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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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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590회   작성일Date 12-11-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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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9)

                                    / 버림받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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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19세기 사실주의의 급진적인 경향으로 자연 과학적 결정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도 자연물처럼 인과율이라는 자연 법칙에 따라 환경 본능 유전 인자 등에 의해 그 일생이 운명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사상을 배경으로 한다. 특징은 해부학 생리학 등과도 연관된 실험적, 분석적 수법을 쓰며, 사회의 추악한 암흑면의 폭로, 우상의 타파 등이 주 소재가 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에밀 졸라(창시자)의『목로 주점』, 모파상의『여자의 일생』,『진주 목걸이』, 입센의『인형의 집』, 하디의『테스』, 존스타인 백의『분노의 포도』, 염상섭의『표본실의 청개구리』등이 있다.

     

    5). 상징주의(象徵主義, Symbolism)-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조로, 사물 정서 사상 등을 상징을 통해 암시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징은 사실주의에 반발하고 낭만주의를 계승한 것으로서, 낭만주의가 감각적 대상에서 쾌감을 느끼는 데 그친 반면, 상징주의는 감각의 대상이 암시하는 또 다른 세계(이상 추구)를 찾아내고자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말라르메의『목신의 오후』 『반수신의 오후』, 베를레느의『화려한 향연』, 랭보의『지옥의 계절』, 게오르그의『동맹의 별』, 다눈치오의『새로운 노래』등. 우리나라의 경우는 황석우, 주요한, 김억 등이 여기에 속한다.

     

    6). 유미주의(唯美主義, Aestheticism)- 미의 창조를 목표로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사조이고, 이는 탐미주의라고도 하며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에 포함된다. 특징은 자연 배격, 인공 중시, 형식과 기교의 중시, 감각적인 것 중시, 개성의 신장 등을 목표로 하므로 퇴폐주의적(頹廢主義的) 악마주의적(惡魔主義的)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포우, 보들레르, 오스카 와일드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작가 김동인의 “광화사” “광염소나타”등이다.

     

    7). 데카당스(Decadence)- 문학이나 예술의 정신이 쇠퇴하여 현실보다 이상을 읽고 자의식 과잉으로 일을 벌여서 하기를 좋아하게 되고, 관능적인 미를 추구하며 퇴폐적이다. 19세기 말엽 예술 지상주의적(藝術至上主義的), 탐미적(耽美的) 문학에 현저(顯著)하나 일반적으로는 위대한 시대가 끝날 즈음 그러한 특질이 나타난다.

     

    8). 다다이즘(Dadaism)- 20세기에 들어와서 현실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의지를 보인 사조로, 현대 지식인의 정신적 불안과 공포에 대한 저항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트리스탄 짜라에 의해 전개되었다.

     

    9).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Surrealism)-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영향으로, 자동기술법을 바탕으로 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표출하려는 경향인 초현실주의가 다다이즘을 흡수하여 일어났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 버니니아 울프의『세월』,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상의『날개』등이 있다.

     

    10). 주지주의(主知主義, Imagism, Modernism)- 1912년 경 엘리어트, 흄, 파운드 등을 중심으로 한 영미 시인들에 의한 시 운동. 그들은 시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 즉 형상이라 생각하여서 시의 음악성 및 운율보다는 시각적(회화적) 요소가 강조되었다. 한국에서는 1934년 최재서에 의해 소개된 후 김광균, 정지용, 장만영, 장서언 등의 시인에 의해 이 경향의 작품들이 쓰여 졌다.

     

    11). 심리주의(心理主義)- 사실주의 또는 자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주의, 또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수법의 소설이 시도되어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경향이 더욱 깊어졌다.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 등이 대표적 작가다.

     

    12). 실존주의(實存主義)- 사르트르의『구토』와 카뮈의『이방인』, 카프카의 『변신』등이 중심이 된 실존 철학을 바탕으로 한 실존주의 소설은, 전후의 허무 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실존적 자각(자아 발견)과 건설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한다.

     

    13). 행동주의(行動主義)- 제 1차 세계대전 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내제하는 허무주의(nihilism)에 대한 비판과 재건의식에 의해 일어난 문예사조다. 대표적 작가로는 앙드레 말로와 생텍쥐페리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밖에서 포착한다는 것이다.

     

    14). 반소설(反小說,nouveau-roman,anti-roman)- 로브그리예 등 프랑스의 소설가를 중심으로 하여 전통적인 소설의 기법이나 약속을 깨뜨리고 새로운 양식의 소설을 창조하려는 운동이다.

     

    15).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G. 쉬타인이 말한 것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치와 사회를 등진 채 문학의 새로운 모습을 재발견(再發見)하려고 노력한 미국의 전쟁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국 전후파 작가인 헤밍웨이, 포크너, 피츠제럴드 등이 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있다.

     

    16).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성난 젊은 세대인 이들은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하층 중류 노동 계급 출신으로서 기성세대의 정치 문화에 대한 반발과 혐오를 표출. 대표적 작품은 오스본(J. Osborne)의 희곡『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이다.

     

    17).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1950년대 미국의 젊은 세대로서, 현실사회와 문명에 대한 외면에서 출발하여 기성 권위나 도덕을 거부하고 방랑 타락하여 원시적 감정을 주로 하는 사상이며 대표적 작품으로는 잭 케루악(Jack Kerouac)의『노상에서(On the road)』가 있다.

     

    18). 하드보일드 문학(Hard boiled literature)- 비정(非情) 냉혹(冷酷)의 뜻으로, 제1차 대전 후의 미국의 젊은 작가들, 특히 헤밍웨이의 문학 경향을 말한다. 감상에 빠지지 아니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와 문체로서 주로 색다른 사건을 취급하는 문학의 한 형식이다. 대표적 작품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이다.

     

    19). 해빙기 문학(解氷期文學)- 소련의 에렌부르크를 중심으로, 목적적 획일적 당문학에 반발하여 일어난 작가들의 문학 활동을 말한다. 그들은 공산 독재에 항거하여 자유주의적 개성 존중의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당과 정부의 탄압을 받았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에렌부르크의『해빙기』, 파스테르나크의『의사 지바고』, 솔제니친의『암병동』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나리차의 『미처 못 다 부른 노래』등이 있다.

     

    나. 상실세대(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의해 전쟁의 체험을 겪고, 전쟁 후에 절망과 몰락의 의식으로서 작품을 쓴 미국의 작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들은 패배 의식과 동시에 전쟁에 대한 비판 정신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썼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유럽에서 배운 새로운 문체와 화법을 활용하여, 기존의 가치와 이상, 신앙에 대해 허무주의적 입장에서 통렬한 비판을 가했으며, 이와 함께 당시에 만연되어있던 상업주의와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이와 같이, Lost Generation 작가들은 기존의 가치에 대한 총체적 무가치론을 내세우면서 허무주의와 비판으로 일관함으로써, 문학적 진보를 더디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했다.

    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란 용어는 E.헤밍웨이가 그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G. 스타인(Gertrude Stein)이 한 말이 유래가 되어 인용한 데서 유명해졌다, 오늘날에는 스타인이 어떤 프랑스의 자동차 수리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에게 주어진 명칭이지만 전후 미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업사회(實業社會)를 혐오하여 대거 파리로 건너가서 쾌락적(快樂的)이고 허무적(虛無的)인 생활을 보낸 사실로 보아서는 이 명칭이 헤밍웨이 작품 이후 유명해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심한 타격을 주었으며, 특히 정신적으로 심한 상실감과 소외감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기존의 이상과 가치, 도덕과 신앙들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모두 허물어져 버렸고, 그러한 상황 속에 빠져 있었던 군인들은 다시 사회로 적응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들이 조국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열렬한 환영과 축제의 분위기가 진정되면서 그들은 점차 실망과 환멸을 느끼지 시작하였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엄청난 경제 번영을 구가(謳歌)하고 있는 미국의 상업주의와 속물주의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사회전반에 대하여 실망과 환멸(幻滅)을 느낀 Lost Generation의 작가들은 일종의 자기 몰입(沒入), 일부러 개인의 감정 속에 안주하는 자기 침잠(沈潛)의 현상을 나타냈다. 암울한 시대에 있어서 자기 침잠은 어느 시대나 지식인들의 특징적인 현상이기도 하였다. 이 세대의 작가로는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를 비롯하여 F. S.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J. 더스패서스(John Dos Passos, Roderigo), E. E. 커밍스(E. E. Cummings), W. C. 포크너(William C. Faulkner)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결코 허무적이었던 것은 아니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의욕적이고도 우수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또, 같은 세대의 비평가인 M. 카울리는 “망명자(亡命者) 돌아오다./1934)”에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하여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며 인디언의 문화를 차용하여 히피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실제로는 인디언 문화와는 실질적인 관련은 없다. 단지 외피(外皮)만 차용(借用)했을 뿐이다. 이들을 우리는 히피 세대라고 부르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난장판은 이 히피 세대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새로운 예술, 새 질서의 창조와 기성문화의 파괴, 반전(反戰)을 외쳤던 이 젊은이들은 사실 50~60년대 닉슨 이전 정권의 방대한 재정정책을 기반(基盤)으로 한 성장의 시대에 태어나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서 10대를 보냈지만, 71년 닉슨의 금태환 금지의 역사적 사건이 대변하는 미국의 침체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 속에 내팽겨진 비참한 세대이었다.

     

    註 56;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명사;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거시 경제학에서 고 물가(인플레이션)와 실직, 경기 후퇴(스태그네이션)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를 뜻한다. 이 경우 총 공급이 줄어들어 물가가 오르고 GDP가 후퇴하며 이 결과로 인하여 투자 위축이 발생하여 실업률이 오르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1970년대 중동국가가 석유를 자원무기화하면서 석유공급을 인위적으로 감소했고, 이로 인해 원유 공급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인플레이션의 부담으로 경제침체가 오면서 실업률이 높아진 경험이 있다.

     

    그들은 절망했고 처음으로 비참함을 느끼게 되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했으나 지금의 우리의 현실과 같이 그들이 갈 곳은 없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苦惱)를 그려낸 영화가 바로 사이먼 & 가펑클의 명곡들이 흐르는 영화 “졸업(卒業)”이었다. 영화 속에서의 주인공 벤은 방황 속에서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히피 문화를 새로운 예술로 창조해 내며 특히 대중음악에 있어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어 내었다. 제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 등의 당시를 대표하는 미국의 뮤지션들 그리고 영국의 포크락과 프로그래시브, 이탈리아의 아트락 등 히피의 시대는 대중음악사에 있어 정점을 찍은 시기로 평가했다. 하지만 예술은 절망과 고뇌를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했던 화려했던 히피의 시대는 이들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기성세대들에 의해 비트(beat) 제너레이션(패배의 세대)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착한 멍청이 검프의 유일한 사랑인 제니가 대학을 졸업하고 술집에서 나체로 통기타 연주를 한 것은 그녀가 음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절망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로스트 제너레이션(ロストジェネレ-ション)의 의미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 신조어(新造語)로 이해하고 있다. 1980-90년대에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붕괴될 때에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를 ‘거품 붕괴 후 세대’라는 의미로 ‘로스트 제너레이션’ 이라고 했다.

    이 용어의 본래의 유래와 의미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쟁 경험을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기를 든 헤밍웨이와 피츠제랄드 등의 작가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성인이 된 젊은이들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거품 경제기의 풍요로운 시대에 청소년 시기를 보냈지만 대학 졸업과 함께 불황에 직면해 원하는 곳에 취직하지 못한 채, 프리터(Freeter;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람)로 지내야 했던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아사히신문사는 이 용어에 대해 단순히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을 찾아 '떠돈다.'는 의미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즉, 거품경제가 붕괴되기 이전인 고도성장기의 연공서열(年功序列)과 종신고용제(終身雇用制)가 붕괴되면서 성과주의가 득세하는 최전선에서 방황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비트 제너레이션의 차이점은

     

    먼저 두 세대는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나 비트 제너레이션 은 주로 근현대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세대적 특징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가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세대를 이루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가 비트 제너레이션의 세대를 이루었다고 보고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과 함께 베트남 침공전쟁의 전후는 그것이 히피-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로 변이(變移)되었다고 보고 있다.

     

    註 57;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란, 1960년대에 히피를 중심으로 한 반전 운동을 뜻한다. 1960-1970년대 당시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존 F. 케네디 암살과 마틴 루서 킹 2세의 암살,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베트남 전쟁 발발로 인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의 사망 등으로 분노와 절망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당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청년층에선 사회의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분노하기 시작하여 이를 계기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도피처로 히피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싸움, 인종차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사랑과 평화만을 외쳤다. 여기서 그들은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고, 이를 부드럽고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하려는 의미로 꽃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꽃을 꽂고 평화와 자유를 외쳤다고 하여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 가지 예로 가수 스콧 매킨지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San Fransisco Wear Some Your Hair)'를 들어보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히피 문화가 매우 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헤밍웨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소설 '해는 다시 떠오른다.'에서 언급된 사회상 혹은 개인적 내면이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 1차 대전의 상처와 환멸, 그리고 역설적(逆說的)인 경제적 호황(好況. 물론 大恐慌도 있었지만), 그리고 정신적 황폐(荒廢) 등 이런 것들이 안정되지 못하고 우왕좌왕 길을 잃은(로스트) 세대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핏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 같은 경우,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아주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전에는 변화는 있어왔지만 역사라는 맥락(脈絡)에서 '안정'되게 특정한 방향이란 커다란 개념과 기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사라져버리기 시작한, 길을 잃고 자신이 지향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그런 세대가 바로 로스트 제너레이션인 것이다. 이와 상당부분이 다른 비트 제너레이션은 2차 대전 기간 중에 유소년기로 보낸 그 이후 세대들의 모습을 지칭한다. 무엇보다도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 물질문명에 대한 반대의 개념이 강하다. 여기서의 물질문명은 경제적 호황의 개념과 다르다. 정신과 물질의 의미에서 자본주의와 과학이 가져온 물질문명의 의미한다. 거의 보헤미안적이고 1900년대 말 유럽의 아방가르드적인 사조의 유입에 가까운 그런 운동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비트란 말 자체가 희곡에서 유명한 작가인 브레히트(Brecht, Bertolt/작품으로는 “밤의 북”과 “서푼짜리 오페라”가 있다.)

    나 소설의 헨리 밀러(Henry Valentine Miller, Henry)와 같은 무국적(無國籍) 망명자들을 지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도 했다.

     

    註 58; 헨리 밀러(Henry Valentine Miller), 1891년 12월 26일 ~ 1980년 6월 7일)는 미국소설가이다. 뉴욕 주 요크빌에서 출생, 소년시절부터 독서에 열중했고, 해거드, 콜리지, 쿠퍼, 마크 트웨인 등을 애독했다. 1909년(18세) 뉴욕 시립 대학에 입학했으나 규칙이나 제도에 반발하여 자퇴하였다, 그 후 시멘트 회사나 웨스턴 유니온 전신회사 등에서 근무했고, 1924년(33세)에 두 번째 아내 준 스미스와 결혼했다. 밀러의 많은 작품 가운데 준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일생을 통해 그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30년에는 단신 유럽으로 건너가 많은 학자들과 교제하면서, “북회귀선(北回歸線)/1934년)” 이후 대부분의 작품은 유럽에서 출판되어 이국(離國)작가라 불리기도 했다. 〈검은 봄〉(1936년), 〈남회귀선(南回歸線)〉(1939년)에서는 현대의 허망(虛妄)에서 탈출한 인간정신을 다루어, 성(性)을 신성시하지 않은 채 인간의 본질과 그것이 자유로이 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술 속에 재생시키려 했다. 〈섹서스〉(1949년), 〈프렉서스〉(1953년), 〈넥서스〉(1960년)는 미국에서 수입이 금지되었으나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휘트먼, 랭보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967년(74세)에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 호키 도쿠타와 여덟 번째 결혼을 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52년 11월 16일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글 '이것이 비트 세대다'라는 기사로 소설가 존 클레론 홈즈(John Clare Ron Holmes)가 써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즉 그가 만든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주된 계기의 하나였다. 그 후 군국주의, 물질주의, 성적억압에 반대했던 알렌 긴즈버그(Allen Ginsberg)는 미국의 시인이자 1950년대의 비트 제너레이션의 지도적인 시인들 가운데 한 명으로 1955년에 발표한 그의 시 “포효(咆哮)”가 비트 제너레이션의 성서가 됨으로서 문화운동으로 더욱 활발하게 되었다. 긴즈버그가 1955년 샌프란시스코의 식스 갤러리에서 발표한 비트 제너레이션의 상징처럼 된 시 ‘포효’에서

    '나는 광기에 파괴된 우리 세대의 최고 선인들을 봤다. 적나라한 흥분 상태 속에서 굶주린 채, 새벽의 검둥이 거리에서 독한 마약 주사를 갈망하면서 제 육신을 질질 끄는 천사 머리의 비트족들. 그들은 밤의 기계 장치 속에서 별처럼 빛나던 발전기와 나눴던 아주 오랜 천상의 교류를 찾아 불타오른다.'라고 했다.

     

    비트'란 말은 본래 서커스나 카니발을 가리키는 은어(隱語)에서 유래되었다. 고 한다. 이 말에는 순회공연을 위해 유랑(流浪)하는 공연 종사자들의 고달픈 생활이 빗대어서 표현하는 용어였다. 2차 대전 후에 있어서의 비트란 피곤한, 지친, 기진맥진한 등의 의미를 가진 말로 시대적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1950년대 초가 되었을 때, 케로왁과 긴즈버그는 신비주의적 전망에 대한 좌절에 힘을 부여하는 beatific(기쁨에 넘친) 수준의 '비트'에 대해서 강조하기 시작했다. 비트 제너레이션의 저항과 일탈이 진행된 이후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만의 세상이 생겼다는 점에서, 비트는 점차 ‘행복이 가득 찬(beatific)’이란 의미로 바뀌었고 ‘성스러운’ 의미도 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비트 세대가 ‘현대적 삶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꿈꿨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의미로는 마약과 관련해서 '비트'는 마약거래 중에 '강도를 당했다' 혹은 '속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고 한다.

     

    허버트 헌크는 이 말을 미국의 시카코의 북쪽에서 연예사업을 하는 그의 친구로 부터 듣고 1945년 가을에 윌리암 버로프스, 알렌 긴즈버그, 잭 케로왁 등에게 소개했다. 그는 비트란 말을 승화(昇華)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나에 대한 세계에 완전히 지쳐 버렸다(녹초가 된, 완전히 지친)는 것이다. /"I meant beaten. The world against me." 비트의 광의적인 의미는 매우 애매하고 다양하여 적확한 의미를 선택하여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지시적인 의미로는 두들기다, 역동적이다, 녹초가 되어버리다. 등등의 여러 가지 뜻이 사용되지만, 기존의 물질만능 사회에 대해 주먹을 휘두르는. 기존 문명에 억눌려 녹초가 되어버린, 사회에 대한 부적응으로 피곤하거나, 좌절한 세대란 의미도 있다.

    위와는 달리 일설에는 1948년 11월에 잭 케로왁이 동료작가 존 클레론 홈즈와의 대담에서 '나는 당신이 우리는 비트 세대라고 말 하려고 하는 것 같네' 라고 말한 데서 이 말은 역사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고 한다. 이 대담을 인용해서 4년 뒤인 1950년 11월에 홈즈는 이 말을 '이것이 비트 세대이다." 라는 표제를 달고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주류 세계로 소개 했다. 그 기사 내용 중에 "그것은 궁극적으로 영혼과 마음의 무방비 상태 등을 포함하며, 의식의 근본으로 가까워지는 느낌" 이라고 홈즈는 기술했다. 또 '비트의 핵심적인 의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시적인 방법을 통해 어떤 무방비(無防備)의 의식 상태로 Beat down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긴즈버그는 썼다. 이것이 오래된 전통적인 영혼의 어두운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기성세대의 눈에는 마약에 중독되어서 알 수 없는 멜로디를 읊조리던 그들이 사회의 낙오자로 보였음에 분명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비트 제너레이션이란 용어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무렵, 당시 반전(反戰)을 외치며 워싱턴에 몰려들었던 갈길 잃은 젊은이들과 같이 역사는 반복하여 오늘의 젊은이들이 이번에는 월가의 탐욕(貪慾)에 분노(忿怒)하며 뉴욕에 모이고 있다. 그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고 다른 미국의 대도시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이 젊은이들을 ‘뉴 비트 제너레이션(new beat generation)’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대표할 다른 이름이 필요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갈길 잃은 젊은이들이 또 다른 세계로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패배의 세대(defeat generation 또는 lost generation)이기도 하고 분노의 세대(Wrath Generation)이기도 한 것이다. 렌덤 하우스 사전에 기록하기 위해서, 잭 커로왁은 적절하게 비트에 대해서 역사적 정의를 내렸다. '비트 세대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대에서 나온 특정 세대의 구성원이다. 그들은 아마도 냉전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에 대한 환멸과 신비주의적 초연함 그리고 사회와 성적 긴장에 대한 relaxation(緊張緩和 또는 기분전환과 같은 弛緩作用)을 신봉한다.' 라고 했다. 20세기가 끝나 감에 따라, 비트 세대들은 역사적 순간들을 지나 살아남았고, 악명(惡名)과 미디어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뒤이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고전문학이 되었다.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와 로스트제너레이션의 차이점

    초월주의(超越主義)는 사상사(思想史)의 계보로 따져본다면, 신 프라톤파나 칸트 철학의 영향을 받아 개인에 내재하는 신(神)에의 귀일(歸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 등을 기본적인 교의(敎義)로 삼았으나 이윽고 남북전쟁(南北戰爭:1861∼65) 전야,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한 사회의 진로가 명확해짐에 따라 점차 쇠퇴하였다.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실용주의)이 대두될 때까지 미국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정한 체계를 갖춘 철학사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명비평이나 문학운동에 가까웠다. 문학으로서는 에머슨의 《에세이집》과 시, 소로의 《숲속의 생활》 등으로 열매를 맺고 N.호손, H.멜빌, W.휘트먼 등에서도 그 영향이 인정된다. 초월주의은 칸트나 독일 관념론의 경우에는 ‘선험주의(先驗主義)’로 번역되므로 이와 구별하여 영어에서는 New England Transcendentalism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초월주의(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 초월주의 또는 초절주의(超絶主義)는 미국에서 1830년대부터 1840년대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서진운동(西進運動)을 배경으로 근대국가로 발 돋음을 하는 미국의 전환기를 밑바탕으로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무한한 세계에로의 동경 즉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이다. 초월주의란 직관적 지식과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는 신성 및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망라하는 관념주의의 한 형태이다.

    1836년에 발간된 Emerson의 Essay 는 에서 그는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정신적 본성을 발견하며 또 어떻게 계속해서 정신의 궁극적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주의 끊임없이 상승하는 영역을 탐색하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연설 "미국의 학자 (The American Scholar)", 하버드 대학에서 행한 우등생 친목회 연설문에서 "우리는 우리 발로 스스로 걸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 손으로 스스로 일을 할 것이다; 또한 신성한 영혼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We will walk our own feet; we will work with our own hands; Divine Soul which also inspires all men) 그는 어떻게 미국 전체가 유럽의 문학정통으로부터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또 학자들, 철학자들, 그리고 문학가들이 자립적인 국민의 신분을 발전시키는데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그는 다음 해에 케임브리지에서 논쟁적인 신학교 연설, "Divinity School Address"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그는 청중들을 하여금 정통적인 신조들과 독단들을 생각없이 반복하기를 그치고 성령의 거듭 난 음유 시인들이 될 것을 촉구함으로써 교수진들과 정톡적인 성직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1840년 <다이얼; The Dial> 지를 창간하는 데 기여했는데, 처음에는 마거릿 풀러가 편집하다가 후에 그 자신이 잡지의 편집을 맡으면서 초월주의가들이 미국에 제시하려는 새로운 사상들의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이 잡지는 비록 단명했지만 이 학파의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쟁점들을 제공해 주었다. 1842년 Emerson은 그의 강의 초월주의자(The Transcententalist) 에서 "경험에 기초를 둔 관념론자들"을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서두로 해서 관념론자는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이 세상을 현생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T.파커, 헤지, 풀러, H.D.소로, A.B.올코트 등을 주축으로 그들은 제각기 뛰어난 개성을 갖추면서 한결같이 현실세계의 유한성을 부정하고 그 배후에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초월세계가 실재함을 믿음으로써 반대로 현실세계의 무한성을 찬미하였다. 이 운동의 주요 인물로는 랠프 왈도 에머슨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존 뮤어 , 마가렛 풀러 , 그리고 아모스 브론슨 Alcott . 다른 유명 초월주의자 포함 루이자 월 Alcott , 찰스 티모시 브룩 , 오레 스 테스 Brownson , 윌리엄 Ellery 채닝 , 윌리엄 헨리 채닝 ,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 , 크리스토퍼 Pearse Cranch , 월트 휘트먼 , 존 설리반 드와이트 , Convers 프란시스 , 윌리엄 헨리 Furness , 프레드릭 헨리 헤지 , 실베스터 져드 , 시어도어 파커 , 엘리자베스 팔머 Peabody , 조지 리플리 , 토마스 트레드 스톤 과 존스 참 등이 있다.

     

    초월주의의 사상적 영향의 근원을 찾자면, 독일 관념주의, 영국 낭만주의, 신플라톤주의, 동양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흔히 초월주의는 문화적, 사상적 빈곤 상태에 있던 19세기 미국 사상가들이 궁여지책으로 편의에 따라 여기저기 수용한, 독창적이지 못한 일종의 조합철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초월주의의 근본은 초기 미국 역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청교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미국 특유의 역사적, 문화적 토양에서 필연적으로 자생한 사상이다. 19세기 전반 정치적 독립에도 불구하고 영국 및 유럽의 여러 제국에 정신적 종속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던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 정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는 사상 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때마침 변색되어 가던 청교도주의 또한 신생 미국의 문화적 독립과 새로운 사상의 욕구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대략 19세기 전반에 초월주의는 미국의 문예 부흥기를 장식하며 사실상 미국의 사상,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즉 초월주의는 19세기 전반에 낭만주의에서 분파되어 미국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1850년 초에 주요작품들을 발표했던 너대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정치적, 사상적으로 지나칠 정도로 낙관주의였던 에머슨의 사상과는 반대로 인간 심연의 암흑의 힘을 탐색하고 문학화하려 하였다. 다양의 심리적 죄의 양상과 갈등의 이면들을 그려낸 그의 단편 소설들과 로맨스들은 미국낭만주의의 정점의 깊은 심연을 드러내었다.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1850))는 미국의 역사적 무의식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으며 개개인들의 미국사회에서 겪는 도덕적, 정신적 갈등과 깊이의 심연을 깊은 통찰력으로 드러내주었다. / 위키와 관련 자료들을 종합정리.

     

    註 59; 실용주의(pragmatism)-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 학파. 넓은 의미로는 어떤 생각이나 정책이 유용성·효율성·실제성을 띠고 있음을 가리키며, 학문적 의미로는 추상적·궁극적 원리의 권위에 반대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실용주의라는 말은 '행동'·'사건'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πραγμα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특정 철학이론을 지칭하기 위해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찰스 샌더스 퍼스는 칸트가 실험적·경험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쓴 독일어 용법'pragmatisch'를 더 염두에 두었다.

    실용주의는 미국의 철학사조로서 법·교육·정치·사회 이론, 나아가 예술·종교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철학의 기본 논점은 다음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실재의 가변적 성질을 강조하고 인간 지식을 이러한 실재에 적용하고 그것을 통제하는 도구로 본다. 둘째, 비판적 경험론을 계승하여 연구 활동에서 고정된 원칙이나 선천적 추론보다는 현실경험을 더 중시한다. 셋째, 어떤 생각이나 명제가 지닌 실용적 의미는 그 생각을 현실에 적용할 때 생겨나는 실제 결과 속에 들어 있다. 넷째, 진리는 검증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관념이나 생각이 성공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곧 그것의 진리를 입증한다. 다섯째, 관념은 외부 대상의 반영이나 모사가 아니라 행위의 도구로 보아야 한다. 즉 관념은 행동에서 생겨날 결과에 대한 가설이자 예측이며 세계 속에서 행위를 조직·규제하는 방편이다. 여섯째, 방법론의 측면에서 볼 때 실재에 관한 인간의 사고는 인간 자신의 이해관계와 필요에 의해 생겨나며 효율성·효용성 여부에 의해 정당화된다./브리태니커

     

    R. W. 에머슨(Ralph Waldo Emerson:1803~1882)의 초월주의는 독특하며 플라톤 철학과 칸트, 힌두교 ,독일의 관념론과 영국의 낭만주의를 교묘하게 혼합한 느낌을 준다. 그의 사상은 지극히 신비주의적이며 직관과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권위나 체계화된 종교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머슨이나 소로 등의 초월주의는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에 범신론적인 견해를 보이는데, 지상의 모든 것에는 신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삶의 근본 목적은 궁극적으로 대령(大靈; over-soul)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대령이란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실체 또는 헤겔의 '정신'과 아주 흡사한 비정형의 실재이다. 초월주의는 유럽 그리고 동양의 여러 철학 및 문학 전통에서 파생된 묘한 혼합물이다. 그래서 초월주의는 사실상 하나의 철학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사회적·문화적 현상으로 여겨진다.

     

    초월주의와 달리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는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상실세대(喪失世代), 길 잃은 세대라고도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졌는데, 오늘날에는 스타인이 어떤 프랑스의 자동차수리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업사회(實業社會)를 혐오하여 대거 파리에 건너가서 쾌락적이고 허무적인 생활을 보낸 사실로 보아서는 이 명칭이 헤밍웨이 작품 이후 유명해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적인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20년대 미국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은 전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상황으로 상당한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며 그 기술이 경제적 번영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변화는 자동차 보급의 확산이었다. 자동차는 당시 미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신분의 척도 역할을 하였다. 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20년대 경제적 번영 그리고 그로 인한 물질주의의 우세는 개인들의 획일화 또는 표준화를 가져왔다. 이런 물질주의와 획일화는 쿠 클럭스 클랜(KKK), 금주운동, 교조주의인 기독교 근본주의운동의 형태로 표면화되었다. 미국에서 금주 운동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17세기 청교도 사회에서는 엄법(Blue law)을 통해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였고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삶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민이 급증하면서 술의 제조와 판매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따라서 금주운동은 이민 배척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북 전쟁이후 남부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쿠클럭스클랜(Ku Klux Klan/ 줄여서 K.K.K)은 20년대 보수주의와 전통주의의 물결을 타고 확산되었다.

     

    註 60;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은 백인 우월주의, 반(反) 유대주의, 인종차별, 반 가톨릭, 근본주의성격의 개신교, 동성애 반대 등을 표방하는 미국의 비밀 결사 단체이다. 이 단체는 종종 테러, 폭력과 협박 등의 수단을 사용해왔다. 약칭 KKK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나자 옛 남부 연합 군인들은 테네시 주에서 몇 차례 모임을 갖고 남부의 재건을 목표로 이 단체를 결성하였다. 주도자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 기병대장으로 맹활약했던 네이턴 베드포드 포레스트였다. 이들은 남부 각주에서 해방된 흑인들, 심지어 노예 해방을 지지하는 백인들을 기습하여 집단 폭행 등의 폭력을 일삼았다. 1860년대 말 이 단체의 테러가 극에 달하자 연방 정부는 테러를 단속하는 연방법을 제정했으나 일관성이 결여되어 1920년대에는 전국에서 백인들의 흑인들에 대한 살상이 벌어졌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아일랜드, 러시아,중국 등지에서 가톨릭 신자들과 유대인들의 이민이 급증하자 KKK단은 조직을 개편하여 반 흑인뿐 아니라 반 가톨릭, 반 유대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남부를 중심으로 반(反) 이민 경향이 있는 지역 등에 침투함으로써 수백만 회원을 보유하였다. 이들은 이민들의 등장이 개신교백인들의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캐나다에까지 진출을 시도했으나 캐나다인들은 미국과 달리 이들을 배척하였다. 1960년대에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민권 운동가들의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해 KKK단은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한 백인들을 살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연방 정부의 단속 재개와 함께 남부의 정세가 인종 문제에 관대해지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테러 사건도 대폭 감소되고 단세(團勢)도 많이 쇠락하였다.

    /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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