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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 예복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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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466회   작성일Date 13-08-03 20:41

    본문


    천도교 예복에 대한 연구

     

    1. 시작하는 글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천도교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천도교 예복에 대한 연구의 글을 발표할까 합니다. 천도교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예복 즉 도복의 착용은, ‘입교식, 시일식, 기념식, 위령식 등의 의식을 거행할 때는 의식집행자(집례자)는 교회에서 제정한 예복을 착용한다.’로 천도교의절(책)에 명시되어있습니다.

    또한 의절에 ‘현재(포덕141년)사용되는 예복은 포덕 109년 전국대의원대회 결의로 제정되었으며, 포덕 111년 6월 11일 종무위원회 및 기관연석회의의 결의를 거쳐 전국에 공고되어 사용되고 있다.’로 명시되어있습니다. 천도교중앙총부 발행 천도교의절의 초판이 ‘포덕 109년 4월 5일이며, 3판, 중보초판, 중보재판, 중보판, 중보신판, 개정신판(포덕141년)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로 되어있습니다.

    천도교 현 의절책의 예복제정내용에는 이와 같이 명시 되어있을 뿐 예복 유래나 의미에 대해서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동학, 천도교 역사 전체를 검토하여 천도교 예복에 대한 유래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예복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밝히고자 합니다. 필자의 글을 읽으시는 분에게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 글의 취지는 연구 글이라는 것에 이해하여 주시고 보다 더 구체적인 연구 글들이 나오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본격 시작하고자 합니다.


    2. 대신사 수운 최제우의 의관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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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 제 1성지, 용담정에 모신 대신사 존영

     

    동학, 천도교 예복의 유래를 살펴보려면 우선 동학을 창도하신 대신사 수운 최제우(이하, ‘대신사’라 칭함)께서 과연 어떤 복장으로 기도와 수련, 천제의식을 하셨는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대신사께서 분명 의관정제(衣冠整齊)를 하신 것으로 전해옵니다. 옷과 모자를 예절바르게 착용하신 것이죠. 그런 대신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첫째로 대신사 초상화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대신사 경전, 검결(검가)의 내용(무수장삼-舞袖長杉)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사의 초상화는 현재까지 5점이 전해오고 있으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신사 모습의 초상화 3점 즉 최초의 존영은 1893년 신사 해월 최시형(이하 '해월신사'로 칭함)께서 생존하실 때 그려졌다는 일본동경조일신문에 게재된 존영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1933년 천도교창건사에 삽입할 목적으로 그린 대신사 존영과 1991년에 그려 현재 용담정에 봉안된 존영을 살펴봐야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대신사와 해월신사께서 청의도복(靑衣道服)을 입으셨다는 말씀도있습니다. 또한 대신사의 검결 내용 중 무수장삼의 수련복장입니다. 물론 대신사의 의관정제나 심신연마 복장인 무수장삼(긴팔춤옷)은 당시 문화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3. 최초의 동학의례에 제정된 예복

    최초의 동학 즉 천도교 예복은 포덕 16년(1875년) 10월 28일 단양 대강면 장현리 송두둑의 해월신사 집에서 집단 제례를 봉행할 때 입은 동학 복식으로 제정되었습니다. 동양의 전통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음양오행(陰陽五行)설과, 대신사 경전 논학문(동학론)에서 말씀하시길, ‘내가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이나 학인즉 동학이라’의 동(東-동녘, 동쪽) 즉 동학을 음양오행설로 방위와 색을 설명하며 보면, [동쪽-나무-푸른색]이 됩니다. 그래서 예복(법복)의 색은 짙은 푸른색으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또한 동학, 천도교 중요문헌에 의하면, 당시 선도(仙道,宣道)의 복제(服制)를 참고해 독특한 의관, 두루마기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법관(모자)은 검은색 말총으로 만든 삼층관이며, 모양새는 날개 끝 부분이 둥글기 때문에 일반 삼층관과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법복(예복)은 짙은 청색이며 아홉 폭짜리 두루마기라고 보면 됩니다. 또 법복은 옛날 관복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고름 매듭이 오른쪽 겨드랑이 옆에 짧게 달려있고, 각대(角帶) 대신 검은 2치 폭의 띠가 둘렸습니다. 모양은 중앙에 길이가 같은 두 줄의 띠를 늘인 형태라고 합니다.

    또 다른 문헌이 전하는 동학예복에 대한 색깔이 있습니다. 1893년 2월 11일 해월신사의 특명을 받은 도차주 강시원, 서병학 손병희 박인호 등이 주도한 광화문복합상소의 현장에서 대표단 9명은 예복인 주의(朱衣-붉은 빛깔의 옷)를 차려 입고 임했다는 것입니다. 왜 붉은색의 옷을 입고 나섰는지는 전하지 않고 있으나, 예부터 붉은색의 상징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나타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대신사님의 신원과 동학 포덕(포교)의 자유를 호소하며 굳은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결단의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참고로 동서남북의 방위와 색깔을 음양오행에 적용시켜 설명 드리겠습니다. 동(東-동쪽, 나무, 푸른색) 서(西-서쪽, 쇠, 흰색) 남(南-남쪽, 불, 붉은색) 북(北-북쪽, 물, 검은색) 이와 같이 음양오행설과 대신사 말씀을 참고하여 동학시대의 예복(법복, 도복)에 대해 설명을 하여보았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일제강점기 당시에 천도교에서 어떤 예복을 공식적으로 착용했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생존해 있던 천도교 원로 분들이나 천도교역사를 깊이 연구한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갑니다.


    4.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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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창수도원 봉황각에 모셔진 의암성사 존영

     

    본 글을 쓰면서 현재 천도교 상주선도사로 계시는 윤석산 교수와 전화통화로 일제강점기시대의 천도교 예복에 대한 질문과 토론을 하였습니다. 또한 천도교 원로 분들의 말씀들을 기억하며 설명해보겠습니다. 해방 후 천도교인들은 주로 시일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신사님 초상화 의복과 비슷한 두루마기한복을 입고 오셨으며, 현재 예복이 정착되기 전에는 집례나 설교를 하실 때에도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시고 그대로 시일을 진행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사 의암 손병희(이하 ‘의암성사’라 칭함)께서 입으셨던 단추 단 개량한복식의 복장이 천도교 예복을 대신했다는 역사가 있답니다. 현재 서울 우이동 의창수도원의 봉황각에 모셔진 의암성사 존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일제강점시기의 천도교 예복은, 공식적인 절차는 없었지만 많은 천도교인들이 대신사님 존영의 의복과 같은 두루마기한복을 입으셨고, 의암성사를 비롯하여 지도부에서는 옷고름을 떼고 단추를 단 생활하기 편리한 한복이 당시 천도교 공인복장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며, 현대인들이 즐겨 입는 생활한복(개량한복)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5. 현재 천도교 예복에 대한 문제점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검은옷색에 노란궁을장의 천도교예복에 대한 많은 찬반론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왔습니다. 현 예복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분들의 의견에는 일본의 법원제복을 모방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현 예복은 1970연대 초 최덕신 교령당시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증언들이 천도교학자와 원로 분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당시 동학에 대한 문헌의 부족과 역사에 대한 연구부족 등으로 동학, 천도교 전통예복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제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현 예복을 확정할 당시, 포덕 109년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는 진암 김영묵 선도사의 증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 교단 지도부와 대의원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심한 논란이 있었답니다. 그 논란의 첫번째는, 검정색에 대한 이견이었답니다. 둘째는 관복 , 법복을 모방하였는데 목에 두르는 단추달린 띠가 역리(반대쪽)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단지도부에서 현재 예복이 없으므로 우선 시행하였다가 나중에 올바른 예복으로 교체하자는 설득에 박수로 통과하였다는 증언입니다. 그러나 오랜세월 바꾸지 못하고 마치 천도교 전통예복처럼 여겨져온 것입니다.

    현재 예복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말씀드리면, 해월신사 당시 동학시대의 예복 즉 의관을 참고하여 천도교 전통예복을 소생시켜야 합니다. 천도교시대의 의암성사, 춘암상사(박인호) 시절에도 없었던 천도교와 무관한  현재 예복에 대해 교단차원의 연구와 토론회 등을 거쳐 다시 제정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 종단과 비교해서 이제 천도교 교역자 복장이나 수련복 같은 생활예복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6. 일제법원복과 천도교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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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 광복이전 법복, 우 - 광복이후 법복 [대법원 전시실 ]

    현재 천도교 예복의 문제점을 본격 검토하기 위해선 해방전의 법원제복과 해방후의 법복을 비교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일제잔재, 복제의 변천'의 글을 인용하면, 일제 해방전의 법복의 법령근거는,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직원복제에 관한 칙령(칙령 제176호,1911년 5월 31일 공포·시행) 조선총독부훈령 제52호(1911년 6월 6일 공포) 조선총독부재판소 직원의 복제에 관한 건(칙령 제222호, 1920년 7월 26일 공포, 그해 10월 1일 시행) 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와 소속관서의 모든 직원은 공무집행의 경우에 소속장관의 허가를 받은 자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제복을 착용하고 칼을 차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법복 상의 지질은 흑색(검정색)이며, 장식은 짙은 비색(붉은색)의 오동나무꽃 및 당초(여러가지의 덩굴풀이 비꼬이어 뻗어 나가는 모양)무늬로 되어있습니다. 당시 직위에 따라 오동나무 꽃 숫자는 군대의 계급장처럼 다릅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법령근거는,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서기 복제규칙(대법원 규칙 제12호, 1953년 3월 5일 공포·시행)되었습니다. 법복의 지질은 흑색(검은색)이며 장식는 앞가슴 중앙부 목에서 5cm 하위 직경 20cm의 무궁화문속에 직경 10cm의 입체무궁화입니다. 제식은 선깃에 한줄단추 5개를 숨김단추로 되어있습니다.

    광복 후 일제강점기의 법복을 착용하지 아니하고 상당기간 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하다가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공식인 법복제도의 시초의 법령근거는, 검사의 법복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484호, 1966년 4월 4일 공포, 그해 4월 1일 부터 적용)하였습니다. 그 이후 대한민국법원의 법복은 법령의 근거에 의해 수차례에 걸쳐 보완되었으며 현재는 미국식 법복을 참고하여, 1998년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대법원에서 법복을 개정함에 따라 새로운 판사 법복과 조화되는 심미성과 실용성을 갖춘 검사 법복을 새로이 개발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 법원제복을 보면 현 천도교 예복과 비슷한 점을 발견합니다. 70연대 초 천도교에서 제정한 현 예복은 해방직후 일제법복을 약간 고친, 오동나무 꽃 대신 무궁화로 바꾼 한국법원제복을 모방하여 무궁화 대신 궁을장을 가슴 부위에 넣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현 천도교 예복은 당시 관복 즉 법원제복에 근거를 둔 모방적 요소가 분명합니다. 이제 한국법원의 제복도 여려차례 바뀌며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천도교 예복도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늦은감이 있지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7. 마무리하는 글

    천도교 예복을 다시 제정하려면, 대신사 생존 때와 대신사 초상화 등 대신사께서 기도와 수련 천제의식 때 입었던 복장을 연구검토하고, 해월신사께서 지시하여 정식 동학예복을 만들어 집례자가 입었던 예복과 의암성사께서 입었던 개량된 한복 등을 자세히 연구하면 현재 천도교 예복의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이제 현 예복을 주장하는 것은 천도교 전통을 외면하고 일제식 법복을 모방한 것을 지속시키는 일이 되므로 천도교회의 명운을 걸고 개정해야 될 것입니다.  

    천도교 전통예복은, 해월신사께서 제정한 예복이 첫 번째 공식 예복이며, 당시 짙은 푸른색 즉 청의도복(푸른색깔의 도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예복만 착용하는데 원래 의관 즉 모자와 옷을 동시에 갖춘 복장이었습니다. 이 또한 연구를 통해 다시 제정 할 것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평소 생활하면서 입을 수 있는 교역자나의 옷이나 수련복은 의암성사의 옷을 연구해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시대적 사명으로 현 천도교 예복은 폐기하는 순서를 밟아야 합니다. 현재 예복이 무슨 의미로 만들어졌으며 동학, 천도교의 전통예복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교단의 공식적인 설명도 없고 일제강점기의 관의 법복을 모방하였다는 사실에 더 이상 지속할 명분도 없습니다. 물론 일제의 법복이 서양법복을 모방하였다는 예측도 할 수 있으나, 당시 예복을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보이듯이 교단차원의 연구과정이 부족하였고, 특히 논란이 심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다시 예복에 대한 논의와 개정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당시 젼국대의원대회에서 공포한 '우선 현 예복으로 하고 차후 연구와 검증을 거쳐 새로운 천도교 예복을 제정하자.'는 공인된 약속입니다. 대회에서 약속한 사실을 이제 실현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상 필자의 연구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보다 더 좋은 역사의 전통과 현실에 맡는 천도교 예복에 대한 연구 글들이 발표되기를 원하면서 마치겠습니다.

    포덕 154(2013)년 8월 3일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에서
    송암 이윤영 심고.

    -참고문헌-

    * 천도교 약사
    * 시천교 역사
    * 천도교회 월보
    * 동학(통나무-표영삼)
    * 천도교의절연구(신인간-임운길)
    * 일제잔재, 복제의 변천(우렁각시)
    * 동학, 천도교의 어제와 오늘(한양대-윤석산)


    * 현재 사용하는 천도교 예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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