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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팽이 같은 세상(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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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129회   작성일Date 13-08-22 18:38

    본문

       언제인가 멈춰 서서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팽이 같은 세상(7-6)

    2. 상식(常識)과 비상식(非常識)의 진실(眞實)과 허상(虛像).

    상식(常識; common sense./ practical sense,/ mother wit)이란, 국어사전에 기술한 내용에 따르면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라 명시(明示)하고 있다. 위키 백과사전에서는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 지식, 판단력’을 말한다. 하고 대의어(對意語/反對語)는 비상식(非常識)으로, 사회에 따라서 상식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사회의 상식이 다른 사회의 비상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회적 현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상식이 비상식이 되는 경우와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경우가 흔히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의 변동은, 상위문화가 하위문화로 전이(轉移)하거나 동, 서양의 문화가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문화지체(文化遲滯)가 원인이 되어 변동할 수도 있고, 변화가 지체될 수도 있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2012년의 한국에서는 가치의 충돌과 혼란이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하고 있다.

    주(註) 07; 문화지체(文化遲滯; cultural lag)또는 문화낙후(文化落後) -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William Fielding Ogburn)이 “사회변동론; Social Change. 1922)”에서 오그번은 문화를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을 포함한 물질문화(material culture)와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가치관, 신념, 규범, 제도 및 사회적 상호 작용 양식 등을 포함하는 비물질적인 적응적 문화(adaptive culture)로 구분하고, 기술 변화의 급속도와 양적인 누적으로 인하여 비물질 문화의 변화와 적응은 항상 물질문화의 변화의 변동속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 현상을, 또는 발달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을 문화지체라 하였다. 그리고 현존하는 여러 문화요소들을 새롭게 결합하는 것이 문화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화요소들의 결합은 문화의 한 측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만 또다시 다른 문화영역에의 적응이 필요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적응이 지연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문화지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역사의 장기적 과정에서는 문화지체현상이 파악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특정 시기에는 사회를 완전히 붕괴시킬 정도로 심각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예를 들면 산업생산과정의 중요한 혁신이 경제·정부, 그리고 한 국가의 사회철학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이러한 혼란으로부터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에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문화변동의 속도와 관련해서 본다면 이 2가지 영역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실제로는 물질적인 영역에서의 변화가 앞서기 때문에 정치·경제·종교·윤리·행동양식 등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나 가치관의 변화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빗물질 문화가 물질문화의 변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심각한 사회적 부조화현상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기타 사회 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하여 획득된 모든 능력이나 습성의 복합적 전체이다. 문화는 역사적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드는 집합적 기억을 의미한다. 문화가 사회적 집단에 의해 실현되는 생활양식이라면 문화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느냐 하는 것을 교시한다. 따라서 개인은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문화의 전달성에 의하여 성장하며 사회의 문화를 습득하지만 개인은 문화를 습득함과 동시에 문화를 변동시키고 문화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이다.

    문화지체 또는 문화낙후는 상위문화가 하위문화에로 전이(轉移)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문화의 전이는 동, 서양의 지역 간에, 국가와 국가간에, 사회와 사회 간에, 개인과 개인 간에,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하여 항시(恒時) 일어나는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기타 자료에서 보완정리.

    주(註) 08; 다노미(danomi) - 다문화와 아노미(anomie, 무질서, 혼란)의 합성어로 다문화 사회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인식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상식에 대하여 착각(錯覺)하고 있는 이유도, 위와 같은 시공간적(視空間的)으로 그 때 그 때 의미와 내용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식이 진리처럼 원래부터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믿고 있는 잘못된 시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그 어느 사회나 시대에서는 비상식이었던 것을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상식이 된 것이며, 지금의 비상식도 위와 같이 상식이 될 수도 있으며 지금의 상식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비상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상식은 그들에겐 비상식일 수 있고, 그들의 상식이 나에겐 비상식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비정상적인 인간일 수도 있다. 상식과 비상식은 항상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는 점을 생각해 함부로 타인의 평가기준으로 잣대를 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매우 자의적(恣意的)이며 몰상식한 망발(妄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의 선상에서 ‘인간이 평등하다’는 명언(名言)도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이지만, 1, 2세기만 되돌아가도 평등할 수가 없는 상하(上下)가 있는 세상이었다. 지금도 상당부분에서 평등이 아닌 것이다. 인생이란 근원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혈통인 가문에서부터, 성공한 집안, 명예로운 집안, 존경받는 집안, 학력이 높은 집안, 인맥이 좋은 집안 등등에서 불평등하다. 그래서 더 평등하고 싶은 것이다. 생존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어려워 평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와 경쟁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등이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는 18세기 말엽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설파(說破)한 토머스 페인의 “상식(常識; common sense.)”이라는 책을 1776년 1월 10일에 발간한 이후부터 어떤 것이 상식이며 상식적인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서구사회로부터 논의되었고, “상식”이란 책이 발간된 날을 상식이 세상에 선포된 날로 오래도록 기억되어 오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하여 설명하였던 상식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의 상식의 상당 부분은 과거 어느 시대에는 비상식었던 것들이며, 지금에 상식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 미래의 어느 시기에는 비상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상식이 진리인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라는 절규에 가까운 희망이라 할지라도 더러는 일시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있으나 내용과 주제에 따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꿈일 수 있는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상반된 주장을 갖고 극단적으로 상호 공박(攻駁)을 하며 생사(生死)를 거는 개인이나 집단에서의 주장들은, 어느 쪽이 상식이고 비상식인가? 명쾌(明快)하게 결판을 낼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이 있을 수 있을까? 란 물음에 대한 답은 없다. 이다. 서로가 주장하고 얻고 싶은 입장에서, 서로는 상식이고 비상식인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선택자의 자의(恣意)에 던져진 가치(價値)의 혼란(混亂)일 뿐이다.

    가치의 혼란이라는 것은, 사회와 역사 현실의 변동으로 상식과 비상식은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만물(萬物)의 가치가 유동적(流動的)이어서 그 가치가 혼동될 때 상식과 비상식을 잘못 파악하여 삶의 방향 설정에 혼란을 자초하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치판단을 잘못하여 선택한 삶은 불행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창조론(創造論)과 진화론(進化論), 천동설(天動說)과 지동설(地動說), 상투(上頭)와 단발(斷髮), 테러리스트(terrorist)와 독립투사(獨立鬪士), 마녀재판(魔女裁判) 등이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으로 각각의 흐름으로 상식과 비상식으로 전환(轉換)된 대표적인 사례(事例)들이라 할 수 있다. 상식이 영원불변하는 진리일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여러분의 지식과 상식의 정도와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병리현상(病理現狀) 중에서, 국가의 장래가 매우 걱정되는 현상의 하나는, 어떤 현상을 부정(否定)하고 비난(非難)하면서 자신의 의도(意圖)를 철저히 감춘 채, 대중들의 관심사들을 선정(選定)하여, 다른 병리현상을 미사여구(美辭麗句)와 정교(精巧)한 논리로 교묘(巧妙)하게 제시(提示)하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런 행위의 가치기준(價値基準)을, 우리 사회와 인간들을 ‘상식(常識)과 비상식(非常識)’으로 구분하여 상식에서 명분(名分)을 찾는다는 점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發想)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상식(常識)과 비상식(非常識)’이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구분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현상들이 각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다원화 사회인 것이다. 이 가치들은 우열(優劣)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가치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은, 다양한 가치를 내포한 다원화 사회라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 다양한 가치의 충돌로 인하여 사회의 혼란을 자초할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예로 들기에 매우 적합한, 다양한 성격의 종교들이 공존과 배척하는 현상, 여기에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내재되어 있는 민속 또는 무속신앙) 사회에서 현실의 병리현상들을 ‘상식(常識)과 비상식(非常識)’이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구분방법으로 해석(解釋)하는 지성(知性)이 있어 이런 논리가 집단지성(集團知性)이 되어 사회현상을 개혁(改革), 혁신(革新)하려 한다면, 매우 무모한 행동으로 우리의 미래는 암담(暗澹)해질 것이 분명하다고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다원화(多元化)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다중 성격자(多重性格者 또는 人格者)들의 반사회성 인격장애(反社會性 人格障碍;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드러내는 내재(內在)된 싸이코 패스(psychopath)의 하나의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언행의 저변에 깔려있는 사상적 배경에는 유전적(遺傳的)이며, 문화적(文化的)이고 전형적(典型的)인 한 현상이라 분류할 수 있을 수 있는 ‘흑백논리(黑白論理)와 극단적(極端的)인 판단(判斷)과 선택(選擇)과 언행(言行)’이라는 특이한 사고방식이 있다. 세상만사(世上萬事)를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수용하며, ‘좋아서 죽겠다. 미워서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더워서 죽겠다. 추워서 죽겠다,’ ‘너 그냥 안 둬, 너 죽어, 죽여 버리겠어,’ 등의 상반된 현상에 대하여 ‘죽겠다’ ‘죽이겠다.’ 는 극단적인 판단과 선택과 언행이, 문제의 실상(實相)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류(誤謬)를 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다원화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병리현상 중에 하나가 타인(他人/ 남)과 사회(社會)와의 단절(斷絶)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생존(生存), 또는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피인물(忌避人物)이 된 왕따의 대상(對象)이 되는 인물들이다. 선악(善惡)의 이분법적 사고(二分法的 思考)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이성적(非理性的)인 인간은, 다원주의의 사상에서 생성(生成)되고 있는 다원화 사회(多元化 社會)라는 매우 복잡(複雜)한 성격(性格)을 지닌 구조적(構造的) 사회(社會)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양(多樣)한 가치(價値)는 우열(優劣)이 없이 대등한 가치라는 것과 선악(善惡)의 개념(槪念)으로는 이해될 수 없으며, 만사(萬事)의 판단기준(判斷基準)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과 자기와 밀접한 관계로 맺어진 혈족(血族)만이(최소 단위는 가족, 또는 門中), 사회에서는 작게는 자기가 소속된 부서(部署), 확대하여 회사(會社) 중심이 되어 자신들만의 생존(生存), 또는 이익(利益)만을 추구(追求)하기 위하여, 이해가 상반되는 개인이나 집단과 더불어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공영(共存共營)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국외자(局外者)나 이탈자(離脫者) 또는 소속감(所屬感)이 없는 방관자(傍觀者)가 되어 사회(社會)와 단절(斷絶)된다. 일부(一部)는 자신들만의 생존(生存), 또는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하여 타인(他人)과 사회와의 소통(疏通)을 거부(拒否)하여 단절(斷絶)을 자초(自招)하기도 한다.

    ‘상식적인 인간과 비상식적인 인간’,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비상식적인 사회’로 양분(兩分)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사람과 비민주적인 사람’, ‘민주적인 사회와 비민주적인 사회’를 양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우파(右派)와 좌파(左派)’ 로 나누는 구분과 ‘부자(富者; 가진 자)와 빈곤자(貧困者; 가지지 못한 자)’의 구분들과 무슨 차이가 있으며, 그런 구분들이 무엇을 해결해 준다고 믿고 있는가? 상식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은 현실적인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절대적(絶對的)인 권능(權能)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종교(宗敎)에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할 수 있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절대적(絶對的)인 권능(權能)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신(神)의 선택이, 불평등(不平等)을 자초(自招)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어떤 종교의 신앙자가 간구(懇求)한 기도(祈禱)나 기원(祈願)에 응답(應答)했다면, 신은 그를 추앙(推仰)하는 수많은 신앙자 중에 그를 선택하여, 선택하지 않은 신앙자와 차별성(差別性)을 두어 공정성(公正性)을 잃어버린 것이며, 그 기원을 들어줌으로써 다양(多樣)하거나 상반(相反)되는 수많은 문제 중에서 선택했다는 점에서 형평성(衡平性)은 물론 조화(造化)와 균형(均衡)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한 신은 신앙자의 기도나 기원에 응답할 수 없으며, 모든 기도나 기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신은 그 스스로의 선택을 통한 응답으로 인하여,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절대적(絶對的)인 권능(權能)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이며, 그런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종교는, 종교가 아닐 수밖에 없다.

    만약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절대적(絶對的)인 권능(權能)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그 신이 인류와 전 세계의 문제를 선악(善惡)에 관계(關係)없이, 추종자(追從者)를 구분하지 않고(타 종교 신앙자와 무신론자와 무종교인들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해결(解決)할 수 있었다면. 왜 우리는 지나간 수 천 년 동안을 물론, 지금도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존경쟁(生存競爭)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위하여 진정 무엇을 추구(追求)하고 있는가? 새 시대에 부활(復活)해 오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 메시아가 오늘의 인류역사(人類歷史)에 구원자(救援者)가 될 수 있으며, 오시는 날에 만사형통(萬事亨通)하여 천국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있을까 ?를 자문자답(自問自答)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현대사회 특히 한국과 같은 휴전상태로 60년이라는, 한 인간의 평생에 해당하는 장구한 시간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고속기관차와 같은 남북관계에서 북한과의 전면적인 대치 국면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복잡 다양한 사회를 가진 국가인 대한민국, 한 민족이면서 타민족과의 갈등 이상으로 합의가 되지 않는 민족으로 두 국가체제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념의 갈등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혼돈(混沌)의 시대(時代)’ (pandemonium / topsy-turvydom , topsy-turvyness.)를 걷고 있는 이 나라의 다가올 미래 운명에 대하여 어떤 해결의 방법이 있을 것인가? 를 깊이 생각해보면 그 답을 그 누구도 간단히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 자명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세계의 복잡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신은 무엇을, 어떻게 어떤 것을 선택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한국의 현실에서 몇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준비되어 있으며 그 결과를 민초(民草)들은 수용(受容)하고 자족(自足)하면서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성취(成就)하고픈 희망(希望)의 실현(實現)’을 확신할 수 있을까를 자문해봐야 한다.

    1, 부모의 세대와 후손의 세대 간의 가치의 충돌과 불신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기성세대(부모세대)의 의식조사에서 보고된 바에 의하면, 부모세대의 21%가 자식에게 주택을 상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과를 방송을 통하여 널리 알렸다. 이와 같이 세대 간의 갈등의 결과로, 부모 세대가 후대에게 상속을 거부한다면, 이로 인한 가족해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신은 어떤 것(편)을 선택하여 응답할 것인가?’ -이하 동일.

    2, 일본은 1910년 8월 29일에 무력으로 강제 병합시킨 한일합방을 통하여 이 나라를 대륙침략의 통로로 이용하려는 야심에 찬 군국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일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도 침략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고, 노일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은 군국주의의 편협한 만행인 것이다. 우리가 국치일(國恥日)로 가슴아파하는 날을, 일본은 천장절(天長節)이라 하여 천황의 만수무강을 축수를 드리는 날로 정하고 갖가지 행사를 벌인다. 수백만 명이 넘은 일본군이 대동아 공영이라는 미명아래 목숨을 바쳤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에게 피해를 본 국가와 민족이 있는데도 반성할 줄도 모르고 사과도 않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민족성을, 독일 민족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편협하고 대의를 모르는 소인배임을 알게 해준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이러한 민족에 대한 인류의 징벌을 할 수 없는 것인가?

    3, 인간의 심성(心性) 즉 인간다움이 사라진 인간성 상실과 도덕적 해이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하는 따뜻한 인간다움을 되찾아 주기 위하여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가?

    4, 해방이후, 민주주의 꽃인 직접선거를 통하여 단 한 번도 정부와 집권당이 성공한 정권, 또는 온갖 험난(險難)을 무릅쓰고 국민이 성공시킨 정권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이 나라와 국민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5. 민중 혁명이든, 군사혁명이든, 또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것이든 우리나라와 국민은 정권교체( the change of regime / power change)를 했지만 교체된 정권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정권을 탄생시켜왔다. 정권이 교체되면 전정권의 재판이 판박이처럼 돌아간다. 그렇게 많은 실패한 정권을 계속 탄생시켰는데 정권의 참여자나 정권을 탄생시킨 국민은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반성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정치사의 현실이고 사실이다. 또 정권교체를 한 정권의 실패원인을 거울삼아 다음 정권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매우 비이성적인 국민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해방이후 군사정권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재창출한 정권과 정당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세계 정치사에 불가사의한 일로 문화유산으로 남겨도 좋을 만한 일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변덕스러운 것인가? 끈질긴 변화의 주역인가?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가진 민족인가? 아닌가?

    6, 민주주의의 정체를 예찬하면서 민주시민의 역할과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어떤 정권을 막론하고 항상 반정부, 반사회적이며 반인륜적인 운동에 앞장서 사회를 혼란으로 요동(搖動)치게 하면서 자신들의 인권보호와 권리를 주장하는 부도덕한 인간들을 언제 어떻게 이 나라에서 영원히 퇴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

    7. 가진 자들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하여 남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 그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는 시간에 못 가진 자들의 대부분이 허송세월을 하거나 잘못 선택한 삶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부가 불법적이나 불건전한 것이 아닌데도 부의 축적(蓄積)을 아무런 기준 없이 불법적인 축재(蓄財)라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사회에서는, 가진 자의 부를 아무런 조건 없이 못 가진 자들에게 분배(分配)해주기를 바란다. 사회적 환원이란 명분을 내세워 지탄(指彈)의 대상이나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의 자유와 근로의 대가를 무시하는 부도덕한 발상이다. 이런 부류들을 어떻게 도덕적이며 올바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8. 우리 사회가 안정성을 잃어 혼란에 빠진 것은, 현상에 대한 착각과 가치의 혼동에서부터 출발한다. 급변하는 사회변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다수의 국민이 양극화로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의 충돌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면서 자신들이 역사와 민족 그리고 이 나라 주권의 주인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만행에서부터 출발한다. 민중 또는 대중이란 개념으로 모든 가치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치로 재생산함으로서 다른 가치들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의 의문, 각종 시위에 대한 부정적 태도, 광범위한 무상복지에 대한 반대, 국가 안위가 걱정될 정도로 난동을 부리는 친북, 종북 세력에 대한 경고, 민중 또는 기층민의 실체에 대한 의구심(疑懼心) 등등을 말하면 반민족적 행위자로 몰아붙이는 진실이라는 가치가 전도(顚倒)된 사회가 되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는 것만이 진리라는 공산주의의 혁명 논리가 그들의 집단 내부에서의 권력싸움으로, 그들에 의해 세상에 노출되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우리 내부에 국가정체를 전복시킬 종북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는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저하게 대중 또는 민중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온갖 사회문제에 개입하여 민중의 분노를 키웠다. 그래서 국민은 그들이 국민의 적이 아니라 동지라고 믿고 의지하고 지지하고 지원했다. 그들은 고도의 전술로 핵심이 없이 좌충우돌하는 민중을 악용했다. 무상복지. 환경보호, 인권보호, 민중주의 정권으로의 교체, 불평등한 사회 혁신, 민족에 의한 통일, 친서민 정책, 사회적 약자보호와 지원 등등으로 국민을 기만했다. 그래도 우리는 즐거워하면서 박수를 쳤다. 이와는 달리, 국민의 불평과 분노에 편승(便乘)하여 온갖 현학적(衒學的)인 수사를 써 국민을 현혹(眩惑)시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도록 오도(誤導)할 뿐만 아니라 추종자들을 세력화하여 다원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종합적 판단력이 부족하고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이 확립되지 못한 일부 대중들의 여론이란 허상을 뒤에 업고 반사회적인 운동을 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도 잘못된 가치로 현실을 왜곡시켜 사회를 혼란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면 국가와 사회혼란의 책임을 절대로 지지 않으며 사회안전망 구축에 협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와 사회가 안정되면, 그들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들을 어떻게 퇴출시킬 것인가?

    9. 서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는, 인구가 약 5,000만 명 정도의 국가는, 나의 조국인 국가발전을 위하여 민중을 이끌고 가겠다는 신념을 가진 지성인이 1,000-1,500명 정도 있으면, 그런 국가는 크게 발전하여 세계역사의 흐름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통계를 보면 10,000명도 넘을 것 같다는 판단은 들지만, 민중을 이끌고 가겠다는 신념을 가진 지성인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중으로 부터의 인기를 유지하여 유명인이라는 명예를 추구하는 장사꾼 같은 지성인은 흔한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갖추어야할 국민다운 소양(素養)을 교육을 통하여 쌓아주고, 민주국가의 국민답게 우수한 민족으로 발전시켜 품위 있는 국민이 되도록 하는 것은 누가 해줄 것인가? 오로지 수고로이 얻은 명예와 인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사회의 여러 분쟁에서 지혜를 내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면에서 사라져 시비를 피하려고 꼭꼭 숨어버린 지성인들을 어떻게 자발적으로 나와 대중들을 선도하고 민족의 유구한 역사창조에 앞장서게 할 수 있을까?

    10.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성장(成長)과 복지(福祉)와 같은 상반(相反)된 논쟁(論爭)과 충돌(衝突)의 대상(對象)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가 운영해야 할 재정확보의 하나인 국민의 세금은, 선진국가의 평균 담세율(擔稅率)보다 아주 낮아 국가재정의 확보가 어렵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즉 급변하는 사회 변동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노력을 하지 않아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구조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과 경제활동을 해도 소득이 낮아 납세 대상자에서 제외되어 법률상 면세자(免稅者)가 되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국가재정 확보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 상당수의 국민들과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덕을 보려는 도덕적 해이가 날로 심해지는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무상복지(無償福祉)만을 요구하는 포퓰리즘(populism)에 영합하거나 아무런 재정확립 대책도 없이 폭넓은 무상복지, 더 나아가 소득의 격차를 바탕으로 한 차등복지(差等福祉)를 해도 어려운 판에,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무조건 평등복지를 하겠다고 자청하는 약삭빠른 기회주의자인 '포퓰리스트'(Populist)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외에도 해결해야할 수많은 국내외의 문제들이 산적(散積)해 있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국민이 대처해야 할 일의 최우선은, 내부(內部)의 적(敵)을 색출(索出)하여 그들의 만행(蠻行)으로 인한 국가와 사회의 붕괴(崩壞)를 막아야 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대부분이, 헌법이 정하는 바의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國家) 전복(顚覆)을 위한 적국(敵國)의 전사(戰士)들 같은 투쟁력과 파괴는 저들이 과연 우리와 같이 살 국민인가가 의심스러운 것보다 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두렵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알 수 없는 무국적자(無國籍者)들이 너무 많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중(二重) 국적자(國籍者)가 된 사람들 중에는 지도층의 반열(班列)에 끼는 인물들도 있다고 하니 가히 코미디 천국 같다. 우리가 살아야할 이 땅과 사회이고, 자손만대가 살아야 할 이 땅과 사회를 그렇게 마구 파괴하여 엄청난 사회적 부담으로 미래로의 도약을 막아 버릴 수가 있을까? 하는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우리의 참담(慘憺)하고 비극적(悲劇的)이며 이해가 되지 않는(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인 것이다. 어떻게 자국민(自國民)이 국가와 사회를, 자신이 받아들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법적으로 해결해야할 일들을 범법행위를 정당방위라는 미명아래 자해(自害) 행위를 저지를 수가 있을까?

    우리들의 자식들이 살 세상을 분탕(焚蕩)질을 쳐서 국가의 기반(基盤)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만큼 우리사회가 문제가 많은 사회인가? 국력이 10위 정도의 나라인 조국이, 밖에서는 선망(羨望)의 대상으로 우리의 경제, 문화의 발전(發展)의 모형(模型)과 추진(推進) 동력(動力)을 배워 자국(自國)의 발전을 하고 싶은 나라가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데, 정작 우리는 내 조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로 스스로 자폭(自爆)하고 있으니 이것이 상식 있는 행동인가? 이것이 애국애족(愛國愛族)인가? 무엇을 위한 투쟁(鬪爭)이며, 무슨 명분(名分)으로 국민을 선동(煽動)하여 자해행위(自害行爲)로 나날의 삶을 힘들게 하는가? 무뇌인간(無腦人間)이거나 전복세력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서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면, 이 땅은 그런 무리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분명하므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 나라를 떠나 원하는 나라로 자발적(自發的)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옳은 판단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자발적(自發的) 이민(移民)을 선택한 그들에게 갈채(喝采)를 보낼 정도의 아량(雅量)은 있을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싫은 나라에서 그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투쟁한다는 것은 비정상(非正常)이며, 비상식(非常識)인 것이다. 내가 살고 우리들의 후손 만대가 살아야 할 이 땅을 파괴하여 미래가 없는 나라로 만들 때에는, 대다수의 국민다운 국민은 더는 수수방관(袖手傍觀)하지 않고 대적(對敵)하게 될 것이다. 패전(敗戰)의 몰골로 사라지지 말고, 웃으면서 이민을 가기를 바라는 것은, 한 많고 정 많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국민들의 마지막 배려(配慮)인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의 모든 문제는 선택(選擇)해야 할 것들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그래야 해결되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직면(直面)하고 있는 문제들은 유일(唯一)하다거나 절대적(絶對的)이라거나 하여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실패(失敗)를 각오하는 용기(勇氣)와 결단(決斷)이 요구되는 것이다. 모든 문제들은 상대적(相對的)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多樣性)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또 다른 상대적이며 다양성을 가진 새로운 문제가 대두(擡頭)되게 되어 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없는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하고, 선택된 문제를 회피(回避)하거나 폐기(廢棄)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버릴 수 없는 살아 있는 동안의 영원한 족쇄(足鎖)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한 결 같이 논리적이거나 합법적인인 것도 아니며, 흔쾌(欣快)히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 허다(許多)하다는 점이 인간의 비극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친서민(親庶民) 정책이라든가. 인기 영합주의(人氣迎合主義)에 매몰(埋沒)된 현실은, 더욱 더 국민을 ‘비극(悲劇)의 장(場)’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로 인하여 일부의 국민은 법에도 없는 과도한 권리주장과 보호받을 수 없는 인권을 내세워 국가와 국민을 향해서, 자신들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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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포덕 153(2012)년 11월 27일.

    / 버림받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울부짖는다.

    들어가는 말.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한 없이 넓은 지구의 북동쪽에 위치한 동방(東方)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마한 나라가 나의 조국(祖國)이고 모국(母國)이라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과 더 할 나위없는 감동에 젖어 있다. 내가 만약 1950년 6. 25동란으로 인하여 월남(越南)하지 못하고, 북한에서 내 나이 70이 훨씬 넘은 나의 인생을 살았더라면, 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과 더 할 나위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란 물음에 절대로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었다고 단호하고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있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월남이라는 훌륭한 선택에, 조국과 부모님이 생각이 날 때마다 그 깊고 넓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있다. 일제의 침략 40여년(을사늑약부터)과 해방공간에서의 기아(飢餓)와 헐벗음에 대한 고통과 생사를 가늠할 수 없었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그 시대를 이끌고 온 수 많은 나의 동포들에게 한없는 감사와 축복을 드리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과 민족문화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겨레와 내가 공존공영(共存共榮)하려는 의지와 노력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있다. 이렇게 내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과 민족문화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겨레로 만들어 준,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 시대 시대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충실하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 그 시대를 이끌어 온 주역들에게도 비록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하더라도 그 잘못들은 지워버리고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다. 왜냐하면 1930년대 말에 태어나 지금까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 시대의 어려움을 같이 했고 시대마다 어두웠던 굴곡(屈曲)과 특수한 상황들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시대들의 곤혹(困惑)스러운 삶과 노력으로 얻어진 풍요롭게 살게 된 현실에서, 기성세대처럼 살지 않고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을 제외한 전 세대(중견세대와 신세대)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으려는, 그들의 지금의 잣대로는 평가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 시대의 시대적 상황과 시대정신을 기성세대들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과 민족문화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겨레로 만들어 준, 역사의 중심세력을 이루었던 대 다수의 주역들에게는 감사를 드리고 있지만, 그 수를 헤아릴 수는 없는, 이 나라의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로 사회의 문제를 야기(惹起)시키고 있는, 일부의 여론 주도층(主導層)에 의해 형성된 반정부, 반사회적인 무리들이, 지난 세월의 상당부분을 부정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로 인하여 이 나라와 후손(後孫)들의 미래가 암담(暗澹)해지고 삶이 험난(險難)해지지 않을까 하고 깊은 우려(憂慮)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을 피폐(疲弊)하고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게 만들어 버린 그들로 인하여 기성세대인 전세대(前世代)와 기성세대를 이어 이 나라와 이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후손세대가 불신과 배척으로 양극화되어 가고, 가정에서는 분가(分家)로 인한 심각한 가족해체를 불러온 불행을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어 사회의 문제가 국가 안위의 문제로 까지 확대되어가는 매우 위험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있음에 후손들의 삶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지향(指向)하고 있는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또는 어우러져 같이 살아가는 사회로, 나와 너와 우리가 있어야 하는 데, 나만 있고 너와 우리는 없다. 남에게 못되게 굴면 못살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바른 이치인데 못되게 구는 사람이, 너무나 착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보다 더 잘되고 잘사는 세상이 되었다면, 누가 천벌(天罰)을 내릴 것인가? 천벌이 없다고 믿으니 세상은 막사는 망나니들의 살판이 되어 가는 것이다. 정의(正義)나 신뢰(信賴)나 예의(禮儀)는 말이나 구호에서 있을 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없어진 지가 오래된 것 같다.

    제 부모를 살해하거나 제 부모를 개패 듯이 때려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려 있게 하고, 상해(傷害)를 입혀 겁에 질려 있는 멍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신문과 방송이 보도(報道)하는 기사(記事)들을 접(接)한 지가 벌써 수십 년 전부터 들어 온 터라, 오천 년의 고유한 문화가 찬란히 빛나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이 나라에서 부도덕(不道德)한 일들이 밤낮없이 횡행(橫行)하는 매우 위험한 사회라는 말과 패륜아(悖倫兒)란 말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게 되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기성세대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학생의 인권이, 교사들의 인권위에 서서 군림(君臨)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체벌(體罰)은 죄악(罪惡)이 되어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들을 패고, 고소(告訴)하고, 흥정하고 있는 현실은 다반사(茶飯事)가 되어 가고 있다. 이게 어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인가? 이런 세상에서 옳은 것이 무엇이고 그른 것이 무엇이면 어떻다는 것인가? 권위(權威)와 위엄(威嚴)과 인륜(人倫)과 정의(正義)의 가치가 사라진 시대, 인간다움이 사라진 시대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없다는, 인간의 양심과 인간성이 야수성(野獸性)으로 타락한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 언제인가 멈춰 서서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팽이 같은 세상(7-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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