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을 돌아보며(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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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을 돌아보며(7-7)
자유게시판과 관련 천도교 홈 관리자와 자유게시판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글쓰기와 게재된 다양한 글들을 시간을 내어서 꾸준히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 한울님을 모시고 안녕하셨습니까? 시비곡직을 가리는 것과 논쟁을 거는 일 들은, 제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사료되어 다음과 같이 자유게시판의 활성화를 위한 제안서를 올리오니, 많은 동덕들께서 돌려가며 읽으시고 더 좋은 대안을 만들어 새롭게 출발하자고 부탁드립니다.
포덕147(2006)년 5월 21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다 음.
자유게시판을 세분화하여, 다수의 적극적인 참여 교인들과 동학, 천도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방문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 교단발전에 참여한다는 자긍심을 심어줍시다. 막히고, 대적하고, 비방하는 언로(言路)는 그 집단을 파멸로 이끌어 간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막는 것도 하나의 문제해결의 방법이지만, 더 개방하여 스스로 느껴 자정(自淨)하는 것도 성숙한 시민이 되어 가는 길이고, 천도교 교리에 합당한 길입니다. 일시적인 불편함 때문에 정도(正道)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많은 동덕들께서 제 글인 <청오 차상찬과 종합잡지 개벽>이란 긴 글을 읽으셨습니다. 그 글의 기본정신은 천도교가 출판 문화사업의 선구자로 근, 현대사에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가지게 된 저력의 출발은, 교단 내외의 다양한 욕구를 거부하지 않고 모두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도교의 포용정신이요, 스승님의 넓으신 가르침입니다. 이런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자유게시판을 세분하여 보았습니다.
1. 동학군의 글방; 문예 전반의 형식을 가리지 않고 게재하게 한다.
2. 명상의 방; 동서양의 모든 장르의 음악과 천덕송, 송가를 올려 감상케 하고, 각자가 살면서 감동을 받은 명시와 명문장을 올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도록 인도 한다.
3. 토론의 방 ; 교리 교사와 교리를 바탕으로 한, 세상사에 대한 시각과 평가를 실어 서로 의견을 주고받도록 유도하여 수운주의의 가치관 확립을 통한 신인간 창조에 기여토록 한다.
4. 사발통문의 방 ; 서울과 지방의 소식을 게재하여 서로 관심을 갖고 서로간의 의사소통 을 통하여 교단내의 협력을 원활히 하게하며, 동덕간의 유대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5. 자유게시판 ; 1. 2. 3. 4.항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내용들을 게재하게 한다.
유의사항.
관리자뿐만 아니라 참여 동덕 상호간의 권유와 지도로 常道에 벗어난 글들을 필자 스스로 삭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삼진 아웃제를 채택하여, 1차 경고, 2차 경고, 3차 경고를 무시하는 필자에겐 등급을 조정하여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 단 참여를 제한할 때는 일방적이거나, 어떤 개인의 의사가 깊이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본인의 제안을 숙독하시어 더 좋은 대안을 공개 토론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 제안은 어디까지나 초안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提案과 論議가 不必要한 것이 事實이라면, 지금 天道敎 揭示板에 揭示되는 글들이 敎團의 基本情神에 違背되지 않는다는 立場을 敎團은 闡明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筆者의 判斷으로는 天道敎의 基本思想과 敎團의 公式的인 立場과는 많이 다른 글이 수없이 揭載되고 있는 實情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敎團은 적어도 揭示板 管理에 있어 敎團 執行部에 不利한가? 非難하고 있지 않은가? 만 考慮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重要한 敎理解析과 敎史의 새로운 評價와 修道修鍊과 信仰姿勢에 대한 立場을, 玄機室, 敎書編纂委員會, 宗學大學院의 敎育擔當部署, 敎化觀에서 또는 連席會議에서 合議된 敎團의 立場을 具體的으로 밝혀, 잘못 解釋되거나, 잘못된 信仰을 하지 않도록 指導해야할 責務가 있다. 그것이 바로 敎團의 業務를 새로 된 執行部에 3년간 委任된 것이라는 点을 銘心해야 한다.
現 時點에서 敎團이 取하고 있는 代表的인 問題, 두 가지에 대해 論議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特別祈禱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揭示板에 揭載되고 있는 豫言的 敎理解釋이다. 새로운 執行部가 構成되어 바로 實施한 것이 全國의 敎區와 敎役者와 敎人을 相對로 한 제 1차 특별기도 이였고, 약 6 개월 후의 제 2차 특별기도 봉행을 계획하여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현 집행부는 이 특별기도 봉행을 해서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가를 公文書를 基準삼아 돌아보고자 한다.
천도교 중앙 총부가, 천 총 발 제 167 호(151. 9. 10.)와 172호(151. 9. 17.)로, 지방 각 교구, 전교실, 교구장, 각 연원회의 도정, 도훈, 전교사, 수도원장에게 발송된 ‘제 2차 이신환성 49일 특별기도’에 관한 공문을 보면, 목적이 以身換性이고, 기간이 포덕 151. 10. 13일부터 11월 30일 까지 49일간이고, 기도 장소와 절차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기간 중 합동 철야기도가 마련되어 있다. 공문 뒷면에는 ‘이신환성을 위한 49일 특별기도 심고문’이 다음과 같이 예시되어 있다.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
우리는(저는) 지금 이신환성, 정신개벽을 위한 특별기도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기도의 목적인 이신환성, 정신개벽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한울님의 뜻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참된 한울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하겠으며 한울님의 감응을 받아(심고문의 첫 줄을 상기하면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을 받아 로 되어야 맞다.) 어려운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저의 적은 지혜를 베풀어 가정과 이웃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천도교인으로서 인격을 갖추어 교회중흥과 포덕천하 공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건설의 대원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한울님 스승님 지극한 정성으로 발원하오니 감응하옵소서 !
公文書의 目的에는 ‘精神開闢을 爲한 特別祈禱’란 말이 없다. 심고 문장의 내용으로 보면, 이신환성과 정신개벽은 對等한 目的으로, 두 개의 목적을 위하여 봉행되는 특별기도로 해석되는데 정작 공문에서는 누락되어 있어, 이 특별기도 봉행의 眞情性과 目的이 曖昧模糊한 것으로 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집행부가 구성되어 처음 실행한 것 중의 하나가 ‘제 1차 이신환성 49일 특별기도’였는데 특별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에 대한 具體的으로 評價된 結果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가져와 個人의 道力과 敎團의 底力을 增强시켰는지는 알 수도 없다, 불과 반년이 지나 ‘제 2차 이신환성 49일 특별기도’를 또 다시 해야 할 행사였다면, 이런 특별기도를 얼마나 더 해야 天道敎의 宗敎的 目的을 達成할 수 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심고문의 말미에 또 다른 기도의 목적이 예시되어 있다.
‘또한 天道敎人으로서 人格을 갖추어 敎團中興과 布德天下 廣濟蒼生 保國安民 地上天國建設의 大願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도록 精誠을 다하겠습니다.’란 기원의 목적은 천도교란 종교의 宗敎的 4大 目的의 擴張인 것으로 解析되며, 이 특별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신환성, 정신개벽을 위한 특별기도를 통해 얻어진 힘을 천도교의 종교적 4대 목적의 확장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만약 1, 2차의 ‘이신환성을 위한 98일간의 특별기도가 특별기도를 통해 얻어진 힘을, 천도교의 종교적 4대 목적의 확장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면, 먼저 以身換性과 性靈出世의 由來와 意味를 敎育을 시켜야 올바른 특별기도 답게 될 것이며 그 效果的인 結果가 分明하게 들어날 것이라고 思料된다. 아울러 急迫하게 돌아가는 現代의 技術社會에서 49일이라는 긴 시간이, 현대인의 생활 리듬에 합당한 것인가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특별기도의 實效面에서 再考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엇나가 따로 노는 마당놀이(下) / 2010.10.24.
大多數의 敎人뿐만 아니라, 多數의 敎役者들이, 義菴의 以身換性과 性靈出世의 思想과 이를 바탕으로 한 特別祈禱의 意圖를 이해하고 있지 않는 狀況에서, 經典에 收錄된 法說만을 읽어서, 이 모든 것을 理解할 수 있을까가 疑問이 간다. 예시된 심고문 중간을 보면 ‘ 그러기 위하여 참된 한울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하겠으며 한울님의 감응을 받아 어려운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저의 적은 지혜를 베풀어 가정과 이웃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였는데 窮極的인 天道敎의 目的을 達成하기 위한 指導者나 先導者가 되겠다는 다짐인바, 이런 다짐을 한 指導者나 先導者가 義菴의 以身換性과 性靈出世의 思想과 意圖와 그 由來를 確實하게 모른다면 무슨 役割을 할 것인가?
‘義菴聖師께서 以身換性에 대해 처음 말씀하신 것은, 포덕 53(1912)년 4월경에 聖師 l 宗學講習所를 設立하사 敎理를 專門으로 講習케 하였다. 地方 頭目 500인을 7회로 나누어 49일 煉性祈禱式을 하게하고(鳳凰閣 과 지금의 道詵寺에서 나누어 행함.) 그 자리에서 聖師 l 說法하시기를 “余 l 通度寺에서 訖工하고 吾道의 本旨를 怳然大覺하엿노라. 大神師 l 반듯이 性靈으로出世할 것을 確實自信하노니爾等은愼聽信行하라하시며 以身換性四字를深思하라”하신 것이었다. 포덕 61(1920)년 4월 1일에 筆耕이 완료되어 謄寫되어 講材로 사용된 ‘天道敎書’의 기록에 의하면, 그 후 포덕 57(1916)년 9월에 議事員 一同이 鳳凰閣에 出하야 聖師께 拜謁하는 자리에서 聖師 l 以身換性說로 說諭하셨다고 하고 있다. 다른 교단사의 기록에는 포덕 55(1914)년 4월경으로 되어 있지만 잘못된 기록으로 보인다.
以身換性說의 原文은, 위에서 例示한 謄寫本과 포덕 134(1993)년 4월 5일에 발간된 金 琓洙가 編纂한 東學 天道敎史 印刷本과 天道敎 經典 /三部經典 개정 5 판(포덕 142년 3월 1일. / 개정 초판-포덕 133년 2월 24일.)에 수록되어 있다. 天道敎 經典 /三部經典 初版本(포덕 102년 4월 5일에 발행.)에는 없었다가 개정판에 수록된 것이다. 개정판에 수록된 以身換性說의 (一)은, 謄寫本과 동일하지만, 金 琓洙가 編纂한 東學 天道敎史 印刷本에는 以身換性의 說法은 포덕 55(1914)년 4월 초로 되어 있고 以身換性說의 원문내용도 다르다. 그리고 天道敎 經典 /三部經典 개정 5 판에 수록된 以身換性說의 (二)의 설법연도와 내용의 출처는 교단사의 자료들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 포덕 151(2010)년 7월 20일. 천도교 홈에 게시된 ‘性靈出世說의 收錄資料 比較分析 硏究(上)’에서.
註 00; 以身換性說과 性靈出世說에 관련된 모든 內容과 資料는 天道敎 홈과 關聯 홈에 ‘性靈出世說의 收錄資料 比較分析 硏究(上),(下)’를 揭示하였아오니 熟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천도교 창건사 제 3편 PP.66-69에서 포덕 53(1912)년 4월경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聖師 l 道力이 大通하사 날로 徒弟에게 法說을試하야 大神師의心法闡明과 敎理啓發에 全力을 다하시니 이제그法說의 槪要를示하면”이라 하고 9 개 항목을 기록하고 각 항목마다 간략하게 법설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9개 항목이란 1. 人乃天, 2. 性身雙全, 3. 敎政一致, 4. 性靈出世說, 5. 以身換性, 6. 規模一致, 7. 信仰統一, 8. 宗敎의定義, 9. 無體法說이다. 이 중 性靈出世說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 法說은 聖師 l 梁山에서 修工한後에 人生의 死後問題를 大覺하야 얻은法說이니 ‘昔時此地見 今日又看看’이라한 一句詩가 곧性靈出世의 原理를 至矣盡하얏다하야도 過言이아니엇다. 大神師의肉身과 義菴聖師의現身은 비록다르다할지라도 그法身에잇어는 全혀唯一한 吾心卽汝心의 妙諦에 達한것을보아서 前日의寂滅窟과 後日의寂滅窟을 同一한法身이 두 번재본다는뜻이니 이原理를 敷衍하고보면 前代億兆의 精力과靈力은 後代億兆의生命에 依하야 나타난다함이라 卽사람의精力은 그生前의努力이 後代人에게通하야 永久不滅하고 또長生한다는것이니 모든法說中에 有力한것이엇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性靈出世說의 사상적 기초위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以身換性說은 위의 자료 9 개항 중 5 번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聖師 l 徒弟에게 修道의 要諦로주신 말슴이니 道닦는者 無常無常한 肉身의變化와 또 無常無常한 世事의翻覆에 愛着하지말고 大道如天 脫劫灰라하는 사람性本源의 大道大德에 合致하야 그原理와 合一하며 그眞理에順應함으로써 能히人乃天의 人間格을 더우잡아 假人間으로부터 眞人間의生活에 들어갈수잇다함이다 要컨대 以身換性은 生命으로써 主義를 바꾸라함이니 卽生命의 主義化를 이름인데 사람은 主義로써살고 肉體로써 살지말라는 話頭이엇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령출세설의 기본사상은, 천도교를 대고천하 할 당시 의암성사께서 제시한, 性身雙全이란 綱領의 思想的 擴張이라 할 수 있다. 또 性靈出世說이 宇宙와 人間의 本體性을 밝힌 것이라면, 以身換性說은 性靈出世를 體得하고 實現하는 行爲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 ‘性靈出世說의 收錄資料 比較分析 硏究(上),(下)’에서.
1. 49日間의 特別祈禱는, 儀節에서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7일, 21일, 49일, 105일 등 네 가지 方式으로 奉行한다고 明示되어 있지만, 期間에 대한 具體的인 意味는 說明되어 있지 않다. 49日間을 除外한 것은, 說明에 難解한 点은 없지만 49일간에 대해선 교단의 具體的인 解析과 立場이 밝혀진 바가 없다. 水雲大神師 때부터 祈禱期間으로 49日이 널리 알려지고 奉行되고 있지만, ‘佛敎의 49祭의 49日과는 어떻게 다른가?’ 라고 묻는다면, 敎理에 맞추어 分明하게 答할 말이 없다.
이경용 동덕이 ‘기도기간 7, 21, 49, 105일의 의미’란 글을, 포덕 150(2009)년 6월 4일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의 자유게시판(http://cafe.daum.net/oamdonghak/g1z/124)에 게재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학, 천도교에서 계획을 하고 수련에 들어가면 7, 21, 49, 105일을 정하고 수련을 하게 됩니다. 어느 숙덕어르신께서 특정한 날짜를 정하는 이유에 대해 생명탄생과 관련하여 약간의 말씀을 해 주신 것이 기억난다. 고 전제한 다음, 사람의 생명이 잉태에서 탄생까지의 과정을 바탕으로 본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7일이 되는 날은, 자궁 안에 안착하여 천지의 젖을 빨기 시작하는, 이것이 7일째입니다. 21일이 되는 날은, 작은 세포군에서 몸의 각 기관을 만들기 위한 새 생명이 시작되는 단계이고, 49일이 되는 날은 몸을 만들기 위해 신체 각 부분으로 분류가 완성되고 각 기관의 성장이 시작되는 날이며, 105일 되는 날은 몸의 구조가 완성되고 신경작동이 시작하는 날입니다. 남자의 일생동안 약 2조개의 정자가 생산되어 그중에 하나로 수정된 후 280일 만에 태어난 우리는 기적적으로 태어난 고귀한 존재입니다. 난자와 정자가 만들어지고 한 순간 몇 억 개의 정자가 나와 어렵고 어렵게 수정란이 되고 한울님의 간섭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몸이지요. 한울님의 존재를 올바르게 몸으로 찾아 성경신(誠敬信)하는 것이 자아완성(自我完成)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說明이 客觀的인 科學的 事實을 바탕으로 解析하고 있으며, 水雲의 生命思想을 바탕으로 한 說明이므로 매우 意味가 있는 解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說明은 敎團이 受容하여 論議하고, 決定하여 說明한 바가 없으므로 個人의 解釋이라는 点이 아쉬울 뿐이다.
2. 포덕 102(1961)년의 삼부경전 간행은, 經典解析과 敎人들의 信仰이 豫言과 같은 迷信的이며 祈福的인 信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水雲의 法說과 詩文뿐만 아니라, 海月과 義菴의 法說을 모아 連繫的인 解析과 理解를 돕기 위하여 만들어진 經典이라 할 수 있다. 주로 易數의 풀이와 豫言的인 해설이 많았던 註解部分을 果敢히 除去한 理由도, 天道敎 信仰을 올바르게 하기 위하여 豫言과 같은 迷信的인 信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決斷이었다. 先天의 宗敎와 다른 後天의 高級宗敎의 面貌를 갖추기 위한 努力의 一面이었다. 20세기말경의 世界的인 宗敎社會의 趨勢에 따라, 韓國의 宗敎社會도 祈福宗敎의 弊端과 迷信的인 宗敎라는 汚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勞力을 하고 있다. 특히 佛敎에서는 佛敎가 祈福宗敎가 아니라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가며 作福宗敎라고 설명하는 佛敎硏究學者들이 늘어나고 있는 形便에 있다. 이 作福宗敎란 用語는 새로 만들어져 어느 辭典에도 수록된바가 없는 新造語이다. 만약 이 新造語가 의미가 있는 용어로 해석될 수 있다면, 後天의 高級宗敎로 自處하는 天道敎가 眞正한 의미에서의 作福宗敎라 할 수 있다. 讖書(讖記, 讖語, 讖言, 讖緯에 關聯된 書冊) 秘記, 秘訣과 같은 豫言書를 바탕으로 한 解釋과 易數풀이는 天道敎 思想을 올바르게 解說하는데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必須的인 要件이다. 그런데 近者에 와서 豫言과 같은 迷信的인 信仰으로 回歸하려는 雰圍氣와 그런 解釋이 正當化 되어가는 幾微가 엿보이고 있다.
일부의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고 발표된 글에 의하면, 우리 民族의 根本思想은 약 6천여 년 전인 桓雄이 다스리던 初期에 鹿圖文字가 制定되어 弘益三經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天符經, 參佺戒經, 三一神誥가 문자로 기술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삼경의 저술순서는, 구전되어 오던 天符經을 녹도문자로 桓國에서 기술되었고, 다음이 參佺戒經이고 다음이 三一神誥인데 桓檀古記의 蘇塗經典에 三一神誥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弘益三經은 6천여 년 전에 저술되어 우리민족이 평화로운 理化世界를 維持 繼承시키는데 크게 貢獻을 했다고 評價하고 있다.
7세기경에 新羅時代에 生存했던 高僧인 元曉가 지었다는 豫言書인 元曉訣書와 16세기 朝鮮朝時代에 이루어진 異本이 70여종이나 되는 鄭鑑錄, 그리고 格菴遺錄들을 遠用하여 해설하는 것은 적어도 天道敎의 敎理와 思想의 解說에서는 禁物이라는 것을 熟知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에 설명하고 있는 예언서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자가 요약한 내용을 살펴보시면 이해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註 00;
1967년에 南晩星이 譯解하여 玄岩社에서 出刊한 “周易”을 必讀바람.
1978년에 都珖淳이 譯註하여 瑞文堂에서 出刊한 “近思錄” 上, 下卷을 必讀바람.
1986년에 정다운이 解說하여 도서출판 밀알에서 出刊한 “鄭鑑錄” 原本解說을 參照.
1987년에 辛侑承이 解說하여 세종출판사에서 出刊한 “格菴遺錄” 1. 2. 3.권을 參照.
1991년에 麻衣天이 解說하여 도서출판 동방인에서 出刊한 “六甲”을 參照.
1991년에 崔濚周가 지어 동학사에서 出刊한 “新한국風水”를 參照.
1997년에 金重泰가 解說하여 화산문화에서 出刊한 “元曉訣書” 1. 2.권을 必讀바람.
2001년에 孫敬植이 譯註하여 出刊한 “弘益三經”을 必讀바람.
元曉訣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세기 말경으로 보고 있다. 이 訣書는 四言四句로 된 약 30行의 짧은 글이다. 이글에 대한 해석은,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등장과 운명, 조선왕조의 운명, 근대사의 예언, 조국분단과 김영삼 정부까지의 한국의 역사에 대한 예언적 해설이다. 그러나 現實的인 歷史에 대한 解釋은 흥미롭기는 하겠지만 事實性의 缺如는 모든 예언서 가 담고 있는 缺陷이라 할 수 있다. 元曉訣書의 核心的인 思想은 後天開闢에 대한 期待感를 담은 思想이라 할 수 있다. 元曉訣書는 元曉의 三大思想인, 一心思想, 和諍思想, 无碍思想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元曉는 新羅 7世紀 眞平王 時代의 高僧으로, 姓은 薛氏이고 法名이 元曉다. 평생을 불경에 힘을 쏟아 조용한 곳을 찾아 수도와 저술에 專念하여 24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代表的인인 著述로는, 大乘起信論 疎, 華嚴經 疎, 金剛三昧經論의 三大著作이 있다.
註 00;
解釋; 事物의 狀況과 나타난 現象에 대해서 主觀的으로 자신만의 論理에 따라 理解하거나 說明함으로써 事實性과 客觀性이 缺如됨. 解釋學의 준말이다.
解析; 事物의 客觀的인 事實을 바탕으로 자세하게 이론적으로 硏究하고 陳述함. 解析學의 준말이다.
‘箴’이란 원래 ‘鍼’자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구의 이름이다. ‘鍼’이 사람의 질병을 고치듯이 箴言으로 사람의 잘못을 예방도 하고 치유도 한다는 뜻으로 붙여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夏나라시대에 太師의 職을 가진 辛甲이라는 신하가 周武王의 잘못을 ‘箴’이라는 글을 지어 모든 관원들에 알려 規諫(옳은 도리로써 간함.)한데서부터 출발하였다. ‘箴’에는 官箴과 私箴으로 나누어 말하는바, 官箴은 남을 경계하는 글을 말하고, 私箴은 자신에게 경계하는 글을 말한다. 관잠의 대표적인 글은 張蘊古의 ‘大寶箴’이 標本이고, 사잠은 柳宗元, 歐陽脩, 程頤의 글들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선 李奎報, 李齊賢, 李 穡의 글들이 유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箴의 體는 四言韻語로 되어 있고 내용의 주제는, 古今의 興亡과 兵亂의 變故를 反復하여 警戒하여 敎訓을 삼는 것으로 一貫하고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惕然(근심하고 두려워 함)하게 하여 安逸한 姿勢를 버리고 謹嚴한 精神을 갖게 하는 特性이 있다. 라고 定義하고 있다. 箴言은 警戒를 일러 말하는 것이다 箴訓(경계하여 가르침)과 箴戒(깨우쳐 훈계함)의 두 말의 뜻을 합쳐 訓戒라 한다.
讖書란 讖謠를 바탕으로 출발하여 鄭鑑錄에 수록되기도 했다. 참요란 二五思想을 바탕으로, 나라나 사람들 앞날의 吉凶禍福을 豫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讖緯說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기록된 백제의 멸망을 예언한 참요와 崔致遠이 지은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등장을 예언한 讖句, 그리고 讖謠로는 동학혁명의 실패를 예언한 ‘녹두새요’와 전봉준의 몰락을 예언한 ‘봉준요’가 유명하다.
鄭鑑錄은 이 책이 편찬된 16세기 초까지 조선조의 민간에서 유포되어 널리 이용된 대표적인 예언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鑑訣類와 秘記, 秘訣類의 集大成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대표적인 글들을 살펴보면, 鑑訣, 三韓山林秘記, 無學秘訣, 靑邱秘訣, 五百論史秘記, 土亭妙訣, 西山大師秘訣, 鄭北窓秘訣, 道詵秘記 等外 20여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형식면에서는 秘記, 秘訣, 鑑訣류의 豫言說과 讖謠, 易數의 풀이, 風水地理說에 의한 解釋을 하고 있다. 표현에서는 直說的인 해설을 피하고,隱語, 寓意, 破字등의 詩句를 사용하여 模糊하게 표현함으로써 難澁하고 애매하게 만들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란하게 만들었다. 이 鄭鑑錄을 바탕으로 鄭鑑錄信仰으로 발전하게 되어 鄭氏 姓을 가진 眞人이 나타나 理想鄕인 未來國을 건설하여 至福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었다. 이런 믿음은 鑑訣, 懲毖錄, 鑑寅錄에 나타나고 있는 ‘李亡鄭興’의 예언에 기초에 두고 있는 反王朝的인 思想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조선 후기의 民衆運動과 新興宗敎運動의 不可分의 關係를 갖고 있다.
格菴遺錄이란 南師古秘訣 또는 南師古豫言書로 불려오던 것을 근대에 와서 格菴遺錄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南師古는 號가 格菴으로 龍虎大師 鄭北窓과 같은 시대인 1509년에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역학, 풍수, 천문, 卜筮, 相法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의 예언은 적중률이 높아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았고, 晩年에는 觀象監의 天文敎授를 지내다가 1571년에 세상을 떠났다. 끝으로 한국 가사문학 중의 作者未詳의 弓乙歌는 위의 1. 2. 중의 하나일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 이 책은 원래 자손들이 末世에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예언한 것으로 天機에 관 것이라 하여 비밀리에 자손들에 의해 전해오던 것이 광복 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 책의 구성은, 豫言書, 世論視, 鷄龍論과 같은 論이 18篇, 歌詞 형태의 글이 30篇, 그리고 出將論, 勝地論 등 10편 가사가 3편 등, 구분이 없이 混雜이 되어 있어 散漫하다.
이 책도 역시 예언서의 通常的인 表現方式을 따르고 있어 時運의 時期나 事件의 重要性을 隱語, 破字, 俗語, 變則語 등을 頭序없이 曖昧模糊하게 사용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耳懸鈴鼻懸鈴式의 解釋을 하게 되어 분명한 파악이 어렵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鄭鑑錄에 나와 이해할 수 없었던 小頭無足, 弓乙, 十勝 등에 대한 解釋을 하였다.
위에서 一瞥해본 豫言書에 대한 解釋을 바탕으로 天道敎의 敎理와 思想을 解說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는 同德들의 몫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이런 基本立場에 대한 것들, 모두를 天道敎의 執行部가 擔當해야할 役割 중에 하나라고 筆者는 말하고 있다.
또 한 발을 내딛으며./ 2010.11.04.
'우리가 가슴 아프게 살아 온 근, 현대사에서 역사의 중심이 되었던 전주(全州)가, 갑오 동학혁명의 ‘전주화약(全州和約)이란 역사적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호남(全 湖南)이 거침없이 미래를 향하여 또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새로운 전주, 나아가 새로운 호남의 문화운동의 중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의 시작은 미미하지만, 전주 동학혁명 기념관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 동덕들은 ‘요원(燎原)의 불길’을 또 다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교단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갑오년 동학혁명이 그랬고, 갑진년 개화운동과 기미년 독립운동, 3.1재현운동과, 영우회(靈友會)의 비밀조직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 우리의 가슴을 찢어지게 아프게 했던 근, 현대사의 물줄기를 돌린 순교한 수많은 동덕들의 성령이 빛나는 현대사를 이루는데 정신적 바탕이 되었고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또한 호남인들의 가슴속에는 갑오년 동학혁명과 항일의 광주학생사건과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5.18 민주항쟁의 혼이 불타고 있습니다. 애국애족의 "혼불"이 불타고 있는 호남인들의 다시 일어남은, 새 역사창조의 모티브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순교가 우리들 가슴을 뛰게 하는 한, 그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힘이 다 소진되어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남들이 비아냥거리고, 우리들 중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제 천도교는 망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신, 성사님의 말씀과 동학, 천도교를 위하여 순교하거나 일생을 마친 선열들의 삶을 통하여 저에게 말씀해준 정신을 반드시 다음 시대에 전해줄 결심이 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 초에 교단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보지 않으려 했지만, 항상 내 가슴속에서 나에게 속삭여준, 16,7세 나이로 읽은 “수운심법”의 말씀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퇴직 후 동학, 천도교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고 이에 관련된 내용들을 잃어버리기 전에 간략히 정리하여 초고문(草稿文)을 발표해온 것도 내 속에서 울리는 신, 성사님의 성령의 울림이었습니다.'
제가 평생사업으로 정하고 추진해온 “동학, 천도교 역사박물관”이 언제인가는 제 모습을 갖추어,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서 고뇌하고 목숨을 아쉬움 없이 던졌던 이 나라의 민중이,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신, 성사님의 성령을 기리고 이어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기를 한울님께 정성을 다하여 심고 드리고 있습니다. 전주 동학혁명 기념관에 도서를 기증하기로 결정한 다음, 이윤영 관장님과의 약 두 시간에 걸친 대화에서 전주 동학혁명 기념관의 활성화에 대하여 의미 있는 깊은 논의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쌍방이 노력할 것을 다짐한 바가 있습니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개선 보완하여 모범적인 기념관이 되도록 힘을 다 할 수 있도록 전국에 계신 동덕 여러 분들에게 동참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는 전주 동학혁명 기념관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 할 것입니다. 이번에 시행되는 모든 작업들은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가 개관하려는 “동학, 천도교 역사박물관”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입니다. 이윤영 관장님이 오늘 천도 게시판에 올린 글 중에, 도서실 개설과 전시실 보강사업도 현실에 맞게 추진할 것이라는 복안을 보고 끓어오르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또 교단과 교단내외의 관심 있는 여러 분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리는 글에서 관장님과 뜻을 같이 하겠다는 호남인들의 기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음의 글에서 우리 천도교의 저력인 불굴의 투지와 신념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옳은 일 즉 종단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면 한울님과 스승님 선열님들의 감응이 반드시 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기념관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중앙총부(재단이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져 호남포덕의 기반이 형성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동학에서 천도교로 이어지는 그 결정적 본질과 정신연원의 재창조사업을 천명이라 생각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이윤영 관장님의 선열들이 순교한 동학혁명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미래에 대한 애교정신(愛敎情神)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과거의 찬연했던 우리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하여, 또 한 발을 내딛으면서 어디인가 내 가슴속에서 펄럭이는 궁을기를 향하여 함성을 질러봅니다. “우리들이 모두 힘을 합해 새로 쓰려는 내일의 천도교의 찬연한 역사를 위하여”
끝으로 필자가 교단의 발전을 위하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눈이 어두운 교역자나 지도적인 위치에 있거나 자처(自處)하는 교인들의 자숙(自肅)과 반성(反省)을 촉구하며 다음 사항을 건의합니다. 다음과 같은 일에 간여한 해교행위자들은 자진해서 교단을 떠나거나 감사원에서 철저히 조사하여 해당 교인에게 징계(懲戒)를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1. 신인간의 독립채산제를 위하여 교인들의 기금을 모아 방만(放漫)한 운영을 하다가 결산도 하지 않은 채, 기금을 송두리째 말아먹는 일에 간여한 자.
2. 각 기념마다 교인들의 기금을 모아 운영할 때, 세상 사람들이 천도교에 대해 관심이 없는 교단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슨 효과를 바라고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여 기금을 낭비(浪費)하는 데 관여한 자.
3. 뚜렷한 목적이 없거나 결과가 불부명한 일에 교인들의 성금을 받아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그 사용의 성공여부를 공지하지 않은 자.
4. 명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원자(支援者)의 지원내역과 명단을 공개하고 매 년 결산공고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금자의 명단과 성금내역 그리고 사용내역을 구체적으로 공지하지 않은 자.
5. 사회적 고용법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교역자는 성직(聖職)이라는 사명감도 없고 봉사란 의식도 없이 단순 노동자로 스스로 인정하여 생계형 교역자가 되어, 지금의 교단의 재정이 매우 어려운데도 퇴직금을 수령했거나 지급요구를 노동법을 들어 강요한 자. 그 이유는 모든 종교 교역자(敎役者)는 보직(補職)의 이동(移動)은 있어도 퇴직(退職)이란 없다.
6. 중앙 총부의 모든 엄무에 관여하고 있는(급여가 지급되고 있는 교역자. 산하 단체 포함) 교역자는, 교역자로서 충분한 자질(資質)과 학덕(學德)을 갖춘 자로 보직하되 원칙적(原則的)으로 봉사(奉仕)여야 하고, 감사원은 지금의 재정과 업무내용을 엄격히 파악하고 충분한 고려를 통하여 20 명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연구 검토해야 할 것. 이에 관련된 조사에 불응(不應)하거나 비협조적(非協調的)인 자는 규정에 따라 징계해야 한다.
7. 끝으로 이미 관련 글에서 지적했듯이 친일 인명사전과 천도교가 친일행위에 적극 가담했다고 양심선언에 관여한 모든 교역자.
아래의 글은 '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의 공지사항으로서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가 제 1차 사업을 완료의 경과와 향후 제 2차 사업의 방향을 제시한 내용입니다.
공지사항;
포덕 154(2013)년으로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가 개설된 지 10년이 되는 해로, 천도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심도(深度) 있고 분석적(分析的)인 논문을 5-6편을 발표하는 것으로 본 연구소의 제 1차 사업을 완료합니다. 본 연구소가 반세기를 넘게 걸쳐 수집(蒐集)하고 분류(分類)하고 비교(比較)하고 분석(分析)하는 가운데 필요한 글들을 10여 년 동안에 4-50편의 글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제 2차 사업으로 포덕 155(2014)년부터 포덕 161(2020)년까지 7 년간에 걸친 사업이 완료되면, 본 연구소의 역할은 끝나게 됩니다. 양차(兩次) 사업의 결과물들은 단행본(單行本)과 전집류(全集類)로 출간되어, 제 2차 사업이 완료되는 시기에 출발할 東學, 天道敎 歷史博物館의 개관(開館)에 따라 역사박물관에 보관 전시(展示)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 연구소는 역사박물관(歷史博物館) 부설(附設) 연구소(硏究所)로 이관(移管)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재정사항도 어렵지만 보다 힘든 것은, 이 저서들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교단이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아 자금(資金)이 순환(循環)되지 않으므로 재투자(再投資)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를 전후하여 교도 300여만 명을 이끌고 있던 교단은, 교단이 발행하는 신문과 잡지를 매월 100 여만 부를 소화하고(현재 남북한 인구를 산술적으로 고려하면 약 350 여만 부로 추정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뿐 만 아니라, 시중(市中)과 교단의 신서(新書) 출간(出刊)을 수용하여 각 분야 연구와 응용(應用)에 있어 타 교단에 비해 미흡(未洽)한 점이 많이 있고, 논리적(論理的) 체계화(體系化)와 천도교라는 독특한 종교이론과 융합(融合)하여 연구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학과 천도교는 뜨거운 가슴(感性)보다는 차가운 머리(理性)가 필요한 종교라고 정의를 할 수 있다면, 논리적(論理的) 사고가 필수적(必須的)이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미래를 예측(豫測)할 수 있는 거시적(巨視的) 안목(眼目)과 새로운 종교적 교의(敎義)의 제시(提示)가 없게 되는 참혹(慘酷)한 현실을 바라다만 보게 됩니다. 도약(跳躍)할 수 있는 대안(代案)의 제시가 필요한 때이지만, 논의(論議)를 하는 사람도 없고 같이 모여 논의하여 준비하자고 제안(提案)을 하는 사람도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 지난 10년을 돌아보며(7-7)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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