시장에서 얻어 쓴 고리(高利)의 대출금(貸出金)을 저리(低利)의 금융권으로 바꿔 타는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 moral hazard)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직하게 적은 수입으로, 자신과 가정을 지켜온 대부분의 봉급자들과 자영업자들을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하고 있다. 내가 어렵게 낸 세금으로 무절제(無節制)하고 무능(無能)하고 야비(野卑)한 신용불량자(信用不良者)들을 위해 한도(限度)없이 쓰이고 희생한다는 것이 상식(常識)에 맞고, 정의(正義)로우며, 평등(平等)의 사회(社會)일까를 묻고 있다.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가 위험수위(危險水位)에 까지 이른 것의 대표적인 몇 가지는,

    첫 번째가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언어(言語) 구사(驅使)에 있어 패거리 간에 사용되는 약어(略語)와 은어(隱語), 그리고 비속어(卑俗語)는 물론, 매우 거칠어져 이제는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冒瀆)하는 폭력적인 언어를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없이 일상화(日常化 또는 사용)함으로서 서로간의 불신(不信)과 갈등(葛藤)을 증폭(增幅)시키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사회의 안정(安定)을 파괴(破壞)시키고 있다.

     

    註 55;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 국어사전에 의하면 경제 분야 용어로,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적인 이기주의를 나타내는 상태나 행위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의어로 모럴 해저드 (moral hazard)가 있다.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원래 보험시장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리스크 관리 (risk management)’ 분야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정부가 뒤를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아니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정당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보험가입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행위를 나타내는데, 법 또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거나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는 행동을 포괄하는 용어로 확대됐다. 정상적인 시장을 해칠 수 있는 경제주체들이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도덕적, 윤리적, 경제적 태도 및 행동상의 위험 또는 위협적인 요인이다. 대표적인 예로 기업들이 대출을 과다하게 하여 기업을 키워 놓은 경우, 정부가 그 기업을 섣불리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못한다는 예가 있다. 정보경제학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숨겨진 행동(hidden action)’이 있을 때 발생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 위키 백과사전과 기타자료에서 요약.

     

    두 번째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선(善)플 달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용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이용자는 익명성(匿名性; anonymity) 또는 익면성(匿面性; faceless) 뒤에 숨어서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는 반인륜적(反人倫的)이고 언어 폭력적(暴力的)인 만행(蠻行)을 저지르고 있다. 자신의 생각에 반(反)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에 동조(同調)하지 않는다고 무작위(無作爲) 대중을 향하거나 어느 특정 개인에게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포악한 악(惡)플을 달아 많은 사람들을 좌절(挫折)케 하여 죽음으로 내 몰기도 한다. ‘OOO를 좋아하거나, 지지하거나,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벌떼처럼 몰려들어 포악한 악(惡)플을 다는 것은, 민주시민(民主市民)의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이 이상의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가 어디에 있겠는가? 모임이란 좋아하는 사람들의 친목이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에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목적달성을 위하여 상호의견을 교환하고 실천에 옮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인데 굳이 포악(暴惡)하고 반인륜적이며 반사회적인 앤티(anti; 반대)의 역할을 할 필요가 무엇인가? 이것은 추악한 군중심리(群衆心理)일뿐 집단지성(集團知性)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부류(部類)들이 대다수 참여하는 여론조사(輿論調査)의 결과는 진정성(眞正性)이 없으며 매우 선동적(煽動的)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들의 마음 저변(底邊)에 도사리고 있는 정부정책이나 자기를 소외시키거나 홀대했다고 생각되는 사회적인 것들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욕구불만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삶에 지쳐 탈출구를 찾고 싶은 답답한 대중을 선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악행(惡行)은, 이 사회를 비인간적인 사회 또는 금수 같은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 곧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매우 범죄적(犯罪的)이고 파괴적(破壞的)인 만행(蠻行)인 것이다.

    이러한 만행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은, 개인이나 집단을 ‘좋아하거나, 지지하거나, 사랑하는 모임’ 들에서부터 개인이나 집단의 운영자들은 참여자들에게 토론, 지지, 반대에 대한 주장과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악플은 허용(許容)하지 않는다는 강경(强硬)한 태도로 경고(警告), 삭제(削除), 회원의 제명 등의 방법으로 선플 달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誘導)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개인이나 집단을 ‘좋아하거나, 지지하거나, 사랑하는 모임’ 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타인이나 다른 집단이 운명하는 인터넷에 들어가 악플을 달지 않도록 지도할 책임이 있으며,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는 참여자를 단호(斷乎)하게 제명(除名)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또는 형법에 따라 고발(告發)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자신을 추종하거나 목적을 같이하여 참여하고 있는 집단의 책임 당사자는, 자발적으로 참여자들의 악성댓글을 다는 것을 금지하는 지도와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와 사회를 파괴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반국가적(反國家的)이며, 민생을 토탄에 빠뜨리려는 부도덕(不道德)한 인물과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악성댓글에 대하여 강력한 제재를 가하여 형사적 책임을 묻고 있어 악성댓글을 함부로 달 수 없도록 하여 인터넷 사용자 간의 조화를 이루도록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악성댓글은 인간에 대한 최대 범죄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형식적으로 법제화되어 있는 것을 사회적 폐단과 피해를 철저하게 막기 위해서는 보통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또는 형법에 의한 규제를, 선진국의 사례들을 검토 연구하여 가혹하리마치 강화하여 집행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의 기본질서를 파괴하여 공존공영하려는 사회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인간들에게는 보호받을 인권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권이라는 미명아래 용서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짐승이상의 마성(魔性)을 드러낸 그들을 온정주의(溫情主義)에 빠져 허덕여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터전을 개인의 신념이나 주장과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회의 모든 안전망을 파괴시켜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은 인간의 양심으로서는 할 수 없는 폭력이고 만행이며, 고귀한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매우 개인적인 극악한 인간의 한낱 보잘 것 없는 욕심이기 때문이다.

     

    註 56; 선(善)플과 악(惡)플-악성 댓글(惡性댓글) 또는 악성 리플(惡性 reply, 간단히 악플)은 사이버 범죄의 일종으로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말한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을 악플러(←악플+er)라고도 한다. 익명성을 악용하여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언어폭력이나 인신공격 등의 반응들이 연속적인 악플로 이어져 악순환(惡循環)으로 반복된다. 외적인 요인은 황색언론(黃色言論)의 선정적보도가 오히려 네티즌의 마녀사냥을 부추겨 조장하고, 집단적인 분위기를 댓글 알바가 조장(助長)하거나 혹은 막는 데 주력(主力)하기도 한다. 이러한 악성 댓글의 피해는, 근거 없는 비방(誹謗), 인신공격성(人身攻擊性) 등의 악성댓글은 개인(個人)의 생명(生命)을 뺏어갈 수 있는 치명적(致命的)인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는 정신적인 피해를 입힌다. 댓글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를 통해, 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하고, 나아가 국제적으로 국가의 위상과 이미지를 떨어트리기도 하며 인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악성 댓글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줄 우려가 있다. 악성 댓글은 법적으로 제한되기도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또는 형법에 의해 규제된다.

    선(善)플은 악(惡)플(악성 댓글)의 반대어로 착한 심성(心性)에서 출발한 칭찬, 위로, 격려를 하는 댓글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선(善)플 달기운동이 시작되었으나 참여율이 그리 높지 않다. 이러한 악성 댓글의 만연(蔓延)은 한국사회가 인간성 상실이라는 매우 위험한 환경을 조장하여, 민생(民生)이 도탄(塗炭)에 깊게 빠져서 미래에 나타날 병적 현상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 위키 백과전과 관련 자료에서 재정리함.

     

    註 57; 황색언론(黃色言論)-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옐로 저널리즘)이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범죄(犯罪)ㆍ괴기 사건(怪奇事件)ㆍ성적 추문(性的 醜聞) 등을 과대(誇大)하게 취재(取才)ㆍ보도(報道)하는 저널리즘의 경향이다.

    황색언론의 유래는 옐로 키드옐로 저널리즘은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와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 의해 탄생했다. 퓰리처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 한편,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만평(漫評)과 사진(寫眞)을 화려(華麗)하게 쓰고,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 기사를 비중(比重) 있게 다루었으며, 흥미와 오락 위주의 일요판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煽情主義)에 호소(呼訴)함으로써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을 탄생시켰다. 퓰리처는 1889년 《뉴욕 월드》 일요일판에 황색 옷을 입은 소년 《옐로 키드(yellow kid)》를 게재하였는데 이를 흉내 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과의 사이에 선정주의(sensationalism)의 치열한 경쟁을 전개함으로써 이 호칭이 생겼다. 그후 선정적 기사를 기재하는 신문을 옐로 프레스(yellow press) 또는 옐로 페이퍼(yellow paper)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호주 출신의 언론왕 루퍼트 머독이 대표적인 옐로 저널리스트로 꼽히고 있다.

    신문이 산업화되던 19세기 말, 지금 미국 언론인의 표상으로 떠받들어 지고 있는 퓰리처가 운영하는 <월드>, 그리고 그의 일생의 라이벌이던 언론재벌 허스트가 운영하는 <뉴욕 모닝 저널>은 유례가 없는 ‘만화 전쟁’을 벌였다. 허스트가 퓰리처 신문의 간판 상품인 만화 ‘옐로키드’(그림)를 스카우트해 빼내가자 퓰리처는 ‘옐로키드’를 다시 데려오며 치고받는 싸움을 한동안 계속했다. 이 싸움 때문에 언론들이 선정성 경쟁을 벌이는 것을 ‘옐로저널리즘’ 이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 언론들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이 말이 바로 만화 때문에 나온 것이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로 재정리함.

     

    註 58; 저널리즘(journalism)-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원래 최근의 사건을 인쇄된 형태로, 특히 신문에 취재·보도하는 것을 가리켰으나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확대되어, 최근의 시사문제를 다루는 모든 인쇄물과 전자 통신장비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하게 되었다. 신문과 잡지, 팜플렛, 뉴스레터, 등으로 대중에게 뉴스, 해설, 특집물 등을 수집, 준비, 배포하거나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활동. 또는 그 분야를 말한다. 넓게는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책 등을 통하여 오락 및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을 포함하기도 한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로 재정리함.

     

     

    註 59; 익명성(匿名性; anonymity)과 익면성(匿面性; faceless)- 표면적(表面的)으로는 ‘이름을 감추는 것’과 ‘얼굴을 들어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특히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신분(身分)이나 정체(正體)을 감추고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악행(惡行)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危險)한 행동(行動)이다. 이런 현상(現狀)은 현대사회에서 지역, 혈연적 결합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볼 때 사회통제가 미치지 않는 도시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중화(大衆化) 현상의 하나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병리현상으로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의 대표적인 사례(事例)이다. 자신을 알고 있는 집단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특정 다수인들의 일원이 되어 개인의 행동이 감추어지게 됨으로서 자기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도 피할 수 있게 되는 현상을 가져 온다. 자신의 선행(善行)이나 악행(惡行)이 군중(群衆) 속에 감추어지게 되어 '남들이 나를 모를 것이다'는 생각으로 쉽게 생각하여 행동하기 쉬어진다. 인터넷에서는 사이버 테러의 하나이다.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을 ‘집단(集團)의 거대화(巨大化), 매스미디어의 발달, 분업(分業)의 세분화(細分化), 사회적 이동(移動)이나 격화(隔化) 가운데 도시사회의 성원은 구성의 톱니바퀴로서, 거대한 집단이 산출(産出)하는 권력(權力)에 의하여 부득이 획일적(劃一的) 행동양식(行動樣式)을 취하게 된다. 또한 면식(面識) 있는 집단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특정(不特定) 다수인(多數人)들의 일원(一員)이 되어 개인의 행동은 감추어지게 되고 자기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익명성이 진행되고 대중화를 특징짓는 조건의 하나가 된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註 60; 사이버 테러(cyber terror])-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인터넷을 이용해 시스템에 침입하여 데이터를 파괴하는 등 해당 국가의 네트워크 기능을 마비시키는 신종 테러 행위의 하나이다. 정보화시대가 가져온 폐해(弊害)의 하나로,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테러는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파괴력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보통신산업 기술의 발달을 이용하여 군사·행정·금융 등 한 국가의 주요 정보를 파괴하는 사이버 테러는 21세기로 들어서면서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이버 테러 수법에는 강한 전자기를 내뿜어 국가통신 시스템, 전력, 물류, 에너지 등의 사회 기반 시설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키는 전자기 폭탄, 데이터량이 큰 메일 수백만 통을 동시에 보내 대형 컴퓨터 시스템을 다운시키는 온라인 폭탄, 세계 유명 금융기관이나 증권거래소에 침입, 보안망을 뚫고 거액을 훔쳐내는 사이버 갱 등이 있다. 이러한 사이버 테러의 특징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규모가 가공(可恐)할 만하게 커질 수 있고, 우회적(迂廻的)인 경로(經路)를 사용하기 때문에 범죄자를 적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국가 위협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 1995년부터 사이버 해킹 전담반을 구성해 사이버 테러에 대비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컴퓨터 해킹 대응팀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註 61; 해킹(hacking)- 해킹이란 의미는 대체적으로 '어떠한 의도에 상관없이 다른 컴퓨터에 침입하는 모든 행위'로서 전산망을 통하여 타인의 컴퓨터 시스템에 엑세스(Access/코드 액세스 보안 (Code Access Security)을 의미함.) 접근 권한 없이 무단 침입하여 부당 행위 를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부당 행위란 불법적인 시스템 사용, 불법적인 자료열람, 유출 및 변조 등을 의미한다. 전자 회로나 컴퓨터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웹사이트 등 각종 정보 체계가 본래의 설계자나 관리자, 운영자가 의도하지 않은 동작을 일으키도록 하거나 체계 내에서 주어진 권한 이상으로 정보를 열람, 복제, 변경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광범위하게 이르는 말이다. 나아가 악의적(惡意的)인 행동이 늘어나면서 '다른 컴퓨터 시스템을 침입할 때 파괴적인 계획을 갖고 침입하는 행위' 라는 부정적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일명 크래킹(cracking) 이라 하였다. 크래킹이란 인터넷에 저장된 개인이나 사회의 여러 분야의 자료를 몰래 훔쳐 가 불법적인 이용을 하는 것을 말한다. / 위키 백과사전과 관련자료에서 요약정리.

     

    8. 나아가는 말.

     

    기부하거나 나눌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공격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뜻을 같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며 인간다운 인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부정확하거나 틀린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타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거나 배척하는 사람보다는, 상대가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더불어 어우러져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더 인간적이며 인간다운 인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지 않은 지식과 정보로 논의되어 얻어진 결과는, 진실이 아니고 허상일 뿐이다. 만약 이 나라, 이 사회가 이런 ‘허상(虛像)의 장(場)’으로 존재한다면, 이 ‘허상의 장’에 삶을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우리라면, 우리는 실재(實在)가 아닌 유령(幽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평생을 잘못된 지식과 군중심리에 휘둘려져서 타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데 온 생애를 바치는 것보다,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하여 나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인간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더불어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필연적으로 만사는 상대적이며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천리와 천명을 거스르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추악한 모습인 것이다. 그것은 나는 있고 너는 없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타인이 없다면 비교해서 우열(優劣)을 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에서 진실은 내가 혼자 살아간다. 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이며, 어쩌면 천리와 천명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만사를 비판하고 평가할 기준도 필요가 없고 평가할 필요도 없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도 좋고 짐승이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를 비판하고 평가해 줄 타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화가 겪고 있는 갈등의 대 부분은, 나는 있고 너는 없다는 것과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매우 파괴적이며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소통을 말하는 자는 정작 타인과의 소통을 할 생각이 없고,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혼란과 갈등은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라는 것을 아무런 이유와 변명을 하지 말고 깨끗이 인정하여 항복하고 사라져 버리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삶에 대하여, 당신이 타인을 비판하고 평가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네 탓이니 아무런 이유와 변명을 하지 말고 깨끗이 인정하여 항복하고 사라져 버리라면 사라져야 한다고 한다면, 당신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 될 것이지만 동의할 수 없다면 당신은 매우 편향적인 사악(邪惡)한 인성을 가진 부도덕한 인간이 될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며, 그 나는 나의 본연아의 자각에서부터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인간답게 살아 보자는 것이다. 만사(萬事)와 만인(萬人)을 배척하려는 악랄한 비판을 하지 말고, 따뜻한 인성으로 품어 안는 인류애로 다 같이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지상천국의 건설에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지금의 갈등은 6.25동란, 그 때에 참전 했던 유엔군과 같은 타민족이 만들어 논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선택으로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미래에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서로 서로 사욕을 버리고 조화와 균형에 맞춰 합의를 하여 새 조국을 만들어야 할 민족적 소명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들의 문제 해결방법은 ‘나’ 밖의 상대에게 문제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문제는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야 하는 새로운 사고의 방식을 이해(理解)하고 수용해야 한다. 내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람다운 생각과 행동을 주체적으로 한다면, 오히려 문제들이 쉽게 풀릴 것이라는 이치(理致)를 터득(攄得)하여 실행하는 데에 있다. 이 세상과 나의 문제들을 그 누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절대로 해결해 줄 수 없는 타인) 주체적(主體的)으로 만사의 천리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판단을 하는 인간(人間)인 나(自我), 이런 내가 새 시대가 될 미래가 요구하는 신인간(新人間)이며, 한울님을 모신 사람이며, 사람이 한울님인 귀중한 존재인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하여 새 사람들이 사람답게, 즉 사람을 한울님처럼 모시며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인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다시 개벽(開闢)’의 주체적(主體的)인 사람들이 건설(建設)하는 것이다. 이것이 새 세상인 것이며, 문제(問題)의 종결(終決)인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남이 변하지 않고, 나와 남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변할 수가 없다. 우리들이 변해야 사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해야 국가가 변하고, 국가가 변해야 세계가 변하고, 세계가 변해야 인류의 역사가 변한다, 는 것이 ‘불변(不變)의 천리(天理)’이다. 남의 탓만 하는 나와 세상이 되어서는 우리 모두가 자멸(自滅)의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명심(銘心)해야 할 것이다. 남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주체적인 신인간이 되어 올바른 언행을 해야 하는 것이 모든 문제해결에 황금열쇠가 되는 것이다.

    / 아무에게나 농락(籠絡)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12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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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야 할 후손들을 생각하며. 내가 짐승이 아닌.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를 자문(自問)하고 있다.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의사항

    1. 필자가 관련 자료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위키 백과사전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원문이 영어로 된 사전입니다. 국역판(國譯版)을 이용하고 있지만 기술의 내용이 애매할 때에는 원문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료들은 서구(西歐)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바탕으로 우리와는 다른 시각(視覺)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한국 관련 자료는 불충분하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어, 그런 부분들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국 관련 자료들로 보완하였습니다.

     

    2. 농락(籠絡)의 의미는, 직역(直譯)하면 새장과 고삐라는 뜻으로, 사람을 교묘한 꾀와 말로 속여서 제가 하고자 하는 마음대로 상대를 놀리고 꼬여내는 것을 의미한다.

     

    3. 이 글은 어디까지나 천도교인으로서 동학 천도교의 교의를 바탕으로 하여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평가이고, 판단이며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신앙하고 있는 교단인 천도교 중앙 총부의 입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교단이 현실과 미래의 문제에 대하여 종교적 4 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의 하나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교의에 맞는 교단의 방향을 정하여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동학과 천도교는 근대사에 있어서 ‘갑오동학혁명’, ‘갑진개화운동’, ‘기미독립운동’의 3대 운동을 통하여 근대사의 흐름을 미래지향적으로 전환시킨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3대운동의 정신이 헌법 전문(前文)에 새겨진 대로, 조국이 나아가야 할 바의 방향과 정신을 앞장서서 계승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할 책무(責務)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동학의 시대를 관철(貫徹)하고 있었던 수운과 해월의 사상도 그러하지만, 다시 개벽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는 의암에 의하여 천도교시대를 열어 근대사를 미래지향적으로 천도교의 종교적 4대 목적을 당당하게 설정하였습니다. 해방공간에서 天道敎政治理念”이란 글을 통하여 천도교의 종교적인 목표와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제시하였음을, 필자가 ‘포덕 153(2012)년 3월 30일에 발표한 ’天道敎政治理念을 되새겨 보며’와 ‘天道敎政治理念 全文과 解題.’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그 글을 바탕으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直視)하여 ‘다시 개벽’의 새 기운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포덕 153(2012)년 8월 31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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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올림픽에서 강대국의 횡포에 희생양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선수들은 힘에 논리에 의해 불평등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억울하다고 하며 분노를 느끼게 하는 혹심한 대우를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불평등은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違背)되므로 모든 국가와 선수들에게 평등하고 그 성적에 합당한 판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요구는 잘 들어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불평등한 오심(誤審)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의(正義)를 벗어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계층 간, 국가 간의 불평등인 것이다. 그래서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승자독식(勝者獨食)이 일정 부분에서 정의이고 평등이라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자(强者)가 되어야 하고 승자(勝者)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루어지려면 약자(弱者)와 패자(敗者)가 있어야 함으로, 평등(平等)을 위하여 ‘불평등(不平等)의 세계(世界)’를 만들어야 하는 자기모순(自己矛盾)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필수적으로 ‘불평등(不平等)의 세계(世界)’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면, 경쟁(競爭)이 없는, 발전(發展)이 없는 죽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공정(公正)한 경쟁(競爭)인가. 물음에 사리에 합당한 답을 하기가 한국의 현실은 순탄하지 않다. 가진 자가 항상 이기게 되기 때문이다. 경력이 많은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 스펙을 많이 쌓은 사람, 경제적 사회적 신분이 높거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등등의 여러 상황과 조건들이 승패(勝敗)의 원인이 되고, 승률(勝率)이 높은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이 순간에도 ‘경쟁(競爭)의 장(場)’ 에서 약자와 패자의 쓴 맛을 씹고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도저히 경쟁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경쟁은, 애당초 해보나마나한 절망의 헛수고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언론 매체를 통하여 정치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계시는 전문가는 50 명 내외로 알려져 있다. 이들 이외의 강단이나 연구소에서 또는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저널리스트들은 해방이후 군사정부와 민간정부의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懷疑的)이라 알려지고 있다. 군사정부(軍事政府)는 국가권력을 말살한 무도한 집단으로 판단하고 있고, 민정(民政)은 어느 정부도 성공한 정부라고 평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의 정치성향이 ‘보다 비정치성(非政治性)과 도덕성(道德性)을 지나치게 신뢰(信賴)하고 있고, 그런 유형의 대권주자를 지지하여 정권을 주었기 때문에 성공한 정부가 있을 수 없다.’ 는 것이 정평(正評)이다. 정치는 도덕 교과서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은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단군시대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치(政治)란 최선(最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악(最惡)을 피(避)한다.’는 기본 원리를 도외시(度外視)하기 때문에,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미래는 ‘실망(失望)하는 정부(政府)를 양산(量産)하게 될 것’ 이고 ‘국민의 생활은 날로 피폐(疲弊)해질 것’ 이라는 매우 자명(自明)한 결론(結論)이 될 것이다.

    정치 평론가는 물론 이에 관련된 여러 분야에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이 평가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정치 성향이 ‘비정치성(非政治性)과 도덕성(道德性)을 지나치게 신뢰(信賴)하고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국가는 도덕국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선행(先行)되어야 할 일과 선결(先決)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국민으로서의 정직(正直)하게 국민의 의무(義務)를 다해야 할 것이며 준법정신(遵法精神)이 투철(透徹)하여 불법과 탈법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최우선적(最 優先的)으로 선결해야 할 문제로, 국회의원(國會議員)과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의회(地方議會)의 의원들이 무보수(無報酬)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명예직(名譽職)이 되도록 사회(社會) 전반(全般)의 구조(構造)와 체제(體制)를 혁신(革新)을 해야 할 것이며, 이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費用)을 감당(勘當)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정당을 선택해야 하고 당원으로서의 당비를 내야하고, 지지(支持) 정당(政黨)의 정치자금(政治資金)과 선거비용(選擧費用)의 후원금(後援金)을 충분히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당지원금과 각종 선거비용을 지출하지 않을 것이며, 이 재정으로 복지사업의 부족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정체(政體)로 삼고 있는 국가 중,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西歐)의 선진 국가(先進國家)에서는, 정당정치(政黨政治)를 모체(母體)로 하여 국가(國家)가 경영(經營)이 되는 것은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 정당정치의 원활(圓滑)한 활동을 통하여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실현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적극 지원하는 것이 선진 국가의 시민(市民)의 의무(義務)이며 책임(責任)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뽑은 정권과 정당이 성공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고 신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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