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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3차찾아가는인내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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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종학대학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827회   작성일Date 13-12-04 10:31

    본문


    내용 : 찾아가는 인내천

    일시: 포덕154년(2013) 12월 7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장소: 수운회관 10층 1003호



    불교의 생명사상

    - 생명평화무늬와 생명평화경 -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장)

       

    1. 생명평화무늬 이야기

    우리는 항상 기본적으로 지금 여기 나와 사회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진 존재인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보편적 물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 물음을 안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내 삶(존재)의 실상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불교에서는 화두라고 합니다. 화두란 우리 삶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궁극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 내 삶의 실상에 대한 올바른 파악과 이해가 왜 그렇게 절실하고 중요한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삶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내 삶의 올바른 방향과 길을 확립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원효는 “삶의 방향과 길을 제대로 알고 살아가는 것을 쌀을 쪄서 밥을 짓는 것처럼 지혜로운 길이고, 삶의 방향과 길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삶의 올바른 방향과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가는 만큼 삶의 문제가 풀리고 우리의 바람이 실현되지만, 그릇된 삶의 방향과 길을 따라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문제가 꼬이고 우리의 바람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에 삶의 방향과 길을 올바르게 확립하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생의 화두를 잘 붙잡고 살아야만 어떤 삶의 살아도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자기와성과 사회완성을 실현하는 삶을 살게 되며 또한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인생의 화두를 놓고 살면 아무리 심산유곡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또 다른 모순과 혼란에 빠져 헤매게 되는 헛수고의 인생, 허무하고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당장은 잘 느낄 수 없지만 삶의 방향과 길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그 내용과 결과로 볼 때 실로 두렵고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둘러서 지금 바로 붙잡고 가야 할 인생의 화두인 지금 여기 내 삶의 실상에 대해 따져보고 또 따져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화두인 삶의 실상에 대한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물음들을 범주화시켜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물음입니다.

    국가 ․ 종교 ․ 이념 ․ 정의 ․ 불의 ․ 선함 ․ 악함 따위의 인위적 관념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본래 청정한 지금 여기 나는, 그리고 사회와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진 존재인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두 번째 물음입니다.

    국가 ․ 종교 ․ 이념 ․ 정의 ․ 불의 ․ 선함 ․ 악함 따위의 인위적 관념이 만들어진 이후의 지금 여기 나는, 그리고 사회와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진 존재인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세 번째 물음입니다.

    인위적 관념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나, 사회, 세계의 실상과 인위적 관념이 만들어진 이후의 나, 사회, 세계의 실상이 서로 관계 맺어진 상태의 지금 여기 나는, 그리고 사회와 세계는 그 실상이 어떻게 이루어진 존재인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위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것이 총체적 관계의 진리(중중무진연기법)인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인드라망(인도의 베다신화에 나오는 비와 천둥의 신 인드라의 그물.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 전개되는 연기적 존재를 의미함) 세계관과 철학이고 그것을 형상화시킨 것이 생명평화무늬입니다.

    먼저 무늬의 제일 아래쪽이 지금 여기 나(인간)입니다. 오른쪽이 네 발 달린 짐승이고, 왼쪽이 날짐승과 물짐승입니다. 사람 머리 위쪽이 나무 ․ 숲 ․ 식물이고, 붉은 원형은 해, 하얀 원형은 달입니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관념에 물들기 이전의 본래 청정한 무위자연의 우주 삼라만상과 인위적 관념에 물든 이후의 인간 사회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의 총체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음을 단순화시켜 표현했습니다.

    지금 지구촌에는 꿀벌들이 사라져간다고 합니다. 꿀을 따러 나간 벌들이 전자파로 인해 길을 잃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전문가들은 지구촌에서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면 4년 안에 대재앙이 인류사회에 덮쳐온다고 합니다. 벌이 사라지면 식물들의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그로 인하여 사과, 포도, 쌀 등의 먹을거리가 생산될 수 없습니다. 먹을거리가 없는 인류의 삶이란 고통과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맹목적으로 더 많이 더 편리하게를 쫓는 사람들의 어리석고 그릇된 가치의식과 삶의 방식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인하여 꿀벌이 사라지고 꿀벌이 사람짐으로써 인류의 운명도 위험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드러난 현상으로만 보면 꿀벌이 나와 전혀 무관해보이지만 그 실상은 꿀벌 그 자체가 바로 내 생명의 모체입니다. 꿀벌 없는 내 생명의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꿀벌과 내 생명의 관계는 그야말로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꿀벌과 내 생명의 관계처럼 모든 상대들과 내 생명이 불일불이적 관계로 이루어진 모습의 그 실상을 시각화한 것이 생명평화무늬입니다.

    생명평화무늬는 생명평화경의 내용인 무위의 자연과 인위의 인간, 인위의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이웃과 이웃들이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적 관계로 존재하는 지금 여기 본래 나의 모습, 사회의 모습, 세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전통적 설명 방식을 빌린다면 존재의 실상이 본래 시공(時空), 자타(自他), 성속(聖俗), 유위무위(有爲無爲)가 불일불이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래 스스로 존재하는 하느님, 본래부처, 무위자연으로 개념화되고 있는 존재의 실상도, 인위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국가 ․ 종교 ․ 이념 ․ 정의 ․ 불의 ․ 선함 ․ 악함 등 인간세상의 실상도 상호의존성과 변화성의 진리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 ․ 소멸 ․ 순환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본래부터 분리 독립해서 스스로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본래부터 분리 독립해서 홀로 영원불변한 존재는 있지 않습니다. 인위와 무위, 시간과 공간, 내면과 외면,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 등 모두가 상호의존성과 변화성의 진리에 의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의지하고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지금 여기 나요 사회요 세계의 실상입니다. 마치 그물의 그물코처럼 존재하고 바다의 파도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 실상을 사실대로 통찰하면 시작도 끝도 없이 본래부터 인위이면서 무위, 무위이면서 인위, 시간이면서 공간, 공간이면서 시간, 따로이면서 함께, 함께이면서 따로, 홀로이면서 전체, 전체이면서 홀로, 내면이면서 외면, 외면이면서 내면, 정신이면서 물질, 물질이면서 정신, 나이면서 너, 너이면서 나, 인간이면서 자연, 자연이면서 인간인 불일불이의 공동운명체의 동반자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이 살고 싶은 평화는 어떤 것인가. 생명의 실상대로 낱낱 존재들이 제자리에 온전하게 존재하고 동시에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 상태가 내 생명, 네 생명, 우리의 생명이 살고 싶고 실현하고 싶은 평화로움입니다. 따라서 불일불이의 동반자이므로 너와 나, 이웃과 이웃, 인간과 자연이 존재의 법칙인 모심과 섬김의 질서에 따로 공존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의 삶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본래 스스로 존재하는 상호의존성과 변화성의 보편적 진리를 인격화시켜 아버지하느님으로 개념화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진리의 하느님 뜻대로 살면 그 삶이 자유롭다.” 또는 “너의 이웃이 너의 아버지하느님이므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그리고 부처님은 그 보편적 진리를 논리적으로 ‘법의 실상’, ‘존재의 실상’, ‘생명의 실상’이라고 했으며, 인격화시켜 ‘청정법신불’, ‘본래부처’, ‘본래면목’이라고 개념화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실지견(如實知見) 즉 그물의 그물코처럼 존재하고 있는 생명의 실상을 사실대로 보고 이해하라. 여실지견행(如實知見行) 즉 실상대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라(동체대비행). 그렇게 하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 삶이 자유롭다.”라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조건없는 사랑의 삶, 지혜와 자비의 삶,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삶, 무애자재(無碍自在)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생명평화무늬는 지금 여기 나, 사회, 세계의 실상과 생명의 염원인 평화로운 삶, 평화로운 사회, 즉 자리이타의 길인 자기완성, 사회완성의 길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명평화무늬의 세계관과 철학에 근거한 구체적 실천수행으로 생명평화백대서원 절명상을 만들었습니다.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명상은 지금 여기 현장에서 자리이타 즉 자기완성, 사회완성을 실현하기 위한 생명평화수행론입니다. 잘 듣고 음미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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