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남의 혼이여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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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중심시가지를 향해 걷는 중에 곤지산이라 불리는 곳 한쪽에 추모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이 곤지산은 조신시대 죄인을 효수하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던 순교지이기도 하였다는데, 특히나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이 참형당
한 곳이라고 한다.
[김개남장군 사진 펌]
김개남 장군은 1894년 관료들의 수탈을 견디지 못한 민심을 등에 업고 농민군을 꾸려, 파
죽지세로 전라도 남원에서 금산, 무주, 진안, 용담, 장수를 비롯하여 영남 서부지역까지 그
세를 떨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12월 1일 강화병방 황헌주에게 체포되어 전주로 이송되었는
데, 전라관찰사 이도재는 김개남의 명성에 겁을 먹고 전주에서 서울로 압송하는데 위험을
느껴 12월 3일 임의로 이곳 곤지산에서 처형했다고 한다.(위키트리 등 인용) 그리고 그 머
리는 후에 일본인이 기념품으로 가져갔고, 몸은 관군들이 비밀리에 어느 야산에 묻었다고
한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을 빼돌려 유가족들에게마저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이명박 정부처
럼, 100여 년 전에도 망자의 시신이 가져올 파급력에 왕은 지레 겁을 먹었든 듯하다. 하여
간 김개남 장군의 시신은 아직까지 '한쪽'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 역사의 크나큰 아이러니가 하나 끼어 있다. 김개남 장군은 전봉준 장군, 손
화중 장군과 함께 동학혁명 3대 거두로 불린다. 더군다나 사료에 의하면 김개남 장군의 전
적이 결코 전봉준 장군의 그것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뒤지지 않는다. 동학농민군을 소집해서
첫 출전한 것도 김개남이요. 전주성을 무너트린 것도 김개남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전봉준
장군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김개남 장군이라는 이름이 왠지 생소하다.
특히나 전봉준 장군은 생가가 복원되어 자손들, 후세인들에게 기려지면서 널리 회자되고 있
지만, 김개남 장군 생가 터는 고구마 밭이 되어 있다. 그나마 그 한쪽에 비석은 세워져 있
다고 하지만 말이다. 특히나 '녹두장군 전봉준 탄생 기념행사'는 (고창)군수가 참여할 만큼,
지자체가 나서서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김개남 장군 생가 터는 후손들이 자체적
으로 관리하고 있을 만큼 홀대를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이는 아마 김개남 장군의 '급
진성'을 한민족의 정서가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인 듯하다.
전봉준 장군은 왕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다만 관료들의 횡포와 3정 문란을 시정해줄 것
을 요구했다. 반면, 김개남 장군은 조선정부를 부정했다고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는 유럽
의 혁명처럼 왕정 자체를 부정하고, '1인 1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향
한 발걸음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통치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
다. 이것이 우리민족이 역사상 보인 혁명의 한계임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뭐 그래도 좋다.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양반 중심의 사회 농민 혁명으로 뒤집어 버리면, 없는 자들이 좀 형편
이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여간 아마 그렇다보니 왕에 대한 충성이 인간된 도리임을 설법하는 유교적 이념이 가득한
우리 민족에게 (지금까지도) 전봉준 장군은 그나마 좀 후대인들에게도 인정받았지만, 김개
남 장군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는 한편으로 그 당시까
지 한민족의 정서가 '왕권 - 왕정을 부정하는 급진적 혁명'을 추구 할 만큼 '주체적이지 않
았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 100년 전에는 그랬다 치자. 그런데 지금 이 불법-부정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하여 대통
령이 되어 혹세무민을 하고 있는 인물에게 왜 우리 국민은 반기를 들지 못하는 것일까? 오
히려 국민의 반절 이상이 전대미문의 불법 선거를 대하고도 그 현실을 못 본 체 하며, 오히
려 그 부정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100년 전보다 후퇴한 정
신. 민주주의의 개념이란 찾아볼 수 없는 민심.
김개남 장군은 1차 무장봉기 때, 수천여명의 농민군을 거느리고 전주성을 함락한 후 초토사
홍계훈과 타협 동학도를 박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 받은 후에 관군에게 전주성을 내주고 동
학농민군을 해산시켰다고 한다. 이는 권력에 대한 아무런 집착이 없는 순수한 애민의 마음
이 보일 수 있는 결단이다. 그러나 청나라 일본의 군대가 국내에 들어오자 다시 의병을 일
으켜 싸우다가 결국 관군에게 잡혀서 이곳 곤지산에서 참수당한 것이다.
이 시대 우리는 당리당략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애민의 마음이 아닌, 목숨을 버릴 각오로
국민을 사랑할 수 있는 투사를 원한다.
김개남장군의 혼이여 깨어나 이 땅에 당신이 100년 전에 꿈꾸던 세상을 세워 달라. 차라리
당신을 왕으로 둔 백성으로 사는 것이 말뿐이 민주인 세상에서 독재자 통치를 받는 것보다
행복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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