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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팽이 같은 세상(7-1)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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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902회   작성일Date 13-08-22 18:44

    본문

       언제인가 멈춰 서서,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팽이 같은 세상(7-1)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림 1; 연구소 방문은, 필자의 카페주소인 여기를(http://cafe.daum.net/oamdonghak/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클릭하여 ‘김 용천 자료실’을 찾으시면, 회원이 아니시더라도, 방문객은 누구나 각 종 분야에서 선정(選定)한 일만여 건(一萬餘 件)의 자료들을 검색하여 읽고,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포덕 154(2013)년 8월 22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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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들어가는 말.

    2. 北韓의 宗敎政策.

    3. 北韓의 宗敎批判.

    4. 北韓의 各 宗敎 自由現況

    5. 北韓의 天道敎 靑友黨의 現況.

    6. 北韓의 天道敎 靑友黨 組織과 黨員數.

    7. 韓國의 現實 政況.

    8. 筆者의 現實 認識.

    9. 나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 이 글에서 제시(提示)되는 모든 자료(資料)들은, 이해하기 쉽도록 필자가 프레임을 재구성하였고, 오자(誤字)와 오류(誤謬)는 수정(修正)하고 보완(補完)하였음.

    우리들의 어린 시절, 한 겨울 얼음판위에서 놀던 갖가지 민속놀이 중에 ‘팽이치기’가 있다. 다른 놀이들도 우리 추억 속에 아련하지만, 대동강위에서 팽이채를 휘두르며 친구들과 돌아가며 치던 ‘팽이치기’ 만큼 내 어린 시절을 흥분하게 했던 즐거운 놀이는 없었던 것 같다. 팽이가 잘 돌아가는 것은, 회전운동(回轉運動)의 기본원리인 원심력(遠心力; centrifugal force)과 구심력(求心力; centripetal force)의 균형(均衡)과 조화(調和)에 있지만, 팽이를 돌려 놀이의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 즉 어린이의 생각(思考力)과 지적 판단(知的判斷) 그리고 팽이채를 휘두르는 힘(動力 또는 底力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能力)인 것이다. 이것이 운동학(運動學)의 원리(原理)이며, 동학(動學)의 원리(原理)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팽이치기’가 암시하는 것은, 팽이는 경제(經濟)의 주체(主體)로 외채(外債)가 없는 자립경제(自立經濟/自己資本)로 어떠한 국내외 경제상황 속에서도 자생(自生)할 수 있는 동력(動力)을 충분히 가진 것을 의미하고, 팽이채와 어린이는 수익을 창출(創出)하는 노동력(勞動力; 국민의 의무인 納稅)이며 경제적 욕구인 것이고, ‘팽이치기’에서 얻어지는 즐거움과 기쁨(분배의 하나인 복지)은 팽이채를 휘두른 노력의 대가인 수익(收益)이며 임금(賃金)이고 분배인 것이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대 부분의 국민은 어떠한 형식이던 법에 의한 분배와 같은 지원으로 삶의 질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수요(需要)와 공급(供給)이란 경제적 딜레마(dilemma; 몇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가 있다. 납세(직접세와 간접세)를 세법에 따라 정당하게 납세하고 많은 분배를 받고자 하는 욕망, 조세 저항을 하거나 납세를 세법의 허점(虛點)을 악용(惡用)하여 적게 납세하고 많은 분배를 받고자 하는 욕망, 납세는 부담이 되니 분배를 받지 않겠다는 정정당당(正正堂堂)한 태도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나 하는 기로(岐路)에 서 있게 하는 것이다. 당연(當然)한 진실은, 분배를 받으려면 납세를 해야 하고, 납세가 싫으면, 분배를 거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 소득 4만 불에나 할 수 있는 분배를 요구하면서 선진국이 내는 담세율(擔稅率)을 무시(無始)하려 하고 조세저항(租稅抵抗)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사회분야에서 눔프(NOOMP; not out of my pocket)현상이라 한다. 고 알려져 있다. 이 눔프현상은, 국가재정을 무시하고 분배를 강요하면서 납세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즉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지 말라는 것으로, 내 돈에 손대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전형적(典型的)인 국가 중에 하나인 스웨덴의 부가세율(附加稅率/ 間接稅)은 25%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10%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반 또는 무상복지를 하기 위하여 소득세(直接稅)를 올리지 않는 대신, 스웨덴처럼 부가세율을 25%로 인상(引上)한다면, 만 원짜리 점심을 먹고 2,500원의 부가세를 내야한다. 10%일 때는 1,000만 내면된다. 여러분은 동의(同意)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의 50%로 이상이 헌법이 명시하는 납세 의무자가 아니다. 라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까? 단순하게 말하면, 이들은 헌법상으로는 우리 국민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권리도 없고, 인권도 없으며, 재산과 생명의 보호도 받을 수가 없을 수도 있다. 는 것이다. 동의(同意)하십니까? 균형(均衡)있고 바람직한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70-80%의 납세의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이론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미 필자는 지난 대선에서 양당이 제시한 복지를 위해선, 국민 소득이 4만 달러가 되어야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논쟁은 소모적(消耗的)인 바보들의 싸움인 것이다. 조세저항을 하려거든 무상복지(無償福祉)를 포기(抛棄)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3의 길은, 성장(成長)에 알맞은 단계적(段階的) 무상복지를 추구하는 지혜가 있는 것이다.

    부자와 기업에게 무상복지의 기금을 떠넘기는 것은, 경제논리에 위배(違背)되며, 패자(敗者)의 무모(無謀)하고 불법적(不法的)인 용기(勇氣)인 것이다. 세법에 따른 정당한 납세를 거부하면서 부자와 기업에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세금을 징수하여 내가 편하게 살게 해달라는 것은 형평의 원리, 즉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우리가 못사니 잘 살고 있는 이웃집더러 우리는 이웃사촌인데, 너희는 잘 벌어 잘 살고 있어 내 배가 몹시 아프다, 너희가 사는 만큼 우리의 생계비(生計費)를 보조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모든 국민의 지적 수준과 집단 이성이 이정도이고, 상식이 몰상식(沒常識)에 이르러, 원칙과 관계없이 조세저항(租稅抵抗)을 한다는 것은, 팽이채를 휘두르지 않아 내동댕이쳐 진 팽이와 같이 되어 국가경제(國家經濟)가 파탄(破綻)이 되거나 다음 세대가 과중(過重)한 세 부담(稅負擔)으로, 그들의 삶이 피폐(疲弊)해져 고달파지게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인 것이다.

    註 00; 원심력(遠心力;centrifugal force)-원형의 경로를 따라서 운동을 하는 입자의 양으로서, 입자를 원형의 경로에 유지하는 힘(구심력)과 동일한 차원과 크기를 가지지만 방향이 반대인 힘을 말한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기둥에 연결된 줄의 한쪽 끝에 매달려 수평면 위를 회전하는 돌멩이는 속도의 방향이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둥방향으로 가속도를 가진다. 이 힘은 속력의 제곱을 줄의 길이로 나눈 값과 같은 양이다. 뉴턴의 제2법칙에 따르면 가속은 힘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이 경우에 힘은 줄의 장력에 해당한다. 만일 돌멩이가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고 중력을 무시할 수 있다면 줄의 장력이 돌멩이에 작용하는 유일한 힘이다. 또한 만일 줄이 끊어지는 경우에는 관성에 의해서 돌멩이는 원형 경로의 접선방향으로 직선운동을 하게 된다. 돌멩이를 중심에서 바깥 방향으로 날아가게 하는 것은 '원심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뉴턴의 법칙에 따르면 원심력은 실제의 힘이 아니지만 유용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크림 분리기와 같은 원심분리기의 동작을 분석할 때는 유체의 움직임을 지구보다는 회전하는 용기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편리한데, 뉴턴의 법칙을 이와 같은 회전 기준계에 적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구심력과 같은 크기를 갖는 관성력, 즉 가상력(원심력)을 운동방정식에 포함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회전하는 돌멩이의 기준계에서는 돌멩이가 정지해 있기 때문에, 힘이 평형이 되기 위해서는 바깥 방향으로 작용하는 원심력을 운동방정식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원심력은 ① 회전의 속력, ② 물체의 질량, ③ 곡선의 중심에서 물체까지의 거리, 즉 반지름을 크게 하여 증가시킬 수 있다. 원심력은 질량이나 반지름에는 비례하지만 회전속력에는 제곱에 비례한다. 회전수가 분당 10회전에서 100회전으로 10배 증가하면 이에 따른 원심력은 100배 증가하게 된다. 원심력은 정상적인 중력의 크기를 나타내는 G(엄밀하게 말하면 중력가속도)의 배수로 나타내는데, 10억G 이상의 원심력이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물체가 원운동을 할 때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작용하는 힘. 구심력과 크기가 같고 방향은 반대인데, 실재하는 힘은 아니고 관성력으로부터 변형된 형태의 힘이다. 원심 분리기, 원심 조속기, 속도계 따위에 응용된다. /브리태니커

    註 00; 구심력(求心力;centripetal force) - 원운동을 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원의 중심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말한다. 어떤 물체가 운동할 때 외부로부터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는 등속직선운동을 한다. 이때 물체의 운동방향에 수직으로 일정한 크기의 외부 힘을 작용시키면 물체는 등속원운동을 하게 된다. 물체가 일정한 속력으로 등속원운동을 할 때, 즉 회전할 때 물체가 원의 중심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구심력이라 한다. 구심력의 크기가 일정하면 물체의 속력은 변하지 않고 방향은 매순간 변한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까닭은 지구를 태양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태양과 지구 사이의 중력이 구심력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브리태니커

    註 00; 동학(動學)의 원리 - 경제 현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관계에서 밝히는 이론으로, 동학의 대표적인 이론은, 트(Comte, A.)가 구분한 사회학의 연구 영역의 하나로, 사회의 계속적인 변화를 연구하는 사회동학(社會動學)의 분야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경제 변동의 특성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경제동학(經濟動學)의 학문이 있다. 유의어로 동태론 (動態論), 동태 이론(動態理論)

    민족 역사의 교훈을 이해 못하는 민족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다. 우리 교단은, 밤에 꿈꾸는 몽상(夢想)이 아니라 대낮에 뜬눈으로 망상(妄想)을 하고 있다. 전혀 동학과 천도교가 걸어온 역사를 외면하고 있으며, 현실에 처해있는 무기력한 자신을 잊어버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저력(底力)을 가진 막강(莫强)한 교단으로 착각하고 있다.

    제 150주년(포덕 154년 8월 14일) 지일기념 식후 경축행사로 행해진 기념 강연으로, ‘민족통일 시대를 여는 천도교의 역할’이란 주제로, 북한대학원대학교 최완규 총장의 강연이 있었다. 남북의 통일이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이지만, 민족통일 시대를 여는 천도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단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直視)하지 못한 대낮에 뜬눈으로 망상(妄想)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사(演士)는 남북한의 정황(政況)과 통일의 당위성(當爲性)과 필요성(必要性)만을 이야기했을 뿐, 30여 분간의 강의에서 ‘천도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편식(偏食)이 영양(營養)의 불균형(不均衡)으로 다양한 질병(疾病)을 초래(招來)하여, 한 인간의 심신(心身)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거나 요절(夭折)하게 만들듯이, 편향적(偏向的)인 지식(知識)에 물들거나 얽매여 있으면, 지적인 지성인(知性人)이 될 수 없고 역사의 주변인(周邊人)이거나 국외자(局外者)로 전락(轉落)하게 되고, 그러한 편향적(偏向的)인 인간은 행복한 삶의 경주에서 사이코 패스로 인한 실패한 삶을 사는, 경쟁에서 실패(失敗)하여 탈락자(脫落者)가 되기가 쉽다는 것은 심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 인간이 그의 삶의 터전에서 형성된 역사와 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도(滔滔)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올바른 직시(直視)를 할 수 없다면, 역사의 중심에서 떨어나가 주변인(周邊人)이나 국외자(局外者)로 전락(轉落)하여 방관자(傍觀者)가 되거나 무모(無謀)한 반항자(反抗者)가 된다는 것은 동학(動學)의 원리를 조금만 이해해도 수긍(首肯)이 가는 이치인 것이다. 무모(無謀)한 반항자(反抗者)가 된다는 것은 사이코 패스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심리학에서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게 되어 현실감이 떨어지고, 판단의 기준이 없어 그들의 삶이 진실에서 멀어져 왜곡(歪曲)되기 시작하여 싸이코 패스(psychopath)로 진행(進行)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註 00; 반사회성 인격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 다른 이름으로, 반사회성성격장애, 반사회적 인격 장애, 반사회적성격, 반사회적인격,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싸이코페스 / APD, psychopath, psychopathy, sociopath, sociopathy,

    반사회성 인격 장애는 인격 장애 중 하나입니다. 인격 장애란 성격이나 행동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벗어나 편향된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현실 사회에서 자신에게나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개별 성격의 이상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반사회성 인격의 장애를 예전에는 정신병질자(psychopath), 사회 병질자(sociopath)라고 불렀었습니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회적 규범이 없는 사람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합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으며 그것이 잘못인지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범죄자 중에서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비율이 높습니다.

    질병의 원인 - 반사회성 인격 장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선천적으로 충동성과 감각 추구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행동억제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것은 세로토닌계를 포함한 중격 해마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각성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기 때문에 위험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찾게 됩니다. 환경적인 원인으로는, 몇 가지 상황이 반사회성 인격 장애와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규범을 습득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또한 어린 시절의 바람직하지 못한 경험과 사건으로 인해 인격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증상 - 반사회적 행동은 청소년기 이후 나타나게 됩니다. 보통 18세 이하의 경우 품행장애라고 하여 학교에서 정학당하거나 무단결석, 반복된 거짓말, 청소년 비행 등을 보여 줍니다. 성장하면서 범법행위를 일삼고, 성적인 문란, 채무 불이행, 가정생활에서도 무책임함을 보입니다. 겉보기에는 합리적이게 보이지만 신의가 없고 우울이나 슬픔을 보여야 할 상황에서도 냉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대중매체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잔인한 범죄자들의 사례를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는 정신과 전문의와의 인터뷰와 다양한 검사와 사정도구를 통해 진단합니다. 15세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행동이 있고 18세 이상 되는 경우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진단 - 행동의 장기적인 결과를 환자가 고려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양심, 죄책감, 후회를 불러일으키도록 노력하기보다는 친사회적인 행동 양식으로 얻을 수 있는 장래의 이익이나 물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두는 치료가 효과적입니다. 자조 모임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신 약물의 사용은 남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불안, 우울, 분노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다움의 건강지식에서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에 속하는 하위 범주로서,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얕은 감정, 자기중심성, 남을 잘 속임 등을 특징으로 하는 종류이다. 정서, 대인관계에서는 공감 능력 부족, 죄의식, 양심의 가책 결여를 특징으로 하고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피상적이고 불안정하다. 대인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이고, 과대 망상적, 지배적, 착취적이며, 거짓말과 교묘한 조종에 능하다. 행동 내지 생활 식은 충동적이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며, 행동제어가 서투르고, 자극을 추구하며, 책임감이 없고, 사회규범을 쉽게 위반한다. 이러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망상, 비합리적 사고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병(psychosis)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개념 연혁 -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사이코 패시 증상에 대해 최초로 저술하였고,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슈나이더가 사이코패스의 개념을 설명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는 사이코패스 판정도구(PCL-R)[1]를 개발하고 '진단명 사이코패스'라는 책을 저술했다.

    진단 - 1991년 Hare가 개발한 PCL-R(Psychopathy Checklist-Revised) 진단기준에 의한다. 이는 총 20개의 문항으로 구성되며 전문가가 평가대상자와 면담하고 기록된 문서를 조사하고 관련인 면담, 정보수집 등의 방법으로 진단한다. 정신질환의 진단에 널리 사용되는 DSM-IV-TR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통계 매뉴얼로서 버전 4)에는 진단기준이 등재되어 있지 아니하다.

    증상 - 사이코패스들은 감정을 관여하는 전두엽이 일반인들처럼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일반인의 약 15%) 감정을 느끼는 데 매우 미숙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 이기적이며, 대단히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을 한다.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쇄살인마가 되는 것이 아니며(미국의 경우, 사이코패스의 인구가 500만 명 정도 되는데 그중 살인자는 몇 만 명뿐이다.) 폭행이나 상습 절도, 강도 같은 범죄를 우발적으로, 연속적으로 일으켜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경우가 많아지며, 거짓말에 매우 능하고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도 눈 하나 꼼짝하지 않으며 곧바로 다른 거짓말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뻔뻔하게 어떤 말이든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 때문에, 매우 무식한 사람이라도(사이코패스는 대체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충동적인 성격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을 막는다.) 아주 박식하고 매력적이며 유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계나 업계의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계산적인 행동과 표정과 말투로 사회에서 능숙히 섞여지내고 환경에 따라 발현되는 정도가 달라 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사이코패스를 일반인과 구분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보통 사이코패스를 '반사회성 인격장애' 라 부르기도 한다.

    범죄 - 전체 범죄자의 15~20%를, 중범죄자의 50% 이상을, 연쇄살인범의 90%를 차지하며, 재범율은 다른 범죄자의 2배, 폭력 관련 재범률은 다른 범죄자의 3배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Hare, 1993). 그러나 전체 사이코패스 중 어느 정도가 범죄자가 되는지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아니하므로 주의를 요한다./위키 백과사전에서 종합.

    한 인간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학문을 갈고 닦고(切磋琢磨), 꿈을 실현하기 위한 관련도서를 숙독(熟讀)하고, 종교에 귀의(歸依)하여 신실(信實)한 신앙을 하는 것은, 내 삶의 풍요로움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도우며 어울러서 살기 위한 뜻 깊은 노력(與世同歸/同歸一體)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인간은 현명(賢明)해지고 슬기로워지며 지적 직관(知的直觀; intellectual intuition)을 향유(享有)하게 되어 올바른 역사의식(未來指向的 歷史意識)과 미래에 대한 확고(確固)한 신념(信念)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신념의 소지자(所持者)들이 모여 난마(亂麻)와 같이 얽히어 돌아가는 현실적 상황을 풀어내어 역사를 창조하는 주인으로서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되고 나아가 미래의 새 시대를 여는 신인간이 되는 것이다. 주체적인 인간이며 역사의 주변인(周邊人)과 국외자(局外者)가 아닌 핵심적(核心的)인 중심인(中心人)인 새인간(新人間)이 되는 것이 천도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미진(未盡)한 준비로 현실에 나타나는 수많은 일들을 잘못 판단하여 삶을 그르친다면, 그 모든 것의 결과에 대한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이런 결과에 대한 모든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삶의 주체인 나 자신의 잘못된 예측(豫測)과 선택(選擇)에 따른 책임(責任)이라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알 일이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준비된 광범위(廣範圍)한 융합적(融合的) 또는 통섭적(統攝的) 지식을 통한 올바른 시각(視覺)과 관점(觀點) 그리고 지적 직관의 유무(有無)에 있는 것이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註 00; 직관(直觀; intuition / the sixth sense ) - 직관설에 의하면, 직관이 진리 파악과 가치 판단의 근본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철학에서 추리나 관찰,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얻지 못하는 인식을 얻을 수 있는 힘을 뜻하는 용어로, 직관은 다른 원천에 의해 얻지 못하는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근원적이고 독자적인 인식 원천으로 여겨진다. 필연적 진리와 도덕원리들의 인식은 종종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몇몇 필연적 진리, 예컨대 논리학이나 수학의 진술은 다른 진리로부터 추론되거나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진술이 모두 그런 식으로 도출될 수는 없으며 공리(公理)처럼 다른 명제로부터 도출되지 않는 진술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공리로부터 다른 진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체계의 상호연관성은 이미 여러 추론규칙을 전제하고 있다. 공리들의 진리성과 기본 추론규칙들의 타당성 자체는 추론이나 관찰로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추론에는 이미 이 공리와 규칙이 전제되어 있고 관찰은 필연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리와 규칙은 직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는 누가 봐도 뻔한 진리명제이므로 자명성을 직관의 특징으로 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한 진술이 다른 진술로부터 도출되거나 어떤 특정 추론이 타당하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모든 추론의 타당성을 '직관적으로 귀납'할 수 있다. 이밖에 가령 '어떤 사물도 전 표면이 동시에 빨간색이면서 푸른색일 수는 없다'와 같은 비형식적 필연적 진리도 직관적 귀납명제로 볼 수 있다. 누구든 특수한 사례를 통해 그 명제의 보편적·필연적 연관을 확인할 수 있다.

    조지프 버틀러에서 G. E. 무어까지 많은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적 언명이 무언가 특별한 종류의 인식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위의 옳음(무어의 견해로는 어떤 사태의 선함)을 인식하는 것은 관찰능력이나 논리적 원리를 직관하는 능력에 비길 만한 특별한 도덕적 능력이다. 논리적 원리들이 직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도덕적 주장이 지니고 있는 자명하고도 의심할 수 없는 성질이다.

    이러한 두 이론에 대한 비판은 똑같은 하나의 논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논리와 도덕의 공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인식 원천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공리들은 사실의 발견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공리가 담고 있는 내용은 세계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사실이 아니라, 담론이나 행위를 할 때 취하는 결단·관습·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밖에도 직관이라는 용어에는 2가지 전문용법이 있다. 하나는 이마누엘 칸트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비록 관찰의 도움은 받지만 관찰에 근거하지는 않는 모든 사실인식의 원천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와 앙리 베르그송이 사용한 의미로서, 과학이나 일상적 관찰에 의해 얻어진 단편적인 '추상적' 인식과 달리 상호 연관되어 있는 세계 전체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가리킨다./ 브리태니커

    또 다른 의미로는 철학적 용어의 의미로,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깨달음이며, 교육학적 용어의 의미로는 감관의 작용으로 직접 외계의 사물에 관한 구체적 지식을 얻는 것으로 직관력(直觀力)이란, 판단, 추리, 경험 따위를 거치지 않고 어떤 대상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직관적 사고(直觀的思考)란 철학에서, 언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직관적이고 즉각적으로 영위되는 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註 00; 지적 직관(知的直觀; intellectual intuition) - 감성적(感性的)이 아니라 이성적(理性的)으로, 또는 논증적(論證的)이 아니라 직접적(直接的)으로 파악하는 방법으로 예지적(叡智的) 직관(直觀)이라고도 한다. 그리이스 철학이나 쿠자누스(Cusanus). 스피노자(Spinoza)등에 있어서는 감각 분별적 이성(分別的 理性) 즉 오성(悟性)을 초월한 직관적 이성만이 형이상학적 절대자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중세의 기독교 철학에서는 신은 사물의 관념을 직관함으로써 사물의 존재 그 자체를 나타낸다고 했다. 칸트(Kant)는 지관적 오성 혹은 지적 직관을 신에게만 귀속시키고 인간에 있어서의 직관을 오직 감성적(感性的) 직관에 한한다. 고 하였고, 그 후 피이테(Fichte)나 셀링(Schelling)에 의하여 지적 직관을 다시 인간지(人間知)의 최고계단을 이룬다고 주장되었다. 이는 지적 직관이란 인간의 감성과 오성을 초월하는 직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7세기의 유럽의 대표적인 철학사상으로 과학에 의한 자연지배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 지적(知的) 주체로서 세계에 대해서 군림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지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존재형식을 확립한 것은 무엇이라 해도 데카르트의 공적일 것이다.

    영국의 경험론과 대비해서 생각했을 때, 대륙합리론이란 사고방식의 특성은 특히 인식의 기원을 문제로 하는 인식론적 견지에서 논의된다. 즉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생긴다고 하는 경험론에 대해서, 합리론은 모든 확실한 인식은 생득적(生得的)이며, 명증적(明證的)인 원리-직관(直觀)으로 확실한 원리-에서 유래한다는 입장에 선다. 감각적 경험은 혼란스런 것이라 하여 경시하고, 수학적 인식을 원형으로 하는 것 같은 논증적 지식을 중시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브리태니커와 철학대사전과 그리고 관련 용어사전을 종합 정리함.

    註 00; 시각(視覺; one's viewpoint, a point of view, a way of looking) -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거나 파악하는 각도 또는 입장을 말한다. 비판적 시각(批判的視角; Critical perspectives)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관점. 비판이란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정신적 과정이다. 특히 참이라고 주장되는 진술이나 명제가 주 대상이다. 진술의 의미를 파악하고 제공된 증거와 추론을 검사하고 사실들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과정을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 시선을 비판적 시각이라고 하며 주로 어떤 대상에 대한 부정적, 비관적 판단에 대해 사용된다. 비판적 사고란 어떤 사태에 처했을 때 감정 또는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평가·분류하는 사고과정을 뜻한다. 즉, 객관적 증거에 비추어 사태를 비교·검토하고 인과관계를 명백히 하여 여기서 얻어진 판단에 따라 결론을 맺거나 행동하는 과정을 말한다./브리태니커

    註 00; 관점(觀點; a point of view, a viewpoint, a standpoint) -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이나 생각하는 입장을 말한다. 

    註 00; 통섭(統攝/Consilience/추론 결과 등의 附合 또는 一致)- 통섭은 막힘이 없이 여러 사물에 두루 통함을 의미하는 말로, 흔히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의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인 질서를 논리적으로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의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還元主義)도 있다.

    천도교 교단이 만약 ‘민족통일 시대를 여는 천도교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지금의 교단의 형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이 판단을 바탕으로 합당(合當)한 대안(代案)을 마련하고 교인들에게 철저히 숙지(熟知)를 시켜야 하고 협조(協助)를 부탁(付託)을 해야 하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인 북한 정권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북한 정권 안에 있는 천도교와 조선 천도교 청우당의 처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정권 안에 있는 천도교와 조선 천도교 청우당에 대한 정보를 얼마만큼 수집분석하고 있으며 지금의 정황을 알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래서 필자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공개 발표된, 모을 수 있는 모든 자료들로 북한 정권 안에 있는 천도교와 조선 천도교 청우당에 대한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자료를 제시하려고 한다.

    2. 北韓의 宗敎政策.

    北韓의 종교(宗敎)와 통일(統一)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북한과 관련된 폭넓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활용할 수 있는 대안과 운영(運營)할 기구(機構)의 조직(組織)이 필요하다. 다음에 소개되는 자료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북한의 종교와 통일문제에 관련된 자료들을 수록합니다./ 북한과 외국자료는 지면관계로 제외함.

    北韓 15年史; 김창순. 지문각. 서울. 1962.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政治; 양호민. 아세아문제연구소. 서울. 1967

    北韓共産化過程硏究; 공산권연구실. 아세아문제연구소. 서울. 1972.

    共産主義本質批判; 극동문제연구소. 서울. 1976.

    共産主義. 이데올로기批判; 자유아카데미. 서울. 1976.

    北韓과 共産戰略; 자유아카데미. 서울. 1976.

    分斷時代의 歷史認識; 강만길. 창작과 비평사. 서울.1978.

    북한정치론; 북한연구소. 서울. 1979.

    반외세의 통일논리; 김학준. 형상사. 서울. 1980.

    한국분단사; 조순승. 형성사. 서울, 1983.

    民族統一論의 展開; 양호민외. 형성사. 서울, 1983.

    宗敎와 統一; 平和統一政策諮問會議 宗敎分科委員會. 서울. 1984.

    民族, 統一, 解放의 論理; 이이화외. 형성사. 서울. 1984.

    분단한국사; 김정원. 동녘사. 서울. 1985.

    민족분단과 통일문제; 김병오. 한울. 서울. 1985.

    북한의 통일전략연구; 정대철. 백산서당. 서울. 1985.

    북한사회의 재인식; 양호민외. 한울, 서울. 1985.

    분단시대의 민족교육; 성내운. 학민사. 서울.1985.

    남북한 비교론; 박문갑외. 문우사. 서울. 1986.

    분단과 민족; 송건호. 지식산업사. 서울. 1986.

    共産主義批判; 양호민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 서울. 1986.

    북한 주체철학의 비판적 분석; 신일철. 사회발전 연구소. 서울. 1987.

    통일한국의 모색; 이상우. 박영사. 서울 1987.

    分斷國 統一論; 정용길. 고려원. 서울. 1988.

    민족과 통일 1.; 노중선. 사계절. 서울. 1988.

    분단현실과 통일논리; 자유평론사 편집부. 자유평론사. 서울. 1988.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국토통일원. 1989.

    분단국 통일의 재인식; 전득주. 대왕사. 서울. 1989.

    북한의 종교정책; 고태우. 민족문화사. 서울 1988. /개정판. 1989.

    북한사회의 새인식; 조민영. 남풍, 서울. 1989.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하영선. 청계. 서울. 1989.

    북한정치론; 한국정치연구회. 백산서당. 서울 1989.

    남북한 비교정치론; 길영환. 문맥사. 서울. 1989.

    북한개론; 책임 편집 최 명.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의 정치; 책임 편집 전인영.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의 경제; 책임 편집 이태욱.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의 사회; 책임 편집 강정구.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의 언론; 책임 편집 유재천.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의 교육; 책임 편집 김형찬.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의 통일정책; 책임 편집 신정현.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이 보는 우리 역사; 책임 편집 김정배. 을유문화사. 서울. 1990.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 책임 편집 김철범. 을유문화사. 서울. 1990.

    북한학개론; 김갑철. 문우사. 서울. 1990.

    北韓, 그충격의 실상; 월간조선 1991년 1월호 부록. 조선일보사. 서울. 1991.

    북한의 실상과 전망; 박한식편. 동화연구소. 서울. 1991.

    신통일론; 민병천. 고려원. 서울. 1992.

    분단국통일과 남북통일; 정용석. 다나출판사. 서울. 1992.

    통일을 위한 정치철학; 안정수외. 을유문화사. 서울 1992.

    민족통일론의 전개; 양호민.외 형성사. 서울. 1992.

    통일환경과 남북한의 관계; 민통일연구원. 서울. 1992.

    북한주민의 인성연구; 민족통일 연구원. 서울. 1992.

    북한 사회의 체제와 생활; 이온죽. 법문사. 서울. 1993.

    남북한 통합론; 조정원. 희성출판사. 서울. 1993.

    통일과 민족주의; 진덕규. 통일연수원. 서울. 1993.

    한국의 통일정책; 구영록외. 나남. 서울. 1993.

    남북분단의 극복과 평화; 최상룡. 법문사. 서울. 1993.

    북한의 정치와 사회; 김영수. 서울프레스. 서울. 1994.

    그럼, 지금 어떻게 통일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조순승. 다짐. 서울. 1994.

    통일경제론; 이상만. 형설출판사. 서울. 1994.

    북한사회론; 김문조(편). 나남출판사. 서울. 1994.

    한반도의 통일과 국제정치; 이기택. 삼영출판사. 서울. 1994.

    한반도의 통일전망; 박홍기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서울. 1994.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박찬영. 방영사. 서울 1995.

    통일정책론; 황인태. 국제평화연구소. 서울. 1995.

    북한의 생존정책; 최종철외. 보성문화사. 서울. 1995.

    북한체제의 변화 주도세력; 민족통일 연구원. 서울. 1996.

    북한통일의 이론과 실천; 노승우. 전예원. 서울. 1996.

    남북한 주민 의식구조 비교; 국토통일원. 서울. 1996.

    통일환경론; 윤정식외. 오름. 서울. 1996.

    북한학; 이동훈외. 박영사. 서울. 1996.

    북한체제변화와 협상전략; 이용필 양성철. 박영사. 서울. 1996.

    북한이해; 김광수외. 집문당. 서울 1996.

    남북한 경제사회상 비교; 통계청. 서울. 1996.

    북한의 진실과 허위; 황장엽. 통일정책연구소. 서울. 1998.

    1950년대 남북한의 선택과 굴절;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사. 1998.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황장엽. 한울. 서울. 1999.

    북한이해의 길잡이; 김성철외. 박영사. 서울. 1999.

    통일로 가는 길이 달라진다; 조재길. 오름. 서울. 1999.

    북한체제연구; 국가정보대학원. 서울. 1999.

    북한인권백서; 통일연구원. 성룰. 1999.

    김정일시대의 북한정치경제; 오일환 외. 을유문화사. 1999.

    북한사회구성론; 우 정. 진솔북스. 서울. 2000.

    북한이해; 통일교육원. 서울. 2000.

    한국의 민족주의와 통일; 유광진. 범학사. 서울. 2001.

    평양에서 본 북한사회; 박완신. 답게. 2001.

    현대 북한의 이해; 이종석. 역사비평사. 2002.

    남북한 정치갈등과 통일; 문정인. 오름. 2002.

    북한의 역사 만들기; 한국역사연구회. 푸른역사. 2003.

    김정일 정권과 한반도 장래; 최진욱.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5.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이신철. 역사비평사. 2008.

    북한 핵과 DIME 구상; 전경만. 삼성경제연구소. 2010.

    / 외 수백여 종의 단행본과 연구논문 그리고 북한과 외국의 자료들이 있음.

    註 00; 북한관련 각종 문헌자료나 연구논문을 찾는다면 국회도서관이나 중앙도서관을 찾아가 이용하시고,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을 직접 보고 싶으시다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북한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1989년 5월 22일에 광화문우체국 청사에 개설되어 있었던 북한자료센터가 지난 2009년 10월 8일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5층 북한자료센터로 이전했다.

                                                       / 언제인가 멈춰 서서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팽이 같은 세상(7-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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