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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하게 하는 일상적인 용어들(5-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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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112회   작성일Date 12-10-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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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하게 하는 일상적인 용어들(5-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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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말의 신조어(新造語)와 낯선 용어(用語).

     

    갈부(褐夫/褐父)/명사; 거친 베옷을 입은 남자라는 뜻으로, 미천한 사람을 이르는 말. 보잘 것 없음. 갈부없다; 보잘 것 없다. 너절한 옷을 입은 미천한 사람.

     

    개똥녀/명사;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변을 치우지 않았다고 추정되는 여자에게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 탑승한 한 여성이 데리고 탄 애완견이 갑자기 설사를 했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개는 닦았으나, 지하철 바닥에 떨어진 개의 배설물은 치우지 않고 다음 정거장인 아현역에서 내려버리자 결국 같은 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바닥에 떨어진 개의 배설물을 치웠다. 이 사건을 지켜본 한 사람이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의 사진과, 나중에 애완견을 데리고 내린 다음 어떤 할아버지가 개의 배설물을 치우는 두 장의 사진을 찍어 이 상황을 설명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 사진과 글은 2005년 6월 5일부터 여러 사이트에 퍼졌고,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실리면서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이 사진을 접한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사진속의 주인공에 대해 분노했다. 애완견을 데리고 공공장소에 와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도 공중도덕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사진속의 주인공에게 '개똥녀'라는 별명을 붙이고, 애완견을 데리고 탄 여성의 사진을 공개적으로 유포하여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동하기도 했다. 주인공의 홈페이지로 오해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욕설을 남기기도 했고, 실제 주인공을 흉내 내 거짓 사과문을 써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서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누리꾼들의 과도한 비난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 전후 사정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사진에 나타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고, 주인공이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라는 다른 승객들의 요구에 욕을 했다는 소문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얼굴 사진과 신상명세를 언론에 공개해서 더 이상의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망신을 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벌인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나중에는 일부 누리꾼들이 이 사진을 찍어서 올린 사람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블로그 와 뉴스 포털 사이트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터넷 시대에는 어느 누구든지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또한 이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에 이 기사가 실리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건어물 녀(乾魚物女/일본어: 干物女 (ひものおんな)); 히모노온나는 일본의 신조어로, 연애를 포기한 여성을 뜻한다. 원래는 만화 ‘호타루의 빛’의 주인공 아메미야 호타루의 생활상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는 연애를 포기하고 20-30대 (미혼) 여성을 뜻하게 되었다. 또 2007년에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타루의 빛/만화’의 주인공 아메미야 호타루의 생활상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나타난 신조어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사랑, 연애, 결혼에 머물러있던 과거 여성성과 다른 모습에 많은 직장 여성들이 공감하면서 생겨난 유행어이다. 직장에서는 완벽하고, 매우 세련되고 깔끔한 외모를 보이는 능력 있는 여성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일 처리도 빠르고 정확하다. 일이 끝나면 미팅이나 데이트를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는 츄리닝을 입고 머리를 대충 묶고 외모도 가꾸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은 채로 맥주에 오징어 등 건어물 안주로 즐겨 먹고 애완동물만을 벗 삼는 미혼 여성이다. 주말에도 피곤에 쌓여 잠만 자다 보니 점점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등 마치 건어물처럼 연애 세포가 바싹 말라버렸다고 느낀다.

    /예문- 그녀는 일에 지치어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혼자 쉬는 것을 좋아하고 연애를 잊게 되어 어느새 건어물 녀가 되었다.

     

    경기지표(景氣指標, business cycle indicator)/명사; 경기지표는 경기의 상승과 하강 국면을 미리 예상하며, 당면한 경기상황이 어떤 국면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길잡이 구실을 하는 지표로서, 경기정책의 입안과 실시를 위한 유력한 판단자료가 된다. 경기지표를 전체적인 경기변동과의 시간적 관계에 따라 분류하면, 전체적인 경기변동에 선행해서 변동하는 선행지표(先行指標), 거의 일치해서 변동하는 일치지표(一致指標), 늦게 변동하는 지행지표(遲行指標)의 3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선행지표는 노동의 투입이나 수주관계(受注關係)의 지표, 일치지표는 생산 ·건축착공 등 공급관계의 지표, 지행지표는 재고 ·설비투자율 ·인건비와 금융관계의 지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高)삐리/ 명사; 高等學生의 高와 삐리가 바쳐진 합성어로 비속어(卑俗語)이며 신조어이다.

    ‘고등학생’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삐리/명사는 국어 사전적 의미로 남사당패에서, 각 재주의 선임자 밑에서 재주를 배우는 아이. 주로 어린아이를 그 대상으로 하며 숙달이 되기 전까지 여장(女裝)을 하였다. 고삐리는 고등학생’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외에도, 중학생을 ‘중(中)삐리’, 대학생을 ‘대(大)삐리’라고 하며, 공장의 근로자들이 사용하는 은어로, 학생이나 대학 졸업자를 ‘학삐리’ 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종북 좌삐리와 영화 “복면달호”에서 차태현이 뽕삐리 역할로 뽕짝을 잘 부르는 사람으로 나와 ‘뽕삐리’란 말이 사용되었다. ‘고삐리’ 라는 동명의 만화와 영화 ‘고삐리(GoBbiRi/2011년도)가 있다.

     

    또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얕잡아 부르는 말로 ‘중딩’과 ‘고딩’이 있으며, 이 말은 초딩에서 확장된 말이다. 초딩(初 -)은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다음의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1.초등학생을 은어로 일컫는 말이다.

    2.인터넷 상에서 몰지각하고 무례한 언행을 일삼거나 수준이 떨어지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불량학생들의 수준이 '초등학생과 같다'라는 뜻으로 경멸하는 뜻으로 변용된 속어다.

    애초에는 초등학생을 가리키는 말로 가치중립적으로 쓰였지만, 컴퓨터를 일찍 접한 일부 어린이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자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넘사벽(社壁/ 四壁) / 명사; ‘넘을 수 없는 사회적인 벽’ 또는 ‘벽을 넘을 수 없는 4차원이 벽’의 줄임말이라고도 한다. 강북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여건으로 인하여 강남을 ‘넘을 수 없는 사회적인 여건의 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서갈 수 없는 불멸의 대상과 비교할 때 비교 대상 사이에 두고 사용하는 말이다. (적합한 예라 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강남> 넘사벽 >강북). ‘넘사벽(넘을 수없는 4차원의 벽)’이라는 용어 사용의 시작은, 영국의 대표적인 구릅인 비틀즈(the Beatles)의 “Mr. Moonlight”을, 20세기 팝 역사에 넘사벽의 음악이라고 평가한 이후라 생각된다. 4차원(hyperspace/초공간)은 차원이 4인 것을 가리킨다. 민코프스키 공간은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해서 4차원 시공간(four dimensional space-time)으로 되어 있다. 다른 설명으로는 4차원 시공간(四次元時空間)을 상대성이론에서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연속체(連續體).로서의 시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남들과 정신세계가 다르거나 말과 행동이 남들과 다르게 특이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4차원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라 한다.

     

    담담타타(談談打打)/명사; 연합뉴스.의 뉴스Y의 평일 오후 5시 일일프로그램으로 ‘고성국의 담담타타’로 등장하게 됐다. 원래 "담담타타"는 모택동이 국부군을 상대로 유격전(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정치적인 협상과 군사적인 타격을 병행하는 전술로 출발하였으나 북한에서 이를 모방,발전 시키면서 주로 사용하는 이중성의 공산주의 전략을 말한다. 공산주의 전략. 전술의 기본은 항상 이중성을 전제로 한다. 즉 정치회담을 하면서 배후로는 군사적 침략을 한다든지, 군사적인 침략도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한다든지, 힘이 약할 때 연합전선전술로 협상 내지는 야합한 후 힘을 길러 상대를 먹어치운다든지 등이 모두 담담타타에 바탕한 전략이며 전술이다. 좋은 예로 남북회담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장간첩을 침투시킨다든지,평화협정을 한후에 테러를 자행한다든지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협의의 전술적 의미로 보면 성동격서(聲東擊西), 좌충우돌(左衝右突)도 유사한 맥락의 용어이다.

     

    김학준(인천대 총장)의 시론에서 ‘햇볕정책의 신축성 필요한 때라는 글인 '송양지인,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의 활용/2007.07.10' 에서 이는 햇볕정책이 유연성과 신축성을 지녀야 함을 의미한다.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명백하게 군사적 도발을 하는데도 햇볕정책이란 용어에 교조적으로 집착해 미소(微笑)로만 응답한다면 그것은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유화정책으로 비판받을 것이다. 군사적으로 도발하는 경우에는, 일단 햇볕의 열기를 바짝 줄이고 강한 대응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것에 “좋아 좋아” 할 뿐인 물컹이가 아님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한반도 상황의 이중성에 비춰 가장 적절하다고 하겠다.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한반도의 상황은 대결의 현실성과 대화의 당위성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휴전선을 경계로 날카로우면서도 위험스러운 군사대결을 유지하고 있는 화약고의 얼굴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유지시켜 전쟁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협상론의 얼굴이다. 북한은 이 이중성에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의 마오쩌둥(毛澤東)식 8자전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회담에 응하면서 싸움을 걸고, 싸움을 걸면서 회담에 응하는 이중 전략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햇볕정책은 교조적으로 집행될 때 ‘담’쪽으로만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유연성을 동반하지 않은 햇볕정책은 ‘타’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이것은 모택동의 전술중에 핵심 전술의 하나이다.

    김 피터 박사(미주 감신대 초빙교수)의 2011.08.06.에 발표한 글 ‘담담 타타(談談打打)의 전술을 아는가?’의 글 중에

     

    ‘담담 타타(淡淡 打打) 전술을 아는가? 이것은 모택동의 전술중에 핵심 전술의 하나이다. 즉 '회담 혹은 대화를 하면서 뒤로는 치고', 또 '앞에서 치고 다음에는 회담을 하면서' 얻을 것을 얻어 낸다는 것이다. 북한은 바로 이 ‘모택동’의 ‘담담 타타’ 전술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이라는 강한 ‘타타’를 사용한 후에 지금은 ‘담담’ 이라는 전술로 ‘모드’를 바꾼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담담타타’ 전술의 원조인 중국이 원격조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회담을 할때, 처음부터 회담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진정한 대화를 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이다. 회담도 하나의 전쟁이나 전투 수단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양보나 대화는 없다. 오직 승리 아니면 패배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과거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 동결 해제를 받았을 때나,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해제 받았을 때, 그들은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의 지도아래 미 제국주의자'들과 싸워 결국 '승리'했다는 표현을 쓰며 자축을 했었던 것이다.

     

    대공황(大恐慌;Great Depression)/명사; 조선일보 土曜섹션 Weekly BIZ(1면/2012.10.20)의 80년 만의 경제 위기… 세계 석학 4명에게 듣는 해법/ ‘침체 10년 이상 간다. 살려면 빚을 줄여라.’에서 송의달 Weekly BIZ 에디터 의 글을 보면 앞으로의 세계경제를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 4-5년 안에 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5개국에서 최소 3개국이 국가부도를 낼 것이다. 이 중 아일랜드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케네스 로고프·하버드대 교수).

    "세계경제는 10점 만점에 커트라인인 6점에 걸려 있다. 이 위기는 20년 넘게 지속될 수 있다"(린이푸·베이징대 교수).

    "중국은 2014년부터 6%대 성장을 할 것이며 매년 성장률이 더 추락할 것이다"(리처드 쿠퍼·하버드대 교수).

    빚더미에 눌린 세계경제가 불확실성의 수렁에 빠진 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세계 1위와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경기 부양을 위해 각각 8500억 달러와 4조위안의 자금(양국 합계 약 168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경제 회복 조짐조차 불투명하다. 오히려 글로벌 교역량이 줄고 실업률은 치솟고, 중산층 붕괴와 부(富)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암울한 모습이다. 세계화와 테크놀로지를 추동력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고(高)성장을 20년간 질주하며 '무한 성장'의 기대감에 충만하던 세계경제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고, 장기 저성장 또는 무(無)성장의 공포가 정부와 기업, 개인을 짓누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2027년까지 0 %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번 위기를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후 80여년 만에 찾아온 초유의 사태라고 일컫는 이유이다. 라고 약간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원래 대공황 [Great Depression, 大恐慌]이란 1928년부터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경제 공황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즉 검은 목요일에 의하여 촉발되어 전 세계로 확대된 경제 공황을 의미한다. 1929-39년 무렵까지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산업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지속된 경기침체를 말한다. 이로 인하여 1920년대의 미국 경제는 호황을 이루었던 경제는 기업들의 도산, 대량 실업, 디플레이션 등이 초래되었다. 이때부터 경기는 계속 후퇴를 거듭해, 1932년까지 미국 노동자의 1/4이 실직했다. 불황의 영향은 즉시 유럽 경제에 파급되어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산업국가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또 나라마다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외국상품 수입에 반대하는 정책을 세움에 따라 1932년 무렵 세계무역의 총 가치는 반 이상 줄어들었다. 불황은 정치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극단세력이 확산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위신이 떨어지는 중대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개별 국가 경제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고, 자본의 흐름도 자유로웠기 때문에 공황은 세계적 규모로 짧은 시간 내에 확대된 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제는 그 당시 아직 발전되어 있지 못하여 피해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본주의는 대공황에 의하여 1920년대의 황금기의 종언을 고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에 전체주의로 기울지 않은 나라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 대량 실업과 불황에 시달렸다. 전쟁은 인력 및 군수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기술진보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경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는 세계경제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 주었다. 전 세계의 상품 가격은 1926년 이래 계속 떨어졌고,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나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수출 국가들의 유럽 및 미국산 제품에 대한 구매력이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임금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구내 시장이 타격을 받았다. 국제 금융은 1차 세계대전의 부담으로부터 전혀 회복되지 못했다. 한편 1차 세계대전은 특히 유럽 이외 지역에서 급격한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으나 그것을 지탱할 수요의 증대는 없었다. 그 절충안으로 고정 환율제와 자유 태환제(금 태환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세계무역을 복구하기에는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대공황에 뒤이은 유동성 쟁탈전 속에서 자금은 거꾸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갔고 그렇지 않아도 깨지기 직전이던 유럽 경제는 박살이 났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력의 4분의1이 실업상태였다. 가격과 임금이 폭락하고 산업 생산은 독일의 경우 1929년의 53퍼센트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세계무역은 1929년의 35퍼센트로 침몰했다. 불황은 정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극단세력이 확산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위신이 떨어지는 중대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에 전체주의로 기울지 않은 나라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 대량 실업과 불황에 시달렸다. 전쟁은 인력 및 군수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기술진보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경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전쟁 전승국 미국은 1920년의 대전 후 공황을 거쳐 빠르게 세계의 중심적 자유주의국으로 대두했으며, 전쟁터였던 서유럽 여러 나라에 반해,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생산력과 자본력의 격차를 보이면서, 1922년에는 상승 국면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밑받침한 것은, 주로 미국의 전시 이득에 따른 과잉 자본을 서유럽·중남미로 수출한 것과, 국내 성장산업인 내구(도소비율 1%)소비재(자동차·가전제품 등) 및 건축에 대한 투자이고, 저렴한 구입신용(소비자 신용)도 이에 유용했다. 그 반면에, 그 1920년대에는 일관해서 5% 이상의 실업률을 가진 구조적 실업(構造的失業)도 분명히 존재했고, 또한 농업·면방직·피혁·석탄·조선 등 불황산업도 유지하고 있어서, 성장과 정체가 병존하는 형태에서의 호황이었다. 다른 한편,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뒤로는 세계 제1의 농업국이 되었으나, 유럽 농업의 회복과 함께 세계적으로 생산과잉이 표면화하였고, 1920년대를 통하여 세계 농업은 만성적 불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증권 시장의 투기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이유는 1차 세계대전 후 당시 월가에 사는 은행재벌들이 돈을 벌자는 식의 투기(헤지 펀드)로 인해 증권시장의 붕괴로 기업들의 신뢰 하락과,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인해 실업자가 생기고 그로 인해 소비심리 악화 소비 감소 등의 악순환으로 대공황이 일어났고 나라들은 이로 인해 은행재벌들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버린 꼴이 되었고, 이윽고 일어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대공황도 끝이 났다.

    채권국으로서의 미국의 과잉한 민간 달러 자금의 대외 유출은 주로 서유럽 특히 독일로 흘러 들었고, 독일의 부흥자본에 기여했는데, 그 취득된 달러 환어음이 독일의 배상지불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것을 취득한 영국·프랑스는 미국에게 전시 채무를 반환한다는 환류순환(還流循環)이 이루어짐으로써 1920년대의 호경기가 유지되었다. 또 하나는, 중남미·캐나다에 투하된 미국 민간 자본이 영국에 빨려 들어가, 미국에 대한 영국의 무역 적자 지불에 충당하게 되는 연쇄상황(連鎖狀況)이 되었다. 이리하여 1920년대의 경기 상승과 재건금본위제(再建金本位制)가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모든 면에서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 및 1930년대의 만성불황(慢性不況)의 기초조건을 만들었다.

    1920년대의 미국의 이 경기 상승을 지탱한 과잉자본은 경기의 진행과 함께 유휴 과잉자본의 주식투자·토지투기(플로리다가 가장 성행했음)로 되었고, 1920년대 말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는데, 이미 과도신용(過度信用)과 과도투기가 누적되고, 자동차·건축, 기타 내구재에 과잉이 초래되고 있었다. 이리하여 먼저의 미증유의 주식시세 대폭락을 계기로 심각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1930년 12월 11일 뉴욕의 유력한 은행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은행이 파산해 50만 명이 예금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1931년 한해동안 2,3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으며, 1930년~1933년까지 매주 평균 6만 4000명의 실업자가 쏟아져 1933년에는 1,600만 명에 이르렀다. 특히 경기의 규정적 요인(規定的要因)인 건축·철강·자동차의 감퇴는 뚜렷했고, 체화(滯貨)의 격증, 생산의 축소, 기업도산의 속출, 실업자의 증대, 그들 하강 요인의 누적적 상호파급(累積的相互波及)으로 인하여 경제활동의 마비를 일으켰다. 건축 활동의 축소가 훨씬 냉엄한 사태로 전개된 까닭은, 그 내용기간(耐用期間)이 매우 길어졌기 때문인데, 1930년대 전반(前半)까지도 계속되더니, 드디어 그것이 이 대공황이 장기화하게 되는 커다란 요인을 만들게 되었다.

    금융 공황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은행인 크레디탄슈탈트 은행을 1931년 5월에 파산으로 몰아넣었으며, 이 여파는 독일·영국으로도 파급되다가, 1931년 9월에는 영국, 1933년 3월에는 미국이 금본위제도에서 이탈한다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본위화(本位貨) 붕괴에까지 이르렀다. 이 포괄적인 대공황은 33년 여름에는 바닥을 드러내 보이면서 불황으로 옮겨가고야 말았다. 결국 대공황은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장기 정체를 나타냈으며, 호황으로의 회복을 보이지 못하다가, 그 뒤의 만성적 불황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때까지 전례도 없었던 ‘자본주의의 자동회복력 상실(自動回復力 喪夫)’을 나타내, 순조로운 성장력을 보여주는 사회주의와 대비되었다. 미국에서는 이의 극복을 위하여 국가에 의한 유효 수요의 창출(創出), 완전 고용, 금본위제 정지(停止)에 대신할 관리통화제도(管理通貨制度)를 주창한 “케인즈 정책”이 주창되었다. 미국은 이 케인즈 정책을 일부 도입한 뉴딜 정책을 취했으나, 세계의 대세는 영국의 스털링 특혜제도 성립을 기회로, 세계무역의 블록화(化)와 그것에 대항하는 파시즘화· 국가독점 자본주의화(國家獨占資本主義化)를 탄생시켰으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준비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대공황은 발생지인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경제 협력을 맺거나 수출, 수입을 하고 있던 세계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그나마 일으켜 세운 경제마저 무너져 큰 혼란을 겪게 되었고 16 ~ 30세 연령층의 남자 중 절반이 실업자였고 1932년까지 6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러한 상황에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출범하게 된다.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재로에서는 조선소가 폐쇄되어 일자리를 잃은 200명의 남성들이 시위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1931년 9월 파운드화의 금태환을 중지해 금본위제도를 폐지했다. 브라질에서는 당시 전 세계 커피의 3/4을 생산 및 수출해 부를 축적한 '커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어 잦은 쿠데타와 독재 등 많은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된다. 소련은 대공황으로 그리 큰 타격을 입진 않았고, 1928년에 발표한 스탈린의 5개년 계획으로 곤란을 겪던 자본주의 국가들 보다 높은 성장을 이루었으나, 1933년에는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일본 역시 도쿄 증권 거래소가 폭락하고 629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전쟁 물자를 만들기 위한 철이 부족하자, 철광석이 풍부한 만주를 침공하였다. 중부 유럽에서는 오랜 지주 구실을 하던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탄슈탈트 은행이 1931년 5월 파산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제가 엄청난 파탄에 빠졌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29년 10% 미만이던 실업률이 1932년에는 30% 이상으로 급증했다. 소설 가시나무새 들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轉落)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공황은 세계자본주의 역사에 중대한 사건이었고 자유방임형 시장경제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 후 세계 각국은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국가가 계획경제를 통해 경제 거시적 환경을 적절히 조성하고 시장경제에 적절히 개입하여 거시적 정책을 통해 경기과열과 불황시마다 적절한 정책을 취하는 것이 유효하고 효과적이라는 경제이론이 설득력을 높였다. 이는 순수 자본주의에 대한 차별성을 갖기에 수정자본주의 또는 혼합자본주의라고도 한다. 서구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겪을 때 소련에서는 계획경제를 통해 급속히 공업화에 성공한 영향도 있어서 일정정도의 계획 경제를 자본주의에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이론은 더 매력적인 이론으로 보이기도 했다./ 브리태니커와 위키 백과전과 관련 자료들을 종합 총정리.

     

    떼창/명사; 떼창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공연자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것 즉 합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외국 가수의 국내 공연에서 청중이 공연자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떼창(合唱)이라 하여 일부에서 사용되었으나, 2012년 10월 4일 오후 10시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싸이가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공연한 ‘강남 스타일’에서 강남스타일의 노래와 말 춤으로 서울광장에 모인 8만 관객(경찰 추산)은 목청껏 합창하며 집단으로 어울렸다. 고 연합뉴스에 실시간 뉴스로 보도함에 따라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공연에서 관객들의 말 춤과 떼창을 지켜보던 싸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감격하여 약속대로 '상의'를 벗어던지고 말 춤을 추면서 노래했다. 또 이 공연에서 관객들이 "싸이"의 말 춤을 같이 춘 것을 ‘떼무(群舞)’라 한다. "싸이"를 연호하는 열기는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응원전에 버금가는 듯했다.

     

    돌싱/명사; 국어인 돌아오다. 의 돌과 영어인 싱글(single)의 싱이 합쳐진 합성어로 결혼했다가 사별(死別)하거나 이혼으로 인하여 독신으로 돌아온 사람을 가리킨다. 순(純)싱은 순수한 독신자로 딸린 부양가족이 없는 혼자 몸의 싱글을 말하며, 원(原)싱은 원래부터 독신자이고, 별(別)싱은 별거중인 싱글을 말한다.

     

     

    막장/명사; 막장의 사전적 의미는 광산에 있어서 노천(露天) 채굴(採掘)의 마지막 갱도(坑道)의 작업장을 막장이라고 한다. 광석이나 석탄을 채굴하는 곳을 채굴막장이라 하고, 갱도를 만들기 위해 암석 ·석탄 속을 굴진(掘進)하고 있는 곳을 굴진막장이라 한다. 굴진막장이나 채굴막장은 모두 낙반을 방지하기 위해 목재 ·철재 등을 사용해서 지보(支保)를 해야 하는데, 막장이 매일 전진하기 때문에 한 곳의 지주 사용기간이 짧으므로, 쉽게 시공할 수 있고 회수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해야 한다. 우리들이 쓰는 막장 드라마에서의 막장이란 것은 쉽게 말해서 "인륜을 저버린 부도덕한 내용으로 갈 데까지 갔다. 는 의미를 갖고 있다.막장 드라마’ 라고 하는 것은, 불륜, 살인, 폭력, 허무맹랑하고 반인륜적인 행위 등등 보기 안 좋은 내용들로 가득 찬 드라마를 말합니다. 불륜, 폭력 등의 내용이 없더라도 극의 전개가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와 내용도 없고 좀 말이 안 되게 억지스럽고 자극적이고 극단적이고 현실성이 없이 갈 데까지 간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한다.

     

     

    문화지체(文化遲滯; cultural lag)또는 문화낙후(文化落後);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William Fielding Ogburn)이 “사회변동론; Social Change. 1922)”에서 오그번은 문화를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을 포함한 물질문화(material culture)와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가치관, 신념, 규범, 제도 및 사회적 상호 작용 양식 등을 포함하는 비물질적인 적응적 문화(adaptive culture)로 구분하고, 기술 변화의 급속도와 양적인 누적으로 인하여 비물질 문화의 변화와 적응은 항상 물질문화의 변화의 변동속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 현상을, 또는 발달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을 문화지체라 하였다. 그리고 현존하는 여러 문화요소들을 새롭게 결합하는 것이 문화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화요소들의 결합은 문화의 한 측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만 또다시 다른 문화영역에의 적응이 필요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적응이 지연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문화지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역사의 장기적 과정에서는 문화지체현상이 파악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특정 시기에는 사회를 완전히 붕괴시킬 정도로 심각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예를 들면 산업생산과정의 중요한 혁신이 경제·정부, 그리고 한 국가의 사회철학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이러한 혼란으로부터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에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문화변동의 속도와 관련해서 본다면 이 2가지 영역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실제로는 물질적인 영역에서의 변화가 앞서기 때문에 정치·경제·종교·윤리·행동양식 등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나 가치관의 변화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빗물질 문화가 물질문화의 변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심각한 사회적 부조화현상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기타 사회 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하여 획득된 모든 능력이나 습성의 복합적 전체이다. 문화는 역사적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드는 집합적 기억을 의미한다. 문화가 사회적 집단에 의해 실현되는 생활양식이라면 문화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느냐 하는 것을 교시한다. 따라서 개인은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문화의 전달성에 의하여 성장하며 사회의 문화를 습득하지만 개인은 문화를 습득함과 동시에 문화를 변동시키고 문화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이다.

    문화지체 또는 문화낙후는 상위문화가 하위문화에로 전이(轉移)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문화의 전이는 동, 서양의 지역 간에, 국가와 국가간에, 사회와 사회 간에, 개인과 개인 간에,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하여 항시(恒時) 일어나는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기타 자료에서 보완정리.

     

    민주주의(democracy; 民主主義)/명사; 국민이 권력을 가짐(主權在民)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 또는 그러한 정치제도를 통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으로,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집약된 의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복수(複數) 정당제(政黨制)를 바탕으로 정당정치를 하는 것이 핵심으로 대의정치(代議政治)가 기본이다. 그러므로 의회 민주주의(議會民主主義)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로 하여금 의회라는 기구를 통해, 국정 운영의 힘을 실어 주는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영어에서는 democracy, democratism, democratic principles 이라 하고,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로 나누며, 의회민주주의는 여러 형식의 민주주의가 있어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의회[사회/인민/대중/민족적/교도〕민주주의(parliamentary[social/peoples/mass/national/guided] democracy)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의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와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인민에 의한 지배’의 의미가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 민주주의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다수지배의 원칙에 따라 전체 시민에 의하여 행사되는 통치형태, 흔히 ‘직접 민주주의’라고 알려져 있다.

    둘째.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일반 시민들이 선출하고 일반 시민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대표자들에 의해서 행사되는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

    셋째.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반 요소와 더불어 시민들이 언론, ․출판,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헌법상의 제한이 마련되고 있는 자유주의적이고 입헌주의적인 민주주의.

    넷째. 사유재산의 불공정한 분배에서 파생하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정치적․사회적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담은 사용되고 있다. 넷째 유형의 경우는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라고 알려져 있지만, 위의 3가지 유형이 갖고 있는 의미의 민주주의 원칙은 배제되어 있다고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인민에 의한 지배’를 위한 민주적인 제도를 의미하는 용어인데 한국에서 민주주의라 잘못 이해하고 있어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항상 심하게 증폭(增幅)되고 있다. 또 하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 정권을 왜 잘못된 정권이라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공식 명칭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한다.( The official name of North Korea is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略字로는 DPRK)." 북한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정체를 가진 정권이라면, 민주주의의 꽃인 복수 정당제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노동당 일당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정체성이 없는 국가라는 것이다. /국어와 영어사전과 기타 관련 자료에서 발췌 요약 정리함.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명사; 유동성 함정(流動性陷穽)은 사람들이 투기적 자산을 모두 팔아 앞으로 수익률이 올라가면 투기적 자산을 살 목적으로 현금(유동성)을 대기시켜 놓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자율이 매우 낮은 경우 채권보다는 현금이 절대적으로 선호되는 상황이 발생해 함정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투기적 화폐수요와 총 화폐 수요가 이자율에 대하여 완전 탄력적(탄력도 0)이 되어 화폐수요함수가 수평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유동성함정에서는 통화량증가는 투기적 화폐수요만 증가시킬 뿐 어떤 변수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어 금융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없게 된다.

    1920년대 세계경제 대공황 때 미국 정부가 돈은 시중에 풀었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음에 따라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가 제기한 학설이다. 케인스는 한 나라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을 때는 금융·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기준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금리가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은 저축을 더 하기보다는 소비를 늘리게 되면서 경기가 회복되고 소비와 투자가 늘어 경기가 좋아지며, 주가 상승과 통화가치의 평가절하가 수반되어 부의 효과와 수출을 통해 경기가 회복된다. 유동성함정 현상은 금리(이자율)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자율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이자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여, 현금 보유를 늘리고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대표적 사례로는 일본은 장기불황 당시, 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유지하는 저금리정책을 오랫동안 실시하였으나,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통화량 증가분이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등 장기침체를 지속되었다. 일본은 제로금리 정책으로 기업이나 개인들이 은행으로부터 손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여 경기부양을 유도하려고 하였으나,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었다.

     

    익명성(匿名性; anonymity)과 익면성(匿面性; faceless)/명사; 표면적(表面的)으로는 ‘이름을 감추는 것’과 ‘얼굴을 들어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특히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신분(身分)이나 정체(正體)을 감추고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악행(惡行)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危險)한 행동(行動)이다. 이런 현상(現狀)은 현대사회에서 지역, 혈연적 결합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볼 때 사회통제가 미치지 않는 도시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중화(大衆化) 현상의 하나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병리현상으로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의 대표적인 사례(事例)이다. 자신을 알고 있는 집단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특정 다수인들의 일원이 되어 개인의 행동이 감추어지게 됨으로서 자기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도 피할 수 있게 되는 현상을 가져 온다. 자신의 선행(善行)이나 악행(惡行)이 군중(群衆) 속에 감추어지게 되어 '남들이 나를 모를 것이다'는 생각으로 쉽게 생각하여 행동하기 쉬어진다. 인터넷에서는 사이버 테러의 하나이다.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을 ‘집단(集團)의 거대화(巨大化), 매스미디어의 발달, 분업(分業)의 세분화(細分化), 사회적 이동(移動)이나 격화(隔化) 가운데 도시사회의 성원은 구성의 톱니바퀴로서, 거대한 집단이 산출(産出)하는 권력(權力)에 의하여 부득이 획일적(劃一的) 행동양식(行動樣式)을 취하게 된다. 또한 면식(面識) 있는 집단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특정(不特定) 다수인(多數人)들의 일원(一員)이 되어 개인의 행동은 감추어지게 되고 자기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익명성이 진행되고 대중화를 특징짓는 조건의 하나가 된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전손차(全損車)/명사; 전손(全損;total loss)이란 원래 수산어업의 전문용어로 해상 보험에서, 해난 등에 의해 선박이나 적재화물이 침몰 따위로 모두 없어져 버렸거나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의 손해를 의미한다. 이 말이 파손된 차량의 매매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일어나게 되자 알려진 용어이다. 사고차량 전손처리 차량 사고 후 사고 수리비가 차량 가액보다 많아 수리하지 않고 차량 가액(중고시세)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또한 전손 처리된 사고차량은 보험사가 경매 등을 통해 중고매매업자 등에게 팔아 일부 자산을 환수한다. 차량정비소에서 전손 처리된 차량을 정비해 다시 매매하는 것을 전손차량이라 한다. 전손 처리된 차량의 줄임말이 전손차이다. 전손차란 충돌로 인하여 심하게 파손된 차량, 침수차량, 화재차량 등등이 이에 해당된다. 전손차량은 사고 위험도가 매우 높으므로 매매에 유의해야 한다. 2011년 6월 29일에 ‘추적 60 분’ 프로에서 방송 보도된 바에 의하면 전국에 전손차량이 약 20~30 만대 정도가 유통되고 있다고 했다. 가히 충격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흑색선전(黑色宣傳; black propaganda, malicious propaganda, covert propaganda.)/명사;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하여 상대방을 모략하고 혼란하게 하는 정치적 술책 또는 정치적 비밀선전을 의미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정치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마타도어(Matador)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적국(敵國)의 국민이나 군인으로 하여금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하거나 사기를 저하시켜 정부나 군대를 불신하게 함으로써 국민과 정부, 군대와 국민 간을 이간(離間)할 목적으로 악용하기도 하며, 유령단체(幽靈團體)의 이름이나 타 정부, 타 단체의 이름을 도용(盜用)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고 운용(運用)하는 비정상적, 비합법적인 선전행위로 이런 행위에는 여론 조작, 여론몰이, 옐로 저널리즘(黃色言論 또는 宣傳) 등이 있다.

     

    여론 조작은 개인이나 집단이 개인의 사적(私的)인 목적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 왜곡이나 허위 사실 등을 통해 여론을 왜곡시키는 행위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조작하는 행위가 여론 조작의 예가 될 수 있다. 여론몰이(與論몰이)는 이것 또한 여론의 조작과 같은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개인의 사적(私的)인 목적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방송, 신문, 인터넷 등의 언론을 이용하여 선전하는 행위로서, 공적(公的)인 이익에 부합(附合)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며,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언론플레이(言論 play)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여론몰이의 주제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위인 것, 또는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일종의 사기 행위이며 여론 조작으로 볼 수 있다. 언론의 과장 보도도 여론몰이로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 가치관은 변할 수 있는 것이어서 여론몰이라고 치부되었던 행위가 나중에는 공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였던 것으로서 인정받을 수도 있다. / 위키 백과사전과 각종 백과사전 그리고 관련 자료들을 재정리함.

     

    나가는 말./생략.

    당황하게 하는 일상적인 용어들(5-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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