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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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역. 신유학. ‘무극대도는 몸속에 있다.’
그는 가다가 일반 서당에선 뭘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서 몇 군데를 들러보기로 한다. 그런데 영덕의 세 번째 서당은 학동이 많아서 훈장 혼자 감당하기가 벅찼다. 훈장은 수운이 필사한 ‘반야심경’을 보고는 붓글씨를 지도해달라고 붙잡았다. 수운은 붓글씨와 천자문을 맡아 가르쳤는데 학동들 붓글씨 실력이 쑥쑥 늘었다. 그래서 글방에서는 수운에게 한추위를 견딜 솜바지저고리를 선물하면서 쪼끔만 더 지도해달라고 붙잡아, 음력 2월 초순까지 돕다가 더 지체할 수 없어 부랴부랴 떠난다. 용담에서 봄부터 열리는 공부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용담에 돌아와 보니 주역공부 준비 중이다. 수운은 이튿날부터 여러 어른 축에 끼여 주역공부를 한다.
근암은, 주역은 주로 ‘복희·문왕·공자’에 의해 이뤄진 거라 한다. 주역은 성인이 천·지·인을 관찰해서 우주관을 밝히고 괘로서 표현한 거라 한다. 그래서 주역은 ‘우주관과 점서’ 두 가지 기능을 갖춘 거란다.
“자, 그럼 ‘주역 우주관’부터 보도록 하자. 주역 우주관은 주로 공자(BC551∼)가 지은 것으로 보는 ‘괘사전’에 잘 나타난다. 여기에 ‘주역은 태극에 있다. 이것이 음양을 낳고(易有太極 是生兩儀)···.’라는 글이 나온다. 이 같은 태극은 질서 지향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음양변역인 ‘밤낮‧ 춘하추동’이 순환의 질서를 갖춘다고 본다. 그럼 음양이란 무엇인가. 주역 음양 관은 낮과 밤에서 비롯한다. 낮은 양이요, 밤은 음이라 한다. 하늘을 양이라 하고 땅을 음이라 한다. 양인 하늘과 음인 땅의 조화로 모든 생물은 태어나고, 그 중에 인간이 최령자다. 이처럼 질서 지향적인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변역의 질서 속에서 만사만물이 화생하는 걸로 보는 것이 주역 우주관이다.
근암은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잠시 쉬자고 해서 모두 밖에 나갔다 온다.
“그럼 이제 ‘주역 점’을 개괄해 보자. 인간 운명도 ‘음양변역’의 질서 속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만든 게 ‘괘’이다. 만물은 천·지·인 삼재로 이뤄졌으므로 양효(―)· 음효(- -)로써 삼효(― ― ―)를 만들어보면 8가지 꼴이 나오는데 이를 8괘라고 하고, 이를 ‘건·곤·진·선·감·리·간·태’라 한다. ‘건(乾)’은 <천(天)·부(夫)·마(馬)·건(建)>의 뜻을, ‘곤(坤)’은 <지(地)·모(母)·우(牛)·순(順)>의 뜻을 가진다. 나머지(진(震)·선·감(坎)‧리···)도 이같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 이 8괘를 곱하면 64괘가 나오는데 이 같은 64가지의 모습에 모든 것의 운명이 담겨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람들의 모든 운명의 작용도 이 64가지 괘로서 살펴볼 수가 있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괘를 정하는지 대충 알아본다.”
근암은 큰 대나무통에서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보다 가는 산가지 50개를 꺼내서 1개를 뽑아 ‘태극’이라하고, 49개를 둘로 나눠 ‘음·양’이라하고, ‘양’에서 1개를 빼서 왼쪽에 놓고, ‘음’에서 네 개씩 빼낸 나머지(1∼4개)를 왼쪽에 놓고, ‘양’에서 네 개씩 빼낸 나머지(1∼4개)를 왼쪽에 놓고, 왼쪽 것을 모두 합치면 5개아니면 9개가 되는데 이를 ‘일변’이라 한다. 나머지로 1변처럼 해서 2변을 구하고, 또 나머지로 2변처럼 해서 3변을 구한다····. 이렇게 6번을 해서 6효를 구한 것이 점괘라 한다. 그렇게 구한 점괘가 ‘양음음 음양음’인 ‘수뢰준’ 괘였다. 근암은 ‘주역책’을 펼쳐서 ‘수뢰준’괘의 점괘를 찾아보여 주며 설명을 했는데 그 요지는 ‘음양음’은 ‘감(坎)’괘에 속하며 물 등을 의미하고, ‘양음음’은 ‘진(震)’괘에 속하며 벼락 등을 의미한단다. 따라서 이 괘는 물처럼 순조롭게 일이 시작되다가 돌연히 벼락같은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는 괘라고 한다.
그렇게 대충 설명하고 나서 모두 50개의 산가지를 마련하도록 하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근암은 와룡암 위쪽 건너편에 있는 용담서사로 올라가 눕는다. 근래에 오면서 오래 앉아있기가 힘겨워서 점심 무렵엔 와서 눕는다.
수운은 주역을 반년 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 알속49을 알게 되면서 점점 흥미를 잃는다. 점괘는 우연히 결정되는 것이어서 구지 산가지 50개로 어렵게 구해야할 당위성이 전혀 없어서다. 차라리 윷 한가락을 던져서 엎어진 건 ‘양’이라하고 젖혀진 건 ‘음’이라고 하면서 6번 던지면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 거다. 요컨대 우연히 얻어진 괘가 어찌 내 운수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의아심이 들어 황당한 거라 여겨진 거다. 신총기 선비가 ‘담헌설’에서 인용한 말처럼 ‘관찰하고 실험한 사실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여겨져서이다. 그래서 수운은 아버님 말씀대로 산가지에 의한 점괘는 그것이 좋게 나오든 나쁘게 나오든 우연일 뿐이므로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하는 쪽으로 공부했다. 그러고 그가 관심을 갖고 본 것은 잠언(箴言)50의 글과 도에 관한 글이다. 주역의 도는 우주의 원점을 태극이라 보는데 그 태극과 무극의 관계가 궁금했고, 그 태극이 음양으로 갈리고 음양의 변역으로 만물이 생기고 밤낮‧춘하추동이 질서 있게 순환하는데 어떻게 그런 질서가 발현되는지가 궁금했다.
그해 근암은 ‘64괘·괘사전·설괘전’을 설명해나갔고, 수운은 근암을 실망시킬 수 없어 근암이 외워야한다는 걸 열심히 외웠다. 주역 공부를 마무리 진 것은 동지 달에 접어들어서다. 주역을 마치자 책씻이로 시루떡을 쪄서 먹고 종강하였다.
49)알속: 1.실제의 내용. 2.헛것을 털어내고 남은 실속.
50)잠언: 교훈과 경계가 되는 짧은 말.
15, 11.28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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