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아무에게나 농락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6)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아무에게나 농락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551회   작성일Date 12-08-31 22:43

    본문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무에게나 농락(籠絡)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6)

     

    아프리카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아나키공산주의, 의회공산주의, 자율주의, 불교사회주의, 기독교사회주의, 이슬람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국제사회주의, 노동조합주의, 유토피아사회주의, 길드사회주의 이 중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정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사회정치적 또는 이론적 움직임들은 다음과 같이 세분화 할 수 있다.

     

    의회공산주의, 좌파공산주의, 레닌주의, 룩셈부르크주의, 마오이즘(모택동주의),마르크스주의적인본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주체사상(김일성주의), 호치민주의, 생디칼리즘 몇 가지 "사회주의"의 형태들은 더 급진적인 세력들에게는 사회개량주의 또는 수정주의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다.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진화론적 사회주의, 페이비안주의, 민주사회주의, 대중사회주의, 중국의 특색사회주의 외 다양한 시장사회주의, 베른슈타인주의, 카우츠키주의, 티토주의, 노동시온주의 등이 있다.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다른 사상 "자유주의", "보수주의" 또는 "민주주의" 등의 정치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예는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을 보라)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은 역사적 사회주의 움직임과 거의 관련이 없는, 또는 사회주의를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반대하는 조직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였다. 실례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탄압한 파시즘 정당인 나치당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자신의 공식 명칭에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용어 사용이 오직 선전적 의도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이들은 상황에 따라 노동자 옹호 또는 기업 옹호 포지션을 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주의라는 표현의 적대적 사용몇몇 조직들은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다른 사상을 참고)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나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들을 사회주의와 상치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동시에, 이 표현은 우파 정치가들이 자신보다 덜 보수적인 주체를 깎아내리려고 할 때 사용된다. (예: 공공 보건을 "사회주의 의료"라고 부르거나 미국 민주당을 "사회당"으로 부르는 것). 본 문서에서 사용하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될 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회주의에 대해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종교에 반대하는 이론으로 잘못 생각한다. 물론 옛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의 전통교회인 정교회의 주교들과 사제들을 탄압하는 등 사회주의자들이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것은 맞지만, 이는 민중을 해방하고 민중의 편에 서야할 종교가 오히려 지배계급의 편에 서서 민중의 아편노릇을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북한에서 종교말살정책을 실시하여 종교인들이 남한으로 이주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사회주의에서는 종교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뿐이지, 종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주의자였던 장 조레스는 인간을 지배하는 하느님은 없다고 했지, 하느님은 없다고 하지 않았으며, 엥겔스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 사회가 건설된다고 해도 종교는 현재 상태 그대로 놔두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반종교사상, 종교=반사회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나.) 공산주의란 어떤 사상인가?

    공산주의 (共産主義, 러시아어: Коммунизм, 영어: communism)는 생산재의 공공 소유에 기반으로 한, 계급이 없이 평등한 범국가 개념의 사회 조직에 관한 이론, 또는 그러한 체제를 목표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정치 운동들을 일컫는다. 또는 사유재산제(私有財産制) 대신에 재산의 공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계급 없는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사상 및 운동이라고 하기도 한다. communism의 어원인 '콤무네'(commune)는 다른 사람과의 나눔, 사귐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공동체의 재산이 구성원들 모두에게 속하는 사회제도를 말하기도 하고. 라틴어 'communis'는 '함께하는'이라는 뜻이고, '공산(共産)'은 함께 소유하고 생산한다는 뜻이라 하기도 한다.

    재산의 사유가 빚어내는 도덕성의 흠결(欠缺)을 간파하고 공유재산제를 바탕으로 보다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공동체를 일구려는 소박한 공산주의의 이상은 인간이 정치적·사회적 사색을 시작한 때부터 싹튼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산주의 사상의 기원은 플라톤 의 〈국가 The Republic〉, 고대 유대인들의 에세네파(派), 초대교회의 교리, 근대 초 토머스 모어 의 〈유토피아 Utopia〉, 요한 안드레에의 〈그리스도의 도시 Christianopolis〉 등에까지 소급된다. 이론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19세기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논의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정치사상에 그 기원을 둔다. 인류의 초기 사회 조직은 "고대의 공산주의"라 정의될 수 있겠으나 정치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일반적으로 아직 형성중인 미래의 사회 체계를 제시한다. 공산주의 개념이 가지는 다양한 용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첫째, 19세기 초반 '사회주의 ' 개념이 등장할 때까지 공산주의는 고대 이래 맥을 이어온 재산공유제 원칙을 가리켰으며 이는 곧 사유재산제도의 비판을 의미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공산주의란 인류 역사 최후의 단계인데, 민중들은 계급이 소멸하고 생산력이 극도로 확대된 이상사회에서 의욕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20세기에 새로이 첨가된 의미 내용으로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내지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하여 특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산주의라고 한다. 넷째, 마르크스 이전의 프루동주의처럼 혁명적 성격이 미미한 것을 사회주의라 하고 블랑키주의 등 정치적·혁명적 성향이 짙은 사상을 공산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 공산주의자라 부르는 공동체들 사이에는 상당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마르크스주의)와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주의)의 사상에 근접하다고 인식되는 일련의 분파들은 20세기 초 이후 국제 정치계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이에 관하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참고 요망.)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계급투쟁은 핵심적인 역할을 지닌다. 이에 따르면 공산주의 체제의 형성은, 자본가 계급(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이)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의 최 정점(最頂點)이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서 공산주의 생산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는 프롤레타리아 민주"라 불리는 과도기적 기간이 불가피하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형성되는 공산사회는 역사적으로 실현된 적이 없으므로 하나의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공산당 체제하에 있는 정치경제적 사회를 일컫는 일에 흔히 사용된다.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유럽 전역에서 사회당의 결성을 부채질 했으나 이들 당의 정책은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이른바 "개량"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예외였다. 당내 분파인 볼셰비키가 레닌의 지도 아래에 1917년 혁명을 일으켜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국가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1918년에 당(黨)은 이름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으로 바꾸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는 혁명을 통한 사회변혁을 주장한다는 의미로, 사회주의는 빈부의 격차에 반대하여, 인간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이해되었다. 10월 혁명이 성공한 이후 해외의 수많은 사회당들은 공산당으로 변하고 소련 공산당과 다양한 종류의 관계를 맺었다. (국제 공산주의를 참고바람.)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막 후 스스로를 공산주의라 칭하는 체제들이 동유럽에 들어섰다.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그 해 10월 1일 중국을 건국하였다. 기타 사회주의 정부 형태를 채택한 제3세계 나라들 중에는 쿠바, 북한, 베트남, 라오스가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 전 세계의 1/2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살게 되었다.

     

    정부 지원자본주의 국가들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전파를 막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는데 이 중 미국을 대표로 정치경제학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필리핀, 대한민국, 중화민국, 베트남 공화국 등지에는 미국의 전면적 후원을 등에 업은 강력한 국가주의 정부가 들어서 반공산주의 교육을 강화하며 국내 진보사회운동 세력들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며 정치계에서는 극단적인 반공주의로 불리는 매카시즘 등으로 진보 진영 분열을 꾀했다. (자세한 것은 코인텔프로를 참고요망.) 이러한 반공주의는 미국에서도 극심하였다. 1950~60년 대 이후 미국의 공산주의 탄압은 겉으로는 공산주의자와 간첩 추방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뉴딜정책 관련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힘없게 하려는 미국 공화당의 정치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미국정부는 지적 반공주의 그러니까 반공주의 지식인들의 활동을 CIA에서 거액보조금으로 키우는 방법으로 정치와 외교문제에 대해 자유주의 견해를 주장하는 미국 내 자유주의자들의 수를 급감시키기도 했다. 매카시 광풍이 1954년 막을 내린 이후에도 미국 내 공산주의 탄압은 계속되어 미국 지식인 사회는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는 미국 지식인사회에서 활약하던 진보주의자들은 물론, 공산주의자들과 지지자들이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출판계도 마찬가지여서 미국 출판사 편집자들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진보적 작가들의 책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출판인들은 유럽 출판계와 협동하거나, 다른 출판사에서 외면 받은 작가들과 계약하는 등 공산주의 탄압으로 침체된 미국 지식인 사회를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그 실례로 미국 랜덤하우스 계열사였던 판테온 출판사는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P. 톰슨의《영국노동계급의 형성;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es》, 에릭 홉스봄, E. H. 카 등의 저서, 미국 노예제도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노예제도의 정치경제학; The Political Economy of Slavery, 유진 제노비스 저》등을 출판하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공산당 등의 서구의 공산당들을 통칭(通稱)하여 유로공산주의(Euro-communism)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소련 특히, 스탈린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이며 무조건적인 지지의 전통에서 분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당들은 프랑스, 러시아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의미 있는 유세 득표율을 거두어 프랑스 공산당의 경우 1970년대 프랑스사회당과 함께 7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소련의 위성 국가들의 붕괴 이후 유럽에서는 프랑스의회에서 공산당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등, 공산주의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졌다. 오늘날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은 여전히 공산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요즘 들어서 중국, 베트남 등은 공산국가가 아닌 개발독재 국가로 평가받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닌 ‘왕정(王政)’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여러 분야에서의 비판의 핵심은,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적 체제로서,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를 무시한 체제이다. 개인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공산주의 체제는 낮은 생산성과 개인의 불행이 만연한 체제가 되었다. 한편,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의지와 사회의 의지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독재자"라는 언급으로 공산주의의 내적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공산주의의 역사적 단계론은 근대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레닌주의에서부터 잘못되었다. 본래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국가'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권위체임에도 불구하고, 레닌주의는 국가를 절대화시켰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문제로 일반적으로 스탈린주의는 공산주의의 한 분파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일부 트로츠키주의(국제 공산주의)에서는 스탈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닌 군국주의의 한 변형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제기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한 공산주의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계급이 생산수단을 공동소유하고, 생산물의 공동소유 및 분배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공산주의는 본래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 급진적 풀뿌리 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벌어진 러시아 내전의 과정 이후, 노동자 계급의 생산수단 공동소유라는 공산주의의 기본 원리가 크게 퇴색되고, 병영국가적인 모습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대공황을 극복하고, 큰 폭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자, 대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공산주의의 전형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스탈린에 의해 권력에서 쫓겨난 트로츠키마저도 자신의 저서인 "배반당한 혁명"(Revolution Betrayed)에서 1930년대 소련의 사회체제가 왜곡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소련은 노동자 계급의 공산주의 국가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주의 소수파였던 국제 공산주의 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은, 소련에서 민주주의적 측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점, 공산주의적 선동구호가 난무한다는 점, 스탈린을 위시한 소련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을 독점하면서 소련의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스탈린주의의 소련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군국주의 사회라고 규정하였다. 즉, 국제공산주의경향에 있어서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유럽과 미국의 정부가 국내외의 자본 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크게 개입한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을 북한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남북한이 동일한 5개년 경제 개발 계획을 세우고, 강대국의 원조 하에 정부 주도의 산업화를 벌였던 것(남한의 새마을 운동과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있다. 북한의 산업화 운동이 소련 원조에 기대다가 결국 비효율적으로 실패한 점, 그에 반해 대한민국의 새마을 운동은 수출 주도형 역동적 산업화로 경제 대국으로의 진입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바탕이 다르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은 합의된 적이 없으므로 연구자의 개별적인 견해가 다양하므로 여기에 기술된 내용은 일반적이긴 하지만, 어떤 연구자의 개별 견해일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경제적이고 학술적인 공산주의의 의미가 아니라 왜곡되고 적대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한국 전쟁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으로, 한국 전쟁 발생 20년 전후로 출생한 사람들(2010년 기준으로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남북한 대립의 상황으로 인해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적대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경제체제가 아닌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오해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북한의 정치 경제 권력이 김일성, 김정일 일가에 독점되는 독특한 시스템과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정권들을 거치면서 공산주의는 기성세대들에 의해 자유 민주주의의 반의어인 것처럼 쓰였다. (ex: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이는 공산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이며, 과거 공산주의 정부들이 민주적이지 않았던 것과는 상관없이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댓말이 아니라 학술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 실례로 옛 동독의 정식국명은 독일민주공화국(DDR)이라 하였으며, 북한의 정식국명은 실제 민주주의의 실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라는 독특한 북한의 정치 시스템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대한민국의 군인 대통령 시대를 지나 사회가 선진국식 민주화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점차 진행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상당히 없어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내에서 공산주의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보수나 진보를 떠나서 모두 부족한 편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대표적 인물. 카를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와 공동 작업. 쥘 베른슈타인: 비폭력적 사회주의를 최초로 주창한 인물. 블라디미르 레닌: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인물. 베니토 무솔리니: 사회주의자였으나 1919년을 기점으로 우경화됨. 파시즘의 창시자. 레온 트로츠키: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 주도. 이오시프 스탈린: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의 지도자가 됨. 좌파 파시즘의 대표적인 사례. 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 혁명의 시기에 독일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함.

    안토니오 그람시: 러시아 혁명의 시기에 이탈리아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함.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을 주도함. 에르네르토 체 게바라: 남아메리카 대륙의 전설적인 공산주의 혁명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의 2세대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 동독의 마지막 지도자.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지도자. 덩샤오핑: 중화인민공화국 2세대 지도자. 저우 언라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초기 정치인. 총리 역임 폴 포트: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군벌 지도자.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지도자. 박헌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주석, 조선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한 인물 호찌민: 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 수파누봉: 라오스의 공산주의 혁명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의 정치인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socialism and communism?

    이 글은 리오 후버만과 폴 스위지(Leo Huberman and Paul marlor Sweezy)가 쓴 ‘사회주의 서설’을 먼슬리 리뷰("Introduction to Socialism," Monthly Review)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전문(全文)이다. 이 글을 통하여 우리 사회 내부에 상존(常存)하고 있는 현실적인 다양한 갈등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같다고 생각하는 오해(誤解)와 무지(無知) 또는 억지로부터 벗어나 진실을 수용함으로써 원천적(源泉的)으로 해소(解消)시킬 수 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둘 다 생산 수단 공공화(公共化) 및 중앙 집중적 계획체제에 바탕을 두고 사용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는 체제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바로 성장하는 것이며,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형태이다. 공산주의는 여기서 더 발전했거나 "더 높은 단계"인 사회주의이다. 차이점은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실적(행위)에 따라 분배하고,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는 점이다. 실적에 따른 분배라는 사회주의 원칙은, 말하자면 수행한 일의 질과 양에 따른 것으로 즉각적으로 실현 가능한 실제적인 것이다. 반면에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 원칙은 곧바로 실현할 수 없다. 이는 궁극의 목표이다.

     

    명백하게, 공산주의를 달성하기 전에 생산이 그동안 꿈꿔보지 못한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키려면 모든 것이 가장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의 일에 대한 태도 변화도 나타나야 한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일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고, 또 일이 자기 자신의 삶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일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풍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생산력을 개발하고, 사람들의 심적, 정신적 관점을 바꾸는 과정의 첫 번째 걸음이다. 또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단계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별 때문에, 스스로를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전 세계 모든 정당이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 하는 정당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한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의 직접 계승자는 다름 아닌 사회주의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당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당도 사회주의 건설을 자신들의 목표로 삼는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당과 공산주의당의 차이가 없는가? 물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 계급과 노동 계급의 연대세력이, 국가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면 바로 국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 첫 번째 단계로, 노동자를 지배하는 자본가 독재를 자본가 계급을 지배하는 노동자 독재로 전환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계를 통해 (개인이 아닌) 계급으로서 자본가는 사라지게 되고, 계급이 없는 사회가 마침내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사회주의는 단지 권력을 잡고 과거 자본주의적 정부기구를 이용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옛 것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국가 기구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국가는 과거 지배계급이 반혁명을 조직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하며, 또 자본가들이 저항하면 무력을 사용해 진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국가의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들이 이런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본질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독재를 위한 기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국가를 장악하는 어떤 계급이든,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하게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뒤에 과거 자본주의 국가의 기구들을 파괴하고 새로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곧 사회주의로 진군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적 형식이라는 틀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소련에 대한 두 쪽의 태도는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공산당은 소련을 찬양하고 사회주의당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난한다. 공산주의자들이 보기에, 소련은 사회주의를 진정으로 믿는 모든 사람의 찬양을 받을 가치가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꿈을 현실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소련은 비난받을 가치밖에 없다. 적어도 자신들이 꿈꾸던 그런 사회주의를 결코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인민들의 사유 재산을 빼앗고 싶어 하는 대신에 더 많은 사람이 과거보다 더 많은 사유 재산을 소유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사유 재산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소비재이며,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쓰이는 재산이 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개인적이지 않으며 생산 수단인 사유 재산이 있다. 이런 재산은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재를 생산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당신의 옷 같은 첫 번째 종류의 사유 재산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옷을 만드는 공장과 같은 두 번째 종류의 사유 재산을 빼앗겠다는 것이다. 또 생산 수단인 사유 재산을 소수로부터 빼앗음으로써, 다수에게 제공할 소비 수단인 사유 재산이 더 많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생산했지만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에게) 빼앗겼던 재산을, 사회주의에서는 다시 노동자들이 갖고, 더 많은 사유 재산을, 곧 더 많은 옷과 가구와 음식과 극장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용과 즐거움을 위한 더 많은 사유 재산. 억압과 착취를 위한 사유재산의 폐지. 그것이 사회주의다.’

     

    6). 진보주의와 종북 세력의 진실.

     

    진보주의(進步主義; progressivism)란 혁신주의(革新主義)라고도 부르며, 정치, 경제, 사회체제의 개혁을 선호하는 정치사상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념으로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주의 또는 인류의 정신, 문명, 역사 등이 시간을 따라서 더욱 완전한 상태로 나아간다고 여기는 합리주의적 신념을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진보주의는 교육분야에도 크게 영향을 중고 있으나 보수주의와의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진보주의 교육은 영국의 경험론과 공리주의 및 다윈의 진화론과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 실용주의에 기반을 두고, 전인적(全人的) 인간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보주의 교육사상에 의하면 교육목적은 아동의 개성을 계발하여 사회생활에 유용한 적응을 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발달시키는 데 두고 있고, 교육내용은 아동 자신의 생활경험 중심적인 교육과정을 중시한다. 진보주의 교육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 등을 사용한다.

     

    1.집단적 활동으로서의 회의·협의·계획·참여 등 사회화의 방법을 활용하며,

    2.지적 경험·실제적 경험·사회적 경험·미적 경험·정의적 경험 등 다방면의 경험적 방법과

    3.지식·이해·기능·태도·흥미 등의 종합적 학습방법의 중시하고,

    4.자주적·능동적인 학습을 위해 아동 자신이 문제를 선택·계획하고, 실행·평가하는 문제법, 구안법(構案法)을 이용하여 평가한다.

     

    보편적인 진보주의는, 국제 표준적인 의미로서의 '진보주의'는 이념적인 의미에서 현재 사회체제를 개혁 혹은 변혁하는데 중점을 두는지, 두지 않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주의는 그 근원은 진보주의를 주장하면서 사회 개혁과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과 정당으로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민주통합당 등을 뭉뚱그려 부르는 호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흔히 종교, 학문, 신학적인 개방성, 사회구원(사회참여), 진보적 정치이념, 에큐메니컬(교회일치운동)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을 진보적 기독교인으로 이해한다. 일부 뉴라이트 등 우파 와 반공주의자들은 진보라는 용어를 '친북적인 공산주의'와 결부시키기도 한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진보”라는 용어는 북아메리카와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 대중적이지 않지만 수많은 진보주의적 이념을 지지하는 정당과 단체들이 존재한다. 인도에서는 국가적이거나 지역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정당이 있다. 인도의 공동 진보 연합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의지하는 좌파 정치 단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가 본래의 서양 진보주의 운동의 주된 역할을 했던 개념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기에 "진보주의"란 용어는 인도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사회적 수준에서 인도에서의 좌파 정당들은 서양에서 진보적이라고 여길 만한 정책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카스트 제도와 관련한 정책들은 힌두 정통파에 지지를 호소하는 비 진보 정당들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다.

     

    --------------------------------------------------------

     

     

     

    진보주의와 다른 급진주의(急進主義; radicalism) 정치사상은, 현존하는 정치, 사회 등의 체제(體制)를 격렬히 비판하고, 급진적인 변혁을 주장하는 주의로, 역사적으로는 18세기 말 영국의 선거법과 의회 제도의 급진적 개혁을 주장한 정파(政派)를 가리켰으며, 1797년에 폭스(Fox, G.)가 급진적 개혁을 제창하고부터 일반화되었으나, 그 내용은 상대적이며 시대에 따라 변질되어 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급진주의는 기존상태나 기존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사고 및 행동방식을 말한다. 철학사상으로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나 J. S. 밀(John Stuart Mill), 제임스 밀(James Mill) 등의 관념연합설,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 합리주의, 공리주의, 개인주의 등을 가리키지만 정치상의 급진주의는 시대와 사회상황에 따라 형태를 달리한다. '급진주의' 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정치운동 및 정당을 존속시켜온 나라로서 프랑스가 있으며

    영국에서는 조지 3세 시대에 언론·출판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존 윌크스(John Wilkes)를 중심으로 최초의 급진파가 생겨났다. 급진파의 목표는 교권주의(敎權主義)에 반대하고 권력의 개인적인 전횡(專橫)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독립혁명이 일어나자 급진파는 식민지 주민의 입장에 섰고 프랑스 혁명 때에도 혁명을 긍정하고 사회개혁을 주장했다. 19세기가 되자 급진주의 운동은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과 결부되어 1832년의 선거법 개정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급진주의는 중산계급의 운동으로부터 점차 민중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1870년대의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스스로를 '급진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조지프 체임벌린 이 급진적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양성화된 사회주의 정당이 급진파들을 흡수하면서 급진주의운동은 독자성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력이 약화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시민왕 시대에 르드뤼 롤랭(Alexandre-Auguste Ledru-Rollin) 등 공화주의자들은 급진파임을 자칭하면서 보통선거제의 관철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의 급진주의는 학설이라기보다 프랑스 혁명의 세속성과 자유·평등을 계승하려는 정신자세에 불과했다. 급진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운동이 정당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1902년의 소위 '급진공화주의와 급진사회주의의 정당'(급진당)이 결성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 정당은 국회의원과 지방 유력인사들을 위주로 하는 산만한 집단이었고 반 교권주의와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는 의회주의 정당이었다. 급진당은 좌익세력을 결집시키는 중간정당으로서 1902~14년에 그 주요간부들을 상당수 입각시켰다. 사회주의 정당이 자립하고 공산당이 창설(1920)됨에 따라 중간정당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화된 급진당은 다수파 정치 공작의 핵심을 이루는 급진주의 정당이 되어 192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에리오(Édouard Herriot), 달라디에(Édouard Daladier), 맹데스 프랑스(Pierre Mendès-France)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 급진주의는 19세기 후반의 극단주의자들을 일컬었다. 북동부 산업가들의 이익을 대표하여 노예제의 철저한 폐지를 주장했던 공화주의자들과 역설적으로 농업의 이해나 사회화를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들이 급진주의자로 불리었다. 한편 스위스에서는 1830년 가톨릭의 교권주의에 반대하는 급진당이 결성되어 중앙집권적인 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급진주의란 부르주아 계급이 근대 시민혁명과정에서 취했던 다소 철저한 민주주의적 태도를 의미한다. 레닌이 '공산주의 운동의 소아병(小兒病)'이라고 평했고 '소(小)부르주아 봉기주의(蜂起主義)' 혹은 '좌익 교조주의'라고도 불렸던 급진주의의 개념은 노동자의 당을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방해하는 근본적으로 좌익 기회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 특성을 가리킨다.

     

    한국에서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보수우파-진보좌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 경계가 매우 불확실하고 정확하지 않아 정확한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 정치사상적 측면에서는 진보주의를 현재의 정치체제를 개혁,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사상 또는 변혁이나 혁신 등을 주장하기 때문에 변혁주의, 혁신주의라고도 하고 있다.(각종 자료 요약)

     

    ‘ 진보주의는 역사적 뿌리나 기원은 불분명하다. 굳이 꼽자면 마르크스-엥겔스 이론과 공산주의에서 나왔다고 봐야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됨에 따라 서유럽에서 그 대안으로 주장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라고도 함)에 근접하려는 세력이나 주장이 더욱 보편적이다. 이에 따라 유럽과 아시아 등지를 중심으로 진보주의를 주장하는 정당과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굳이 논리나 이론을 따지자면 갈등이론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주의의 한 갈래지만 다양한 국가와 사회에 맞게 사회주의, 종속이론, 해방이론, 네오 막시즘 등 다양한 이론으로 존재하기도 했지만 사회민주주의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이론이나 정당 등은 결국 소멸되는 길을 걸어왔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이후 보수주의의 전성기가 지속되면서 1998년에 영국의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중도 좌파적인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제3의 길’이라 하여 주창했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독일의 슈뢰더 총리를 비롯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즉 중도 좌파들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한때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듯 했지만 잡탕밥 즉 좌파와 우파를 좋은 것만 뒤섞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이마저도 쇠퇴했다.

     

    진보주의는 정치학이나 철학적으로 그 개념이 정립된 사조는 아니다. 좌파나 사회민주주의가 가진 분명한 목표와 이론을 진보주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각 국가별로 현재의 정치·사회 체제를 현재대로 유지하느냐, 변화시켜야 하느냐의 기준을 놓고 변화를 원하고 지향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목표와 이상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공산주의에서는 공산사회라는 목표가 명확하게 있었지만 그 허구성과 역사적 실패로 인해 이후 진보주의 차원에서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노동자, 농민, 빈민, 소수자, 외국이민자 등의 하부구조를 옹호하며 그들을 위한 정치와 사회 체제로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보수주의가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을 옹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윤리, 자유로운 시장과 정부의 간섭 배제, 법치와 공권력의 확립 등을 주장하는 한편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빈민을 위한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 등과 같은 사회복지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기획되고 제도화 되었다. 진보주의가 내세우는 이러한 계층적, 계급적 주장은 지지기반 확보 차원의 정치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진보주의 내부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놓고 그 수준과 내용을 놓고 덜 진보적이 되거나 더러는 진보가 아닌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진보 내부에서의 선명성 경쟁으로 서로간의 비교이지 그 정체성과 실체는 모호하며 실존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진보주의는 개혁주의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런 입장을 강하게 지키려 한다. 이는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를 이끈 성취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세력의 수구적 인식 즉 부정부패, 도덕성의 부재, 자기희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결여 등으로 비판받는 현실에서 그와 대비하여 개혁적, 혁신적, 변혁적 주장으로 차별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관련자료 재정리.

                                                           / 아무에게나 농락(籠絡)당해도 즐거운 우리들(12-6 끝)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