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기념관, 은행나무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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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기념관, 은행나무 전설
(동학혁명기념관 스토리텔링을 시작하며)
(한울님)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전주한옥마을-동학혁명기념관 바로 앞에 있는 은행나무가 (아주)유명합니다. 조선조 건국 전, 고려 우왕9년(서기 1383년) 월당 최담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정사를 창건하고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유래의 내용처럼 500년에서 600년이 넘은 고목나무입니다. 그런데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많은 은행이 열려 나이를 무색하게 하면서, 여덟 살 된 자식도 잘 기르고 있습니다. 이곳 도로몀도 '은행나무 길'이라 합니다.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을 세우기 전, 본 장소는 천도교전주교구였습니다.
전주교구는 19년 전(기념관 완공-1985년)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 건립 약 2년 전에 여기서 약간 떨어진 기린로변, 현 병무청사거리 근처였습니다. 교구 어르신들이 교구를 옮기면서 단 하나 이곳 은행나무를 보고 결정한 기억이 납니다. 본 은행나무는 도로 방향에서 약간 떨어져 보면, 마치 거대한 봉황이 기념관을 향해 날개를 편 모습으로 걸어가는 형상이라 합니다. 언제부터 자식이 없는 부부가 이곳 은행나무아래에서 기원을 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심호흡을 다섯 번 하고 잠시 머무르면 정기를 받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소문이 나 그 신기함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있습니다.
제가 지난 11월 5일 기념관을 은행나무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7일이 지난 오늘 12일, 그 화려하던 노란은행단풍모습은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세월의 야속함을 말없이 보여주더군요. 어느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분의 말씀에 의하면, 본 기념관이 전주와 한옥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혈 자리는 물론 은행나무 전설을 껴안고 있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 날 것이라는 말씀을 하더군요. 기념관이 생기기 전에는 은행나무가 약간 멀리 있는 경기전(태조 이성계 초상화인 어진이 모셔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기념관이 세워지면서 그 시야를 막고 기념관이 마치 은행나무 집처럼 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어느 하루, 기념관 전시실 방문객 5천 명 기록)
동학기념관, 은행나무의 새로운 이야기
누구는 거대한 봉황새 나무라 이르고, 누구는 늙지 않는 고목이라 이르고, 누구는 아기를 낳은 정기나무라 말한다. 오-육백 년이나 된 이곳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집이 없어 쓸쓸히 서있다가,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이 자신의 보금자리인 것처럼 걸어 들어가는 모양새다 하여, 이곳 주인 천도교인 중에 큰 인물이 나온다는 설도 있고 이곳에서 동학, 천도교가 세계적인 종단으로 거듭난다는 설도 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팔년 전(동학혁명기념관건립 완공 10년 만에) 육백년 나무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어 앞으로 2년 뒤 열 살을 채우는 2015년의 해에 뜻하지 않은 큰 경사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이야기도 나돈다. 이제,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전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들 한다.
포덕 154(2013)년 11월 12일
동학혁명기념관장 송암심고.
11월 5일 기념관 앞, 은행나무 모습
(7일전의 가을은행나무)
11월 12일 기념관 앞, 은행나무 모습
(7일만의 자연변화)
기념관 꽃밭, 감나무 등 단풍모습
11월 기념관 1층, 2층 특강 및 관람모습(금토일 많은 분들이 관람합니다.)
국악명상/
새벽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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