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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으로 사유하기 2, 무위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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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511회   작성일Date 12-12-01 08:34

    본문

     

    [동학으로 사유하기 2, 무위이화]


     ‘포덕문’의 다음 구절을 보도록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무위이화로 앎니다.(.愚夫愚民 未知雨露之澤 知其無爲而化矣)”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의 혜택이 지기한울님의 섭명 조화에 의한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저절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무위이화’는 동학적 ‘무위이화’가 아닙니다. 그럼 동학적 ‘무위이화’는 어떤 것인가 알아봐야 합니다.

      ‘무위이화’는 ‘1)저절로 우연히 되어짐. 2) 도에 의해 되어짐 3) 지기의 ‘섭명· 기화’에 의해 되어짐’ 셋의 의미로 주로 쓰여져야 합니다.  ‘1) 저절로 되어짐’의 의미로 보는 것이 일반이요, ‘2) 도에 의해 되어짐’으로 보는 것이 노자의 ‘도덕경’이요, ‘3)지기의 ‘섭명·기화’에 의해 되어짐‘으로 보는 것이 동학입니다. 

      그럼 ‘동경대전·용담유사’의 ‘무위이화’를 모두 열거 해보고 분별해 보도록 합니다.

      *포덕문; ‘비와 이슬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1무위이화로 앎니다.(.愚夫愚民 未知雨露之澤 知其無爲而化矣)’

      *동학론; ‘우리 도는 2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그 지기의 속성을 거느리고 그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동학론; ‘조화’라는 것은 3무위이화요(造化者 無爲而化也) 

     *교훈가;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4무위이화 될것이니 지상신선 네아니냐 (한울님 말씀)’

     *도수사; ‘자고성현 문도들은 백가시서 외어내어 연원도통 지켜내서 공부자 어진도덕 가장더욱 밝혀내어 천추에 전해오니 그아니 기쁠소냐. 이세상에 무극대도 닦아내어 오는사람 효유해서 삼칠자 전해주니 5무위이화 아닐런가. 우매한 세상사람 자존지심 다던지고 자시지벽 무삼일고 사문에 없는법을 혼자앉아 지어내니.’

     *흥비가; ‘내말잠간 들어보소 합기덕  알았으니 6무위이화 알지마는.’


      1무위이화; ‘저절로 우연히 되는 무위이화’이므로 ‘자연무위이화’입니다. 이런 무위이화는 동학적으로 말하면 ‘섭명 조화’입니다.

      2무위이화; ‘오도는 무위이화’란, ‘우리 장생주는 기화하면 몸맘이 무위이화가 되는 도란 말씀입니다. 장생주의 시작인 ‘기화지원야’와 끝인 ‘지화지기’를 보면 ‘기화’의 주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화한 무위이화 상태를 하고 지기한울님의 속성을 거느리고 그 성품의 가르침(섭명)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되어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치료를 받으면 병이 잘 났고, 문제를 생각하면 흐려지면서 버릴 마음이 들거나 맑아지면서 취할 마음이 자연이 화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무위이화’는 ‘기화무위이화’입니다.

      3무위이화; ‘조화자 무위이화’는 모신한울님(기화한 모신한울님)의 조화의 ‘무위이화’이므로 기화한 조화의 무위이화입니다. 즉 심신이 기화해서 무위에 이르게 되고 맑아지고 신령해진 ‘조화’입니다. 이같은 ‘기화· 무위이화· 조화’는 몸맘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위이화도 몸맘의 ‘기화무위이화’입니다.

      4무위이화; ‘입도한 세상사람··· 무위이화 될것이니 지상신선 네아니냐’의 ‘무위이화’는 입도해서 장생주를 외워 기화가 되어 몸맘이 무위이화 되어 신령해져서 지상신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시 몸맘의 ‘기화무위이화’입니다.

      5무위이화; ‘···삼칠자 전해주니 무위이화 아닐런가···’의 무위이화는 좀 다릅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그의 도는 우주의 시원자로서 시공을 초월한 절대자입니다. 이 같은 ‘도’를 그는 25장에서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道法自然)’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연’은 인위적이지 않은 필연성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으로, ‘도’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도’에 의해 되어지는 것은 필연적 자연무위라고 할 수 있으므로 ‘필연 자연무위’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다시 봅니다.  “····내역시 이세상에 무극대도 닦아내어 오는사람 효유해서 삼칠자 전해주니 무위이화 아닐런가····라고 한 ‘무극대도’는 ‘선생주’요, 이를 ‘닦아낸 것’은 ‘장생주’요, 오는 사람 ‘효유해서 전해 준 삼칠자’도 ‘장생주’입니다. 그런데 이 장생주는 한울님으로부터 받고 닦아서 전해준 것이므로 필연에 의해 된 무위이화입니다. 그래서 ‘도수사’의 ‘무위이화’는 ‘필연무위이화’로서 노자의 ‘필연 자연무위’와는 좀 다른 무위이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6무위이화;  ‘합기덕 알았으니 무위이화 알지마는’의 ‘합기덕’은 기화해서 심신이 무위이화되어 고요해지고 맑아진 ‘기화조화’의 덕입니다. 이런 덕은 몸맘의 무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의 ‘무위이화’는 몸맘의 ‘기화무위이화’입니다.

      여기서 ‘2·3·4·6’은 기화에 의해 이뤄진 ‘무위이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화에 의해 이뤄진 몸맘의 ‘무위이화’가 동학적 무위이화입니다. 지기의 속성인 기화에 의해 이뤄진 무위이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동학적 ‘무위이화’로 쓰인 회수가 4배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땅히 천도인들은 지기에 몸맘이 화합해 이뤄지는 ‘기화의 무위이화’가 동학적 무위이화임을 알고 이해하고 말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절로 되는 ‘자연무위이화’만 알고, 이로써 동학의 ‘무위이화’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말하고 글을 쓰기 때문에 경전의 글이 곡해되고 있어서입니다.  

      길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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