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수운 최제우 초상화 이야기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수운 최제우 초상화 이야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264회   작성일Date 13-07-03 18:27

    본문


    수운 최제우 초상화 이야기

     

    1. 시작하며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요즘 며칠사이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제 밤부터 장맛비가 세차게 땅을 치며 갈증에 지친 뭇 생명들을 깨우려는 듯합니다. 밤새 빗소리에 잠을 설치다 늦잠을 청한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안사람의 웃는 모습이 마치 한울님처럼 보였답니다.

    출근시간이 늦을 것 같아 서둘러 도시락을 챙기고 주차장으로 걷는 아파트 꽃밭 길은 언제나 반복으로 느끼게 하는 하루 최고의 시작입니다. 아, 새 하늘! 새 땅!! 새로운 나를 느끼게 하며, 이렇게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깨달은 것만큼 생각한다는 도(道)의 경지가 오늘날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연유해서, 동학-천도교의 스승님에 대한 무한의 존경심이 오는 장맛비처럼, 샘솟는 물처럼 내 자신을 억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동학, 천도교 제1세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이하, '대신사'로 칭함)에 대한 그리움의 일환으로 ‘수운 최제우 초상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 대신사 초상화의 전해지는 이야기

    대신사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전해지는 초상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세교주 해월 최시형, 3세교조 의암 손병희, 4세대도주 춘암 박인호 스승님들은 전해오는 사진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사진이 없는  대신사는 초상화만이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신사 초상화에 대한 기록이나 구전의 이야기는, 1893년 일본신문(일일조일신문)에 게재한 초상화가 있습니다. 누가 그린 작품인지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은 1909년 천도교에서 분파한, 시천교의 대례사로 있던 구암 김연국께서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위촉하여 그린 초상화가 있습니다.

    다음은, 1933년 천도교중앙종리원에서 ‘천도교창건사’를 간행할 때, 고희동 화백에게 위촉하여 그린 초상화가 있습니다. 천도교에서 위촉하여 그린 대신사초상화는, 일본신문에 게재된 초상화와 시천교에서 위촉한 초상화를 참고하였답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대신사 초상화는, 일본 신문의 초상화와 대신사 수양딸 주씨(朱氏), 대신사 양사위 정울산의 증언을 참고하여 그린 천도교, 시천교 두 점의 존영(초상화)과 의암 손병희 성사께서 소장하고 계셨던, 현재 용담정에 모셔져 있는 대신사 초상화의 존영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3. 대신사 존영(초상화)의 모습

     

                    (가) 1893년, 일본 일일조일신문에 게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신사 초상화

     

    255ABD5051D39DC11502AF_xJt4b7ZgB

                                                                              일본신문 최제우 초상화 

     

     

     

                    (나) 1909년 시천교에서,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위촉하여 그린 초상화

     

    2655574751D39F42291858_Bczt2IBSlN

     


    (다)
     1933년 천도교에서, 고희동 화백에게 위촉하여 그린 초상화

     

    277D604951D39F64320C57_c7TYgFjsTCPno

     

     

                                 (라) 현재 천도교 교당, 용담성지 등에 모신 대신사 존영

     

    2632AE4D51D3A33B3030BD_32mH9lULe7kmZn

     

     

     

    0365DD4451D3A60C2271E5_xGXcTKuz

     

     

    4. 대신사 존영, 초상화에 대한 설명

    * 위에 게재한 대신사 존영인 초상화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가)의 초상화는, 1893년과 1894년 설이 있습니다. 일본 동경일일신문에 게재했던 대신사의 존영을, 일본 특파원이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을 신문에 게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조일신문의 초상화는 누구 그렸는지 어떤 경로와 참고로 그렸는지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상화의 원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두 번째 존영인(나) 대신사 초상화는,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천도교에서 분파한 시천교의 구암 김연국 대례사의 부탁으로 대신사 수양딸 주씨(朱氏), 대신사 양사위 정울산의 증언, 일본조일신문 초상화를 참고하여, 1909년에 그린 초상화입니다. 당시 김은호 화백은, 근현대 동양화단 채색화의 대가로서 어용화사로 명성을 얻어, 어전휘호회에 참여한 경력 등으로 당시 세도가와 최제우 최시형 김연국의 전신좌상으로 그렸답니다. 당시 구암 김연국께서 거금의 답례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재 김은호 화백이 그린 초상화 원본은 잘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 세 번째 존영인(다) 대신사 초상화는, 천도교중앙종리원에서 ‘천도교창건사’를 간행할 때, 일본동경미술학교 서양학과 출신으로서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화백에게 위촉하여 그린 초상화입니다. 일본조일신문의 초상화, 시천교에서 위촉한 김은호 화백의 초상화를 참고로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또한 시천교에서 위촉한 초상화와 다른 차별화된 대신사 초상화를 천도교에서 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고희동화백의 대신사 초상화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 네 번째 존영(라)인 대신사 두 초상화는 짐작컨대 천도교에서 위촉한 고희동 화백의 초상화를 각색하고 일본조일신문 대신사 초상화를 참고하여 그린 존영으로 생각됩니다. 네 번째 존영 중 첫 번째 존영은, 현재 천도교중앙총부 및 지방교구 사무실, 교당에 대부분 모신 존영으로서, 1977년경 천도교중앙총부의 의결로, 여러존영으로 전해지는 대신사 초상화의 통일성을 이루고자 고희동 화백의 대신사 초상화를 각색하여 그린 존영이라 합니다. 네 번째 존영 중 두 번째 존영은 1997년경 봉황각 의창수도원 천정에서 발견된 초상화로서, 크게 확대복사하여, 현재 동학, 천도교 제 1성지인 용담정에 모셔져있습니다.

     

    5. 대신사 존영에 대한 증언과 초상화 보존유무

    *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현재 대신사 존영인 초상화 원본은 유독 시천교에서 위촉하여 그린 이당 김은호 회백의 작품만이 진본을 그대로 소장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어제 7월 2일,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시는 윤석산 천도교상주선도사의 소개로, 김은호 화백의 대신사 초상화를 소장하고 계시는, 백준기 선생과 자세한 전화통화를 하였습니다.

    이당선생의 대신사 초상화를 소장하게 된 동기를 묻는 저에게, 지인으로부터 전해 받아 소장하게 되었다는 말씀만 되풀이 하더군요. 그리고 5~6년 전, 현대미술관에서 약 6개월 전시를 하였답니다. 대신사-해월신사-구암장의 초상화와 수운, 해월 참형도(순교그림) 다섯 개의 초상화 및 그림을 가지고 계신답니다.

    최제우 최시형 김연국의 초상화는 이당선생의 작품으로 감정평가를 받은 원본으로 확정되었고, 최제우 최시형 참형도의 그림은 동원화백이 그린 작품으로, 감정평가가 보류된 상태라고 합니다. 이당선생작품 대신사, 해월신사, 구암장의 초상화와 수운 해월 참형도를, 국립박물관에 의뢰하여 기증형식으로 매매하려다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하였답니다.

    * 천도교에서 위촉한 고희동 화백의 작품인 대신사 초상화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천도교총부에서 오랫동안 유물자료를 관리해 오신 이창번 선도사의 증언에 의하면, 천도교의 모든 자료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춘곡선생의 대신사 초상화를 발견할 수 없었답니다. 표영삼 선생의 생존시에도 춘곡 고희동화백의 대신사 초상화 원본을 찾으려 백방의 노력을 해봤지만 발견치 못했답니다. 천도교의 유물자료관리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상을 보게 되어 정말 아쉬운 심정 금할 수 없습니다.

    * 현재 용담정에 모셔져 있는 대신사 존영의 초상화는, 정암 주선원선배의 증언에 의하면 1997년경 당시 연원회 의장이었던 고문해 의장께서 당시 교화관장인 주선원 관장에게 우이동 봉황각 의창수도원 천정을 뜯어내면 그 속에 의암 손병희 성사께서 소장하던 유물들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므로, 정리하여 전시회를 갖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답니다. (봉황각 의창수도원에서 발견된 대신사 초상화 사진 1점이 표영삼선도사께서 전해주어, 현재 동학혁명기념관 수련방에 모셔져 있습니다. 크기는 가로 30, 세로 40센치 정도의 나무액자속에 있습니다.)

    당시 교령의 재가를 얻어 천정에서 발견된 유물50 여점은, 의암성사와 주옥경사모님의 소장유물들로서, 그중에서, 가로 한자 세로 두자쯤 되는 대신사 채색초상화 족자가 발견되었답니다. 당시 상주선도사로 계셨던 표영삼 선도사께서, 일본조일신문에  게재된 대신사 초상화와 비슷하지만, 수염의 모양등 일부 각색된 모양같다고 했답니다. 봉황각 수도원에서  발견된 대신사 초상화는 누가 그렸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원본은 천도교자료실등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정암 주선원 감사원장은 증언합니다.   

     

    6. 마무리 하며

    현재 본 글을 마무리하며 시간을 살펴보니, 출근하여 지금까지 약 5시간 자료를 검토하고, 그동안 메모해두었던 글들을 참고하여 이제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창밖에는 장마철을 증험이라도 하듯이 비가 내리다 그치고 다시 내리곤 하는군요.

    제가 30년 가까이 동학, 천도교의 신앙을 해오면서 천도교인들의 편견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삼암 표영삼 선생님이 이곳 기념관 관장으로 계실 때, 시천교나 상제교 등 천도교분파 종단이 보유했던 중요자료를 전시했다가, 다음에 황급히 철거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았습니다. 이유인즉 천도교인들이 천도교 외, 자료를 전시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천도교 외 시천교 상제교의 중심인물들이 동학의 교단명칭시기에 동학의 중요지도자들이었고, 그 분들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이 동학과 동학혁명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귀중한 유물자료들입니다. 그러한 자료들에 대한 편견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타 종단인 원불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익산 원불교박물관에는 천도교의 예복과 함께 그려진 궁을장의 모습을 천도교의 불사약이라 소개하여 전시하였습니다. 아마 천도교에서 이런 타 종단의 유물을 전시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상만 해도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무극대도의 이념을 표방하는 천도교에서 이제 이런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천도교 교단차원에서 철저한 준비에 의한 고희동화백의 대신사님 초상화 원본 찾기와 김은호화백의 대신사님 초상화 원본보유에 대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역사를 보면, 문화재약탈에 의한 국가 간의 전쟁도 불사한 역사들이 존재하고, 인도의 석가모니불의 초상화 원본이 지금도 영국대영박물관에 있어, 수많은 불교신자들과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 많이 부족한 저의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동학, 천도교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본 글을 마치겠습니다. 저도 본 글을 쓰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포덕 154년(2013) 7월 3일
    전주한옥마을,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송암 심고.


    -참고문헌 및 증언-

    * 표영삼 선생의, 동학혁명기념관 대신사 초상화 설명 글
    * 심국보 선생의, 수운 최제우의 초상화(동학이야기)
    * 윤석산 교수의, 수운 대신사 초상화 증언
    * 이창번 선도사의, 수운 대신사 초상화 이야기 증언
    * 주선원 감사원장의, 수운 대신사 존영에 대한 이야기 증언
    * 대신사 초상화 사진-천도교자료책자, 동학으로 여는 세상



     

     

    대황하/김영동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