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해월신사 법설 ‘강서(降書)’ 풀이 과연 그럴까?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해월신사 법설 ‘강서(降書)’ 풀이 과연 그럴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승민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867회   작성일Date 12-12-13 17:39

    본문

    해월신사 법설 강서(降書)는,

      대략적으로 신사께서 포덕25년(1884년) 음력10월 공주 “가섭사”에 일행을 데리고 들어가 기도하던 중 받은 것으로 교서에서 전하고 있다.

      일설에는 의암, 춘암, 송부여라는 사람 3명을 데리고 기도에 들어 가셨고 10월24일 강서를 받았다고 기록 되어 있다고 하고, 손병희 이하 7인을 인솔하여 기도에 들어갔다는 의견도 있다. 또 기도기간이 21일인지 49일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라고 한다.<152년 11월 22일 현기사 김응조 선도사님과 통화>


      나는 아직 의암, 춘암, 송부여라는 사람 3명을 데리고 기도에 들어갔다는 기록 문헌은 어디에 있는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시기와 동행한 사람 강서를 지으신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확보해 가지고 있는) 교서 중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포덕120년 발행한 ‘동학의 원류(혁암 조기주 씀)’에서는  포덕25년 갑신 10월 공주 가섭사에 손병희 이하 7인을 인솔하고 49일 기도를 하던 중 24일 되던 날 강서를 (신사께서)받으셨다고 기록 하고 있다.(24일째라는 뜻이 아니라면 날짜는 ‘시천교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10월24일과 같다.)

    여기에 수록된 강서 내용에는 현 경전 401페이지 “~公私之間에 得失之道니라”에 이어 말미에 “蛇之 嚙蛙 自謂 莫敵~丈夫當前 無壯士” 까지 총 64자가 추가로 수록되어있다.


    ▶포덕74년에 발행한 ‘천도교창건사 인쇄본’에서는 포덕25년 갑신 10월에 손 병희를 데리고 공주 가섭사에 가서 49일 공부를 행하시다. 라고 기록 하고 있고 몇 일째 되던 날이라는 언급이 없이 ‘이어 하루는 異香이 滿室한 가운데서 親筆로 강서를 쓰시니 曰’ 이라고 전할 뿐이다. 스승님께서 받아 친필(親筆) 하셨다는 것이다.


    ▶ ‘천도교창건사 등사본’ 33면에서는 가섭사에서 49일 기도를 마치던 날 강서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쓰게 하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는 대필(代筆)케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건사 등사본이나 인쇄본에는 “~公私之間에 得失之道니라” 까지만 소개되어 있고 “蛇之 嚙蛙 自謂 莫敵~丈夫當前 無壯士” 총 64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참고로 포덕102년 발행한 삼부경전에서부터 ~현 경전에 이르기 까지, 포덕120년 발행 '동학의 원류'에는 위에 64자가 포함된 전문으로 수록되어 있다>


    ▶ 포덕131년 발행 ‘천도교 약사(부 총서)200p’에는 ‘천도교 창건사 인쇄본’과 같이 64자가 없는 강서 내용만 소개 하고 있고 지은시기와 장소 상황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대정9년에 발행한 ‘시천교 역사 53p’에 보면 『스승님 강서를 받으심(師受降書)』이라 제목하고 내용이 소개 되어 있는 데 역시  64자는 없다.

    다만 말미에 『十月二十四日 師 感天 靈得 誥 書三篇 蓋 圖避 時 人之曰 承命改 呪文權行者也 其文曰 奉事 上宰 一片心 造化定 萬事知』 47자가 다른 본에는 없는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 말씀을 해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포덕25년) 음력10월 24일 스승님(師=해월) 지성(至誠)으로 기도를 드리던 중 한울님 감천(感天)이 있으시어 영적으로 받은(깨달은) 글(靈得書=降書) 세편(三篇)을 제자들에게 알리어 가르침을 펴심에(誥) 

    덮을 ‘(蓋)’자를 화두로 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법과 지금 내외로 나라와 교단이 봉착된 난관을 벗어날 꾀를(圖避) 말씀 하실세(時)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시길(人之曰) 웃어른(대신사)의 명령을 이어 받들려면(承命) 내 따로(改)이 정한 주문(呪文)을 마음에 외워가며 수련하되 권세‘(權)“자를 화두로 지혜를 받아 행동하는 것이니라(行者也)하시고,

    그(其) 주문(文)은 『봉사상제 일편심 조화정 만사지(奉事上宰 一片心 造化定 萬事知)』라고 하시다.


       여기서 해석에 줄친부분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포덕 25년(갑신년 1884년) 10월 중에 강서를 지으셨다면 갑신년으로서 국내에서는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이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청나라의 영향이 강화 되자 일본은 이를 만회키 위해 청일조약(텐진조약)을 체결한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의 지배알력이 고조되던 시기다.


    그러니까 갑오년(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10년 전이요,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년(1905년) 을사오조약이 맺어지기 21년 전이요,

    좀더 올라가 26년전이 되는 1910년 경술년 국치의 한일 합방의 시대상황이 전개 된다.
     
    더욱이 61년 한갑자의 시대를 더 뛰어 넘은 1945년 해방. 1948년 단독 정부 수립, 1950년 동족상잔의 6.25동란, 1953년 휴전, 2013년 현재 남북화해의 시대를 예언함이라 풀이를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 2052년까지 아니 그 이상 예언의 가르침이 있는 말씀이 있는 글로 풀이가 되어 이것이 강서풀이의 정설로 받아들여서,
    천도교 대표지인 신인간에 여과없이 실렸던 것은 물론이요. 최근에는 다시 발간하고 있는 개벽지에도 실려 소개가 되었고, 또
    교회 지도자들은 설교 때도 종종 이 풀이를 그대로 인용을 하고, 인터넷상에도 떠돌고 있다.

     한편으로 혈기 있는 교인 중에는 이를 해석을 근거로 미국 물러가라며 동학혁명 당시의 '척양척외' 구호를 부르짖는 사람도 있다.


     경전 스승님 말씀 어디에 '척양척왜'를 가르치고 있는 구절이 있던가?
     '척_언허무(斥_言虛誣)'의 가르침은 있어도 말이다.

    이러함이 세계와 통상하고 멀고 가까운 나라와 상호 교린(交隣)하라하신 '개벽운수'의 가르침에 부합이 되는가?

             

    천도교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이고,  교단 내외로 돌고 있는 충암 도정님의 강서풀이 과연 바른 풀이 일까?
    충암 도정님을 존경하지 않는바가 아니나,  그 풀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신중히 생각하고 생각해서 받아 들여야 하고, 깊이 공부해 볼일이다. “끝”

    <송탄교구 圓菴 이승민 심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