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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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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933회   작성일Date 12-11-27 10:3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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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5)

                                    / 버림받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울부짖는다.

     

    1. 형제에 대하여

    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몸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니 모두 한 몸과 같은 것이다. 당연히 저와 나의 간격(間隔)이 없이 생각하여 음식과 의복을 있고 없는 대로 모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만일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곧 한 몸 가운데서 팔다리와 몸이 한 군데는 병들고 한 군데는 건강한 것이다. 몸과 마음이 어찌 한 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 사이에 서로 우애(友愛)하지 않는 것은, 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에게 만일 착하지 못한 행실이 있으면 의당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진정으로 규간(規諫)하여 차츰 이치를 깨달아 기어코 감동케 해야 한다. 갑자기 성난 기색과 거슬리는 말을 나타내 화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2. 부부에 대하여

    부부사이에도 잠자리에서 흔히 정욕(情慾)에 방종(放縱)하여 위의(威儀)를 잃는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버릇없이 굴지 않고 잘 서로 공경하는 이가 매우 적다. 이와 같이 하고서야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바로잡으려면 어렵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남편은 따뜻하면서도 의(義)로써 규제하고, 아내는 유순히 올바르게 받들어 부부간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아야만 가정의 일이 다스려 질 수 있다.(부부유별) 만일 이제까지 서로 버릇없이 굴다 갑자기 서로 공경하려면 그것은 쉽게 행하여 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아내가 만일 나의 몸가짐과 말이 한 결같이 바른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차츰 미더워하면서 순종할 것이다. 부부간에 너무 지나치게 친밀하다 보면 위엄 있는 몸가짐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수가 많으니 친밀한 중에도 서로 공경하는 생활을 반드시 해야 한다.

     

    3. 자식에 대하여

    자식이 자라서 조금 지식이 있게 되면 마땅히 착한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못하고 벌써 성장하여 버리면 잘못된 것에 물이 들고 마음이 흩어져 가르치기 매우 어렵다. 가르치는 차례는 당연히 소학을 따라야 할 것이다. 무릇 한 가정에서 예법(禮法)이 성행하고 글을 읽고 글씨 쓰는 이외의 다른 잡기(雜技)가 없으면 자제들도 밖으로 쏠리거나 학문을 버리게 되는 염려는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으니, 그를 사랑하고 교육하는 것을 당연히 균일하게 하여야 할 것이요, 경중(輕重)과 후박(厚薄)을 두어서는 안 된다.

     

    4. 가난에 대하여

    집안이 가난하고 궁색하면 반드시 이 가난에 쪼들려서 괴롭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필경(畢竟)에는 자기 자신이 지켜왔던 올바른 마음을 잃는 수가 많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궁(窮)해도 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말 것이요, 가난해도 취하지 못할 물건은 취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군자는 도(道)를 터득하지 못하였음을 걱정하고 가난을 근심하여선 안 된다. 만일 집이 가난하여 살아갈 수 없으면 당연히 곤궁(困窮)을 구제할 계책을 생각하여야 하나, 굶주림과 추위를 벗어날 뿐 쌓아두고 넉넉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두어선 안 된다. 또한 세상의 비루(鄙陋)한 일을 마음속에 담아 두어선 안 된다.

    예전의 은자(隱者)는, 신을 삼아서 먹고 산 자도 있고, 나무하고 고기 잡아 살아간 자도 있고, 지팡이를 꽂아 두고 김을 매던 사람도16)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귀가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까닭에 이 같은 생활에도 마음이 편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해와 빈부를 헤아리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겠는가. 학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을 지키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살아가기가 구차하면 반드시 가난에 시달려 그 지킬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학자는 바로 이 점에 노력하여야 한다. 옛사람의 말에, “곤궁할 때에 그가 하지 않는 바를 보고 가난할 때에 그가 취하지 않는 바를 보라." 하였고, 공자는 이르기를, “소인은 궁하면 도리에서 벗어난다." 하였다. 그러니 만일 가난하고 궁색한 것에 마음이 동요되어서 의리를 행하지 못한다면 학문을 해서 무엇에 쓸 것인가?

     

    註 36; 은자(隱者)-「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자로(子路)가 뒤쳐져 지팡이로 삼태기를 멘 자를 만나 선생님을 보았느냐고 묻자,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오곡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스승이란 말인가' 하고 지팡이를 땅에 꽂아 두고 김을 매더라고 하였다. 이 말을 공자께 아뢰자 공자는 '은자(隱者)'다고 하였다" 했다.

     

    5. 벼슬아치가 남을 도와주는 경우

    벼슬아치가 국가에서 받는 봉급을 자기가 쓰고 남아서 남의 급한 일에 돌봐주는 것은 좋으나 공금(公金)이나 공곡(公穀)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쓴다면 이것은 받는 사람까지도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율곡은 경계하고 있다. 대체로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는 경우에 반드시 의로운가? 아닌가를 냉정하게 생각하여, 의롭거든 취하고 의롭지 않거든 취하지 않아 털끝만큼도 허술히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견득사의) 친구 사이에는 재물을 통용하는 의리가 있으니 주는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 다만 내가 못살게 가난하지 않은데 주는 쌀이나 옷감이면 받을 수 없다. 명분에 서는 것은 상사에 부의, 여행에 노자, 혼사에 부조, 양식이 없을 때에 보조하는 따위들이다.

     

    註 37; 견득사의(見得思義)와 사지(四知), 사외(四畏)- 견득사의는 論語 卷之十九 子張 第 十九에 나오는 말로 ‘선비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버리고 얻음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며 제사를 지낼 때는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喪事)에 슬픔을 생각하면 옳은 일이 된다. /子張 曰 :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基可已矣/論語 卷之十九 子張 第 十九’에서 얻을 것이 있을 때에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서 취(取)하라는 뜻이다. '견득사의' 와 같은 용어로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이 있다. 득(得)과 리(利)는 의미상 서로 바꿔 쓸 수 있으므로 두 구절은 사실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의라는 도덕규범만큼이나 높은 인격도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쉬울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바로 사지(四知)이다. 후한시대 양진(楊震)이 태수로 부임하기 위해 임지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객사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의 현령 왕밀(王密)이 양진을 찾아와 황금을 내놓으며 지난날 신세를 진 것에 대한 사의(謝意)를 표시했다. 양진은 깜짝 놀라며 받지 않으려고 하자 왕밀이 아무도 모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변명했다. 이에 양진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 (天知, 地知, 子知, 我知/ 四知) 고 하면서 황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선시대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사지(四知)를 이어받아서 논의를 확장했다. 뇌물은 아무리 비밀리에 주고받더라도 들통이 난다며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상대가 안다. (天知, 神知, 我知, 子知)는 사지를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공직 생활을 잘하려면 네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며 '사외 四畏' 를 주장했다. 의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畏義, 畏法, 外上官, 畏小民)하라.고 했다.

     

    註 38; 양진(楊震)은 중국 후한(後漢)의 재상이다. 자는 백기(伯起)이다. 증손자로는 양표(楊彪)가 있다. 중국 후한시기의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관서공자(關西孔子)라는 미명이 있었으며 형주자사, 탁군태수, 사도, 태위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가 태위로 있을 때 안제의 유모인 왕성(王聖) 및 중상시 번풍(樊豊)등의 세력이 강하여 조정의 부패가 만연하였으므로 양진은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간절히 간언하였다. 번풍의 모함으로 파면을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제 9장 접인(接人): 이 장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경우를 말하고 있다.

     

    1. 연령에 대하여

    무릇 사람을 접대함에는 온화하고 공경하기를 힘써야 한다. 나이가 자기보다 스무 살이 위이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섬기고, 10년이 위이면 형으로 섬기고, 5년이 위라도 조금은 공경하여야 한다. 가장 몹쓸 것은 자신의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기운이 세다고 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2. 친구를 택하는 것에 대하여

    친구를 선택할 때에는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며 품행이 방정하고 엄숙하고 곧고 진실한 사람을 골라서 사귀어야 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규계(規戒)를 허심(虛心)으로 받아들여 나의 결함을 다스리어야 한다. 그러므로 게으르고 장난을 좋아하며 유약(柔弱)하여 말이나 잘 꾸미고 정직하지 못한 자와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마을 사람으로서 착한 사람과는 반드시 친근히 지내야 하며 서로의 사정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 사람으로서 착하지 못한 자라도 나쁜 말로 그의 비루(鄙陋)한 행위를 드러내지 말며 다만 범연(泛然)히 대접할 뿐 서로 왕래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에 전에 서로 알던 사이라면 만날 때에 안부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으면 자연히 차츰 멀어지되 원망이나 성을 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같으면 서로 응하고, 기상이 같으면 서로 찾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면 내가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게 되고, 학문하는 선비도 역시 나를 찾을 것이다. 저들 학문한다고 내세우면서 집에 잡된 손님이 들끓고 시끄러이 날을 보내는 것은 반드시 그가 즐기는 것이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절하거나 읍(揖:)하는 것에 대하여

    대체로 절하고 읍(揖: 손을 마주잡고 머리 위까지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예)하는 것을 미리 정할 수는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이면 절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자기보다 15세 위인 사람에게는 절하고, 벼슬이 당상(堂上)에 오르고 나보다 10년이 위이면 절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나이가 20세 위인 사람이면 당연히 절해야 한다. 그 사이에 높이느냐 내리느냐의 세세한 결단은 때에 따라 맞출 것이지 꼭 이 등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옳다. 시경에, “다사롭게 공손한 사람이여, 덕의 기틀이 아름답구나.” 하였다.

     

    4. 남이 나를 헐뜯는 경우에 대하여

    나를 비방(誹謗)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진실로 비방을 받을 만한 허물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어 마음속으로 시비를 가려 잘못을 고칠 것이요, 만일 나의 허물이 매우 작은데도 그가 주워 모으고 덧붙였다면 그의 말은 비록 지나친 것이나 내게 실상 비방을 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전날의 잘못을 매섭게 끊어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하고, 만일 내게 본디 허물이 없는데 헛된 말을 꾸몄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망령된 사람과 무슨 거짓과 참을 따지겠는가. 또한 그런 헛된 비방은 마치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구름이 허공을 지낸 것과 같다.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여 비방이 생겼을 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 노력할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유익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듣고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시끄러움도 마지않고 기필코 자기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늘어난다. 옛날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비방을 듣지 않는 방법을 물으니 문중자(文中子: 수나라의 왕릉)가, “그것은 자기 몸을 스스로 닦는 것이 제일 좋다.” 하였으며, 덧붙여 주기를 청하자,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이야말로 배우는 사람이 본받을 법이라 할 것이다.

     

    5. 기타에 대하여

    무릇 선생, 장자(長者)를 모시고서 의리의 깨닫기 어려운 점을 질문하여 학문을 밝히고, 향당(鄕黨)의 장로(長老)를 모시고는 공손히 조심하며 함부로 말하지 말고 묻는 것이 있으시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하여야 한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에는 도의를 강마(講磨; 학문이나 기술을 익히고 닦음)하고 글 얘기와 의리만을 말할 뿐이지, 세속의 비루한 말, 당면한 정치의 잘잘못, 수령의 어짊과 그름, 남의 잘못은 일체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 고장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에는 묻는 데에 따라 응답은 하더라도 끝까지 비루한 말을 꺼내지 않아야 하며, 점잖은 몸가짐을 유지하면서도 절대 스스로 높은 체하는 기색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직 착한 말로 달래어 기필코 이끌어 학문에 향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어린이들과는 차근차근 효(孝), 제(悌), 충(忠), 신(信)을 설명하여, 착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를 마지않으면 고장의 풍속은 점점 변화할 것이다.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며 또 자애(慈愛)스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사물을 건져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남을 침해(侵害)하고 사물에 손해를 끼치는 따위 일은 터럭만큼도 하지 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아야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롭다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학자는 먼저 이욕(利慾)을 끊고서야 인(仁)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시골에 사는 선비는 공무(公務)나 의례(儀禮)상 뵙거나 마지못할 일이 아니면, 관부(官府)에 드나들어선 안 된다. 수령이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도 역시 자주 가서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친구도 아닌 데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의리에 어긋나는 청탁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제10 장 처세(處世): 이 처세 장에서는 주로 과거와 벼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특히 벼슬을 하기 위해 과거 공부에만 매달리는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전 학자는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학문이 성취되면 윗사람이 들어 등용하였다. 대개 벼슬이라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예전과 같지 않고 과거(科擧)로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을 관통하는 학식과 남이 따르지 못할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고서는 도(道)를 펼 직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때문에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에게 권하는 것이 과거 밖에 다시 다른 방법이 없게 되었다. 선비의 습속이 변한 것은 주로 이 때문이다. 다만 요즈음의 선비로 흔히 부모의 희망과 문호(門戶)의 계책을 위해 과거 공부를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수양하고 때를 기다려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천명에 맡길 것이요, 탐내고 조급하고 애태워 그 뜻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가 거치적거려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였다.”고 하나, 이것은 핑계의 말이요 성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다. 옛사람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몸소 농사를 지은 자, 품팔이를 한 사람, 쌀을 지고 다닌 이가 있었다. 농사짓고 품을 팔고 쌀을 등에 졌을 시절에 그 노고가 심하였을 것이다.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어버이를 위하여 친히 노력하며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힘으로 글을 배워 덕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의 선비들은 옛 사람같이 부모를 위하여 친히 노력하는 자를 볼 수 없다. 다만 과거 공부 한 가지만이 그 부모의 바라는 것으로서 이에 벗어나지 못하고 공부해야 한다. 과거 공부가 비록 이학(理學)과는 다르나, 역시 앉아서 글을 읽거나 글을 짓는 일이다. 농사 짓고 품 팔고 쌀을 등에 지기보다는 편하기가 백배 뿐 아닐 것이다. 더구나 남은 힘으로는 성리(性理)에 관한 서적을 읽을 수도 있음이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의례 득실(得失)에 마음이 동요되어 항상 조급하므로 도리어 힘을 들이는 일이 심술(心術)을 해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에, “공정(功程: 공부하는 과정)에 방해될까 염려가 아니라, 뜻을 빼앗길까 걱정이다.”고 하였다. 만일 능히 과거 공부를 잘 해내면서도 마음에 지킴을 잃지만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이학(理學)이 병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은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힘을 쏟지 않고, 이학을 한다하면서 실지로는 마음 쓰지 않고 있다. 만일 과거 공부를 책임 지우면 “나는 이학에 뜻을 두어서 그것에는 잘 마음 내키지 않는다.” 하고, 만일 이학을 책임 지우면 “나는 과거 공부가 거리적 거려 진실되게 공부에 힘을 쏟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편리한 두 곳을 차지하고서 일 없이 날만 보내다 마침내는 과거 공부와 이학 두 가지 모두 성취된 바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늙고 나서 뉘우친들 어떻게 되돌이킬 수 있겠는가.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만을 급급해 하고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잃을까 걱정한다. 이같이 골몰하여 본심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두렵지 않으랴. 벼슬이 높은 자는 도를 행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물러가야 한다. 만일 가난하여 생활을 위해 벼슬하지 않을 수 없다면, 모름지기 중앙의 관직을 사양하고 지방의 관직을 구하며, 높은 지위를 사양하고 낮은 지위를 구하여 굶주림과 추위나 면해야 한다. 비록 생활을 위한 벼슬이더라도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공무를 받들어서 직무를 다하여야 하며, 직분을 헛되게 하고서 놀고먹기만 하여서는 안 된다.

     

    3). 동몽선습(童蒙先習)

     

    조선은 유학을 국가이념이자 국민윤리로 확립하였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유학이 조선에 맞게 정립되었다. 특히 율곡 이이(1536~84)가 지은 제왕학(帝王學) 총서인 성학집요와 일반국민을 위한 격몽요결 등과 같이 중국의 4서 못지않은 비중을 지닌 책들도 쓰여졌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서적에 훨씬 앞서 어린이의 기초교육을 위한 교과서형 책이 나왔으니 그 첫 출발이 동몽선습(童蒙先習)이었다. 동몽선습의 구성은 10행 20자에 가깝게 만들어 조선조 간본의 형식을 흉내를 내었다. 한자로 사용한 한양해서가 썩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결락(缺落)된 글자 없이 갖춘 글꼴도 많지 않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천자문은 물론이고 실제로 동몽선습도 어린이용 학습서였기 때문에 이렇게 경전 스타일로 조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글 토가 붙어 있는 것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동몽선습은 천자문을 떼고 소학을 시작하기 전에 읽는, 말하자면 글자를 배운 후에 처음 만나는 텍스트였다. 동몽선습은 그 편찬방법에서, 학동들이 외우기 쉽고 이해하는데 편리하도록 보다 쉬운 자체(字體)와 문구를 사용하여 덕행(德行) 함양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다음에 가르쳤던 어린이들의 한문 교재로. 1권 1책으로 편찬되어 있다. 조선시대 중종 조에 박세무(朴世茂: 1487~1554)가 저술하여 1670년(현종 11)에 간행하였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동몽선습을 민제인(閔齊仁: 1493~1549)이 지었다는 설과 이들 둘의 공저(共著)였다는 설도 있다. 사대부의 자제들과 문자 학습을 끝낸 아동들에게 기본적인 유교적 도덕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한 책이다. 내용은 경부(經部)와 사부(史部)로 나누어서 경부에서는 오륜(五倫)의 뜻을 간결하게 서술하고, 사부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의 역사로 나누어 사실(史實)과 사론(史論)을 전개했다. 동몽선습은 아동교육을 위한 한국최초의 교과서라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특별하다 할 수 있으며, 내용은, 오륜(五倫)의 요점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총론에서는 오륜이란 인리(人理)의 자연적인 전칙(典則)으로서 사람의 모든 행실이 이에 벗어날 수 없다고 하고,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원이 된다 하여 사친(事親)의 도(道)와 절차를 대표적으로 들어 말하였다. 또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대사실(歷代史實)과 한국의 단군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약술한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동양 및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상을 고취시키고 덕행의 함양에 도움이 되도록 했으며, 익히기 쉽도록 되어 있어 당시 천자문과 함께 가장 널리 보급되고 통용되었다.

    여러 색깔의 한지(韓紙)에 각색의 선을 그어 큰 해서자(楷書字)로 글을 써놓았다. 그리고 끝에는 여자 어린이의 교양에 필요한 글을 열녀전, 소학, 논어를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 골라 옮겨 실어 놓기도 하였다. 특히 영조는 이 책을 보고 크게 감탄하고는 너무나 중요한 교육용 책이라고 여겨 널리 보급하도록 애를 썼다. 지금도 저자 박세무가 쓴 친필사본(親筆寫本)이 전하고 있다. 1759년의 중간본이 전하고 있으며, 1742년 영조가 쓴 서(序)와 1770년 송시열이 쓴 발문(跋文)이 있기도 하다. 원문에 한자를 차용하여 구결(口訣)을 달아놓아 남다른 특징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브리태니커와 관련 자료를 종합 정리함.

     

    다. 論語, 卷之十二 顔淵篇七 足食, 足兵, 民信의 意味.

     

    공자는 <논어>의 '안연'편에서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정치란 족식(足食), 족병(足兵), 족신(足信; 원 문장에 있는 民信을 흔히 足食, 足兵에 맞추어 足信이라 바꾸어 말한다)이다. 라고 한, 스승과 제자의 문답내용이 실려 있다. 이 대화에서 공자가 정의를 내린 족식(足食), 족병(足兵), 족신(足信)을 현대의 정치상황을 고려하여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족식(足食)은 의식주 즉 경제를 말하고, 족병(足兵)은 나라를 지키는 군대 즉 안보를 의미하며, 족신(足信)은 국가와 정치인에 대한 신뢰(信賴)라 해석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 풍요와 국력(방위) 그리고 믿음의 정치라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한 전 문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論語, 12 顔淵篇七; 子貢問, 政. 子曰, 足食足兵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有死, 民無信不立.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다.’ 라고 세 가지로 대답을 했다. 공자가 말한 세 가지는 백성들이 배불리 먹게 잘 먹이도록 하고, 국력을 길러 안보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국가와 위정자(爲政者)인 관리와 정치인들을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라고 하자 공자는 세 가지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거병(去兵) 즉 나라를 지킬 무기를 버려야 한다.‘ 라고 답을 했다.

    자공이 다시 물어 ‘남은 둘 중에서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남은 두 가지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의식주인 ’거식(去食)’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죽음이란 모든 사람에게 다 있어 왔다. 백성들이 위정자를 믿지 않으면 정치를 해 나갈 수 없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주었다.

    이 대화에서 공자가 말하려고 했던 핵심적인 의미는, 민 무신 불립(民無信不立)으로 백성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국방과 경제가 매우 중대하기는 하지만 백성들이 국가와 위정자들을 믿고 따라 주지 않으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설명해본다면,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거병(去兵)과 거식(去食)은 매우 놀라운 일로 감당(堪當)하기 어려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 간의 장기간의 휴전상태란 긴장 속에서 안보제일주의와 경제발전을 위한 처절한 노력으로 살아 온 우리들에겐 민신(民信;足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매우 참담(慘憺)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안보를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한 갑(甲; 60여년의 생애)을 살아온 우리로서는, 국민의 삶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먹고 사는 것, 국가와 위정자들을 믿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치에서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정치에서의 선택은 자유이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 지(先信 後兵食)를 분명히 가르쳐 준 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정치인이 끝까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민신(民信;足信)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변하지 말아야 할, 변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진리라 할 수 있다.

     

    註 39; 믿을 신(信)이라 한자(漢字)는, 사람 인(人)에 말씀 언(言)자를 합한 글자이다. 사람의 말은 충(忠)에서 나온 충심(忠心)이어야 하는 데, 충(忠)은 중(中)과 심(心)의 합자로 사람의 속마음 즉 인간이 타고난 본성 또는 본연의 마음을 의미한다. 충(忠)자는 마음(心)에서 우러나는 말을 입(口)을 통하여 소리를 내어야 하는데 입과 마음의 한 가운데를 똑바로 l 로 이어주어(忠) 마음에서 입으로 어긋나거나 벗어남이 없이 곧바로( l ) 거짓이 없이 진실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註 40; 論語의 構成 /序說-序說이 없는 책도 있다.

    一. 學而篇 /二. 爲政篇 /三. 八佾篇 /四. 里仁篇 /五. 公治長篇 /六. 雍也篇 /七. 述而篇/八. 泰伯篇

    /九. 子罕篇 /十. 鄕黨篇 /十一. 先進篇 /十二. 顔淵篇 /十三. 子路篇 /十四. 憲問篇 /十五. 衛靈公篇

    /十六. 季氏篇 /十七. 陽貨篇 /十八. 微子篇 /十九. 子張篇 /二十. 堯日篇.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허상(虛像)을 실상(實相)이라 믿는 사람은 진실을 모르는 가련(可憐)한 사람인 것이다.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을 바라게 됨으로써 결국엔 커다란 실망과 절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불행한 선택은 진정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 갈 수가 없다. 믿음이 없게 인(仁)을 행하면 그것은 위선(僞善)이며, 믿음이 없게 의(義)를 행하면 그것은 패거리들이 잘하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의 합리화이고, 믿음이 없게 예(禮)를 행하면 그것은 허례(虛禮)와 가식(假飾)일 따름이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지혜(智)는 권모술수(權謀術數)와 계략(計略)의 밑바탕이 되는 간교(奸巧)함이며 믿음(信)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道理)의 바탕이며 규범(規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 할 수 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은 동양사상의 골격으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로 나누어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는 모든 사물들은 음양으로 구분하고,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유, 무형의 실재와 부재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우리들이 사는 주변의 대부분이 음양오행에 근거를 두고 있어 동서남북 방위도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고,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도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의예지신'을 음양오행으로 표시하면 '인(仁)'은 동쪽으로 '목(木)'이 되고, '의(義)'는 서쪽으로 금(金)이 되며, 예(禮)는 남쪽으로 화(火)가 되고, 지(智)는 북쪽으로 수(水)가 되며, 신(信)은 정중앙(正中央)으로 토(土)가 된다. 또 서울을 방위(方位)로 설명하면, 서울을 둘러 싼 4 대문(大門)이 있고 그 중앙에는 보신각(普信閣)이 있다. 도성(都城)의 중앙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운 것은, 오상(五常)에서 ‘믿음’이야 말로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중에서도 으뜸이므로, 으뜸의 자리인 사방의 중심인 중앙에 '신(信)'을 상징하는 보신각을 세우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註 41; 4 대문(大門)- 지금의 서울은, 과거에는 한양(漢陽)으로 도성(都城)을 둘러 싼 성벽(城壁)과 네 개의 성문(城門)으로 되어 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과 북대문은 소지문(炤智門/ 肅靖門 또는 肅淸門으로 부르고 있음)이라 한다.

     

     

    라. 삼강오륜(三綱五倫)

     

    기성세대들은 오늘에 살게 해준 앞 세대들에게, 앞 세대를 있게 해준 그 앞 세대들에게, 그 앞 세대들과 같이 어울러져 살아준 우리 모두의 조상들에게 깊은 감사와 공경하는 마음에 담고 살게 해주었던 가정과 사회에서의 인성교육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다. 그 인성교육의 기본이 되었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화랑의 ‘세속오계’와 사자소학[四字小學]에 담겨 있는 ‘효도(孝道)’와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있는 ‘선현(先賢)들의 명언(名言)과 명구(名句)’들, 또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과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그리고 ‘주자십회(朱子十悔)’들을 차세대들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몸과 함께 묻고 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고 저려온다. 이런 기성세대들의 처연(凄然)한 마음을 신세대들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유교에서 유교사상의 기본이 되는 도덕 지침으로 세 가지 기본강령과 다섯 가지 실천적인 도덕 강목을 일컫는다.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子와 孟子)의 교리에 입각하여 삼강 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설(論說)한 데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기본적인 사회윤리로 존중되어왔다. 오륜의 '윤(倫)'이란 사람의 무리 즉 부자와 군신과 같은 관계에 따라 유별화(類別化)된 사람의 무리를 말하므로 유별화(有別化)된 다섯 가지 인간관계를 말한다.

    인류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물질은 풍부해져 인간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도덕적 관념은 반비례로 극도로 해이(解弛)해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의 참담한 모습이다.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세대들을 보면 미래가 암담함을 예견하게 되고 그들의 삶이 인간다움이 아닌 도덕적 해이로 인한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짐승에 가까워져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저려온다.

    도덕이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ethos’, 라틴어로 ‘mores’, 독일어로 ‘sitte’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예로부터 어느 사회나 지역에서 내려오는 고유한 관습(慣習)과 풍속(風俗)을 뜻하는 습속(習俗)의 의미와 같다. 고 한다. 도덕이란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법이 외적인 규제를 가하는 데 비해 도덕은 내적 규제로 작용한다. 도덕과 윤리가 바로 서야 생활 공동체인 가정이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형성되고 나아가 건전한 사회와 행복한 나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객관화된 이성적 의지의 실체는 가족, 사회, 국가로 그 관계가 발전된다고 하였다. 가족은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서로 잘 이끌어 주고 배려(配慮)하며 아껴주고 존중해 주는 상경하애(上敬下愛;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아름다운 문화가 깃드는 가정생활이 되도록 각 자가 힘써 노력해야 한다. 는 절실한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자연에도 질서가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마땅히 인간이면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질서와 사회규범이 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질수록 더욱 더 필요한 것이 인간 상호간의 인격적인 만남이고 공경이며 예우여야 한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사람이 사람됨을 바탕으로 한 기본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상호간의 시기와 질투, 반목이 사라지고, 신의와 배려가 가득 찬 사회, 기본적인 예의와 질서를 잘 지키는 밝고 환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는 것으로, 각각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가(儒家)에서는 전통적으로 충(忠)과 효(孝)를 강조했으며,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順從)을 말하고 있다. 이를 공맹의 교리에 입각해 삼강으로 체계화한 것이 한대(漢代)의 동중서이다. 그는 “춘추번로(春秋繁露)”의 기의(基義)에서 ‘하늘과 땅을 임금과 신하, 양과 음을 남편과 아내, 봄과 여름을 아버지와 아들에 각각 비유’하면서 이를 왕도(王道)와 결부시켰다. 삼강은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의 3 가지 인간관계에 한정되어 있고, 또 전자에 대한 후자의 종속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즉 삼강은 통치기준에 입각한 윤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삼강은 상하가 철저하며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윤리의 성격을 가진다. 삼강의 이와 같은 성격은 한대가 유교로써 사상을 통일하고, 군현제(郡縣制)에 입각한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때였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삼강의 윤리는 당시의 전제군주권(專制君主權), 가부장적 부권, 남존여비에 입각한 남편의 절대적 권위 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교가 도입되고 그것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삼강의 윤리가 통치체제를 지탱(支撑)해주는 기틀이 되었다. 특히 1431년(세종 13)에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를 간행하여, 삼강의 윤리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대되도록 힘썼다. 그리고 삼강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상죄(綱常罪)라 하여 특히 무거운 벌을 내려 그 실천에 철저를 기했다.

     

    오륜은 동중서가 인(仁)·의(義)·예(禮)·지(智)의 4가지 덕에 신(信)의 덕목을 추가하여 이를 오행에 짝 맞추어 정리한 것이다. 오륜을 또한 오상(五常)이라고 했다.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하는데 삼강과 더불어 기본적인 실천윤리로 강조되었다. 오륜도 삼강과 마찬가지로 상하관계적 질서의 확립을 통해 봉건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 기능했다. 즉 부자, 군신, 부부, 장유의 상하관계는 절대적인 것이며, 붕우의 경우도 신분의 차별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유교의 실천윤리들은 봉건적 신분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맺을 수 있는 기본적인 유형을 망라하고 있는 오륜은, 군주와 신하 사이의 ‘의로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밀함’,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각별함’, 형제들 사이의 ‘존중’, 친구 사이의 ‘신뢰’를 해당 인간관계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오륜은 일방적이고 수직적으로 강요되는 삼강과 달리 상호 간에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三綱과 五倫

     

    三 綱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사이의 도리로, 임금이 신하의 벼리가 되는 것(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며.

    부위자강(父爲子綱): 어버이와 자식사이의 도리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벼리가 되는 것(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부위부강(夫爲婦綱): 남편과 아내사이의 도리로, 남편은 아내에게 벼리가 되는 것(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

     

    주(註) 42; ‘벼리(綱)’ 란 수산업의 용어로, 그물의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이나 그물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굵은 줄 또는 과녁을 펴서 치는 줄을 뜻한다. 벼리란 용어에 담겨진 의미는, 인간관계에서 모범이 되는 것, 언행의 기준이 되고 본을 받아야 되는 것, 사물의 근본이 되는 것 또는 일이나 글에서 뼈대가 되는 줄거리를 의미한다. 방언으로서의 벼리는 벼루를 말한다.

     

    五倫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는 의리(義理)가 있어야 하고

    父子有親(부자유친); 아버지와 아들은 친밀감(親密感)이 있어야 하며

    夫婦有別(부부유별); 남편과 아내는 분별(分別)이 있어야 하며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次例/ 順序)가 있어야 하고

    朋友有信(붕우유신); 벗과 벗 사이엔 믿음(信賴)이 있어야 한다.

    /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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