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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신년 기고 ‘갑년에 한마디’(폄)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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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시인 신년 기고 ‘갑년에 한마디’(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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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720회   작성일Date 14-01-19 08:08

    본문


       김지하 시인 신년 기고 ‘갑년에 한마디’(폄)

                                                                         / 기사등록 일시 [2014-01-07 09:22:42]   

                                                                                         / 최종수정 일시 [2014-01-07 12:19:39

    알림; 【서울=뉴시스】에서, 김지하(73) 시인이 갑오년을 맞아 신년 메시지 '갑년에 한마디'를 뉴시스에 보내온 글의 전문이다. 라고 설명한 것을, 옮긴이 김 용천이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프레임을 새로 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동덕 여러분들의 깊은 신앙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고 한울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심고를 드립니다.

                                                                    / 포덕 155(2014)년 1월 19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오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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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김지하(73) 시인이 갑오년을 맞아 신년 메시지 ‘갑년에 한마디’를 뉴시스에 보내왔다. 김 시인은 1970년대에 우리 사회의 권력자인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의 부정과 비리를 풍자한 담시 ‘오적’을 비롯한 저항시들을 발표해 필화를 겪었고, 민청학련 사건 주동자로 검거돼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해 문단은 물론 전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김 시인은 이번 신년 메시지에서도 역시 박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 시인은 요즘 강원 원주시 회촌 마을에 자리한 박경리(김 시인의 장모) 문화관에서 강원도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이름을 딴 ‘아우라지 미학’ 연구에 심취해 있다.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의 기고 전문을 수정 없이 싣는다. (편집자 주)1. 영국 경험철학자 ‘레터디 엔드리(Leterdie Andly)'가 2008년 아프리카의 서남부 오즈마퀴에서 한 발언이다.

    ‘경험은 인류에게 목하 지금 경험 중인 세계 대공황 극복의 유일한 방향을 가르쳐 줄 지혜의 온실이다. 무엇이 그것인가?’ 말을 좁혀서 세계 대공황이 무엇인가? ‘문명대변동’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여기 한 대답이 있다.

    20년전 독일의 영지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ph Steiner)'는 왈,

    ‘인류문명의 대 변동기에는 반드시 작고 가난한, 한 지혜로운 민족이 나타나 온 인류의 나아갈 길을 자기의 역사와 경험과 문화, 즉 <성배(聖杯)>를 통해 제시한다. 로마 후반기에 그것은 이스라엘이었다. 그때보다 더 크고 더 우주적인 대전환을 맞은 오늘, 그 민족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가 극동에 와 있다는 것밖에는 알 수 없다.’ 그의 제자인 일본인 ‘다까하시 이와오(高橋巖)’는 말한다. ‘그 민족은 한민족이다. 그리고 그 성배는 바로 동학(東學)이다.’그렇다면 묻자. 동학(東學)이 무엇인가? 올해 갑오년(甲午年)은 저 유명한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째 되는 <만갑(滿甲)갑오년>이다. 그리고 이미 미국 지구환경학회장 ‘레스터·브라운 (Lester Brown)'이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선후천융합대개벽(先後天融合大開闢)>시기다.그렇다면 다시 묻자. 동학이 무엇인가? 나는 이 대답이 누군가에 의해 혹시라도 하나의 ‘예언’으로 착각되지 않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한울이라는 말은 세상에 대한 여성과 아기들의 애틋한 모심이요, 여성과 아기들에 대한 세상의 극진한 모심이다.’ 모심이란 오늘 개똥 취급받는 여성과 아무 값어치 없는 아기들을 우뚝 <한님>처럼 받들고 높이는 대전환이다. 그래서 <인내천>인 것이다.실천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미친 소리라고 비웃고 말겠는가?

    하기야 민주주의의 최고 수령인 대통령까지도 여성이라 하여 일 년 내내 <개똥같은 년>으로 구박하고, 그만두라고 지랄 발광하는 것이 진보요 애국이 되는 세상이다. <불통(不通)>이 무엇을 뜻하느냐 묻는 내게 <개똥!>이라고 대답하는 어느 날 광화문의 한 젊은이 얼굴에서, 동시에 바로 그 개똥이 기독교의 <아멘(AMEN)>이요 불교의 <남무(南舞)>요 영남학의 <공경(敬)>으로 표상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아니던가? 그러고도 여성과 아기를 모실 수 있겠는가? 지금 인터넷의 댓글에서는 여성과 아기들은 하나의 노리개요 롤리타이니 마땅히 가지고 놀아야 된다고 설쳐대는 누리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정상일까? 그렇다. 그야말로 정상이다.왜? 이글을 쓰는 나도 역시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또 묻자. 나는 정상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적어도 열두 번 정신병원을 다녀왔고 마지막으로 백두산 의학의 도인 백살 넘은 노인의 완전한 ‘오극치료(五極治療 天·地·人·水·月의 융합치료)까지 끝낸 몸이니까. 도리어 내가 묻겠다. 그 누리꾼들을 성범죄자로 체포하겠다는 경찰이 도리어 정상인가?엄마, 아빠와 선생님을 발로 차고 입만 벌리면 욕을 노래처럼 읊조리는 아이들을 도리어 욕을 하고 정신병자나 못 돼먹은 놈으로 지지밟는 자칭 어른들이 과연 정상인가? 안다. 지금 내 말이 비정상으로 들리고 있음을 똑똑히 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그렇다. 올해가 갑오년이다. ‘선후천융합대개벽’을 극복(?)하는 바로 그 최적의 시절 ‘묘연(妙衍)’의 때이기 때문이다. ‘묘연’이 무엇인가?‘천부경(天符經)’의 핵심개념이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여성(女)과 아기들(少)의 생명과 생활의 미묘한 중심가치(洐)의 출현>이다. 어려운가? 이렇게 하자! 우선 이리가고 저리가고를 그만두고 한곳에 ‘움푹’ 주저 앉아보자. 그때 무엇이 가장 중요해지는가? ‘지기(地氣)’다. <땅기운>을 ‘지기’라 부른다. 왜 땅기운이 중요해지는가? 움푹 주저앉은 곳이 땅이기 때문이다. 시멘트거나 아스팔트거나 나무토막이던 돌덩어리든 다 땅이니 ‘지기’가 있는 법이다. 아무도 자기가 앉은 땅을 ‘지기’라고 생각하는 자가 없는 시절이다. 그래서 여성과 아기들을 하나의 노리개요 롤리타로 알고 가지고 놀자고 떠드는 것이다. 또 애비, 에미, 선생님을 발로 차고 덤비고 패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여자라고 해서 <개똥같은 년>이라 부르고 <아멘>이던 <남무>던 <공경>이던 손모아 비는 사람들이 모두 다 <불통(不通)>을 <개똥>이라고 흔히 멸시한다. 나는 이것을 <정상>이라 불렀다. 왜? 이미 이 땅은 자칭 평화주의자가 경찰을 도둑놈이라 부르며 덤비고 사람 죽이는 총 이야기를 농담이라 우기며 제 고모부를 기관총으로 수십 발을 난사해 자취도 없이 짖 뭉개버리는 괴이한 동국이 되었다. 이 땅에서 그것은 당연히 정상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기괴한 땅을 조국으로 하여 태어난 사람이니 정상 중의 정상이겠다. 아닌가? 그러니 움푹 땅에 앉아 지기를 통해 정신을 차려봐야겠다는 말이다. 틀렸는가? 어느 곳엔 아파트가 백이 층짜리까지 솟았다. 한없이 한없이 높이 올라가고자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아파트 7층 이상이면 지기가 약해 나이 들수록 허리가 구부러진다. 아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 어김없는 사실을 아는가? 사실을 이라고 말해야 사실이 사실임을 알게 되는가? 나는 올해 갑오년을 120년째 되는 ‘만갑 개벽혁명’이라고 했다. 1898년 5월, 지금의 서울시내 단성사 뒤편 옛 좌포청에서 동학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선생이 처형된다. 처형 당시 한마디는 이것이다. ‘올해는 갑년이가 갑옷을 입는 날이다.’ 처형자가 묻는다. ‘갑년이가 누구냐?’ ‘모든 여자들이다.’ 내가 묻는다

    갑년(甲年)이가 누구냐? 해월선생이 체포 전 숨어있던 원주 호저면 고산리 원진녀씨 댁에서 선생 수발들던 여성으로 건너편 갑오리(지금의 광격리)가 집인 갑년이는 해월선생과 함께 송경인 등 포졸 40명에게 붙들려 섬강을 통해 뗏목으로 서울로 옮겨진 여성이다. 그 과정에 뗏목 위에서 포졸들에게 두 차례나 겁간을 당한 뒤 미쳐서 좌포청에 갇힌 뒤 사흘 만에 방면되어 거리를 떠돌다 길거리에서 죽는다. 이 여자 이야기다. 이 여자가 갑옷을 입는다면? 전쟁을 선포한다는 말이다. 여자가 남자와 세상을 향해서?

    그렇다. 1898년 봄 영국 황실에 선전포고한 중국의 서태후만이 여자가 아닐 것이다. 1898년 여름, 폴란드 귀족 아르놀트. 퀴리에에게 덤벼 상처를 낸 서녀(庶女) 아르리히만이 여자가 아닐 것이다. 1898년 가을, 노무노리, 히사키를 죽인 덴미야(齒)만이 여자가 아닐 것이다.그러면 누가 그 여자 갑년인가? 동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동학의 120년 전 만갑의 갑오년이 바로 올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갑오년 선후천대개벽의 <피피올리(PIPIOLLI, 징조꽃)>가 해월 선생의 최후 진술 속 <갑년>이다. 솔직히 말하자. 나도 남자다. 나까지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남자들 앞에 두물 머리 앞 잣나무 섬 옆에서 강간당해 미쳐버린 그 갑년이가 갑옷을 입고 남자 세상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해가, 바로 올해 2014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민주주의를 앞세워 한 여자 대통령을 <개똥같은 년>이라고 1년 내내 떠들어왔던 <자칭 남성들>이 하잘 것 없는, ‘네그리 하트가 그리고 멸시하는 <세올리니아(Seollinia. 아직 덜 채워진 부르죠아에로의 욕망)>를 구호판으로 치켜세우고 지랄 발광하는 귀족노조와 사기꾼들과 깡통빨갱이들 대가리 위에 그 갑년이가 지금 불쑥 일어서고 있다. 그렇다. 이것이 갑오년이다. 알겠는가?2 내가 누구에게든 함부로 스스럼없이 하는 말이 있다. ‘밥 먹었나?’ 바로 이 한마디가 동학이요 갑오혁명이요 대 개벽이다. 그래서 나는 동학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는 모시는가?’ 그 다음은 ‘애기는?’ 대답은 대개 다 ‘그렇다’이지만 실질적 대답은 오히려 대답이 아니라 욕설이다. ‘개똥같은 소리 다 듣겠네!’ 하기야 어떤 자칭 학자는 가라사대, ‘내가 한국에서 동학을 제일 잘 아는데....’ 틀렸다. 동학은 ‘아는 게 아니라 닦는 것’이다. 내가 가끔 기어오르는 산 <감악산>은 그야말로 ‘흉악한 시커먼 산’이다. 그 산 꼭대기에 괴상망측한 바위 덩어리 둘이 버티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그 두 바위산이 산꼭대기에 한 절이 있다. 이름이 <백련사(白蓮寺)>다. ‘흰 연꽃 절.’ 검은 산위의 하얀 연꽃. 의상(義湘)스님이 지었다고 한다. 그 산아랫 쪽에 한 호수가 있다. 이름이 <명암호(明暗湖)>다. ‘흰 그늘’아닌가! 그 물과 산 사이 한 비탈에는 한 골짜기가 있고 그 이름이 <요붓골>이다. 요부처럼 번화하고 소란스러운 숲길인데 거기 한 줄기 참으로 정갈한 개울물이 흐른다. 물가엔 놀라울 만큼 아리따운 꽃들이 핀다. 전체적 느낌은 <순결한 요부>다. 그런데 이곳이 아주 먼 옛날부터 백두산 이래의 전통 조선의 술로 소문난 <한방 명의촌>이 세 군데나 있다. 또 주변엔 산마다 희귀한 약초들이 번성한다. 왜? 이것이 동학의 <아니다. 그렇다(不然其然)요 <독약불이(毒藥不二)>이니 바로 그 옆 ‘박달재’의 천부경(天符經)원리인 오극치교(천.지.인.수.월(天地人水月)의 집약인 <원만(圓滿)>이다. 원만이 무엇이냐? 바로 ‘궁궁(弓弓)’이다. 그것이 ‘혼돈적 질서(混沌的秩序)’이니 바로 ‘카오스코스(Chaosmos)'요 <혼원지일기(混元之一氣)>. 동학의 핵심이다. 그래서 ‘독약불이’다. 독초 옆에 약초가 있는 원리이니 형상은 <弓 S>이다. 정감록(鄭鑑錄)에 <이익은 궁궁에 있다(利在弓弓)>고 한 바로 그것이다. 아하! 여기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의 시를 한 구절 읽어보자. ‘남진원만 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 / ‘남쪽 별이 원만을 얻으면 북쪽 물길을 바꾼다.’이해되는가? 칠언절구에서 앞과 뒤에 남과 북이 있으면 가운데는 바로 중(中)이 된다. 그러니 원만은 곧 중, 즉 중조선이 것이다. 별은 개벽혁명의 동력이니 남쪽에서 그것이 작동하되 중조선에서 그것이 원만을 얻으면 북쪽의 물길을 개벽적으로 바꾼다는 뜻이 된다. 그대로 되었다. 남은 것은 ‘원만’이다. 그 원만이 파업이요 폭동이요 촛불 흉내 낸 횃불이요 그 밑에서의 질펀한 술판인가? 문제를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자.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술판이 그 해결책인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북한이 원하는 <남남갈등>촉발 중인가? 그래서 술판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동학은 개벽이요 개벽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 동령이 샛별처럼 떠올라 문제 제기가 되었다고 하자. 그 해결은 어찌할 것인가? 폭동으로, 남남갈등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을 이끌어 들이려는 것이 아니면, (정말 아닌가? 정말인가?) 그렇다면 동학의 저 갑오년의 위대한 정신, 수운 대선생의 지혜를 생각해보라!

    술부터 끊고! 원만이다! 어떻게 했는가?

    우선, <삼불입(三不入)>에 <마당포덕>이다. 먼저 반불입(班不入)이니 <양반은 빠지라>는 것인데 ‘안토니오 네그리’ 문자로 하면 ‘스치올라(Scciolla. 부동수입 위주의 부정 노조 간부)’와 다음은 부불입(富不入)이니 ‘스키니치일리오(Skinicciillio. 노동 안 하고 짱구돌리기로 노동조직 하는 꾼들)’는 주둥이 벌리지 말라! 배 안고픈 놈은 얼씬거리지도 말라! 마지막으로 사불입(士不入)이니 ‘인텔레치오’(Intereccio. 지식인 나부랭이들은 끼어들지 말라! 깡통빨갱이들은 노·사 문제에 할 말 없다)는 네 일이나 가서 열심히 해라! 날카롭다. 그러나 이 위에서 참 원만이 비로소 성립된다. <마당포덕(布德)>이다. 원하는 자는 양반이든 부자든 선비든 간에 바로 마당에 물 떠놓고 주문을 외우게 하고 부적을 불에 태워 먹게 하였다. 그리해서 남도 일대에 폐정개혁이 이루어지고 그 석 달 동안 참으로 아름답고 슬기로운 세상, 잃어버린 ‘신시(神市)’가 찾아왔으니 해월은 이를 <비단깔린 장바닥>이라 불렀으며 강릉산은 그 3개월의 평화와 원만을 <조화정부>의 기틀이라 불렀다. 그리로 갈 수 있겠는가? 술 먹고 악쓰고 기자들 두들겨 패고 도둑놈 소리 연발하며 총 들겠다고 공갈하는 짓은 아예 조선민족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수입빨갱이 짓이다. 주의하라! 그 석 달간의 원만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즘말로 하면 스마트폰이었든가? 간단하다. <아짐씨>였다. 아주머니, 어머니, 엄마란 말이다. 어디서든 문제가 생기면 먼저 <아짐씨>에세 묻고 상의하고 가르침을 받았다.3. 해월선생의 중요한 가르침 세 마디가 이 무렵 남접, 북접에서 항상 기억되었다. ‘아낙과 아기들을 때리지 말라! 아낙과 아기들은 후천시대의 타고난 도인(道人)이다. 아낙과 아기들을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 또 있다. ‘여성은 수 천 년 짓밟혀 왔다. 그래서 성질이 뾰쪽한 편성(偏性)을 타고난다. 그러니 남정네들은 여성의 그 뾰족한데 부딪히면 우선 고개를 숙이고 큰절, 큰절, 큰절을 거듭하라! 큰절하는 동안에 수 천 년 남정네들의 그 큰 죄의식을 씻게 된다.’ 또 있다. ‘나는 날 저물고 길이 어두울 때는 반드시 아낙들이나 아기들에게 길을 묻는다. 이 어두운 시절엔 그들만이 한울의 밝은 길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자 대통령을 마치 무슨 큰 저주나 죄를 지닌 것처럼 지난 1년 동안 욕질을, 욕질을 하며 <네 애비처럼 총질을 당해야 알겠느냐?> <너 대통령 면허증을 빼앗겨봐야 알겠느냐?> 대유행이다. 이래가지고 입으로 감히 어떻게 ‘코리아’를 발음하고 ‘성배(聖杯)’를 말하고 ‘말 춤’을 말하며 ‘K-팝’ 소리를 할 것인가? 개벽 근처에도 못가는 것은 뻔할 뻔짜다. ‘그러면 어째? 나는 경제가 제일이야!’ 어느 한 소리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냐고?그렇다. 경제 중요하다. 그러면 종로 한복판 ‘통일시장’이 바로 지금의 대박을 타고 있는 것은 아느냐? 각 지방도시의 죽어있던 오일장(五日場)이 모조리 되살아나는 것은 아느냐? 더욱이 강원도 산골 정선장이 오일장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핵심 미학인 ‘흰 그늘’ 즉 ‘시김새’의 원형인 정선아리랑을 울리며 울리며 수많은 희귀 약초들과 함께 무수 무수한 프랙 카드들과 함께 한번에 10만에서 16만까지 손님을 치러내는 것을 알기나 하느냐? 이미 조선일보에 수석논설위원이 특집칼럼을 냈는데도 모르느냐?

    카알 폴라니(Karl Polanyi)가 따로 없다. 스탠필드나 요사노 가오루, 侍天豊雄이 따로 없다. 미국 뉴욕의 금융사태 이후 반년 동안의 전 세계운동, 이른바 ‘1% 대 99%’의 대결 과정에서다. 아는가? 프랑스 작은 시골의 쬐끄만 신시들, ‘신(神)의 우물’이란 이름의 <따뜻한 시장>과 함께 이 나라 도처에 <희비리(喜悲籬)>란 이름의 옛 오일장, 그 애틋하고, 풍성한 <쾌. 불쾌가 얽크러지는 미학적 삶의 시장>이 일어서기 시작했음을 알기나 하는가?몰라?

    FTA가 전 세계 차원의 근원적 호혜시장, 즉 신시의 <환귀본처(還歸本處)> 즉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음의 시작이라는 것도 몰라? 자본과 이윤이동의 ‘부표효과방향(浮標効果方向)’모르면서 왜 아는 체야? 거기다 술판이야? 똥판이야? 왜? 왜? 왜? 북한 웬 젊은 놈 똥구멍 따라가는 구린내 맡기 간첩짓 아니라면 세상에 대해 한마디 단언할 자신이나 있는 거야? 나는 세상이 다 아는 욕쟁이다. 그러나 나이도 들고 욕이 그렇게 예쁘지만은 않으니까 삼가고 있었는데 내 입에서 욕을 꺼집어낸 것은 바로 내가 지금 지적하는 너희들(!)이다. 너희들(!)이 누구지? 내가 왜 박근혜 대통령 지지를 결단한 줄 아느냐? 바로 너희들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뒤 국고금 해먹은 너희들 더러운 것들! 그만하자! 그러고도 여자와 아이들 욕을 하고 때리고 지랄하고 앉았다. 저희들이 바로 개벽시절에 바로 그 개벽대상이 되는 짓을 아주 일삼아서 하고 있으면서 그런다!

    동학은 이제 끝났는가? 안 끝났다. 이젠 아무 쓸모도 없는 낡아빠진 종교관 세계관인가? 아니다. 아니라면 그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수운 선생은 동학의 개벽사상 요청의 까닭을 단 한마디로 밝힌 적이 있다. ‘모두 저 살 궁리만 한다(各自存心)’ 그렇다. 모두 다 그렇다. 일단은 그것이 정상이다. 이미 이 글의 서두에서 나는 세 번의 <정상>이야기를 했다.여자와 아기를 하나의 노리개요 롤리타로 데리고 노는 것이 <정상>이라고!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리고 나는 정신적으로 <정상>이니까 <정상>이라고! 또 저 여성 대통령을 <불통><개똥><암살><면허증><술판><사기><깡통소리> 내는 것은 모두 다 <정상>이다. 그리고 그것이<아멘>으로, <남무>로, <공경>으로 들어올려져 <거짓 거룩>으로 둔갑하는 것도 모두 <정상>이다. 왜? 지금이 언제인가? 역(易) 전문연구자 송재국(宋在國)은 말한다. ‘지금은 선천(先天), 후천(後天)이 융합하는 대변혁이 요구되는 때’ 그러니 이미 100년 전 해월선생과 빈삼(彬衫)화상이 남학, 정역, 천부경 수련자와 다 함께, 그리고 더욱이 젊은 여성과 함께 합의에 도달한‘묘연 화엄개벽 모심(侍妙衍華嚴開闢)’의 길 뿐이라고. 그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심>이다. 또한 <모심>은 우리와 인류경제의 살 길이기도 하다. 현대 신시사회에 대한 <축적순환의 장기 지속>이라는 아날학파의 가 곧 모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심의 대상이자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여성과 아기들이다. 동학은 진화론이다. 그러나 자유의 진화론의 <의식-복잡화>에서는 같으나 마지막 세 번째 테마인 <종의 자율화(種自律化)>에서는 반대다. 자율이 먼저이고 내면적 융합이 그 다음에 온다. 이것이 동학주문의 <모심(侍)>해설 마지막에 <한 세상 사람이 모두 다 각자 각자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제 스스로 깨달아 실천한다(一世之人 各知不種)란 말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화엄개벽>이다.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이 곧 <화엄(華嚴)>인 것이다. 이 <화엄>을 주자(朱子)는 맹자(孟子)의 <옮기되 옮길 수 없음(種不種)>으로 바꾸어 설명했고 수운은 이 개념을 <화엄개벽>적 본질로 옮겼다. <화엄 개벽>은 그대로 현대의 자유의 진화론 자체다. 이것은 ‘린 마굴리스’의 명언인 <내부공생(內部共生)> 그대로 인 것이다. 바로 이렇다. 이 화엄개벽의 그대로의 실현은 무엇이고 누구일까? 갑오혁명 실패 직후 해월선생이 경기도 이천군 실성면 수산 1리(앵산동)에서 낮 11시 동서양 일체 제사 의 근본혁명, 이제까지 벽을 향해 지내는 <향벽설위(向壁設位)>를 내가 한울님, 부처님, 조상님이 실제로 살아계시는 나 자신을 향해 제사지내는 <향아설위(向我設位)>로 변혁하는 것이 그 개벽의 시작이고, 이때 곁에서 유일하게 수발을 들다 그 이튿날 새벽<앵산>에서 빈삼화상 등 8인과 화엄개벽을 위한 수왕회 결성 과정에서 그 대표자인 <여성 임금(水王)>으로 추대되고 그 뒤 1년 여, 양평장터에서 강간, 살해당한 28세 여성 <이수인(李水仁)>의 실질적 수행 양식이었던 <무승당 해탈(無勝幢解脫)>이 바로 <향아설위>와 <모심>의 화엄적 확산인 것이다. 바로 이수인이라는 여성은 그로써 <원만(圓滿)> 그 자체이고 수왕회와 여성 아기들은 <궁궁원만(弓弓圓滿>의 <모심체(體)>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닦고 나아가야 할 동학의 현대 초현대적인 <우주 생명학> 첫 번 수행이자 실천테마인 것이다. <우주생명학>은 먼저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의 지명인 <여량(餘糧)>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미학이어야 한다. 그 미학은 종교, 철학, 도덕, 교육, 윤리 따위가 아닌, <가르침>과 <훈육>이 아닌, <아름답게> 느끼고, <여성과 아이들(玄牝, 玄覽)>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끼고 옆에 스스로 전달하고 합의하고 깨달아 가는 우주생명의 깊은, 그리고 새로운, 동서양 공히 공통하는 <비밀>을 억압없이, 그래서 노리개 장난감이니 롤리타 따위 왜곡된 개념이 필요없는, 참으로 스스럼 없는 그러한 깨달음, 아아! 바로 그것이 <모심>이고 <향아설위>이고 드디어 이른바 <자행동녀(慈行童女)>의 <무승당 해탈>이요 <묘덕원만신, 마야부인, 구파여인> <자재주동자(自在主童子)>와 여러 동녀들, 선재(善財)동자와 오백동자, 오백동녀의 <화엄개벽길>이 될 것이다.

    올해 甲午년, 그리고 원주 광격리의 가여운 여인 갑년이가 입기 시작하는 갑옷이 다름 아닌, 바로 그 미학의 갑옷, 참으로 아름다운 우주 생명학이 되기를 빌고 또 빈다. 지난해 계사(癸巳)년 뱀띠는 나의 띠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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