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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일보칼럼) 동학혁명의 세계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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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윤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576회   작성일Date 12-03-2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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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의 세계사적 의미]

    전북일보 오피니언 새벽메아리(2012. 3. 21)                                        

                                              이윤영/동학혁명기념관장

    1994년 동학혁명1백주년을 기념하여 이곳 전주 한옥마을에 동학혁명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이 국내외 관광단지로 유명세를 떨치면서 동학혁명기념관을 찾는 국민들과 외국인 숫자가 하루 수백 명을 웃돌고 관광시즌과 휴가철에는 하루 수천여명이 찾고 있어 시설과 전시물들을 조금씩 보충확대하고 있다.

    동학혁명관련 자료는 물론, 동학의 교명을 천도교로 크게 선포한 동학 3대 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3.1 운동 역사 자료와 손병희 선생 사위였던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운동과 일제강점기 천도교출판 개벽, 어린이, 농민지와 같은 희귀자료들도 특별전시 중에 있다.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의 기원]

    동학은 1860년 4월 5일 수운 최제우 대신사에 의해 경주 용담정에서 창도되었다. 이날을 동학종단인 천도교에서는 수운선생 득도기념일인 천일기념일(天日記念日)을 최대 경축일로 하고 있다. 수운선생은 득도(得道)후 제일먼저 실천한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엄격했던 신분차별의 계급사회에서 노비해방은 물론 여자노비 두 명중 한 분은 자신의 친아들과 결혼시켰고 한 분은 자신의 양녀인 딸로 맞이하였다. 이는 실로 조선왕조라는 양반사회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이러한 수운선생의 결단에는 자신이 득도한 사상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하느님(한울님)이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마음과 몸에 모셔져있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자각에 의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이 봉건사회변혁에 무섭게 전개된다.

    또한 모든 사람을 하느님 섬기듯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사대부와 양반 그리고 상민과 천민의 불평등을 혁파하고 인권과 평등에 있어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당시 천자(天子)로 통했던 왕인 군주보다 백성이 더욱 존엄하다는 파천황적(破天荒)인 개벽의 세상을 열었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동학혁명의 사상적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반봉건 반외세, 동학혁명정신의 계승]

    1894년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은 약 20~30만 명의 희생으로 좌절된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는 신원(伸寃)운동에서 출발한 동학혁명은 고부봉기에서 본격 시작하여 무장기포로, 백산대회에서 황토현 대승으로 이어지며 장성황룡전투에서 승리한 동학혁명군은 전주성점령이라는 일대 쾌거를 이룬다.

    이후 민비의 청군(중국)지원요청이 있었고 일본군 상륙이라는 청일전생의 발단이 시작되자 동학군과 관군은 전주에서 화약(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최초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집강소설치에 의한 폐정개혁안이 실현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의 침략이 노골화 되자 다시 제 2차 기포를 삼례에서 시작하여 논산에서 남 북접 연합군을 형성한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에 의한 동학군 전국기포명령을 받은 손병희통령은 전봉준대장과 의형제를 맺고 승승장구 하다 공주와 한양으로 향하는 한 많은 고개 우금티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전세는 역전된다. 결국 전주와 원평으로 후퇴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은 일본군과 관군에게 좌절된다.

    반봉건 반외세 척양척왜 제폭구민의 동학혁명은 엄청난 피해로 풍비박산이 난 듯 했으나 동학이 천도교로 거듭나면서 기미3.1운동에서 또 다시 제 2의 동학혁명은 전개되었고 상해임시정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세계 혁명사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 불멸의 혁명과 전쟁의 역사였다.

    그 계승적 차원에서 독립운동은 물론 4.19혁명과 5.18민중항쟁, 6.10민주항쟁 등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분단된 남북통일을 달성해야만 동학혁명은 성공한 혁명이 될 것이고 희생된 수십만 동학선열님들께 후손된 자로서 부끄럼이 없을 것이다.
                                       

                                                                                   필자 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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