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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균. 쇠」란 무엇인가?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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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014회   작성일Date 14-03-0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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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균. 쇠」란 무엇인가? (6 -6)

    유라시아는 동서축 대륙이라고 했는데 사실 유라시아는 남북으로도 적어도 북아메리카 뺨칠 만큼은 길다. 유라시아의 동서에 걸쳐 '온대' 지역이 펼쳐져 있는 것이 농업에 좋은 환경이라고 하지만 그 지역 상당 부분은 사막이나 험한 산맥으로, 농경지로는 쓸 수 없다. 다이아몬드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과 중국에서 농업과 가축화가 먼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현재로선 불확실한 주장일 뿐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뭣보다 유럽 중심주의 때문에 고고학 발굴이 엄청나게 많이 이뤄진 곳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농업이 10000년 또는 11000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에선 5000년이나 6000년 밖에 안 되었을 것이라 믿었다. 한 마디로 지역별로 발굴 관심이 편중되어 온 까닭에 상황이 매우 불확실한 데도 다이아몬드는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벼와 옥수수는 밀에 비해 단백질 함유량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하는데 그 차이는 작은 편이고 수분 함유량 문제일 뿐이다. 감자, 얌 등이 단백질이 적어 문명 발달이 늦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지역 주민들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필요한 영양소를 거의 얻었고 다른 작물도 많이 먹고 가축도 잡아먹어 추가 단백질을 섭취했다. 남북 축인 곳에선 확산이 힘들었고, 동서로 펼쳐진 대륙에서 일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동서로 펼쳐진 곳은 또 중간중간에 높은 산맥과 사막으로 서로 갈라진 곳이 대부분이었고, 남북 축인 곳에선 작물화를 4번이나 새로 했어야 했다고 하는데 어차피 작물화는 작물을 그 지역 환경에 맞게 개량하는 과정이다. 물론 기후상 한계는 있지만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정도는 아니다. 한 보기로 밀은 적도에서 아주 조금만 북쪽이 있는 에티오피아에서도 잘만 길렀다.

    다이아몬드는 반투 어를 종족들은 남아프리카 희망봉 지역까진 내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거기까지 가면 기후가 달라서 심던 작물을 기르기가 힘들었고, 작물화할 생물도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남아프리카 식민주의자들이 해 온 주장, 그 지역 식민화를 하려 꾸며낸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니까 반투 족은 거기 없었고, 백인 식민자가 먼저 왔으니 반투 족은 원주민이 아니고 땅에 대한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반투 족이 더 남쪽에 있는 목축을 하는 코이 족을 몰아내지 않은 것을 이상하다고 하는데 사실 몰아내야 할 까닭도 없었고 사실 반투족은 코이 족과 서로 오가며 어울리는 사이였다. 코이 족이 농경을 안 받아들인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그리스인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전제정치의 도구에 지나지 않던 알파벳에 모음자 전부를 보태 경험적 탐구와 창의적 글쓰기의 도구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틀린 이야기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줄곧 사람은 모두 창의적이고 합리적이라 하지 않았던가? 경험적 탐구는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것도 아니고 다른 문명에서도 유럽에서만큼 높은 수준으로 발달시켰다. 그러니까 다이아몬드는 이런 거 다 무시하고 암암리에 말로는 문화상대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유럽문화가 더 우수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럼 유럽이 오늘날 세계를 재패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블로트를 비롯해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역사가들이 거의 한결같이 내놓는 의견은 유럽이 아메리카에 닿기에 더 좋은 위치에 있었고, 그래서 병균에 대한 저항력에서건 철기 무기가 없어서였건 군사적으론 열등했던 아메리카를 정복해서 원주민의 피땀과 죽음을 대가로 금은을 수탈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미국이 달러 찍듯 세계무역에서 쇼미더 머니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쌓인 힘을 바탕으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여러 다른 지역 경제를 군사 정복으로 무너뜨리며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왜 유럽만 탐험정신이 뛰어나 해양 활동에 나섰냐는 물음에도 사실 다른 문명과 문화들도 해양 활동과 육로 활동을 했지만 유럽과 똑같은 방향으로 나설 까닭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정화 이후로도 수많은 중국인과 동남아인들이 정부 규제 같은 거 무시하고 해상 활동을 했다.

    더욱 근본적으로 돌아가, 문화를 서열 짓는 것부터가 문화 상대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도구적 유용함, 물질적 편안함'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자 하는 목적을 더 쉽고 간편하게 확실히 (그리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더 '우월하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러한 '물질적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 연구한 가치만큼은 분명 있다고 여긴다. 저 더 나은 도구를 왜 우리는 못 만들었을까? 라는 '(물질적)발전을 한 고민'을 과연 '직선형 발전관에 물든'이라고 일축해도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문명이 시작했는데 시작 지점에 천연자원이 없으면 발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기술적 필요성이라 생각하는 것이 정말 본질적으로 필요하고 우월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관 상당수는 서구문명의 정복으로 생긴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Machines as the measure of men(인간의 척도가 된 기계)나 The Myth of the Machin: Technics and Human development(기계의 신화: 기술과 인류발전)이란 책에서는 기술발전과 인류발전을 동일시하는 태도가 절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라고 사례를 들어가며 주장한 바 있다. 기술은 분명 잣대지만 그것이 문명 전체를 재는 절대 잣대가 아닌 잣대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하고자 하는 목적을 더 잘 하는 도구가 좋다는 건 옳은 말일 것이다. 실제로 구석기시대의 생활을 분석한 결과 18 ~ 19세기의 노동자들이 오히려 구석기시대 수렵민들보다 빈곤하게 살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기계 문명 하의 세계가 과연 과거의 세계보다 실질적으로 더 부유해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해준다.

    더군다나 더 발달된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언제나 상향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농경사회를 수렵사회보다 '발전됐다'고 하긴 하지만, 농경사회에는 수렵사회보다 더 계급체제가 확실시 되었고, 빈부격차가 심화되었으며, 남자들의 노동량은 늘었으며, 여자들은 더 많이 출산해야했고, 인구가 밀집되어 전염병 발생이 늘어났으며, 집단 간의 충돌이 더 큰 피해를 가져오는 양상, 국가 간 전쟁으로 바뀌었으며, 식단에서 단백질식량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끝없이 많은 문제점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좁은 지역으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고, 잉여 생산 분을 저장할 수 있게 했고, 이로 인해 예술과 기술 분야에 엘리트 전문 인력을 부양할 능력이 생겼으며, 이는 수렵채집을 하는 무리보다 도구적 향상을 이뤄낼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 이는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와 유사한 점이 있다. 진보와는 다르고, 절대적인 선, 혹은 우월이 될 수 없지만 분명 어떤 환경과 문제에 더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또한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하는 것 이상의 어떤 목적을 정하게 하는 문화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마푸체 원주민과 에스파냐령 칠레가 맞서고 있던 시절, 산티아고에 '대사'로 파견되었던 마푸체들은 그런 '발달한 물질문명'사이에서 살면서도 자기 마을로 돌아갈 생각만 했고, 돌아가서도 '왜 우린 저런 거 못 만들까'하고 그렇게 고민했다는 증거도 없다. 우리 입장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한 기준이 다른 문화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자의적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이아몬드의 태도는 결국 발달이라는 잣대를 다르게 사는 방식들을 그 뒤에 줄 세워 순위를 매긴 것일 뿐일 수 있다. 적어도 18세기 이후론 유럽이 주도해 온 기계 문명에 놓고서. 이는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를 진보가 채워나가길 기다리는 빈 공간으로 보고 누구는 더 앞서고 누구는 더 뒤서지만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그 똑같은 방향이란 유럽이 나아간 방향을 뜻한다. 다이아몬드와 뉴기니인 친구의 대화는 이미 유럽중심주의 유일무이한 직선형 발전관에 물든 두 사람 사이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4 비판론에 대한 재 비판.

    이러한 비판론의 대부분은 지엽적이라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유의미한 비판도 있지만 총, 균, 쇠의 서술 특성상 매우 넓은 범위로 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지엽적으로 비판하면 책 자체를 서술 할 수가 없는 정도다. 이러한 비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책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유라시아의 동서축과 아메리카의 남북축 문제에서는 비판측부터 논지를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는데,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주로 언급한 지역은 위도 20~40도의 지역이다. 대륙 동부와 서부의 기후 차이 때문에 대륙 서부는 좀 더 고위도에서, 동부는 좀 더 저위도에 분포하긴 하지만, 여기에 굳이 인도나 동남아시아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애초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집중한 지역은 유럽-북아프리카-서아시아-인더스-중국을 잇는 선이다. 또한 인도의 역사를 보면 생각보다 고립된 정황이 드러난다. 물론 교역은 활발했지만 문화적, 정치적으로 말이다. 동남아시아는 아쉽게도 역사적인 발달단계가 매우 낮았다. 가장 발달했다는 베트남마저도 중국 문명권 표준정도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을 볼 때에 밀로 대표되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작물이 효과적으로 퍼지는 정황은 매우 잘 나타난다. 특히 옥수수에 비교하면 말이다. 또한 이것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부터 서술한 것이다. 옥수수가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결국 재배에 성공했지만 작물이 해당 지역의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서 퍼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냐는 식으로 말이다. 즉 남북의 이동만으로 비판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 전파속도가 비판하는 방향에서 중요한 것이고,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스텝-사막을 넘어가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으나 일단 중국에 도착한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전파될 수 있었다.

    또한 에티오피아의 비유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지역이 다르다. 에티오피아는 고산지대고, 당연히 그 위도에 비해서 기온이 낮다. 그리고 제레드 다이아몬드부터 서술할 부분의 아프리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라고 명시를 해서 설명했다. 사하라 이북 아프리카는 유라시아 문명권과 더 연관이 깊다는 설명으로 말이다. 그리고 에티오피아는 일반적으로 사하라 이북 아프리카로 분류되는 지역이다. 문화권이나 환경에서 말이다. 실제로 이러한 지역구분의 문제는 유럽중심주의 비판에서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자주 행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작물과 단백질에 대한 부분에서 분명 중남미 문명은 한계를 보였다. 확실하지 않은 식인설을 재쳐두더라도 유라시아 문명권에서 별로 먹지 않는 벌레까지 사실상 주식으로 먹던 것이 아메리카, 특히 중미 문명이었다. 비록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식인설이 부족한 것은 많아도, 최소한 중미 문명은 유라시아와 다른 방식의 단백질 섭취가 필요했던 정황은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충식만이 근거가 아닌 수렵의 의존도 등에서도 충분히 드러나는 문제이다.

    반투인의 지적도 별 의미가 없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농업의 문제로 주로 지적을 했고, 줄루족 등이 현재의 남아공까지 남하를 했으나 농경민이 아닌 목축민으로 남하를 했다는 점에서 그 시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지 않다는 점에서 크게 중요한 지적이 되는지 의문이다. 물론 거리상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타 지역에 비해 반투족의 남아프리카 확산은 상당히 더딘 편이었다. 전파속도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데, 전파의 여부로 비판을 하면 비판논지가 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식민주의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알파벳의 언급은 총, 균, 쇠에서 오버한 면이 있지만, 그 반론도 부족하다. 오히려 그 반론은 과거에 유행했던 유럽중심주의 비판을 맹목적으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문자가 지배층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지만, 그 남은 기록이나 문자의 사용 현황은 그리스보다 낮게 나타난다. 시대가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으나, 문젠 동시대 페르시아-이집트 등과 비교해도 그리스의 문자 사용량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기원전 8세기 이후 중동의 기록은 그리스의 기록이 아니면 서술 자체가 거의 힘든 실정이다. 심지어 페르시아까지도!

    교역의 문제 또한 의미가 없는 것이, 잉카의 길이 있고 중미에서 도시 간 교류가 있었다고 하나 바퀴가 없는 상황에서 교류의 정도는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중미 문명에서는 바퀴가 장난감 이외에 확실한 흔적이 없는 상황이고, 바퀴가 있었다고 한들, 확인조차도 힘든 보급도(?)로는 교역의 촉진효과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러한 방식의 비판은 자본주의 맹아론의 삽질과 거의 일치한다. 어떤 문물이나 사상, 제도의 존재만으로는 다른 문명권과 동일한 단계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보급도이다. 근데 그 문제에서 중남미 문명권은 분명 유라시아 문명권보다 뒤쳐져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제레드 다이아몬드부터 언급을 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이다.

    애초에 유럽중심주의 비판부터가 수십년전 서구에 유행하던 사조를 뒤늦게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유럽을 깍아 내렸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물론 유럽중심주의 비판은 필요하나 그것이 지나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니얼 퍼거슨을 들 수 있는데, 비난을 많이 받는 학자이긴 하지만, 그의 연구가 그 악명(?)만큼 막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비판을 받을까봐 조심해서 서술하는 티가 날 정도이다.

    아메리카 식민지로 인한 유럽 자본주의 발달설이나, 억압론 등은 유럽의 발달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수 십 년 전 그 서구사학계에서 유행을 하다가 지금 다시 비판을 받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설득력의 정도가 그리 높다고 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이론 특성상 허구의 주류사학계를 전제에 놓고 비판하는 재야사학적인 태도가 너무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서구 사학계에서 이미 유럽중심주의 비판론은 사실상 주류의 위치까지 갔었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정화의 남해원정의 경우 이미 지속성과 경제효과의 문제로 반론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중국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고 할 수 없다. 단지 한 시도였을 뿐이다. 중국 문명권이 당시 유럽에 뒤쳐지지 않았고, 시선에 따라서 더 앞섰다고 볼 수 있는 사례일 뿐이다. 그런 식이면 규모는 훨신 작지만 바이킹의 그린란드, 아메리카 식민지도 크게 강조되어야 하는데, 바이킹의 활동 정도에서 언급하는 내용일 뿐이지, 유럽의 확산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고 지나가는 정도이다.

    문화상대주의 문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사실상 종말됨에 따라서 지나친 상대주의에 대한 회의가 강한 것이 현실이다. 문화의 상대성이 기본 원칙이라고 하나 식인 등도 문화상대성에 놓을 수가 없고, 문명발달론이 비판은 많다지만 문명의 발달이 없었다고 하면 더욱 곤란하고, 이러한 발달로 인해 문명의 차이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중심주의 비판에서 교묘하게 써먹는 이슈이다. 중세시대 유럽문명을 서술할 때에는 문명간의 우월론, 르네상스 이후 유럽문명권을 서술할 때에는 문명간의 우월이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총, 균, 쇠가 문화상대주의나 유럽중심주의 운운할 정도로 막나가는 서술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던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거시적인 시선에서 서술한 쪽에 가까운 것이 총, 균, 쇠이다.

    식민주의 강조는 무시해도 될 말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경력이나 총, 균, 쇠의 서술이나 식민주의하고는 매우 거리가 멀다. 굳이 식민주의로 포함을 한다면 극단적으로 확대한 해석의 식민주의 정도? 이정도 책을 식민주의로 비판한다는 것이 더 문제다. 단 그 책의 특성상 미괄적인 부분에서 지적할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인간의 삶의 질이나 기타 문제도 헛다리짚기에 가까운 것이. 그럼 그렇게 빈곤한 산업시대 유럽 문명이 어떻게 전 세계를 정복했냐? 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 아메리카 빨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아쉽게도 아메리카 이전에도 국토와 국민 수에 대비한 유럽 국가들의 국력은 매우 강한 편이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 초기 식민지를 거의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선원이나 원정대는 말 그대로 일당백을 찍으며 현지 군과 싸울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아메리카나 착취 빨인가? 그리고 이러한 국력의 차이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한풀 간 유럽 상대주의 비판론을 강조해서 비판이 비난의 경지로 까지 간 것이 총, 균, 쇠 비판론의 문제이다.

    [1] 수천 년간 석기시대 수준의 문명을 유지해오다 갑자기 서구 문명을 만나버린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예가 소개된다. 아버지는 돌도끼 차고 다니는데 아들은 교육받고 자라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발달한 문명에 사는 민족이라고 해서 두뇌가 더 진화했다는 뜻이 아니며, 선사시대에 인간의 뇌는 이미 현대인과 같은 정도로 진화해 있었다는 것. 타임머신을 타고 크로마뇽인을 현대로 데려와도 파일럿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로 문명 발달 속도가 유럽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라 해도, 원래 '미개한 씨'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

    [2] 목화의 경우 4개의 품종이 있는데, 이들은 유연관계가 멀다. 품종 정도가 아니라 종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즉, 똑같은 발명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자 독립적으로 4번이나 하는 번거로는 과정을 거쳤다는 소리. 유라시아였다면 처음 쓸만한 품종이 나오자 마자 전체 대륙에 퍼지면서 한 종의 작물화로 충분했을 것이고, 문명 발달 속도도 훨씬 빨라졌을 것이라는 말이다.

    [3] 여기에 해당되지 않은 예로, 인간이 이용한 역사가 긴 코끼리가 아직까지도 가축화가 되지 않은 채 인간의 지휘 아래 놓는 방법이 생포 후 길들이는 것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4] 중앙아메리카의 문화들은 물자교환을 위해 먼거리를 이동했고, 잉카역시 길을 잘 닦아 놓았다. 마야와 아즈텍 이전의 중앙고원의 문화에 비슷한 양상의 건축이 나타나고,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물자가 출토되는 등 여러 면을 보아 그들이 정주형 생활만을 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즈텍은 북쪽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이(실제로 아즈텍이 침략에 무너질 때, 그 지역에 정착한 지 200년 전후였을 뿐이다.) 세운 것으로, 이 지역이라고 교류가 없던 것은 아님을 잘 알아야한다. 그러나 분명 남미, 중미, 북미 원주민 간의 '구대륙만큼의 교류와 (전쟁을 포함한) 상호 발전'은 보이지 않긴 하다. 이에는 '타고난 탐험심의 부족'보단 탈 것인 가축화된 대형 동물의 부재, 교류해야할 압력(교류는 선의로만 이로워지진 않는다)이 적었다는 것 등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사실 끄리스또발 꼴론(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 아메리카에 닿은 것도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다. 여기에 대해서 동양계가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알게 되어, 확장되는 대체역사소설들이 있기도 하다.

    [6] 아즈텍제국은 철기가 없어서 흑요석을 쪼개서 병기로 만들어 싸워야 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모두 알지 않는가?

    [7] 칠레에서 원주민 영토를 뺏을 궁리만 하던 정치가와 군인들은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정치가 엉망이라 필요로 하는 게 너무 적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당시 마푸체 원주민 대부분은 칠레사회를 절대 '더 진보한 사회'라고 여기지 않았다.

    [8] 그러나 현대경제사회체제는 환경문제의 주요논제인 '지속가능성'면에선 심각하게 떨어지며 너무나 넓은 지역의 고갈되는 자원을 필요로 하는 체제로, 환경위기가 닥치더라도 지역을 옮겨가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체제와는 다르다. 이것은 '더 잘 적응하는 것'조차도 아니며 다르게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하는 게 '선'이라면 오늘날에도 인구가 많은 나라가 인구가 적은 나라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보곤 후진국이라 하지 않던가?

    [9] 아마존 푸투마요에서 '발달한 물질문명'을 전파하려던 고무채취상들은 원주민들이 그 '더 나은 문명'에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자 원주민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켰다.

    [10] 여기서 여름밀-겨울밀의 변화와 중국의 토착작물인 기장 등을 언제 몰아냈느냐가 문제인데, 그 속도로 하면 유의미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11] 단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언급한 아스텍의 단백질 부족 식인설은 그대로 수긍하기에 문제가 많은 학설이다.

    [12] 메디아부터 헤로도토스의 서술 이외에는 기록이 아예 없는 국가이다. 페르시아의 경우는 다리우스의 비문 아니면 대부분 그리스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13] 정성공군은 대만을 정복할 수 있었지만 1/20 밖에 안되는 VOC 농성군보다 먼저 굶주려서 와해될 뻔했으며 무력으로 공성해서 쫓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태국의 경우는 4만명의 태국군이 200명의 프랑스군을 무력으로 쫓아내지 못해 협상을 해야 했다. 더 나아가 당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이러한 원정군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나마 예외는 어지간한 유럽의 원정을 압도하는 정화의 남해원정인데 지속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14]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유럽 상대주의 비판론이 지나치게 강하다. 아니 유행이 늦어서 10여 년 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상황이다. 문젠 그 시기에 유럽중심주의 비판론을 만들어낸 서구에서는 이미 그 비판론을 재비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 후새드

    필자가 「총. 균. 쇠」란 어떤 책인가?/ GUNS, GERMS. AND STEEL / 武器, 病菌, 金屬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를 소개하면서 방문자 여러 분에게 꼭 한 번 일어 보기를 권장하는 내용이 있다. 이들 글을 접하게 되면 많은 생각들이 변하여 새롭고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어 자신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외로운 자아/고독한 자아’ 를 너(남/타인)에게 보여주고, 대화함으로서 「우리」가 되는 동귀일체의 기쁨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흥분과 같은 삶의 생동감(生動感)을 느끼게 되고, 후련함이 밀려 올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독(必讀)을 권장(勸獎)하는 글은, 증보판에 실린 특별 증보면 추가 논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 625 P.과 2003 후기; <총, 균, 쇠> 그 후의 이야기 - 655 P. 그리고 임홍빈의 ‘일본인의 조상은 한민족인가?’-PP.674-679. 이현복의 ‘1988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명저 <총, 균, 쇠>의 진가’ -PP.680-683. 김진준의 ‘인류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 -PP.684-686. 등이다.

                                                                                                              / 「총. 균. 쇠」란 무엇인가? (6 -6)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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