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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쓴 글을 내리라는 충고도 받았지만 간섭이 아닌 의견이기에 내친 김에 몇 마디 더 오래살고 싶어서 욕먹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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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임순화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097회   작성일Date 13-10-30 16:45

    본문

    나는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단기와 서기를 병용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 마다 단기 복원을 주장해왔다.

    그런 정신이었기에 잠시 맡아했던 여성회보에 단기를 병용 하였었지만 내가 그만두면서 여성회보에 단기도 사라진 걸로 알고 있다. 2011년 탑골공원 앞을 지나는데 국학원주체로 단기 병용 서명운동을 벌리고 있었다. 처음 서명만 해주고 몇 발작 가던 길을 가다가 다시 돌아서 서명하는 여성친구에게 서명용지를 받아 자발적으로 서명을 받아 전달해주었다.

    다행히 구청과 동사무소 경찰서등 관내에 안면이 넓은 관계로 40장을 받았으니 400명을 받아주었다.

    그 인연으로 아현동 단전호흡수련원 원장인 그녀와 함께 그해 추석 다음날 말로만 듣던 천안소재의 국학원 본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추석다음날이라 근무자가 아무도 없는 상태라 조용히 곳곳을 둘러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식당도매점도 휴점 상태라 피로와 허기로 며칠 몸살을 앓았지만 외부에서 一指 이승헌을 가리켜 비방도 많지만 국학원 전체를 꾸며놓은 규모와 하는 일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거기서 참으로 어이없고 자존심상하는 일을 당하였으니 들어가는 입구로부터 단군 할아버지의 동상이 서계시는 대강당 까지 가는 길 에는 세계 4대성인의 동상서부터 우리나라를 빛낸 많은 분들의 동상이 서있는데 유관순의 동상까지 있는데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이 없었다. 내가 잘 못 보았나 다시 그 길을 돌아도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은 없었다.

    그래서 동행한 아현동 수련원장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세운 동상들은 관련 단체에서 세우는 것이냐 국학원 자체에서 세운 것이냐 물어보니 자신은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 후 국학원 과 연이 깊어져 국학원주최의 단기복원 학술회의 때 “시” 를 낭송해달라는 요청등으로 지금은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매달 둘째 화요일에 열리는 상고역사 강의를 들으러 다니다 하루는 장 영주 대표와 나란히 걷게 되어 그때 왜? 우리나라 훌륭한 분들의 동상 속 에 손병희선생님의 동상이 없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대답이 그 이유는 천도교가 더 잘 알 것이 아니냐는 대답이다. 뜻밖의 대답이기도 했지만 천도교가 오늘날 너무나 사회적으로 열세이고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이 없으니 나는 반박할 말 을 잃고 아무 대꾸도 못했지만 두고두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자기들 돈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말을 하랴. 나 못나서 겪는 수모라 생각하면서도 그 한을 어찌 푸나 절치부심 잊지 않고 있던 중, 이제 그 일 (손병희 선생 동상 없음) 대해 반박할 말이 생각났다. 그 일은 천도교인인 나, 임순화 대 : 국학원의 개인감정이고 단기 복원과 국사교육 강화와 대통령 개천절 행사 참석은 민족적 거사이기에 올해도 600명의 서명을 받아주었다. 1000명이 목표였는데 더운 날씨에 무리를 하여 일사병으로 죽을 번하여 어지러워 더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한민족과 멕시코 인과의 관계에 대한 세미나 장에서 장영주 대표를 만났다. 만난 김에 서명운동의 결과에 대해 물으며, 1000명이 목표였는데 일사병으로 600 명밖에 서명을 못 받았다 고 하며 꼭 법안이 통과 되도록 하라고 말해주었다. 얼마 후 내 자리로 온 장표는 자기명함을 주고 내명함을 받아갔다.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 사회석으로 나온 장 대표는 여기 개인이 1000명의 서명이 목표였으나 병이 나서 600 명 밖 에 못 받았다. 는 분이 계시다며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시라 고 한다. 쑥스럽고 당황했으나 일어서니 모든 분 들이 장하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그때 느낀 것은 아하! 이래서 국학원이 일부 층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잘되는 구나! 였다. 조그만 일도 칭찬해주는 풍토, 내가 만나 본 국학원 회원들은 모두가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도로 장 대표와도 확실하게 인사를 터놓았으니 다음 만날 기회가 닿으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오늘날 천도교가 비록 열세여서 당신네 국학원에서도 우습게보아 유관순의 동상까지 세우며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은 안 세웠는데, 손병희 선생님이 ‘천도교 독립운동 했느냐’ ? 대한민국 독립운동했느냐 ? 국학원 마당에 동상이 없다하여 손병희 선생님의 애국업적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천도교 망신 이전에 국학원의 역사인식이 짧은 것을 광고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려 한다. 그 다음 일은 국학원이 알아서 할 일이고 오늘날 이렇게도 사회적 대우를 못 받고 있는 천도교 외부인이 볼 가 봐 창피한 천도교 게시판, 천도교 지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말 한다.

    우리천도교가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어느 분 이 천도교를 세상에 알리려 하지 말고, 천도교가 무슨 일을 하는 지를 알리려 힘쓰라고’ 했다고 나도 말하고 싶다. 수련만을 하라고 말 하지 말고 수련을 하여 무엇을 할 것 인가 ? 를 말하라고 봉황각 뒤뜰에 들어가 보면 여기도 쓰레기 저기도 쓰레기 죽은 나무 밤송이 가랑잎 폐가의 정원이 바로 여긴가 싶다. 불 때 는 아궁이를 살려 죽은 나무 가랑잎 밤송이 가지 친 나무들 태워버리면 연료비 덜들고 방 뜨겁고 밥맛 좋고 환경 깨끗하고 재거름 나오고 一擧五得이련만, 성사님께서 483명의 수련 전사를 길러낸 것은 독립투쟁을 위한 전투원을 길러낸 것이다. 그분들은 목숨을 바쳐 독립투쟁의 선봉에 스셨다. 오늘 우리는 수련을 하며 자기가 간 수도원의 환경미화에라도 앞장서야 되지 않을까? 쥐꼬리 만 한 관리인 월급 받고 아무리 봉사요 희생이라 해도 그 넓은 정원을 가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고맙게도 며칠 전 고향숙동덕이 자기 언니와 함께 쓰레기를 주워내기는 했지만 헌 책상 걸상

    20 여 년 전 동민회에 근무 할 때 수련을 갔다가 너무 많은 쓰레기를 보고 쓰레기 더미에 앉아서 수련만 하면 지상천국 되고 신선되느냐 성지가 아니라 쓰레기장이라고 하여 동민회원들끼리 청소를 시작해보니 너무 너무 쓰레기가 많아서 결국 한광도 종무원장님께 공문을 올려 재단 총부직원 동원하여 대청소를 했을 때 쓰레기를 세트럭이나 실어냈다. 이번에도 집수리를 하고나면 대청소를 한번 해야만 할 것 같다.

    임순화 네가 뭔 데 말이 많으냐? 할 겠지만, 이것이 민주의 소리요 동학인의 기질이기에

    수도원으로 야외시일을 갈 때 작업복을 입고가 시일 후 대청소를 하는 것도 쫓기는 중에도 나무심고 새끼 꼬으시던, 주문을 하시며 집신을 삼으신 스승님들의 행적을 본받는 참 제자의 도리가 아닐까? 통일의 주체세력이 되는 연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봉황각 드나들며 든 생각, 외부인은 우리게시판에 못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외부망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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