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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차 동학기행(3일간의 순례)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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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송암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9,126회   작성일Date 13-10-31 19:28

    본문


    제3차 동학기행(3일간의 순례)

     

    1. 충남 공주 우금티 전적지
    2. 전북 순창 전봉준장군 피체지
    3. 전북남원 수운선생유적지, 방아치전투지
    4. 전북고창 전봉준생가, 동학혁명 무장기포지
    5. 동학기행(특별기획)15일간의 순례를 마치면서,

     

    1. 충남 공주 우금티 전적지

    오늘 10월 27일, 천도교전주교구에서 일 년에 한 두 번 가는 야외시일 날이다. 하루 전날부터 이것저것 챙기는 내수도 나해당께서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아, 그런데 나는 어찌하오리까? 전주한옥마을 비빔밥축제 끝 날이 오늘이라서 동학혁명기념관에 엄청 내방객이 밀려오실 터인데.., 결국 교인들은 진안 마이산으로 야외시일을 떠나고 나는 기념관에 출근하였다. 아차, 오늘이 공주시 우금티전적지에서, ‘2013년 우금티추모예술제’기념행사가 있는 날이다. 또한 경주시에서는 동학축제의 큰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나는 오전 내내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 사무실에 앉아 염주를 손에 들고 심고를 올린 후 주문수행에 들어갔다. 동학주문소리가 기념관에 은은히 울려 퍼지면서 그 어떤 신령스런 기운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자꾸 우금티추모예술제에 가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선열님들께 술 한 잔 바쳐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애써 잊으려 머리를 흔들고 딴청을 부려도 더욱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기를 한 두 시간, 교구야외시일을 가지 않은 큰따님을 설득하여 기념관에 부르고, 나는 결국 차를 몰아 우금티전적지로 향했다.

    오후 2시 30분 즘 우금티 기념탑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오시어 기다리는 기념사업회 임원들과 반갑게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원래 우금티기념일은 11월 11일 마지막 전투, 동학혁명군위령탑을 세운 날이 기념일이다. 10월 24(음)일부터 공주인근에서 전봉준, 손병희 장군의 동학군주력부대와 일본군((관군)과의 전투가 시작되어,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동학농민군들의 ‘시체가 산같이 쌓이고 피가 바다같이 흘렀다’는 전설을 남기며 통한의 후퇴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 일본군들의 신무기 기관포와 연발총소리가 지금도 내 귀를 찢듯이 들려오고, 동학군의 비명소리, 함성소리, 그리고 시천주 주문소리가 주미산과 우금고개를 휘돌며 울려 퍼지는 듯하다.

    오늘 ‘2013년’우금티추모제례/역사축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공주대산학협력관에서 역사축제와 문예상 시상식이 있었으며,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우금티사적지(우금재-도로터널 위)제례, 추모공연, 문예상전시 놀이체험 등 다양한 기념사업들이 펼쳐졌다. 기념행사참여단체는 공무원노조공주지부 등 13개 단체이며, 참여 학교는 공주고등학교 외 7개 학교가 함께했다. 그런데 우금티위령탑 앞에서는 거의 행사가 없는 것과 11월 11일이 아닌 10월 27일 기념행사를 하는 이유를, 지수걸-(사)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장께 필자가 질문을 하자 이런 답을 들었다. 11월 11일은 날씨가 추워 참여인원문제가 있고, 위령탑에서의 기념행사는 함께하는 농민, 시민단체들의 반대문제라는 것이다. 아마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닌가를 필자는 짐작을 해본다.

    기념탑 앞면 비문에 5.16혁명과 동학혁명정신을 연결하는 내용이 있고, 뒷면에도 대통령 박정희, 10월 유신 등의 내용들이 있는 것에 위령탑을 외면하는 것 같았다. 우금티 위령탑을 세울 즘 최덕신 천도교 교령과 박정희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는 이야기를 안 해도 알 것이다. 결국 둘은 갈라져 최교령의 월북으로 이어졌으며, 박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맞아 죽는 비운을 맞게 된다. 필자는 예정된 기념행사를 모두 마치고 뒤풀이 하는 시간에, 지수걸 우금티기념사업회장, 김대곤 기념재단이사장, 전해철 전봉준기념사업회장, 박돈서 천도교공주교구장 등 주요 참석임원들에게 제안했다. ‘천도교와 기념사업회 임원들만이라도 위령탑참배를 합시다.’ ‘우리가 박정희, 최덕신에게 참배하는 게 아니라, 수십만 동학민중혁명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입니다.’라는 나의 제안은 받아들여져 필자의 집례로 참배식이 간략하게 이루어졌다.(김대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님의 제안과 적극 찬성도 있었음)

    나는 우금티기념행사를 모두 마치고 석양의 노을빛 마음으로 홀로 전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는 11월 11일, 천도교대전교구 중심으로 ‘제 119주기 공주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식’과 오늘 있었던 ‘2013년 우금티추모예술제’가 내년 120주년에 함께 하였으면 하는 바램의 심고를 한울님 스승님, 선열님께 올렸다.(이인, 효포 등 공주일대 동학농민혁명 사적지 순례는 지난 겨울에 하였으므로, 이날 동학기행에서 시간상 생략하였다.)

    * 신동엽 시인은 '우금티의 그날'금강-동학 서사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공주 우금티, 황토흙 속 유독 아카시아가 많은 고개였어/ 그 우금티 고개에서 동학군은 악전고투했다. 상봉 능선에 일렬로 배치,/ 불을 뿜는 왜군 제5사단의 최신식 화력,/ 야전포, 기관총, 연발소총, 수류탄/ 꽃이 지듯 밑없는 어둠으로 수백명 씩 만세 부르며 흰 옷자락 나부껴 수 천명씩 차례차례 뛰었다.(금강20) 
    .골짜기마다 시체의 산/피의 개울/싸움은 끝난 걸까?/ 초겨울/보리밭에 뿌려진/허연 거름 건데기처럼/골짜기, 갯바닥을 덮은/누더기 죽/몇 달 두고/금강 이쪽 저쪽에선/살기름냄새 가시지 않았고/우금티, 무너미 황토고개에선/지금도 간간이/밭 매다 뼈마디 추려내는 일 있다 했다
    (금강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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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제례 전 혁명군 희생의 넋을 기리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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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작품(동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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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작품(동학혁명전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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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작품(혁명전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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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작품(동학농민혁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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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작품(동학농민혁명 우금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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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작품(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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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전공연 1. 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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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전공연 2.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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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례-축문(농민,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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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인사제례(동학혁명기념관장 이윤영, 천도교공주교구장 박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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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천도교 의식(심고, 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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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티 위령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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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군위령탑(탑 앞뒤 박정희 전 대통령관련 내용의 글이 파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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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의식참배(사진우측-기념재단사무처장, 전봉준기념사업회이사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우금티기념사업회이사장, 천도교공주교구장 등)집례-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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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치 전적지 설명표지판

     

    2. 전북 순창 전봉준장군 피체지

    제 3차 동학기행 두 번째 순례날인 10월 28일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일 제 189주년이다. 오늘 동학기행은 다른 날보다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전주를 출발하였다. 오후 3시가 다되어 기행을 준비하고 따라 나서는 내수도 나해당과 함께 필자의 승용차를 운전하여 4시경에,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피노마을 ‘전봉준장군피체지’에 도착하였다. 오는 도중 첩첩산중 고갯길들을 돌고 돌아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감상하였다. 도심을 벗어나 산중의 맑은 공기와 시골의 전원풍경은 저절로 심신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곳 녹두장군유적지는 그런대로 유지관리가 되는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유적지를 둘러보고 곧바로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2년 전 전라북도 동학혁명유적지 전체를 기행 할 때와 변화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전봉준장군 피체지에 온 분들은 대부분 느끼는 생각이겠지만, 유적지 설명 표지석 내용 중에 ‘정읍출신 김경천의 밀고로 동학혁명가 전봉준장군이 체포된 곳’이라는 내용 때문에 쓴 웃음을 짓게 한다. 밀고한 김경천은 원래 정읍출신이고, 정읍에서 가까운 이곳 순창 피노리에서 살았었다. 녹두장군 전붕준 선생이 얼마나 김경천을 믿었으면 이곳에 피신하였을까를 생각해보면, 둘은 각별함을 넘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사이였을 것이다. 녹두장군은 11월 우금티전투패배 후 논산, 전주, 금구, 태인으로 후퇴하며 격전을 하다가 전봉준, 손병희장군 주력부대는 결국 해산한다. 그 후 녹두장군은 수행원 몇 명과 후일을 도모하게 위해, 정읍과 장성의 경계인 임암산성으로 숨었으나, 일본군과 관군이 추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백양사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동학도인들을 통해 김개남장군이 정읍(태인) 산내면 종성리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2월에 태인으로 가던중 피노마을 김경천에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현상금과 포상에 현혹된 김경천의 밀고에 탈출을 시도하며 격한 싸움도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체포되고 만다. 녹두장군이 당시 피체될 때 현 피노마을 바로 앞(옛 금국초등학교 자리) 피체지 복원장소가 아니라는 증언을 이번 기행 중에 들었다. 현재 피노마을에 사는 80세가 넘은 두 할머니들의 증언도 그렇고, 피체지 관리실에 근무하는 박병수 실장의 증언도 일치하였다. 이 세분들은 필자와 이야기 도중,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증언을 전해준 마을 할아버지나 촌로들의 구전에 의하면 현 피노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먹우실’마을 바로 앞 주막이라는 장소에서 피체되었다는 증언들이었다.(필자는 박병수님과 먹우실마을 현장을 답사하였다.) 

    * 현 피노마을 피체지 복원모습은 당시 먹우실 주막모습을 복원하였다는 것이다. 전봉준 장군은 분명 주막집에서 피체되었고, 그 장소가 먹우실마을의 주막이라는 사실을 필자가 이번 기행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었다. 이곳 전봉준장군 피체지 복원사업은, 2005년 5월 30일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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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피체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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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피체지 설명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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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피체지 표지석(정읍출신 김경천의 밀고로 동학혁명가 전봉준장군이 체포된 곳을 강조하는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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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피체지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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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문을 선포하는 전봉준장군 모습의 동상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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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피체지 주막집의 복원된 모습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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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피크닉장, 농촌생활체험관(본 건물 우측에 사무실 상근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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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이 체포된 먹우실 마을입구(본 다리 건너 마을 앞에 주막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피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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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우실마을 전경(농민들이 탈곡기로 추수하는 모습이 보인다.

     

    3. 전북남원 수운선생유적지, 방아치전투지

    3차 동학기행 세 번째 날인 10월 29일, 오전 10즘 필자는 나해당과 함께 남원지역 순례에 나섰다. 오늘은 남원지역과 고창지역을 두 곳을 순례해야 하기에 나는 조급증까지 발휘하며 평소와 달리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제일먼저 도착한 곳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 사적지인 남원광한루 안에 있는 오작교에 도착하였다. 현재 광한루는 춘향이와 이도령으로 유명한 관광지의 명소이다. 그곳에 현재도 오작교가 원형모습으로 보존되어있다. 이곳은 1861년 11월경 수운선생은 남원에 오시어 처음으로 머문 ‘광한루 오작교 아래 서형칠의 약방이 있던 곳’이다. 약방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복원된 광한루와 원형의 오작교 모습에서 수운선생님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수운선생께서 경주 용담정에서 피신을 위해 수제자 최자원에게 귀한 약재를 노자로 받아 최중희와 함께 오셨데 약재를 돈으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다. 이후 서형칠의 생질 공창윤의 집으로 옮겼다가 은적암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수운선생의 동학교도가 된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다음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체포된 동학군들 수십 명이 사형 당하는데 그 대부분이 저자거리에서 참형된다. 이 저자거리 즉 성 밖 시장이며 지금의 광한루원 월매집이나 부근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남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이곳에 수운선생과 동학군희생 표석을 세우려 하였으나, 광한루원이 춘향이의 사적지로 지정되어 문화재관리국의 허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아쉬움을 전한다.

    다음은 교룡산성 김개남장군 주둔지와 수운선생의 성지 은적암으로 향하였으나 시간상 입구에서 차를 돌려야 했다. 필자는 은적암 기행을 2~3년마다 하여왔고, 지난여름 7월에 다녀왔기에 최근의 사진도 있고 해서 바로 동학군의 훈련장인 요천으로 향했다. 요천변도 눈으로만 확인하고 남원 최대전투지 방아재로 향했다. 요천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산동면 부절마을이 나온다. 부절마을 중간 즘 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도로가 개설되어있다. 고남산쪽으로 오르다보면 집이 한 채 나오는데 바로 옆에 ‘동학농민혁명 방아치천투지’기념비가 입구에 세워져 있다. 기념비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호남평야를 점령하고 있는 동학농민군 김개남장군이 지휘하던 전라좌도 농민군이 북진을 한 후 김홍기, 최승우접주 등을 중심으로 경상도쪽으로 진출하고자 11월 14일(음력) 새벽부터 15일까지 이곳에서 운봉 민보군을 받은 박봉양군을 물리치지 못하여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내고 다시 남원성으로 퇴각하였다.’로 적혀있다.

    이곳은 방아치재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멀리 보절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11월14일 새벽 5시부터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다음날까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남원성으로 후퇴하였지만 사상자만 해도 3,000여명에 달한다 한다. 이곳 방아재가 바로 그 유명한 동학혁명군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전투지이다. 지금은 기념비 하나만 우뚝 서 있을 뿐 지리적으로 찾는 이가 많지 않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필자는 멀리보이는 지리산자락을 바라보며 참았던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끝내 울음을 삼켜야 했다. 아, 동학이여, 혁명이여, 그 무엇을 위하여 이처럼 큰 희생을 감수하며 목숨들을 초개와 같이 바쳤던가.(본 기념비는 2007년 11월 17일,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세웠다.) 나는 이곳에 한참을 머무르며 주위를 살펴보다가 이내 시간을 점검하고 오후 3시 즘 고창 전봉준장군 생가로 가기위해 서둘러 차를 몰기 시작했다.(남원지역-은적암 터, 깃대바위, 백두대간, 남원성북문지, 류태홍선생의 묘 등, 시간상 생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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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남원에 도착하여 최초로 머무른 서형칠선생 약방이 있었던,'광한루 오작교'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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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작교 설명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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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작교와 광한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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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룡산성(선국사)입구에 세워진 동학과 동학농민군 유적지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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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표석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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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운선생 성지-은적암터 설명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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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방아치전투지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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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방아치전투지입구 표석 뒷면 내용

     

    4. 전북고창 전봉준생가, 동학혁명 무장기포지

    필자와 내수도 나해당은 남원 방차치전투지를 출발하여 약 1시간 30분 후, 오후 4시 30분 경 ‘전봉준장군 생가’ 복원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마을로서, 1855년 2월 3일(음력) 전봉준장군이 태어난 13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녹두장군께서 태어난 곳으로 몇 군데 지역이 거론되지만 현재 학계나 연구가들도 대부분 이곳을 생가마을로 굳혀지고 있는 현실이다. 복원된 생가라 하지만 초가집규모가 가난하게 살았던 선비집안의 집이 아닌 넉넉한 생활이 추정되는 집의 규모이다. 어느 누구나 역사의 위인을 기릴 때 과장되는 내용과 생가, 고택 등 살았던 집을 복원할 때 당시 생활을 가정하여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아무튼 녹두장군 생가복원모습은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풍경이 돋보인다. 그리고 생가의 복원상태를 보면 유지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곳에 여러 번 왔지만 이번에는 개인 사비를 들여 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다는 나병수 선생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나선생은 녹두장군 생가 바로 옆에 개인조립식건물에 ‘전봉준 생활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며칠 전 필자가 있는 전주동학혁명기념관에 오시어 전장군 생가에 오시면 꼭 연락하시라며 자세히 설명을 하였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 동학혁명은 물론 천도교 이야기를 한 참 나눴다. 생활전시관에 들어가 보면, 마치 동학혁명과 녹두장군 만물자료실과 같은 분위기를 볼 수 있다. 전시실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는 되어 있지 않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이는 살아있는 전시관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선생은 천도교회 월보 진본 등 청일전쟁사료 진본책자를 여러 권 소장하고 있었다. 또한 여러 종류의 고서들도 사무실에 가득 차있었다. 나병수 선생은 자신을 소개할 때, 동학혁명에 미친 사람이라 할 정도로 정열적인 동학관련향토사학자로 보였다.

    필자는 전봉준장군 생가에서 오후 5시 반경에, 고창의 대표적 동학농민혁명 사적지‘무장기포지’로 향했다. 필자가 무장기포지에 도착하니, 해가 서산에 걸려 붉은노을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녁 해도 가물거리고 휴대폰 밧데리도 깜박거리며 나의 행동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러 번 와본 동학유적지지만 이번에도 사진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장기포지도 유지관리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 기념탑은 횃불모양의 특이한 조형물로서 방문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또한 고창지역 전체 동학혁명유적지 안내 표지판과 포고문 등 각종 시설물들이 동학농민혁명공원처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히 이곳에 동학군 훈련장소가 있다는 것에 현장학습 등 여러 좋은 조건들도 많다. 필자는 서산에 해가 완전 숨기 전 기행사진과 내용들을 담기에 바빴다.

    나는 오늘 고창지역 대표적인 동학농민혁명유적지 두 곳을 답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학농민혁명국가기념일 문제로 정읍과 고창 두 지방에서 과열경쟁에 의한 지역 간 감정대립의 현실이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는 현실의 안타까움이다. 사실 전국 동학혁명사적지 중에 중요하지 않는 곳에 어디 있으며, 국가기념일제정에 부족한 곳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국가기념일은 한 날짜에 국한되기에 정해진 그 날이 어느 지역과 관련 있는 날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인정한다. 정읍이야 오래전부터 전국 최고의 기념행사를 치러왔고 전국의 동학혁명시설물 중에 가장 많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양보하기 힘들 것이라는 추측이 간다. 고창도 정읍과 마찬가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의 경쟁은 하다라도 다른 지역을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동학혁명군 수십만 선열님 앞에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이번 기행준비와 마무리를 하면서, 동학혁명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반복하였다. 특히 오늘 전북 고창지역 순례를 하면서 고창에서 발행하는 책자들을 읽으며 아쉬움 점을 하나 지적한다. 다른 내용에 부족함이 없다는 전제하에, 현재 천도교에서 공식적으로 동학혁명기념일을 제정하여 기념식을 하는 백산(부안)기포인 3월 21일(음력) 백산대회를 거의 빼고 넘어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동학혁명역사에서 백산기포를 뺀다면 과연 이치에 맞는 역사이야기인가의 의문이 든다. 이상 개인적인 소감을 마무리하고, 이곳 무장기포사적지는 1894년 3월 20일(음력) 보국안민정신을 천명하는 포고문을 발표하였고, 다른 지역의 동학농민군들이 광범위하게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이상 고창지역 동학기행을 마치면서, 선운사마애여래좌상-무장현관아와 읍성-고창읍성-손화중도소-손화중피체지 등은 다음으로 미루고 길고도 짧은 15일간(순례전체연결기간1개월)의 동학기행을 일단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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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당촌마을, 전봉준장군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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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생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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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생가에 있는, 새야새야파랑새야의 민요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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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 생가 앞에서(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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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군 생가 바로 옆-정봉준 생활전시관 나병수관장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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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 생활전시관 내부 모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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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병수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동학-천도교 관련자료책자(천도교회월보등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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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탑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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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탑조형물 앞(동학농민혁명 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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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군 진격로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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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장군에 대한 줄인 생애 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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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포고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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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군 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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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기포지 기념공원 전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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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안내지도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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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탑을 배경으로, 석양의 노을모습

     

    5. 동학기행(특별기획)15일간의 순례를 마치면서,

    제가 지난 9월 29일부터~10월 29일까지 1개월 기간의 ‘특별기획-동학기행’의 순례를 시작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순례기간은 1,2,3차 합쳐 15일간 이었고, 기행전체기간은 정확히 1개월이었습니다. 기행준비와 순례 후 정리기간이 오늘 10월 31일이 되었습니다. 기념관에서 본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군요. 이제 곧 기념관 문을 닫고 가족과 함께 어디 해안이라도 가서 저녁식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길고도 짧은 1개월 동안 동학, 천도교인으로서 신앙과 실천에 더욱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순례를 다하지 못한 곳은 집필과정에서 연관된 사적지를 다녀오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는 사람

    나라는 사람은 그저 평범하다.
    아니 못난 사람이다.
    돈도 없고 학력도 부족한 못난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밝혀둔다.
    가능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지는
    말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위기나
    민족, 인류의 잘못된 방향에 있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들어도 한 번 부닥치는 것이다.
    나 같은 민초들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학, 천도교가 좋다.
    내 일생에 있어
    천도교인이 된 것은
    최고의 행운이다.
    왜냐면 나 같은 못난이도
    그 어떤 부자나
    그 어떤 학력자나
    그 어떤 권력자보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사람을 한울님처럼
    귀하게 여기며 섬기는
    그런 실천의 교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육신이 멸할 때까지
    천도동학을 할 것이다.
    하하하..,
    나라는 사람은 정말 행복하다.
    평범하다 못해
    지극히 못난 나는
    진짜 행복하다.

    포덕 154(2013)년 10월 31일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에서,
    송암 이윤영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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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unesh/몸과 마음과 영혼을 위한 명상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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